전원으로 나갈 수 없다면 도시에서, 아파트 공간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전원생활을 하는 방법을 찾아보는 것도 좋다. 고수 주부, 조선희 씨는 작은 주방에서 자기만의 보물을 찾고 가꾸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시행착오를 통해 그녀가 발견한 소소한 행복 이야기.
16년차 주부 조선희 씨. 그녀에게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 심플하게 꾸민 그녀의 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다름아닌 주방. 오래된 딸아이의 옷장은 프라이팬을 걸어두는 수납장으로, 각종 냄비는 레스토랑처럼 3단 트레이에 정리되어 있다. 하지만 그저 살림깨나 하는 주부라고 단정하기엔 아직 이르다. 주방을 속속들이 들여다보면 너무 무거워서 도통 손이 갈 것 같지 않은 도구들로 가득하다.
뭉근한 멋을 내는 살림을 찾는 재미,
더뎌서 소중하다
손맛 좋고 인심 좋다보니 자연스럽게 요리하는 걸 즐기게 됐다는 선희 씨. 주방용품 전문점에서 살림살이들을 찾는 재미에 푹 빠지게 됐다. 내게 맞는 도구를 찾는 과정은 시행착오의 연속이었지만, 그 순간을 통해 남다른 살림 원칙을 갖게 된 것도 사실.
“금세 끓는 냄비는 시간을 단축시킬 순 있어도 제대로 된 맛을 내지는 못하죠. 여러 가지를 써보면서 깊은 맛을 내는 도구를 찾게 됐어요.”
간편한 전기밥솥 대신 압력밥솥을 사용하는 것도 이런 이유. 옛날 우리 조상들이 사용하던 아궁이는 온도가 서서히 내려가면서 뜸이 들어 밥맛이 좋았다. 이런 ‘원리’를 재현한 도구를 찾다가 몇 해 전에는 한창 인기를 끌던 무쇠솥도 구입해봤다는 선희 씨. 무쇠의 경우 매일 사용하지 않으면 금세 녹이 슬어 관리하기가 쉽지 않았다.
차선책으로 몇 해 전부터 코팅된 무쇠용기를 즐겨 쓴다. 무겁고 투박하지만 요리를 해보면 그 진가를 알게 된다는 무쇠용기. 김치찌개를 만들 때도 일반 스테인리스 냄비는 금세 졸아버리지만 무쇠는 뭉근히 오래 끓여도 수분이 증발하지 않아 진한 맛을 낼 수 있다. 아무리 가볍고 편한 냄비가 나와도, 그 깊은 참맛을 흉내낼 수 없기 때문에 손목을 압박하는 무게 정도는 감수할 수 있다는 것. 덕분에 구질구질하게 나와 있던 알루미늄, 양은 냄비는 집에서 추방됐다.
1 달걀프라이를 할 때는 식용유를 뿌리고 기름솔로 살살 펴면 기름 섭취를 줄일 수 있다.
2 인스턴트식품 대신 제철재료로 만든 한 끼 식사. 가족의 건강을 책임지는 엄마의 손길이 살아 있는 밥상이다.
손 탄 용기는 소중히 관리해 수명 연장
경험을 통해 가장 궁합이 잘 맞는 짝을 찾아내는 것도 쏠쏠한 재미. 압력밥솥을 사용하면서 가스레인지 대신 할로겐 호브를 사용하게 됐다. 가스레인지는 화구가 크기 때문에 열이 넓게 퍼져서 아무리 조심해도 압력밥솥 손잡이가 타는 걸 막을 수 없었다. 고민하던 차에 다소 생소한 할로겐 호브를 생각해냈다. 할로겐 호브와 압력밥솥은 찰떡궁합. 할로겐 호브는 불을 꺼도 잔열이 10~20분 정도 남아 자연스럽게 뜸을 들일 수 있다. 6분 만에 밥을 짓고 10~15분 정도 기다리면 윤기가 흐르는 밥을 먹을 수 있다.
영양 손실을 줄이고 제대로 맛을 내주는 고마운 도구를 딸 대하듯 정성스럽게 돌보는 것 또한 잊지 않는다. 관리하지 않으면 오래 사용할 수 없고 싱크대 밑에 찔러넣으면 서로 엉켜서 찾아내는 것 또한 쉽지 않기 때문.
“그릇은 수납장에 차곡차곡 넣어 장식하면서 냄비는 안 보이는 곳에 쌓아두는 경우가 많잖아요. 세간 살림살이는 보이는 곳에 제대로 정리하는 것이 좋아요. 습기가 많지 않고 잘 보이는 공간에 칸칸 수납해야 필요할 때 바로 꺼낼 수 있고, 더러움이 보이면 바로 닦을 수 있거든요.”
오래된 책장을 식탁 옆에 두고 각종 냄비를 넣어두었다. 크기별로 쌓을 수 있는 스테인리스 냄비를 제외하고, 무거운 무쇠 냄비에 온전히 한 자리씩을 내준 것. 몇십 년을 쓴 뒤 초등학교 다니는 딸에게도 물려줄 수 있는 소중한 자산이기 때문이다.
1 칼, 가위, 국자 등 손때가 탄 작은 도구를 적재적소에 배치해두면 필요할 때 우왕좌왕할 일이 없다.
2 삼겹살구이나 튀김음식을 할 때도 가급적 키친타월은 사용하지 않는다. 스테인리스 체에 음식을 올리면 기름이 빠져 효과적이라고.
조선희 씨의 아날로그 살림 도우미
1. 국물 우리는 통
간편하다고 해서 시판 국물내기용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는다. 멸치는 전용 핀셋으로 내장을 제거하고 밀폐용기에 보관해두었다가 무, 다시마와 함께 육수를 만든다.
2. 나무 도마
두툼하고 무거운 원형 나무 도마. 관리만 잘하면 여러 개의 플라스틱 도마보다 훨씬 사용이 편리하다.
3. 바구니
샐러드나 과일을 담는 바구니는 플라스틱 소재가 아닌 세라믹으로 만들어진 견고한 용기를 사용한다. 때가 잘 끼지 않고 손잡이가 양쪽에 달려 있어 편리하다.
4. 스패츨라 & 솔
작은 용기도 살 때 제대로 된 것을 사는 것이 좋다. 평생 두고 사용할 스패출라와 참기름 바르는 솔도 실리콘 소재로 골랐다. 플라스틱 솔은 음식의 열기에 녹거나 사이사이에 때가 끼어 오래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 중앙이 비어 있는 실리콘 솔은 오래 사용할 수 있다.
5. 무쇠솥
국, 찌개는 물론 각종 찜요리까지 다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무쇠솥. 수증기 증발을 막아주고 재료 고유의 맛을 지켜주는 일등 공신이라고.
주부는 집안의 관리사라고 이야기하는 선희 씨. 덕분에 집 안에는 스피디한 가전제품을 찾아볼 수 없다. 전자레인지는 퇴출된 지 오래. 사용 시 발생하는 원적외선이 사람 몸에 좋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일찌감치 치워버렸다. 해동을 할 때나 밥을 데울 때 조금 불편하지만 대체할 수 있는 방식을 찾게 된 것도 큰 소득이다.
“사실 전자레인지에 밥을 데우면 맛이 떨어질 뿐 아니라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돌덩어리가 되어버려 난감하잖아요. 남은 밥은 소스 팬에 담고 물을 살살 뿌려 낮은 불에 데워요. 금세 밥이 포슬포슬해져 맛도 좋고 자연스럽게 눌은 것들은 누룽지를 해먹으면 되니 일거양득이죠.”
1 제 아무리 좋은 용기도 관리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수납장을 주방에 배치해 각종 냄비를 깔끔하게 수납했다.
2 행주는 면 100%만 고집한다. 50매씩 대량 구입하는데, 도톰해서 사용감도 좋고 폭폭 삶아 사용하면 새것처럼 깨끗하다.
3 식탁 옆에는 미니 컴퓨터를 두었다. 가족들이 라디오를 들으면서 대화를 나누다보니 자연스럽게 화젯거리도 찾고 식사 기간도 늘어났다.
제대로 된 제품을 고르는 안목이 로하스의 시작
간편하다는 이유로 각종 조리도구를 이것저것 사 모으다보니 제때 사용하지도 못하고 아까워 버리지도 못해 낭패를 볼 때가 많다. 환경을 생각해도 그렇고 효율성을 따져봐도 구입하기 전에 한 번 더 깐깐하게 따져보고 고르는 것이 좋다.
쉽게 더러워지는 도마 역시 마찬가지. 플라스틱 도마를 여러 개 구입해 생선, 김치, 채소용으로 따로따로 써봤지만 금세 물이 들고 해어져 일 년이면 쓰레기통 신세였다.
묵직하고 투박한 나무 도마를 제법 높은 가격을 주고 구입한 이유도 오래오래 잘 사용할 수 있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김치처럼 물이 드는 재료를 썰 때는 요리 페이퍼를 깔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미네랄 오일을 발라 닦아준다. 얼룩도 없고 갈라지지 않아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다. 사용하기 까다롭지만 그만큼 기름을 치고 닦는 등 길을 내면서 점차 내것으로 만드는 과정이 필요하다.
“한 번 쓰고 버리는 행동 자체가 번거롭고 스트레스예요. 손때가 묻을수록 점점 정이 드는 것처럼 귀찮아도 내것으로 만드는 과정을 통해 내게 딱 맞는 세간을 만들 수 있지요.”
플라스틱 용기 대신 유리그릇, 스테인리스보다는 무쇠 냄비… 까칠한(?) 눈으로 고르고 서로 익숙해지는 시간을 거쳐야 비로소 손에 딱 맞는 친구를 만나게 된다.
직접 사용해보고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하는 살림살이를 찾아냈다는 조선희 씨. 건강을 위한 당연한 선택은, 남들보다 느리고 불편하지만 진정한 실용을 재현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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