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5:7-11 베드로는 삽비라에게도 땅을 판 것이 이것 뿐이냐고 물었고 삽비라도 아나니아처럼 성령님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고 거짓말을 했다. 베드로는 어째서 주님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며 삽비라도 죽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심판을 전하자 삽비라는 그자리에서 죽었고 이 소문은 교회와 교회 밖의 모든 사람들에게 퍼져서 모두가 두려워했다.
이전 말씀에서 아나니아는 그 마음의 성령님의 자리에 자신의 탐욕을 놓아서 그 마음은 사탄의 놀이터가 되었다. 그래서 아나니아는 성령님을 속이는 거짓말을 하게 되고 그 때문에 하나님께서 아나니아를 심판하셔서 죽게 하셔서 막 생겨난 거룩한 공동체를 지키려 하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그 아내 삽비라도 역시 와서 성령님을 속이는 거짓말을 하여 죽게되는 장면이다.
7절은 원어에서 "그러나" 라는 말로 시작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영어 번역들은 말이 안된다고 생각하여 번역하지 않거나 "now"로 바꿔 의역을 했다. 남편이 죽었으니 당연히 알고 슬퍼했어야 일반적으로 볼 때 맞는다. 그러나 삽비라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세시간쯤 지나서" 라는 말을 원어 그대로 직역하면 "세시간쯤 간격이 되었을 때" 라는 뜻이다. 그의 아내가 그 동안 일어난 일을 알지 못하고 들어왔다 고 했다.
8절에서 "베드로가 가로되"나 "베드로가 물었다" 로 번역했다는 말은 원어에서는 "대답했다" 라는 뜻이다. 영어번역들도 역시 대부분 말했다 또는 물었다 라고 번역했다. NASB만이 "reponded to her"로 원어 그대로 직역했다. 이 말은 질문하지 않았는데도 말하는 경우에 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여자가 들어와서 어떠한 말이나 행동을 보인 것에 대한 응답인데 그 상황을 생략한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
베드로는 그 여자에게 대꾸했다. 원어에서는 "내게 말하시오" 라는 말이 먼저 나온다. 속이지 말고 정직하게 말하라는 뜻이다. 이어서 "너희들이 판 땅이 이만큼이냐?" 라고 물었다. 이렇게 물은 것을 두고 베드로가 삽비라를 죽이려고 함정을 팠다고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본문의 문맥을 잘못 판단한 것이다. 이는 삽비라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말할 기회를 준 것이다. 성령께서는 이미 두 사람이 짰다는 것을 베드로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베드로의 계략이라기 보다는 성령께서 지시하신대로 베드로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삽비라는 "예, 그것 뿐입니다" 라고 거짓말을 했다. 삽비라도 역시 자기들 두 사람이 비밀리에 말한 것이기에 교회와 성령님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자 베드로는 9절에서 "너희들은 어째서 서로 공모해서 주님의 영을 시험하려고 하느냐?" 라고 물었다. 공모한다는 말의 본래 뜻은 함께 같은 소리를 낸다는 뜻이다. 영어의 symphony라는 단어가 그리스어의 이 단어에서 온 것이다. 부부가 각자 "돈을 얼마 떼어 놓고 드리자" 라고 동시에 소리 냈다는 뜻이다. 이는 둘 중 어느 한 사람이 주장하여 따랐다는 뜻이 아닌 것이다. 둘 다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가 동시에 그렇게 말했다는 뜻인 것이다. 저들은 둘 다 똑같이 성령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따라서 베드로의 이러한 말은 이 두사람의 죄가 탐욕이 아니라 교만이라는 뜻이다. 자신들이 하나님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4절에서는 성령을 속인다고 했는데 이번에는 주의 영을 시험한다고 했다. 주의 영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란 뜻이다. 따라서 성령이 곧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말을 바꾸어 말한 것이다. 시험한다는 말은 고린도전서 10:9절도 나온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시험하지 맙시다. 그들 가운데 얼마는 그리스도를 시험하였고 뱀에게 물려 죽었습니다" 라고 했다. 이는 민수기 21:6절에서 인용한 말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먹을 것도 없고 마실 것도 없다며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했을 때 뱀에 물려 죽은 것이다. 따라서 시험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한다는 뜻이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그리스도의 영이 자신들이 생각하고 말하는 것을 알기나 할까?' 라고 그 능력을 의심했던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보다 자신들을 더 위에 두는 교만이다.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께서는 이들의 악한 생각들을 다 알고 계셨다는 것이다. 다 알고 있는데 왜 의심하여 그 능력을 시험하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9절 뒷부분에서 베드로는 "보시오!" 라는 말로 이어간다. 놀라운 구경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 구경거리는 "그대의 남편을 묻은 발들이 문 위에 있소" 라는 것이다. 그들이 너를 메어 갈것이라고 베드로는 삽비라에게 말했다. Polhill은 이러한 베드로의 말이 하나님의 대변인으로서 예언적 역할을 한 것이라고 말한다(Polhill, 159). 이는 베드로가 저주의 말을 해서 죽는 것이 아니다. 베드로는 단지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통해 주신 말씀을 전한 것 뿐이다.
10절은 "그러자 그 여자는 즉시 베드로의 발 앞에 쓰러졌다. 그리고 숨을 거두었다" 라고 했다. 새번역에서 "그 자리에서" 라고 번역한 말은 원어에서는 즉시 라는 뜻이다. 베드로가 말하자 마자 그 여자는 즉시 베드로의 발 앞에 쓰러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곧바로 숨이 졌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젊은이들이 들어와서 삽비라가 죽은 것을 발견하고는 그 남편 앞에 묻었다" 고 했다. 너무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자비의 하나님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생각이 들지 않는가? 삽비라도 아나니아와 같이 사탄의 영에 충만해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며 자신들이 하나님보다 위에 섰기 때문이다. 이러한 위선과 교만은 전염병처럼 금방 퍼져 신생아와 같은 교회를 죽게 할 것이기에 즉시 하나님의 능력으로 전염병을 막으신 것이다. 이것은 베드로가 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이 직접 행하신 일이다.
11절은 5절과 똑같이 크게 두려워하였다 라는 말이 후렴처럼 울려 퍼진다. 하지만 다른 점은 앞에서는 이 소문을 듣는 모든 사람들 위에 큰 두려움이 덮쳤다 라고 했는데 11절에서는 온 교회와 모든 듣는 사람들 위에 덮쳤다고 했다. 교회 안에도 덮쳤고 또한 교회 밖에도 덮쳤다는 뜻이다. 믿음의 공동체로 모인 모든 사람들과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 그 누구나 그 소문을 듣는 사람들 모두 위에 엄청난 두려움의 파도가 몰려와 모두가 그 두려움에 잠겼다는 뜻이다. 성령님의 능력이 몰고온 두려움의 파도는 해일처럼 몰려와 모든 사람들을 덮쳐버린 것이다. 누구나 다 하나님 앞에서 그런 거짓말을 한 적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모두가 하나님의 심판의 손이 나타난 것을 보고 두려워 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