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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공 3인방의 기차여행기/ 글 : 노은(이상려)
새벽 2시의 동대구역 매표소 모습- 새벽시간이라 매표하는 사람도 없고 한산한 모습이다.
소파, 백운 그리고 나(노은)우리 지공 삼인방은 수학여행을 떠나는 학생마냥 들뜬 기분에 잠도
잊은 체 2008년 12월 22일 새벽 2시 22분 동대구 발 부전행 동해남부선 무궁화호 열차에 몸을 실었다.
3박 3일의 일정으로 무작정 떠나긴 했으나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씨라는 기상청 예보바람에 소파는
방한복 준비를 독려하곤 했다. 은근히 걱정도 되었으나 열차에 오르자 마자 그것은 한낱 기우였다.
난방이 잘 되여있어 오히려 파카가 거추장스러울 정도였고 차창밖으로 흐르는 새벽 불빛에 졸음이 엄습
해온다.
순간순간 눈을 떠 동해남부선의 풍경을 부지런히 살폈으나 어둠에 묻힌 바깥 구경은 기대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었다. 하지만 단선 철로위를 달리는 열차의 덩그렁 거리는 소리는 그 옛날 탓던 완행열차의 추억
속으로 빠져들게 했다.
영천, 경주, 울산을 거처 3시간후 05시 23분에 부전역에 도착했다. 아직 어둠이 완전히 거치지 않는 시간
이라 마땅한 취사장소를 구하지 못해 어느 분식 가게 옆에서 버너와 코펠을 꺼내 아침식사를 준비했다.
가급적 돈을 적게 들이고 즐기는 기차 여행을 기획했던 터라 호화로운 식당이용은 아예 고려 대상에도
없었다.
따뜻한 난방열차에서 방금 내린 탓에 바깥공기는 더욱 차가 왔고 바람마저 세차게 불어 잠시 망서리다가
가게옆 테이블에서 바나로 준비한 곰탕과 된장국을 끓여서 아침식사를 떼우고 그리고 커피 한잔을 마시
고 나니 몸에 훈훈한 열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때의 기분은 아직도 진한 추억으로 남는다.
부전역에서 출발하는 06시 50분 발 목포행 무궁화호 열차는 우리 일행을 실은채 새벽을 열며 서서히 움직
여 갔다.
삼량진역을 거쳐 경전남부선에 들어선 열차는 반대방향으로 가는 다른 열차와의 교행 관계로 간혹 기다
리기도 하였으나 순탄하게 달렸다.
다행이도 삼량진과 진주사이의 철로 복선화 공사가 이루어지고 있어 몇 년 후에는 지금보다는 더 빠르고
편안한 여행을 즐길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감이 부푼다.
또한 옛날처럼 판박이 역사(驛舍)가 아닌 현대 감각을 살린 별장 같은 건물들이 눈길을 끈다.
너무나 아름다워 그곳에 꼭 한번 들리고 싶은 충동을 느낀 대표적인 역사가 개양역 건물이다.
소파가 부지런히 디카의 샷터를 눌러 대곤 했는 데 그 역사를 담았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무척 많이 발전한 도시이면서도 남강과 더불어 이 나라를 지킨 역사의 도시 진주(晋州)를 거쳐
북천역에 닿았다. 지난 9월, 북천 코스모스 축제를 알리는 기간 넘긴 깃발이 역 전주마다 펄럭인다.
지금은 흔적을 찾기조차 어렵지만 머리속엔 지난 가을의 아름다웠던 코스모스 거리며 아담한 역사,
그 뒤로 펼쳐진 산촌모습이 또렷하다.
그런가 하면 지리산 아랫자락을 숨바꼭질하듯 감아도는 철길위에 양보역이란 역명이 이채롭게 다가 온
다. 뿐만 아니라 이제 줄어드는 시골마을 인구와 편리한 도로교통에 밀린 탓일까? 역사(驛舍) 맞은 편 마
당엔 잡초가 무성하고 스레트로 덮은 쓰러질 듯 억지로 버티고 있는 건물 한 동(棟)이 우리의 눈앞을 스쳐
지나간다. 바로 철도의 명암을 그대로 보여 주는 현장 같다.
수 많은 산을 뜷고 감나무 밭이랑, 대밭을 지나 내도 건너고 작은 논들을 뒤로하며 열차는 하동역을 지난
다.
섬진강 하구에 자리한 이곳은 전라도로 들어가는 경상도의 마지막 역이기도 하지만 화개장터를 중심으로
전라도 사람과 경상도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펼치는 화합의 장터로 더 유명하다.
상계사 계곡의 벗꽃과 섬진강 서편 산을 베고 펼치는 매화 축제 또한 수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머물게하
는 아름다운 고장이다.
열차는 현대화의 한 상징이기도 하고 남해안의 작은 포구를 우리나라 굴지의 중공업도시로 탈바꿈한
광양시에 잠시 머물었다. 곧바로 순천역에 닿았다.
우리 일행은 역 앞 광장 한구석에 있는 파고라 밑에서 라면과 곰국으로 점심을 떼웠다.
원래 계획에는 순천만 갈대 밭도 거닐고 순천 중앙시장에서 횟감이라도 사서 “객기(?)를 부릴까”도
했는데 여수발 용산행 열차가 곧 들어온다는 역무원의 외침에 서둘러 자리를 떳다.
12시 50분에 우리 일행이 열차에 오르자 마자 내달리는 열차는 지금껏 내가 타본 무궁화호 열차중 가장
깨끗하고 KTX열차나 새마을 호를 능가할정도로 안락하게 꾸민 듯한 최신열차로 실내분위기가 매우 좋았
고, 그리고 단선 철도였으나 (복선 노반 공사가 거의 완공상태임) 진동도, 소음도 거의 느끼지 못할 만큼
쾌속으로 달렸다.
수시로 역무원이 객차내를 오가며 승객의 불편함과 안전을 살피는 친절한 태도는 너무나 감동적이다.
철도청이 한국철도공사로 바뀐뒤 거둔 획기적인 변화로 여겨 진다.
그런데 이 순천역은 순천 지방철도청이 자리할 만큼 교통요지여서 옛날 증기기관차 시절 사용했던 급수
탑이 아직도 역 한편에 우람하게 버티고 서 있다. “칙칙 폭폭 “기관차 화통에 석탄을 부지런히 퍼 넣던 화
부의 땀흘리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런 회상에 잠기며 차창밖을 응시하다 보니 어느덧 열차는 곡성, 남원을 지나 오수역(獒樹驛)에 멈춘다.
역 이름도 생소하거니와 식곤증이 엄습해 오수(午睡)를 즐길까 했는데 거대한 토목공사가 눈길을 끈다.
바로 전주 광양간 고속도로 건설공사였다. 모든 경제활동이 정체(?)해 버린듯한 착각의 경상도에서 출발
해서 이곳까지 오는 동안 “그래도 살아 움직이는 지역도 있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말로만 듣던 서해안
시대를 실감하게 되었다. 이제 임실을 거쳐 우리나라 최대(?)규모의 한옥 멋쟁이 역사가(驛舍)가 우리를
맞는다.
바로 전주(全州)다. 이곳은 예역사가 살아 숨쉬고 우리나라 전통음식인 한식과 전주 비빕으로 유명한 호
남평야에 우뚝솟은 웅도(雄都)다.
그러나 전주와는 대조적으로 작지만 아담한 새 역사를 자랑하는 삼례역을 지나 오후 2시 45분 도착한
익산역(구 이리역)에서 우리는 하차 했다.
익산 역 앞에서 3인방
먼저 우리나라 5대시장의 하나(?)라고 이곳 택시기사가 자랑하는 북부시장을 찾았다. 4일 , 9일에 열리는
5일 장터라는데 대구 남문시장 규모 정도였고 별로 특색 있는 상품도 찾아볼 수 없었다.
별로 볼거리도 먹거리 장터도 없어 오든 길을 약 2Km를 걸어 조금 전 우리가 타고 갔던 택시기사가 정식
이 유명다며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 형제식당이란 기사식당을 찾아 갔다.
이곳에서 택시기사가 추천한 정식을 주문했는데 정말 실망했다. 조금전 북부시장에 갈 때 탄 택시기사가
익산에 오면 백밥 (정식)을 먹어야 한다고 소게한 집인데 주문한 정식은 기대에 어긋나는것이 아니고 엉
망 그 자체엿다.
맞있게 먹어야지 하던 정식에 대한 기대가 허물어져 씁쓸한 마음 금할길 없었다.
저녁식사를 마친 우리는 익산역 앞에 있는 중앙사우나 찜질방에서 오늘 여장을 풀었다.
이곳 역시 시골도시 티를 벗지 못한채 우중충하고 어두웠다. 이는 주인의 디자인 안목이 문제인지 알 수
없으나 첫인상 자체가 밝지 못하고 이용객 수준 또한 문제가 많았다.
개인이 가져온 음식 때문에 간이식당주인과 다툼을 하는가 하면 밤 늦도록 떠들어 대는 젊은 남여의 태도
는 도를 지나쳣다.
아침8시에 찜질방에서 나와 익산역 휴게실에서 준비해 간 컵라면으로 아침식사를 대신했다. 23일 08시 57
분 보석 박물관의 개관시간이 늦어 관람을 포기한체 장항선열차에 몸을 실었다. 열차안에서 마시는 옥수
수 스프와, 커피 맛은 정말 일품이었다.
얼마 후 일제 강점기 호남평야의 쌀을 수탈해갔던 서해안의 중심항구로 역사에 기록된 군산항을 지나 금
강하구둑 철도를 달렸다.
아래로 보이는 금강하구는 썰물때라 검은 시궁창 같은 속살을 드러내 놓고 있었다.
물이 차면 무척 아름답겠지만……………..
그 옆이 장항역이다. 금강하구둑이 생기기전에는 장항선의 종착지다. 물론 지금역(驛)은 배 모양을 디자
인해 옮겨 지은 새 역사 이지만 예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 셈이다.
이곳에서부터 온양 온천역까지는 대체로 오르막이어서 인지 열차도 다소 힘들어 한다.
서천을 지나 판교역에 이르니 산과 논바닥에도 그제 내린 듯한 눈이 채 녹지않고 있는가 하면 도로 바닥
은 녹아 물기를 머금고 있다.
오늘은 날씨가 화창하게 개였다. 대천해수욕장이 있는 보령시의 시원하게 뚫린 시가지 대로가 보이고 높
은 건물들도 다소 눈에 띈다. 지금으로부터 22년전 모회사의 충남북 영업을 총괄할 때 자주 드나들던 곳
이었건만 멀리 서해안 고속도로가 지나고 시가지도 몰라보게 변했다
10시 34분에 도착한 광천은 새우젓과 어리굴젓으로 유명하다. 특히 토굴에서 발효시킨 것이어서 다른 곳
의 젓갈과는 비교가 안될 만큼 맛이 독특하단다.
그러나 이곳에도 텅빈 4층짜리 4동의 빌라 건물이 짓다가 중단 된 채 흉물스럽게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서해안 시대의 꿈에 부풀었다가 경제 침체의 된서리를 맞은듯하다.
장항선도 복선 노반공사중이라 많이 파 해쳐 놓았고 당진 – 대전간 고속도로 공사 등 토목공사가 한창이
다. 역시 서해안 시대가 준 해택이라고 해야 겠지?
어느새 홍성(옛이름홍주)역에 닿았다. 홍성에는 옛시절에 이 지방을 다스리던 관아가 있고 해미읍성이 있
는 역사적 도시 이며 최근에는 충청남도 도청이 옮겨 오도록 결정 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고대와 현대가
어울려 발전하는 서해안 행정 중심지 라고 해야 옳을까?
역
사도 갈색 벽돌집에 동기와를 얹은 무척 고급스러워 보이는 커다란 한옥건물이었다.
곧이어 우리국민을 기아에서 해방하고 “한강의 기적”을 이룩한 고 박정희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준공테이
프를 끊었던 삽교호 방조제가 위치한 삽교역, 그리고 휴양지 도고 온천을 지나 열차는 11시 38분에야 온
양온천역에 도착했다.
이역이 위치한 아산시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사당이 있는 현충사와 온천으로 유
명할 뿐 아니라 수도권이 연장선상으로 빌딩이 숲을 이루고 서울 지하철이 이곳까지 연장 운행함으로 우
리일행도 이곳에서 내렸다.
역광장에는 온통 눈으로 덮혀 아름답기 그지없다. 우린 이곳 역 앞에 있는 쉼터 의자에서 준비한 점심식
사를 했다. 옆에 앉았던 한 노인이 우리의 기차여행을 몹시 부러워하며 자신의 동생도 영천에 산다며 친
근감을 표한다.
눈 덮힌 온양온천 앞
온양온천 앞 파고라 에서 라면으로 점심
온양온천 광장 앞 크리스마스 트리
갈길이 바쁜 우리는 긴 정담을 나누지도 못하고 오후 1시발 서울행 지하철을 탓다.
종로3가역에서 내려 소파가 아직도 복원된 청계천을 못 봤다고 해서 복원된 청계천을 따라 걸었다.
길 주변에는 청계천 공구상들이 즐비하게 늘어놓은 각종공구랑 일상 생활용품등을 구경하면서 광장시장
에 들렸다. 바로 각종 먹거리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순대랑, 빈대떡, 부침게등 엄청 많았다 이집 저집 어느집으로 들걸까 망서리는데, 화사한 미소로 우리를
사로 잡는 아주머니 한분이 이었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우리 3인방은 42호집 아주머니의 의자에 앉아
있었다.
솥 뚜껑 만한 빈대떡을 앞에 놓고 참이슬 한잔으로 지금까지의 피로도 달래고, 미소 아주머니와 담소하는
멋도 부렸다.
42호집을 뒤로하고 오늘의 잠자리 sparex찜질방에서 여장을 풀기로 하였다. 서울에서 먹는 저녁식사는
노부부의 정성이 깃든 콩나물 비빔밥, 이튼날 아침식사로 먹은 흥인지문옆 우동집우동의 면발이 곱고 얼
큰한 국물맞이 지금도 군침이 돌게 한다.
2000원 짜리 콩나물 밥 /잘먹었다 ?
Sparex 찜질방에서 나온 우리일행은 08시 50분 동대문역에서 4호선 전철을 타고 오이도로 향했다.
이오이도는 시화 방조제의 축조로 육지가 되었고 4호서 전철의 종착역이 되면서 공단이 생기고 서울
사람 인천사람들이 쉼 없이 드나드는 곳이다.
특히 오이도 해양단지는 시화호를 바라보며 회를 즐기는 아베크 족이나 노인들로 북적댄다.
우리도 시화호 뚝길을 걷기도 하고 방파제에 늘어선 천막에서 굴을 까는 노부부의 자연산 굴과
회센터에서 갓 뜬 벤댕이 회를 앞에 놓고 정담을 나누며 기우린 참이슬 의 맛 거기에 백운이 계란을 풀어
끊인떡국맞은 필설로는 형언하기 어렵다.
오이도 빨간등대
오이도 회 타운 주머니 사정으로 구경만 했네
떡국을 끓이고 있는 백운
국가에서 배푸는 지공(지하철 공짜)혜택과 열차무궁화 30%할인 등으로 오이도를 떠나 천안까지 지하철
을 이용하고, 천안에서 동대구로 무궁화 열차편으로 그간 정겹고
추억어린 3박3일의 모든 여정을 마감했다. - 끝 -
2008년 12월 30일 노은 (이상려) 사진 은 : 소파 가
첫댓글 부럽다 부러워 마음은 굴뚝같으나 막상 베낭메고 나서지 못하는 사람으로 정말 부럽네요
만촌아제가 동행했다면 더욱 실감나는 여행기를 썼을텐데 무디어진 소인의 머리와 눈으로 보고 느낀 바를 썼으니 졸작이 되었네요. 예쁘게 봐 주세요.
노은님! 지공학생 소파사진이 곁들인 기행문 끝까지 읽게 해주어 고맙습니다. 소감은 대구동문들은 낭만이 있고 용기와 건강이 있다는것이 부럽습니다.
기행문 장편 소설 처럼 이래 쓰면 글쟁이 와암 만촌 설자리가 없어지잖아,하기서 노은도 대학때 학보사 출신이니 이정도야 왼손으로 한쪽눈 감고도 쓰고 말고겠지,
글과 사진 보니 정말 재미 있었겠다!
막상 베낭메고 훌쩍떠나는 여행이 쉽고도 어려운 여행인데 아무턴 마음맞추어 가는 여행 부럽소이다. 잘 잘....다녀 왔소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