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야기 17부- 인생의 최정점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
인간의 역사는 배신의 역사이다. 친구가 친구를 배신하고, 아들이 아버지를 배신하며, 누나가 동생을 배신한다. 단테는 그러한 배신과 배신의 역사 한 가운데에서 살았던 인물이다. 배신은 권력의 속성이라고 하지만 비단 권력뿐만이 아니다. 우리들 주변에서 이해득실에 따른 인간의 배신은 비일비재하다.
몇년전 가족들과 피렌체를 방문했다. 우피치 미술관을 둘러보고 그 옆에 있는 베키오궁을 관람했는데 그곳에 단테의 데드마스크가 있었다. 단테(1265~ 1321)의 본명은 두란테(약칭 단테) 델리 알리기에리 (Durante degli Alighieri)이다. 단테는 페트라르카, 보카치오와 함께 르네상스의 포문을 연 3대 천재로 추앙받는다. 단테는 후세에 두루 읽히는 명저 신곡을 저술하였는데, 신곡은 중세시대에 가장 위대한 문학작품으로 손꼽힐 정도이다.
단테의 데드마스크- 피렌체 베키오궁
단테는 30대 중반에 황제파와 교황파사이의 내전에서 교황파에 가담해 황제파를 물리치고 피렌체 정부의 최고위층에 올라 3년간 정치무대에서 활동한다. 하지만 이후 교황파는 다시 신흥상인계급을 중심으로 한 백당파와 귀족계급을 중심으로 한 흑당파로 분열되고, 백당파에 속했던 단테는 로마교황청에 외교사절로 파견된 사이에 흑당파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한다.
단테는 백당파를 규합해 피렌체를 탈환하려하지만 실패하고 만다. 흑당파는 단테가 유죄를 인정하면 죄를 사면해 주겠다고 제의하지만 이를 단테는 이를 거부한다. 단테에게는 사형선고가 내려지고, 피렌체로 돌아올 경우 화형에 처한다는 선고를 내린다. 이후 단테의 21년에 걸치 망명생활이 시작된다. 이후 흑당파가 무너지고 피렌체 시민들은 단테의 귀환을 호소했지만 자신을 배반하고, 우정을 배신했던 동료들과 자신을 추방했던 조국에 대한 노여움을 풀지 못했고 유랑생활을 계속하다가 라벤나에서 말라리아로 생애를 마감한다. 그의 나이 56세였다.
단테의 신곡 첫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내 인생 최전성기에 문득 뒤를 돌아보니, 어두운 숲속에서 길을 잃고 있는 나를 발견하였다.'
신곡은 지옥(Inferno), 연옥(Purgatorio), 천국(Paradiso) 이렇게 세 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편은 서른세절로 이루어져 있고 맨 앞부분에 이 시를 소개하는 절이 하나를 추가하면 총 100개의 절로 이루어져 있다. 신곡의 지옥은 9층이다.
ⓒ보티첼리 지옥도- 설명
단테는 지옥의 가장 아래 아홉번째 지옥에 배신자들을 배치했다. 아우렐리우스를 배신한 카시우스, 카이사르를 배신한 블루투스, 예수를 배신한 가롯유다가 들어가 있는 곳이 제9옥이다. 그에 의하면 동료의 신뢰를 저버리는 죄는 가장 큰 죄였다. 그가 피렌체로 돌아가지 않았던 이유도 자신이 생각하기에 배신자들로 가득한 도시였기 때문이다.
단테는 매우 매력적인 인물이었다. 전쟁터에서는 뛰어난 전사였고, 정치에 있어서는 신념있는 투사였다. 평생동안 베아트리체라는 한 여인을 사랑한 로맨티스트였고, 자신의 신념을 위해 세상과 타협하지 않았던 강단있는 선비였다.
단테는 9층 반역지옥에서 루지에르 대주교를 뜯어먹고 있는 우골리노를 발견한다. 원래 황제파였던 우골리노 백작은 피사를 장악하기 위하여 교황파 지도자인 사위를 도와 교황파 정부를 세운다. 이후 교황파는 분열되고 손자를 몰아내기 위해 황제파의 수장인 루지에리 대주교와 동맹을 맺는다.
그러다가 루지에르의 배신으로 우골리노는 당파와 조국을 배신했다는 죄명으로 아들과 손자들과 함께 감옥에 수감되어 아사라는 비참한 종말에 이르게 된다. 아들과 손자들이 차례로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우골리노 자신도 배고픔에 무릎을 꿇고 만다. 죽음에 임박한 우골리노는 장님이 된 채 정신마저 혼미해져 마침내는 자손들의 시체를 먹어 치우고, 얼마 뒤에 최후를 맞이한다.
ⓒ퓌슬리의 우골리노, 1806
형벌의 책임을 가족 전체에게 묻는 잔인함, 인권을 무시한 아사형, 아들의 시체를 물어뜯으며 연명해야 했던 인간의 비참함, 배신과 배신의 역사로 점철된 정치와 권력투쟁의 무상함에 있어 단테는 인간의 운명을 무섭게 성찰한다.
단테는 우골리노에게 묻는다. '너는 증오에 불타 짐승같은 태도로 상대를 물어뜯고 있는데 그 사연을 말해다오. 네게 정당한 이유가 있다면 내 혀가 마르지 않는 한 이승에서 너를 변호해 주마.'
우골리노가 그 무서운 음식에서 입을 떼자, 뒷통수부터 뜯어먹던 그 머리의 머리털로 입을 닦고 나서 그의 비참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나의 아들들은 며칠을 굶어 기력이 없어지자 내게 호소했다. 아버님, 아버님께서 저희를 잡수신다면 그만큼 저희들의 고통도 덜어질테니 아버님께서 입혀주신 이 비참한 살을 차라리 거두어 주세요.'
나는 그러하지 못했고, 얼마되지 않아 아들들은 굶어 죽었다. 어떠한 고뇌에도 지지 않던 나는 결국 굶주림에 지고 말았다. 나는 자식들의 시체를 다 뜯어먹고 난 후 더 이상 먹을 것이 없어 결국 굶어죽고 말았다.
이야기를 마친 후 우골리노는 증오에 불타는 눈초리로 다시 배반자의 해골을 물어 뜯었다. 그의 이빨은 마치 개이빨처럼 날카롭게 뼈를 갉았다.
우골리노의 비참한 운명에 연민을 느꼈던 단테는 지옥에서나마 우골리노가 루지에리에게 복수하게끔 설정한다.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온갖 술수를 다 부렸던 루지에리도 죽음이라는 모든 인간의 궁극적 운명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가 지옥에서 우골리노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걸 예상했다면 우골리노 일가를 그러한 극단적인 상황까지 몰고 갔었을까.
이 비극적인 이야기는 인간 운명의 심연을 들여다보게 한다. 우골리노와 그 가족을 비참하게 죽게 만든 루지에리도 결국 죽음 앞에서는 평등했다. 죽음에 이르는 인간의 운명을 성찰한 수많은 작품 중에서도 단테가 재구성한 우골리노의 일화는 그 비극성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인간의 비극성을 극대화한 우골리노는 낭만주의 이후의 작가들에게 매력적인 주제였다. 인간의 고귀함과 선함에 중점을 두었던 이전의 사조들과 달리 낭만주의에서는 인간의 광기와 악함과 같은 부정적 측면까지도 인간성의 일부로 끌어안는다.
ⓒ로뎅의 지옥문.1888
로뎅은 그의 작품 <지옥문>에서 우골리노를 마치 오랜 굶부림으로 앙상하게 여윈 짐승과 같은 모습으로 표현했다. 그의 몸 아래에는 죽은 아이가 있고, 등쪽으로는 죽기 직전 안간힘을 다해 매달린 아이가 있다. 자식보다 오래 살아남은 우골리노의 삶은 지옥보다도 못한 것이었다. 결국 그는 자식을 먹음으로서 인간성을 포기하고 만다.
죽음에 대한 예술작품들은 인간의 삶의 비극과 유한성과 환기시킨다. 인간은 비극을 통해 삶을 성찰하며, 역경을 통해 성장한다. 그러다가 인생의 최정점에 다달했을때 단테처럼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철학을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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