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의 선물은 지혜입니다 1
지혜의 선물은 성령의 일곱 가지 선물 목록 중 첫 번째로 나오는 선물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지혜라는 말 대신 '지식'(scienza)라는 말을 즐겨 쓰곤 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유의할 점이 있다면, 학문을 통해 지식을 쌓은 학자는 사고하는 사람이지 현자(賢者)나 지자(智者)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그처럼 중요하게 여기는 '지혜'라는 말은 대체 어떤 뜻을 지니고 있을까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이 성 암브로시오 대성당의 제대 위로 울라오려면 다섯 계단을 밟아야 하듯이, 다섯 단계의 과정을 지나야만 합니다. 곧, 예수님의 지혜, 그리스도인의 지혜, 십자가의 지혜, 지혜의 선물, 지혜의 적, 즉 무지와 어리석음과 우둔함입니다.
1.예수님의 지혜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 저런 지혜를 어디서 받았을까?"(마르6,2) 우리도 한번 자문해봅시다. 대체 무엇을 두고 지혜의 가르침이라 하는 것일까요? 예수님은 왜 하필 성경을 설명하실 때 지혜를 드러내 보이셨을까요? 예수님의 가르침은 교육에서 나온 게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서 이루어졌다."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지혜롭게 나타내 보이십니다. 당신의 말씀으로 예언자들의 책 속에 예부터 감춰져온 역사의 신비를 열어 보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지혜의 최고 행위를 펼쳐 보이시며 하늘나라의 신비를 드러내 보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신비 안에 계시기 때문에 지혜로우시니 그분은 지혜를 타고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신비 안에 머물고 계시면서 하느님의 완전하신 모습을 온전히 보고 계십니다. 그분 안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지고, 모든 것이 완전함에 이르며, 그분 안에서 모든 것이 정체를 밝히 드러냅니다.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라는 진술을 여러번 하였습니다. 이 훌륭한 찬가로 그리스도께서 하느님 계획의 중심에 자리하시면서 그 계획을 이루시고 그 계획을 모두 품고 계신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예수님은 하느님과 똑같은 지혜이십니다. 그래서 하느님과 인간의 모든 신비를 알고 또 꿰뚫고 계십니다.
이 때문에 성 바오로는 찬가의 마지막에서 "영광의 아버지" 께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시어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는" 선물을 베풀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에페,17참조)
2.그리스도인의 지혜
모든 분들이 알다시피, 그리스도인의 지혜는 예수님의 지혜에서 나오며, 따라서 예수님의 지혜에 참여하는 지혜입니다. 이 지혜는 매사를 예수님께서 보시듯이 바라보고, 매사를 주님께서 하늘에서 주의 깊게 내려다보시듯이 살피는 선물이며, 만물의 관계를 삼위일체의 신비로 바라보는 선물입니다.
다른 어떤 피조물보다 그 같은 선물을 더 충만히 받았던 분은 바로 성모님이십니다. 성모님은 모든 인간 가운데 가장 지혜로우십니다. 마리아의 노래(Magnificat)를 천천히 낭송해보면, 성모님께서 이렇게 하느님의 관점에서 그 모든 흐름을 관상하고 계시는지 알아챌 수 있습니다.
성모님은 하느님의 입장에서 가난한 이들의 편에서 역사를 바라보십니다. 사람들 눈으로, 다시 말해 승리자의 편에서 바라보는 역사와는 전혀 다릅니다. 성모님의 지혜가 예수님의 지혜에 참여하듯이, 그리스도인의 지혜도 그렇습니다.
3.십자가의 지혜
세번째 단계는 십자가의 지혜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참여하신 하느님의 이 지혜는 사실 십자가의 지혜입니다.
이 지혜는 하느님의 지혜와 그리스도인의 지혜를 능률, 결과, 성공, 재물,권력에 기초한 세상의 모든 지혜와 명확하게 구분시켜줍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관상할 때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나라가 비천함과 무의미함과 역경을 통해서, 또한 십자가와 죽음을 통해서도 온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이 발견은 진실로 가장 위대한 선물입니다. 성령의 선물없이 십자가의 지혜를 실천하며 살기란 가능하지 않습니다. 진실을 바라보는 행위는 오직 평가받고 성공하는 것만 추구하는 평범한 세상의 비위를 상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반대와 가난과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의 얼굴을 보며 그 안에서 하느님의 신비를 깨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지혜를 가졌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십자가를 이해하는 것은 생명을 이해하는 것이요, 인간 존재와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카를로 마리아 마르티니의 <영은 어디에서 불타오르는가>
첫댓글 아멘.
하느님 감사합니다.
아멘~하느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