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어디로 피하란 거냐” 경계경보 문자 대혼란
서울시, 北 위성발사에 경보 발령
아무 설명 없이 “대피 준비” 문자
행안부, 22분뒤 “서울시 오발령”
북한이 31일 오전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서해위성발사장에서 발사체를 쏜 가운데 서울시가 경계경보를 발령하고 대피를 안내하는 재난 문자메시지를 보냈다가 정부가 ‘오발령’이라고 정정하는 소동이 빚어졌다. 재난 상황을 두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대응이 엇갈리면서 이른 아침 서울 시민들은 큰 혼란에 빠졌다.
우리軍이 서해서 수거한 北 위성발사체 잔해 북한이 31일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서해위성발사장에서 쏜 발사체 ‘천리마-1형’이 추락한 직후 우리 군이 추락 해역에서 발견한 잔해물. 전북 군산시 어청도 서쪽 200여 km 해역에서 발견된 것으로, 천리마-1형 1단과 2단 로켓을 잇는 ‘연결부’로 추정된다. 이 원통형 부품은 북한의 화성-17형 등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서도 포착된 바 있다. 우리 군은 북한이 천리마-1형을 쏜 지 1시간 30여 분 만인 오전 8시 5분 이 잔해물을 발견했다. 이날 인양한 연결부 외부에 찍힌 ‘점검문’이라는 붉은색 글자(작은 사진)는 발사체 내부 결합 상태 등을 점검하기 위한 작은 문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합동참모본부 제공
북한의 발사로부터 3분이 지난 오전 6시 32분 서울시는 자체 판단으로 경계경보를 발령했다. 그리고 6시 41분 “서울지역에 경계경보가 발령됐으니 대피할 준비를 해 달라”는 재난 문자를 시민들에게 발송했다. 공습경보의 전 단계인 경계경보는 적의 지상 공격 또는 항공기·유도탄에 의한 공격이 예상될 때 발령된다.
하지만 서울시의 재난 메시지에는 경계경보를 발령하는 이유와 어디로 대피해야 하는지가 전혀 안 나와 있어 경보음과 함께 재난 문자 알림을 받은 시민들은 불안과 혼란에 빠졌다. 일부 아파트 단지에는 “대피하라”는 안내방송이 나오고 사이렌이 작동하면서 일부 주민들이 급히 뛰어나왔다. 학부모들은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야 하느냐”며 발을 동동 구르며 학교에 문의했다.
그러나 행정안전부는 서울시의 문자 발송 22분 후인 오전 7시 3분 “서울시에서 발령한 경계경보는 오발령”이란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이어 서울시는 오전 7시 25분 뒤늦게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문자가 발송됐다. 서울시 전 지역 경계경보가 해제됐다”는 안내 메시지를 발송했다.
서울시, 행안부의 ‘경보 미수신지역’ 지령 오해해 자체경보 발령
소통 안돼 경계경보 혼선
서울시 “행안부 지령대로 경보 발령”
행안부 “전국서 서울시만 잘못 해석”
북한 발사체 발사 후 경계경보가 발령된 31일 오전 서해 최북단 백령도 주민들이 대피소에 모여 있다. 백령도=뉴스1
“행정안전부 지령대로 재난 문자메시지를 보냈다.”(서울시)
“17개 시도에 지령을 전부 보냈는데 서울시만 잘못 해석했다.”(행안부)
31일 오전 북한 발사체 대응을 놓고 서울시와 행안부가 엇박자를 내면서 정부와 지자체의 재난 대응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다. 긴급한 상황에서 제대로 된 안내와 소통 없이 제멋대로 해석해 대응한 탓인데, 전문가들은 규정과 매뉴얼을 보완하고 민방위 경보 발령 및 전달 체계를 일원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 서울시와 행안부 문자 발송 ‘진실 공방’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이날 오전 6시 30분 행안부 중앙통제소는 17개 시도에 ‘(인천 옹진군) 백령면 대청면에 실제 경계경보 발령. 경보 미수신 지역은 자체적으로 실제 경계경보를 발령’이란 지령을 송신했다.
서울시 민방위경보통제소 담당자는 ‘경보 미수신 지역’이 어딘지 묻기 위해 행안부에 전화했지만 연결이 안 되자, 서울시가 자체 경계경보 발령 지역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6시 32분 경계경보를 발령했고 이어 9분 후 재난 문자를 발송했다고 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실제 상황일 수 있다고 보고 ‘비상상황 선조치 후보고’ 원칙에 따라 재난안전상황실장 승인 후 문자메시지를 발송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행안부는 서울시가 지령을 잘못 해석했다며 서울시에 경계경보 발령을 정정하라고 요청했다. 행안부 관계자는 “지령에 나온 ‘경보 미수신 지역’은 백령·대청면 중 사이렌이 고장 나 경보를 받지 못한 지역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또 “17개 시도에 전부 지령이 나갔는데 서울만 잘못 읽었다. 17개 시도에 경보를 발령한 건 상황을 공유하며 내부적으로 긴장해 있으라는 뜻”이라고 했다.
행안부는 그래도 서울시가 경계경보를 정정하지 않자 오전 7시 3분 “서울특별시에서 발령한 경계경보는 오발령”이라는 내용을 재난 문자로 보냈다. 서울시는 22분이 더 지난 후인 오전 7시 25분에야 “경계경보가 해제됐다”는 메시지를 발송했다. 서울 종로구 자택에서 출근을 준비하다 일련의 문자를 받은 박재성 씨(52)는 “앞으로 (재난 관련) 문자를 더 이상 믿을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 “재난 문자 발송 체계 일원화 필요”
서울시 관계자는 “정부와 별개로 지자체도 자체적으로 경계경보를 발령할 수 있다”며 “행안부 안내에 따라 경보 미수신 지역에 자체 경보를 발령하고 재난 문자를 보낸 후 시장단에 보고를 하는 등 절차대로 했다”고 반박했다. 자체 매뉴얼대로 발령을 했기 때문에 ‘과잉 대응’일지는 몰라도 ‘오발령’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서울시가 재난 문자를 보낸 시점은 이미 북한 발사체가 서해에 추락한 다음이어서 ‘늑장 대응’이란 지적도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행안부가 지령을 더 구체적으로 내리고, 서울시가 지령 내용을 행안부에 제대로 확인했다면 이 같은 소동은 막을 수 있었을 거라고 지적한다. 또 이번 논란을 계기로 민방위 경보 발령 및 전달 체계 전반을 점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국무총리실은 행안부와 서울시를 상대로 이번 사태에 대한 경위 파악 및 대책 마련에 나섰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미국은 연방 재난관리청(FEMA)에서 재난을 총괄적으로 관리한다”며 “민방위와 같이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는 부처 간 정보 공유가 신속히 이뤄질 수 있도록 체계를 마련하고 재난 문자 발송 체계를 일원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소정 기자, 전혜진 기자, 송유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