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라의 기억
강 문 석
“아예 껍데기를 벗겨라, 벗겨!” 제주여행에 나선 아내가 코스를 돌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걸 예사로 들었다. 가이드가 일행을 특산품매장으로 끌고 갈 때마다 내뱉은 말이었다는 걸 여행이 끝날 무렵에야 알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심했던 것은 ‘성읍민속마을’을 통째로 빼먹고 인근의 ‘동충하초 매장’에 들른 것이었다. 여행을 앞두고 아내는 몇 차례나 다짐을 놓았다. 그동안 제주여행에서 약이라고 사와서 몇 년을 썩히다가 버린 말뼈가루나 상황버섯 같은 것을 들먹이면서 이번엔 제발 그쪽 사람들이 권하는 물건을 산다고 나서지 말라고 당부했다.
오래 전 제주도가 국내에서 손꼽히는 신혼여행지로 떠오를 수 있었던 것은 천혜의 비경을 갖춘 자연경관이 있어서 가능했을 터이다. 이처럼 외국의 어느 관광명소보다 빼어난 풍광을 간직하고 있었지만 오랜 세월 초근목피에 허덕이느라 사람들은 제주를 찾을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것이다. 제주도가 본격적인 관광지로 개발되어 알려진 지도 어언 반세기를 넘어섰고 외국인들이 몰려든 것도 꽤 오랜 세월이 흘렀다. 근년엔 중국인들이 무리지어 찾으면서 제주의 땅과 건물까지 사들여 그들이 직접 관광업에 나섰다는 놀라운 소식도 이어졌다.
현직 당시 연수교육에서 만난 제주 친구와 인연이 맺어지는 바람에 30년 전부터 섬을 자주 오갈 수 있었다. 그때까진 바다와 산과 강에다 온천까지 갖춘 도시 부산만 알았다가 색다른 풍광의 바다와 산을 가진 제주를 만나자 그 매력에 흠뻑 빠지고 말았다. 마음만 먹으면 부산에선 얼마든지 제주를 드나들 수 있는 교통편이 하늘과 바다로 열려 있었다. 그 무렵 울산에서 만난 10년 연상의 직장 상사도 제주 사람이었다. 그의 집안 길흉사와 정년퇴임식장까지 찾느라 제주를 또 몇 차례 드나들었다. 선배는 상처한 후 너무 외롭다면서 여자를 간곡히 부탁해 와서 부산 여자를 중매하느라 섬을 또 들랑거렸다.
그러면서 카메라로 제주의 풍광을 열심히 전한 때문인지 주위의 등산모임이나 성당 단체에서도 제주를 찾는 일이 자주 생겼다. 그렇게 제주를 오가면서 부산에 내리지 않는 눈이 멀리 남쪽 섬나라에 내린다는 사실이 신기했고 또 부러웠다. 외환위기 여파로 퇴직한 후 가톨릭신문 위촉기자를 맡으면서 만난 제주의 이시도르 기자는 사진관과 토속음식점을 경영하고 있었다. 자매가 직접 정성을 들인 옥돔구이나 제주산 갈치조림도 잊히지 않지만 무엇보다 사진가의 솜씨로 눈 덮인 한라산 배경에다 우리 부부를 작품으로 담아준 추억사진이 그를 지금도 기억하게 만든다.
은퇴 후엔 철저하게 쉬는 일에만 전념하겠다는 사람에게 어느 날 용역 업무를 해보겠느냐는 제의가 날아들었다. 먼저 퇴직한 선배들이 얼굴을 파는 걸 보면서 나름대로 내린 결정이었지만 업체간 경쟁하는 일이 아니라는 바람에 참여하게 되었다. 제주지역 업무는 원래 칼자루를 쥐고 있는 본사 사람들과 같은 곳에 사는 서울지역 팀이 유람을 겸해 맡을 예정이었다. 그때 이미 제주도의 사정에 많이 익숙하기도 했지만 서울에서 장비가 탑재된 차량을 부산까지 끌고 와서 다시 제주로 이동하자면 시간과 경비가 많이 든다는 이유를 들어 부산에서 우리가 제주를 맡겠다고 나섰다. 그러고는 3년 동안 매년 제주 전역을 샅샅이 훑었다.
제주시와 서귀포 시내 한복판에 있는 사업장은 물론 전력관리처와 변전소 변환소 그리고 화력발전소들까지 빠짐없이 차를 직접 몰고 돌다보니 제주의 지리는 손바닥처럼 훤해졌다. 그때 서귀포에서 일을 마치고 차량이 전진하지 못할 정도의 강풍에 폭우까지 퍼붓는 한라산 천백고지를 넘던 기억이 잊히지 않는 추억으로 남아있다. 어느 여름날 성읍민속마을에서 만난 폴란드 여인 클루자. 그녀는 제주에서 열린 세계경제관료세미나에 참석한 마흔 후반의 공무원이었다. 외국인들이 우리나라 전통혼례복을 갈아입고 사진을 찍는 코너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남편과 함께 한복으로 성장한 채 사진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만나 도움을 준 것이 인연이 되어 쇼팽곡이 든 시디와 초콜릿 상자 등을 몇 차례나 보내왔고 성탄 때는 직접 만든 카드가 도착하기도 했다. 선물을 받을 때마다 우리나라 해금연주곡과 민요곡 그리고 한국에서 존경받는 인물인 폴란드 출신 요한 바오로2세 교황 얼굴을 각각 나누어 몇 차례 보냈지만 맡고 있는 업무에 관해서만 짧은 답신을 보내왔고 우리 악기나 음악에 관해선 말이 없었다. “짐 찾았나요?” 대한항공 비행기가 제주공항에 막 착륙하여 기내 승객들이 내릴 채비를 하고 있을 때 생소한 번호의 전화가 걸려왔고 첫마디가 짐을 찾았느냐고 물었다. 누구냐고 되물었더니 그때서야 제주의 현지가이드라고 했다.
여행업도 서비스업인데 어찌 처음 만나게 될 고객에게 이러나 싶었다. 그러면서 이번 여행은 힘들겠다는 예감이 스쳤다. 사십대로 보이는 청년가이드는 자신을 드러내는 걸 극도로 자제하고 있었다. 이번 여행의 일행은 열 명으로 적었고 그것도 전국에서 모은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숙소가 시내 곳곳에 흩어져 있는 게 이해하기 어려웠다. 여행 둘째 날 청주에서 2명이 추가로 합류하여 12명이 되면서 숙소는 6군데로 늘어났다. 어느 날부터 여행에서 만나는 사람들 간에 인사를 나누는 문화가 사라지나 싶더니 이젠 숙소까지 뚝뚝 떨어져 있으니 관리하는 가이드가 얼마나 힘들까 싶었다.
차량 연료비와 소요시간이 더 드는 것은 물론이고 여행에서 일어날 수 있는 급박한 건강문제에도 이제 돌봐줄 이웃이 사라진 것이다. 여행사는 계약 후 입금까지 마쳐도 세부일정과 숙소를 알려주질 않았다. 세부일정을 정확하게 알려준다면 가이드가 여행객을 끌고 자기 맘대로 다닐 수는 없을 터이다. 이번 가이드에게 소속을 물으며 명함을 달라고 부탁했더니 저녁때가 되어도 응답이 없었다. 다음날 독촉해서 받은 명함은 그가 H투어 직원이 아님을 알려주고 있었다. 국내 랭킹1위 업체라는 여행사가 이 모양인데 어디를 믿을 수 있겠는가.
기상악화로 우도탐방이 취소되어 일출랜드로 코스가 바뀌면 승선비용은 환불해주어야 하지만 가이드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김녕 바닷가 비닐하우스 식당에서 전복죽을 먹는 것으로 모든 계산은 끝났다고 잘라 말하는 가이드가 제정신인가 싶었다. 그렇게 맛이 간 사람 때문인지 차가 공항을 향해 한참 신나게 달리고 있을 때 하루 늦게 합류한 뒷자리 여행객이 “지금 어디에 가는 거예요?”라고 운전대를 잡은 가이드에게 물었다. 가만히 듣고 있으면 좋으련만 “실컷 곡하고 나서 누가 죽었느냐고 묻는다더니… 내 참…”이라며 참견했더니 차내엔 폭소가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