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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교시절 친구들과 함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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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헌규 속초양양교육장(양양 조산리) | 누구에게나 그리는 고향이 있다.
내게도 잊지 못하는 고향이 있다. 송이축제, 연어축제, 해맞이축제, 현산문화제 등 뛰어난 자연경관과 역사 깊은 ‘해오름의 고장’ 양양 조산리이다.
지금도 오가는 길에 고향길에 들어서면 시공간 속에 쌓인 일들이 한 눈에 펼쳐져 풋풋한 향수에 잠기곤 한다.
어린 시절 농사를 짓던 가정에서는 소를 돌보는 것이 아이들의 몫이었다.
학교에 있는 시간을 빼고는 소를 몰고 조산의 푸른 들판으로 올랐다. 소 등에 타고 풀밭을 찾아갈 때면 홀쭉했던 배가 내려올 때는 퉁퉁해져 내 양 다리도 퉁퉁해진 배위에서 쩍 벌어지곤 했다.
한가히 풀을 뜯는 소를 돌보며 친구들과 어울려 놀이하고 책도 보고 푸른 꿈을 꾸었던 일들은 아름다운 풍경으로 지금도 행복한 추억의 배경이 되고 있다.
6·25전쟁 후 피폐했던 생활로 모든 것이 넉넉하지는 못했지만 교육이 희망이었음을 믿은 부모님은 자식들 교육에 정성을 쏟으셨다.
특히 철부지였던 자식들의 행동에 인내하며 감싸주고 채워주시느라 흘린 어머니의 사랑과 눈물이 고향에 있다. 어머니의 눈물이 밑거름되어 비뚤어지지 않고 곧게 클 수 있었기에 언제나 고향은 어머니 품이자 현재의 출발선이다.
그리고 어머님의 손자들에 대한 사랑도 유별났다. 어머님의 따스한 손길과 추상같은 가르침으로 94년 할머니 칠순 때 7명의 손자가 할머니께 올렸던 감사의 글에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할머니, 할머니를 뵈올 때마다 이 손자는 늘 푸른 소나무가 떠오릅니다. 거친 바람 눈보라를 이겨내고 저 광야에 우뚝 선 한 그루 소나무-아침마다 밀려오는 조산 앞바다 새벽빛 같이 그 새벽빛을 화안히 가슴 열고 받들고 선 조산 소나무 숲 늘 푸른 그 소나무 같이”
소나무로 둘러싸인 조산초등학교를 시작으로 선생님의 가르침을 입어 나는 교사가 되었다.
한 길로 달려와 정년을 앞둔 지금, 부끄럽지 않을 수 있음은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높이 날아 멀리 볼 수 있도록 꿈을 키워주신 부모님과 늘 푸른 소나무가 있는 고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향의 초등학교에서 5, 6년을 내게 배운 제자가 쓴 글에서 향토 인재 육성에 힘썼던 보람을 느낀다.
그의 글을 요약하면,
“당시 자유교양 경시대회의 열풍이 전국을 휩쓸고 있던 때였다. 서울대회에 가기 까지는 시·군대회를 통과하고 도대회를 거쳐야 했다. 교재로 주어진 책을 외우고 밤을 새우며 학교에서 합숙했다. 아침이면 어김없이 커다란 은행나무 아래 모여 선생님의 테스트를 받아야 했다. 그런 벽을 넘어 최우수상을 받고 도대회에 나가게 되었다. 춘천에 가기 전날 선생님과 함께 학교 숙직실에서 잠을 자다 연탄가스를 마셔 쓰러졌지만 정신을 가다듬고 도대회 3등으로 도대표로 서울로 갔다. 지금 내가 선생님이 되어 아이들을 대할 때면 늘 그 선생님을 생각한다. 내게 서울에 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던 선생님, 나도 내 아이들에게 인생에 진실로 큰 의미가 되는 길을 열어주어야겠다고 새삼 다짐하며 산다.”
쟁기 가는 농부의 손길은 씨앗을 뿌리며 피어날 새싹의 초록빛 희망에 젖어 분주하다.
한국인이 제일 좋아하는 고전 음악을 손꼽으라면 ‘비발디의 사계’를 우선으로 드는 사람이 많다. 40년 넘은 교단의 사계를 떠올리며 지그시 눈을 감으면 걸어온 길이, 걸어갈 길이 칸칸이 계절로 나뉘어 떠오른다.
충실한 씨앗을 뿌린 봄. 정성으로 기르고 가꾼 여름, 무엇인가 거두어들인다는 것은 참으로 유쾌한 일이다.
열매 맺음의 작음에 실망하지 말자며 꾸준한 기다림과 오랜 교육의 투자를 생각한 가을. 진정 높이 뛰기 위해 기다리며 준비한 겨울이 있었다.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고 한다.
미래 지향적 비전을 제시하는 리더, 용광로 같은 리더, 마르지 않는 샘 같은 리더, 나만의 색깔을 만들 수 있는 리더였는가 되돌아 본다.
태풍 ‘루사’와 ‘매미’, 두 차례 대형 산불, 집중호우에도 언제나 의연하게 제 모습을 되찾아 서는 고향 산하를 보면 힘이 솟는다.
새해에도 내 자신에게, 제자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자율·창의·변화를 바탕으로 학생에게는 희망을, 교직원에게는 보람을, 학부모에게는 감동을 주는 속초양양교육 구현에 최선을 다하겠다.
◇ 프로필 -조산초, 양양명륜중, 양양고, 춘천교대, 강원대 교육대학원 졸업 -양양초교 교사 -속초양양교육청 장학사 -고성 거성초 교장 -도교육청 초등교육과 장학관(유아특수, 장학담당), 속초양양교육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