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4. 28. 나무날
[장가르기와 숟가락 깎기]
평소보다 일찍 학교에 가서 전날 학교살이를 한 1학년과 아침을 먹었다. 늘 일찍 출근하는 노학섭 선생도 와 있다. 밤에 울지 않았다고 자랑을 하는 외계인들이 많다,
아침마다 교사아침열기 시간에는 하루 흐름을 확인하고, 책을 읽고, 피리를 분다. 오래전에는 저마다 돌아가며 좋은 글을 들려주기도 했고, 같이 읽는 책에서 저마다 눈에 들어오는 구절을 나누기도 했다. 오늘은 몇 년 동안 읽은 이오덕 일기 5권의 마지막 쪽을 우연히 내가 읽게 됐다. 일찍 오는 당번이 책을 읽는데 오늘이 당번이었다.
이오덕 선생님은 돌아가시기 이틀 전까지 일기를 쓰셨다. 선생님이 쓰신 책은 거의 다 읽은 듯 한데 이번 이오덕 일기는 남달랐다. 그날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누구를 만났고, 뭘 드셨는지, 일상이 그대로 들어있어 때론 웃기도 하고, 깜짝 놀라기도 하고, 마음아프기도 했더랬다. 나도 일기를 날마다 쓰는 편인데 언제나 일기 쓰기는 쉽지 않음을 느끼곤 한다. 기획서와 여러 서류, 보고서 쓰는 일에 지쳐 일상을 기록할 힘과 시간이 떨어질 때도 있었고, 귀찮거나 생각하기 싫은 때도 있었다. 이오덕 선생님 말씀처럼 글을 쓰는 건 삶의 표현이고 삶을 가꾼다. 그 말씀의 증거를 선생님 일기를 덮으며 다시 생각했다.
맑은샘 어린이들은 날마다 일기를 쓴다. 덕분에 맑은샘 선생이 되면서 나도 그렇게 하려고 애를 썼고 어느새 버릇이 되긴 했다. 이제 내일부터는 코르착, 비노바바베, 니일 가운데 또 한 분을 다시 만날 예정이다. 몇 번 읽었지만 또 함께 읽으며 새기면서 교사의 삶과 교육을 성찰하는 시간이 되겠다.
5학년이 자전거 타고 한강 가는 날이라 학교 밖이 시끌시끌했다. 부모 자원교사가 세 분이나 오셔서 안전은 걱정없겠다. 날씨가 정말 좋아서 자전거 타기 딱 좋다. 박경실 선생은 복장부터 단단히 채비하고 오셨다. 즐거운 추억 쌓기다.
아침나절 설장구 수업을 마치고 마을 은행나무 가지치기 때 주워온 은행나무로 숟가락 깎기를 위한 채비 두 번째, 창칼로 모양을 잡았다. 잠깐이지만 땀이 흐른다. 이제 어린이 목수들 몫이다. 6학년쯤 되면 재단만 도움을 주고 스스로 할 수 있게 하지만, 더 낮은 학년은 틀을 잡아주어야 제 때 수업으로 완성을 할 수 있다. 창칼과 조각도 쓰는 법을 가르치면 척척 잘 해내는 어린이들이니 기대가 된다. 스스로 만든 숟가락으로 밥을 먹으려면 젓가락도 깎아야 한단다.
낮에는 장가르기를 했다. 해마다 어린이들과 만든 메주로 장담기, 장가르기를 해서 된장과 간장을 먹는다. 과학공부로 발효를 배우며 우리몸에 이로운 음식과 밥상 이야기가 가득하다. 이제는 공장에서 만든 된장 간장을 사먹는 도시 사람들은 옛날 할머니가 담는다는 이야기만 들었지 직접 담을 시간과 엄두를 내지 못하는 때다. 그러니 더욱 도시 속 작은학교의 장가르기 교육 활동은 여러 뜻이 담겨있다. 4학년 어린이들은 우연찮게 3년째 장가르기를 하게 됐다. 그런데 아침열기 때 이제 많이 했으니 그만 하고 싶다고 했다. 그 마음을 알기에 올 겨울에는 다른 모둠이 할 것이고, 애씀을 위한 선물이 있음을 알려주었다. 김경미 선생이 줄곧 이끌어주고 도와주어서 장 가르기를 또 잘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