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영국 여행에서 특징적인 것 중 하나는 현지식 식사에서 감자 요리가 많이 나온다는 것이다. 대부분 닭가슴살 요리와 감자 튀김이 메인으로 나왔다. 영국 토양이 식물들이 뿌리를 잘 내리지 못하는 성질인데 감자는 그래도 재배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계속 나오는 감자 식단이지만 한국인은 우리들에게도 익숙한 음식이어서 항상 맛있게 먹었다. 지금 영국 들녘에 감자밭이 드넓게 전개된다. 그 밭 가운데 농가 주택도 크게 자리잡고 있다. 감자 농사를 크게 짓는 농부의 집이다. 한때 영국은 감자 농사가 실패하여 대기근이 온 적도 있다. 아일랜드가 영국령세 속해 지배할 때 아일랜드에서 1847년부터 5년간 주식인 감자 대기근으로 2백만명의 인구가 굶어죽는 대참변이 있었다. 그 당시 아일랜드 인구가 850만 명 정도였으니, 엄청난 인구가 죽어간 감자 재재 대재앙의 비극이다. 그의 주된 원인은 한가지 종의 단일품종 감자만 재배했기 때문에 기후변화, 자연재해, 전염병 등에 적응하지 못하여서 그런 것이었다. 또한 나라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금을 그대로 거두어 갔던 것도 백성들을 굶주리게 한 원인이 되었다. 존 미첼은 그 당시의 상황을 '물론 감자를 망친건 신이였다. 하지만 그걸 대기근으로 바꾼 것은 영국인들이다.'라고 말했다. 우리가 이번 여행에서 갈 아일랜드다.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의 리파 강변에는 그 당시 감자 대기근으로 아일랜드 백성의 1/3이 굶어 죽은 기막힌 역사의 한 단면을 재현해 놓았다. 굶어 죽은 사람들의 영혼을 달래고 기리기 위한 세운 조각상들이다. 바짝 마른 남녀 동상들이 도로에 안타까운 모습으로 서서 그날의 슬픔을 전하고 있다. 아일랜드에서는 감자 대기근이 1740 ~ 1741년, 1847 ~ 1852, 1879년으로 모두 세 번 있었다. 그 중에서도 아일랜드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던 기근은 두 번째인 1847년부터 1852년까지다. 이때의 기근을 대기근이라고 부른다. 나는 아일랜드 더블린 여정에서 이 현장을 실제로 보았다.
영국 들녘에서 그 동안 보아온 농작물은 대부분 밀과 보리, 그리고 유채였다. 우리나라의 농촌 들녘과는 많이 달랐다. 여러가지 종류의 작물 재]배재가 가능한 한국은 농작물 농사 대목에서 축복의 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국 들녘에는 잔잔한 초지가 많아 목장이 대부분이다. 뿌리가 깊게 내리지 못하는 토양이어서 그런 것이다. 나무도 별로 없다. 그래서 방목하는 동물들이 들녘에서 평화를 읊조리는 목가적인 전원 풍경이 농사 못지 않은 비경이었다. 영국은 돼지도 방목하여 요크셔라는 돼지고기의 본산지이기도 하다. 영국을 일주하는 이번 여정에서 그 동안 잘 몰랐던 영국 역사에 대하여 많은 것을 배우게 되어 기쁘고 흐뭇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