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관(下棺)
박목월
관(棺)이 내렸다.
깊은 가슴 안에 밧줄로 달아 내리듯
주여
용납하옵소서
머리맡에 성경을 얹어 주고
나는 옷자락에 흙을 받아
좌르르 하직(下直)했다.
그 후로
그를 꿈에서 만났다.
턱이 긴 얼굴이 나를 돌아보고
형님!
불렀다.
오오냐. 나는 전신(全身)으로 대답했다.
그래도 그는 못 들었으리라
이제
네 음성을
나만 듣는 여기는 눈과 비가 오는 세상
너는
어디로 갔느냐
그 어질고 안쓰럽고 다정한 눈짓을 하고
형님!
부르는 목소리는 들리는데
내 목소리는 미치니 못하는
다만 여기는
열매가 떨어지면
툭 하는 소리가 들리는 세상
(시집 『난(蘭) · 기타』, 1959)
[어휘풀이]
-안스럽고 : ‘안쓰럽고’의 잘못. ‘안쓰럽다’는 손아랫사람이나 약자의 딱한 형편이 마음에
언짢고 가엾다.
[작품해설]
이 시는 초기 청록파 시대의 시 세계를 벗어나 일상적 삶의 문제를 다룬 목월의 제2기 작품 중 하나이다. 6.25의 격동기를 거친 그는 초기의 서정성 짙은 민요적 가락에서 벗어나 신변적인 제재를 선택, 시화(詩化)하여 시와 생활을 일원화시키고, 그간의 정형률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사설조의 형태로 이간의 내면세계를 깊이 탐구하게 된다. 특히 그가 머물던 서울의 ‘원효로’를 중심으로 한 세속사의 탐구가 그의 제2기 시 세계의 주류를 이룬다. 제3기에 가면 종교적 신앙심을 주로 노래하며 신성사(神聖事)에 대한 지향과 갈망을 담담하게 그리게 된다.
이 시는 사랑하는 아우를 잃은 슬픔을 노래한 작품으로 토속적 분위기가 정서적 안정감은 사라진 대신, 구체적인 일상생활 속의 일을 다루는 시적 원숙함이 엿보인다. 전 26행의 단연시인 이 작품은 내용상 세 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1행부터 7행까지의 첫 단락은 아우를 장례 지내는 모습이다. 마치 자신의 ‘깊은 가슴에 밧줄로 달아 내리듯’ 아우의 육신을 담은 관이 땅 속으로 무겁게 내려질 때, 그는 ‘옷자락에 흙을 받아 / 좌르르’ 쏟아 부으며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이별을 확인한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먼 곳으로 떠난 아우레 대한 처절한 슬픔을 표현하면서도 직접적인 표현을 배제함으로써 오히려 억제되어 더 깊어진 슬픔을 느끼게 한다.
8행부터 14행까지의 둘째 단락은 장례를 마친 후의 어느 날 꿈에서 아우를 만난 이야기이다. 아우는 ‘형님!’이라 불렀고. 그는 ‘전신으로 대답했’지만, 산 자와 죽은 자의 먼 거리감으로 아우는 듣지 못햇을 것이라는 독백에서 그의 안타까운 절망감을 엿볼 수 있다.
15행부터 끝 행까지의 셋째 단락은 아우에 대한 그리움과 단절감을 바탕으로 한 이승과 저승의 아득한 차이를 보여 준다. ‘네 음성을 나만 듣는’ 이 곳은 ‘눈과 비가 오는 세상’이고, 아우가 간 곳은 ‘내 목소리는 미치지 못하는’ 곳이다. 이렇게 이 시는 이승과 저승, 현실의 세계와 영원의 세계를 대립시켜 더욱 간절한 그리움을 표현한다. 그리고 자신이 있는 이 곳을 ‘열매가 떨어지면 / 툭 하고 수리가 들리는 세상’이라 하여 작품을 끝맺는다. 이것은 아우의 죽음에서 오는 인생의 허무감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신생-성장-사멸’하는 생물체의 생의 순환이 이승의 삶임을 상징한다. 열매가 맺는 것을 삶 그 자체라고 한다면, 열매가 떨어지는 것은 죽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승은 일회적이고 찰나적 세계일 수밖에 없다. 화자는 이를 절감하며 더욱 깊은 무상감에 젖어 든다.
[작가소개]
박목월(朴木月)
본명 : 박영종(朴泳鍾)
1916년 경상북도 경주 출생
1933년 대구 계성중학교 재학 중 동시 「퉁딱딱 퉁딱딱」이 『어린이』에, 「제비맞이」가
『신가정』에 각각 당선
1939년 『문장』에 「길처럼」, 「그것이 연륜이다」, 「산그늘」 등이 추천되어 등단
1946년 김동리, 서정주 등과 함께 조선청년문학가협회 결성
조선문필가협회 사무국장 역임
1949년 한국문학가협회 사무국장 역임
1957년 한국시인협회 창립
1973년 『심상』 발행
1974년 한국시인협회 회장
1978년 사망
시집 : 『청록집』(1946), 『산도화』(1955), 『란(蘭)·기타(其他)』(1959), 『산새알 물새알』(1962),
『청담(晴曇)』(1964), 『경상도의 가랑잎』(1968), 『박목월시선』(1975), 『백일편의 시』
(1975), 『구름에 달가듯이』(1975), 『무순(無順)』(1976), 『크고 부드러운 손』(1978),
『박목월-한국현대시문학대계 18』(1983), 『박목월전집』(1984), 『청노루 맑은 눈』(1984),
『나그네』(1987), 『소금이 빛하는 아침에』(19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