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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식이 빨간 장화]
지긋지긋한 무더위가 제자리를 빼앗기지 않으려는듯
오늘과 내일..
비가 많이 온다고 합니다
아내가 새로 사온 장화를
오늘은 한번 신고 출근하려고 합니다 ㅎㅎ
장화를 보니 4년전 쓴
초등학교 시절의 여자친구 광식이 생각이 났습니다..
잘 살고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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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식이 빨간 장화]
광식이는 저랑 한 반이었습니다.
즈그 엄마를 닮아선가?
우리 동네 옆 수송부대에서 월남으로 파병된 김중사의 딸은
전학 오던 날부터 눈독을 들인 개구쟁이들이 많았습니다.
아빠가 보내주었다는 빨간 장화..
그니는 구름만 끼어도 장화를 신고 학교에 와서
신발주머니에 넣을 때도 닦고, 꺼내 신을 때도 닦았었지요..
1년쯤 지나고 방학이 끝났을 때
광식이 엄마가 하던 세탁소는 문을 닫았고,
광식이 장화는 더 이상 볼 수가 없었습니다..
아빠가 월남에 간 사이에
세탁소를 하던 엄마가 바람이 났다는 말도 있고,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가 새 살림을 냈다는 말도 있었지요..
비를 피하려는가?
시간의 끝을 향해 악을 쓰며 달리는 지하철
빨간 장화를 신은 아이를 보니 광식이 생각이 났습니다..
팽팽한 젊음
쭈글쭈글한 늙은이
아직도 가슴은 설레지만
슬픔은 언제나 주변에서 나를 기다립니다..
몇년전 상처한 옆건물 선배가 사무실을 접고 지리산 자락으로 은퇴생활을 간다고 합니다..
폐기하려고 건물밖 여기저기 흐트러진 사무실 집기들을 보니
오랫동안 산과 들에서 함께 운동을 해왔던 제 마음도 아련해집니다..
지나간 세월과 남은 시간이 다를 뿐
모두 각자의 몫만 살다가는 인생살이..
부질없고 한심한
정치인들의 추태와 몰염치에 역겨움을 느끼면서
나 하나 작은 몸뚱이라도
몸과 마음을 곱게 남기고 떠나고 싶습니다.
깨끗하고, 밝고, 곱고, 예쁘게 마지막을 맞이하기 위하여
몸을 다듬고
얼굴을 가꾸고
머리도, 이빨도
옷과 신발도 모두 정성을 더 들이기로 하였습니다.
광식이 빨간 장화는 없지만
새로 산 등산화를 신고
부지런히 산도 오르고
정상에 올라 발가락 까딱거리면서 노래도 부르면서요..
여러분도 모두 건강하고, 행복한 가을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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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쉴레징어(프랑스), 거울을 보는 아이
Henry-Guillaume Schlesinger, In the Mirror
앙리 쉴레징어(프랑스), 오감으로 느끼는 맛
Henry-Guillaume Schlesinger, The Five Senses: Taste
에드바르 뭉크(노르웨이), 검은 드레스를 입은 내 동생 잉게르
Edvard Munch, Inger Munch in Black, 1884
레옹 프레데릭(벨기에), 수놓는 여인
Leon Frederic, The Flemish Lacemaker, 1907
프레데릭 모간(영국), 홍수
Frederick Morgan, A Flood
프레데릭 모간(영국), 할아버지 생일
Frederick Morgan, Grandfather's Birthday
프레데릭 모간(영국), 프로포즈
Frederick Morgan, The Proposal
프레데릭 모간(영국), 들장미
Frederick Morgan, The wild rose
프랭크 벤슨(미국), 롱 포인트의 일몰
Frank Weston Benson, AFTER SUNSET (LONG POINT SUNSET)
프랭크 벤슨(미국), 햇살과 그림자
Sunshine and Shadow by Frank Weston Benson
프랭크 벤슨(미국), 백로(흰 왜가리)
Frank Weston Benson - White Heron in a Pool in a Garden,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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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사건 / 공광규
마인쯔역에서 두 정거장 가면
작은 비쉐프셰임역
거기서 십여 분 걸어가면
만나는 민박집
사십 년 전 간호사로 일하러 왔던
한국인 할머니
병원에서 일하다 만나
결혼한 남자 이름은 독일인 호프만
세 딸 이름은
마야와 파뜨리찌아와 사라
마야는 아들 필립과 딸 샤롯을 낳고
파뜨리찌아는 아들 니클라스와 요나와 엘리야를 낳고
사라는 아들 막시밀리엄을 낳고
사라 뱃속에는 또 아이 하나?
손주들이 아는 한국말은
할머니 만두 김 김밥 잡채 정도
방안에는 청자주전자와 백자화분
백자화분에는 활짝 핀 호접란 다섯 송이
주방에는 한국에서 보내온
음력이 표시된 달력
아버지 어머니 제삿날은
동그라미 설날 추석날은 붉은 글씨
정원에는 꽈리 작약 민들레 정구지
한인회에서 얻어다가 심었다는 무궁화 한 그루
할머니만 불러주는
꽈리 작약 민들레 정구지 무궁화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불러줄 사람이 없는
꽈리 작약 민들레 정구지 무궁화
그래서 한 사람이 늙어간다는 것은
한 언어가 한 세계가 사라져 가는 위대한 사건
- 반년간《창작촌》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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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흐 / 콜 니드라이
Bruch: Kol Nidrei ∙ hr-Sinfonieorchester ∙ Mischa Maisky ∙ Paavo Järvi
https://youtube.com/watch?v=XGzOozXt4ek&si=EnSIkaIECMiOm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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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기 노노(이탈리아), 아베마리아
Luigi Nono - Ave Maria, (1892)
루이기 노노(이탈리아), 아가의 장례식
IL FUNERALE DI UN BAMBINO, Luigi Nono
루이기 노노(이탈리아), 일요일 아침
On the morning of Sunday - Luigi Nono
프레데릭 모간(영국), 하느님의 우리에 들어가지 못한 양(요한 10장 16절)
Frederick Morgan, Not of the Fold. c. 1881.
프레데릭 모간(영국), 하느님의 우리에 들어가지 못한 양(요한 10장 16절) - 부분
Frederick Morgan, Not of the Fold. c. 1881.
프레데릭 모간(영국), 하느님의 우리에 들어가지 못한 양(요한 10장 16절) - 부분
Frederick Morgan, Not of the Fold. c. 1881.
프레데릭 모간(영국), 하느님의 우리에 들어가지 못한 양(요한 10장 16절) - 부분
Frederick Morgan, Not of the Fold. c. 1881.
프레데릭 모간(영국), 하느님의 우리에 들어가지 못한 양(요한 10장 16절) - 부분
Frederick Morgan, Not of the Fold. c. 1881.
프레데릭 모간(영국), 하느님의 우리에 들어가지 못한 양(요한 10장 16절) - 부분
Frederick Morgan, Not of the Fold. c. 1881.
프레데릭 모간(영국), 하느님의 우리에 들어가지 못한 양(요한 10장 16절) - 부분
Frederick Morgan, Not of the Fold. c. 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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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 / 안현미
주인은 병이 깊은지 가을이 깊어 가도록
앞집 대추나무는 빨간 대추들을 달고 있다
가을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대추나무를 바라보며 여자는 방범창 안에서 생각한다
어디로도 가지 않으면서도
스스로 빛나는 대추,라고
주인은 병이 깊은지 방범창 밖 대추나무엔
빨간 대추들이 매달려 있다
어디로도 갈 수 있으면서
아무 데도 갈 곳이 없는 방범창 안 여자가
대추들처럼 매달려 있다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삶에..
- 안현미 시집, 미래의 하양, 걷는사람,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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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그나스 플레옐 / 바이올린 협주곡 디장조 2악장
Ignace Pleyel, Violin Concerto in D major Ben 103103a, Adagio cantabile 2
https://youtu.be/ERmSXdGJ8UE?si=nnfrvdLJzh4EeG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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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 스미스(노르웨이), 첫 영성체
Carl Frithjof Smith, After first Communion, 1892. Civico Museo Revoltella, Trieste, Italy 🇮🇹
카를 스미스(노르웨이), 첫 영성체 (부분)
Carl Frithjof Smith, After first Communion, 1892. Civico Museo Revoltella, Trieste, Italy 🇮🇹
카를 스미스(노르웨이), 첫 영성체 (부분)
Carl Frithjof Smith, After first Communion, 1892. Civico Museo Revoltella, Trieste, Italy 🇮🇹
카를 스미스(노르웨이), 첫 영성체 (부분)
Carl Frithjof Smith, After first Communion, 1892. Civico Museo Revoltella, Trieste, Italy 🇮🇹
카를 스미스(노르웨이), 첫 영성체 (부분)
Carl Frithjof Smith, After first Communion, 1892. Civico Museo Revoltella, Trieste, Italy 🇮🇹
카를 스미스(노르웨이), 첫 영성체 (부분)
Carl Frithjof Smith, After first Communion, 1892. Civico Museo Revoltella, Trieste, Italy 🇮🇹
카를 스미스(노르웨이), 첫 영성체 (부분)
Carl Frithjof Smith, After first Communion, 1892. Civico Museo Revoltella, Trieste, Italy 🇮🇹
야니스 로젠탈스(라트비아), 예배를 마치고..
Janis Rozentāls, After the Church, 1894.
야니스 로젠탈스(라트비아), 예배를 마치고.. (부분)
Janis Rozentāls, After the Church, 1894.
야니스 로젠탈스(라트비아), 예배를 마치고.. (부분)
Janis Rozentāls, After the Church, 1894.
야니스 로젠탈스(라트비아), 예배를 마치고.. (부분)
Janis Rozentāls, After the Church, 1894.
야니스 로젠탈스(라트비아), 예배를 마치고.. (부분)
Janis Rozentāls, After the Church, 1894.
야니스 로젠탈스(라트비아), 예배를 마치고.. (부분)
Janis Rozentāls, After the Church, 1894.
야니스 로젠탈스(라트비아), 예배를 마치고.. (부분)
Janis Rozentāls, After the Church, 1894.
야니스 로젠탈스(라트비아), 예배를 마치고.. (부분)
Janis Rozentāls, After the Church, 1894.
야니스 로젠탈스(라트비아), 예배를 마치고.. (부분)
Janis Rozentāls, After the Church, 18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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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성객 / 정우영
행촌아저씨 아니셔?
나요, 살구남댁. 나 몰라요?
살구낭구 집이라니께.
아니, 뭘 빤히 쳐다만 본디야.
내 얼굴에 머시 묻었다요?
아이고머니나, 혹시 귀잡쉈어?
이런 변이 있나.
어쩌다가 이리 되셨다요.
일생을 버럭버럭 고함만 쳐서 그런가.
행촌아짐은 잘 계시제요?
어치케 됐다고요?
오마나 오마나,
하늘나라 가셨구만이라.
나보담도 아랜디
워찌 그리 급했을까이.
행촌아짐 몫꺼정 잘 사셔야 헐 텐디,
귀잡숴서 큰일이요.
점심은 드셨다요?
어쩔그나, 식전인갑네.
시방까장 멋 허니라고 안 잡쉈다요.
부처님 가호로 남은 생
그저 신간 편케 사시쇼이.
지나고 본께 죽고 사는 거시 암것도 아닙디
다.
아자씨도 글제요?
아고, 파란불이 깜박이는 갑소.
건너가야 허는디 발이 더디요.
저 줄백이 넘는 거시
요단강 건너는 거맹키요.
그나저나 아자씨 낭중에 올라가서
마나님 워찌 만난다요.
눈이라도 크게 뜨고 계시쇼이.
귀어두우니 눈이라도 밝아야제.
행촌아짐 같은 짝
천지간에 없을 것이요.
나사 지랄맞은 영감탱이
절대 피하겠제요마는.
- 정우영 시집, 순한 먼지들의 책방, 창비,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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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리고 / 어떤 귀한 분에게 바치는 환상곡 - 전곡 24분 / 파블로 비예가스 연주
Joaquín Rodrigo, Fantasía para un gentilhombre - Orquesta Sinfónica de Minería
https://youtu.be/fnwV92IrClo?si=wTBSAZDiMbA3XN3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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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헤닝센(덴마크), 장례식
Frants Henningsen, En begravelse(The Funeral), 1883. Statens Museum for Kunst (Den Kongelige Malerisamling), Copenhagen
프란츠 헤닝센(덴마크), 장례식 (부분)
Frants Henningsen, En begravelse(The Funeral), 1883. Statens Museum for Kunst (Den Kongelige Malerisamling), Copenhagen
프란츠 헤닝센(덴마크), 장례식 (부분)
Frants Henningsen, En begravelse(The Funeral), 1883. Statens Museum for Kunst (Den Kongelige Malerisamling), Copenhagen
프란츠 헤닝센(덴마크), 장례식 (부분)
Frants Henningsen, En begravelse(The Funeral), 1883. Statens Museum for Kunst (Den Kongelige Malerisamling), Copenhagen
프란츠 헤닝센(덴마크), 장례식 (부분)
Frants Henningsen, En begravelse(The Funeral), 1883. Statens Museum for Kunst (Den Kongelige Malerisamling), Copenhagen
에릭 헤닝센(덴마크), 쫓겨난 세입자들
Erik Henningsen, Evicted, c.1892
Statens Museum for Kunst, Copenhagen, Denmark
에릭 헤닝센(덴마크), 쫓겨난 세입자들 (부분)
Erik Henningsen, Evicted, c.1892
Statens Museum for Kunst, Copenhagen, Denmark
에릭 헤닝센(덴마크), 쫓겨난 세입자들 (부분)
Erik Henningsen, Evicted, c.1892
Statens Museum for Kunst, Copenhagen, Denmark
에릭 헤닝센(덴마크), 쫓겨난 세입자들 (부분)
Erik Henningsen, Evicted, c.1892
Statens Museum for Kunst, Copenhagen, Denmark
에릭 헤닝센(덴마크), 쫓겨난 세입자들 (부분)
Erik Henningsen, Evicted, c.1892
Statens Museum for Kunst, Copenhagen, Denm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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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무렵 / 맹문재
흙냄새 나는 사람들의 사투리가
열무맛처럼 담박했다
잘 익은 호박 빛깔을 내었고
벼 냄새처럼 새뜻했다
우시장에 모인 아버지들의 텁텁한 안부 인사 같았고
떡집 아주머니의 손길 같았다
빨랫줄에 널린 빨래처럼
편안한 나의 사투리에도 혁대가 필요하지 않았다
호치키스로 철하지 않아도 되었고
인터넷 검색이 필요 없었다
월말 이자에 쫓기지 않았고
일기예보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흙냄새 나는 사람들의 사투리를 태운
시내버스 운전사의 어깨가 넉넉했다
구멍가게 할머니의 얼굴이 사과처럼 밝았고
우체국에서 나온 사람들이 여유롭게 햇살을 받았다
이발사의 가위질 소리가 숭늉처럼 구수했고
신문 대금 수금원의 눈빛이 착했다
- 계간 애지, 2006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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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 피아노 소나타 27번 2악장
Beethoven, Piano Sonata No. 27 in E Minor, Op. 90: II. Nicht zu geschwind und sehr singbar vorzutragen
https://youtu.be/nAULrqdVvE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