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진부함에 맞서는 15개의 시선 세속 도시의 시인들 작가 김도언 출판 위즈덤하우스 2016.05.02.
'세속'이라는 단어가 시인과 만나니 그 의미가 다르게 다가온다. 탐욕스럽고, 주어지는 현실을 그대로 순응하려는 세속'이 아니라, 삶의 적나라한 면까지 들여다보며 자신이 발견하고자 하는 것들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는 '속세'의 의미가 더 강하게 느껴진다. 둘은 같은 의미지만 뒷말이 종교적 성격이 강해서 끊임없는 번뇌 속에서도 깨달음을 얻으려는 수행자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시인의삶은 '사색'으로만 채워져 있지 않다. 오히려 노동과 생활로 채워진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인터뷰이도, 인터뷰어도 문학의 깊이를 알고 있는 이들이라 그런지 주고받는 대화가 그윽하다. 그들만의 향기를 지녔다고 표현해야 할지 자신만의 목소리를 갖고 있는 사람 특유의 담담함과 여유가 느껴진다. 시인이라는 단어가 주는 고상함보다도 생활인으로서 풍기는 깊은 고뇌와 생각들이 삶의 무게를 진하게 담고 있다. 타락한 시대의 성공만큼 비루한 것이 없다는 시인들의 말이 '우리 시대'를 생각해보게 한다. 사회의 시스템을 욕하고, 기득권을 싫어하면서도 막상 나에게 주어진 굴레를 벗어던지려 하기보다는 그 사회가 강요하는 테두리 안에 자신을 맞춰가며 순응하지는 않았는지 반성해야 한다
자본주의에 저항할 수 있는 방법은 어떤 상황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거라고 생각해요. (120쪽)
삶을 지나올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라고 느끼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지금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바라볼 줄 아는 용기라고 생각한다. 어떤 가치를 위해 행동하는 것만이 용기가 아니라 내가 처한 현실과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도 외면하지 않고 바라보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한 일임을 알게 된다. 때로는 내가 의식하지도 못한 채 우리가 보고 싶은 것만을 보고, 힘들고 어려운 이야기들은 외면할 때가 생각 외로 많다. 특히 사회 고발성 소재를 다루고 있는 영화나 다큐멘터리는 힘들어서 보지 않는다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물론, 나 또한 그러한 사람 중 하나였다. 그럼에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진실을 다룬 영화는 꼭 챙겨보고자 하지만 그 후유증은 무서운 공포영화를 봤을 때보다 더 긴 여운과 생각들을 머리에 남긴다. 하지만 사회의 어른으로서, 그리고 생각하는 개인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결코 피해서는 안되며 오히려 그런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회들을 찾아다녀야 함을 느낀다. 그리고 내가 한 인간으로서 존경하는 사람들 또한 바로 그러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여기에 그런 사람들이 있다.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시인들이 내게는 모두 낯선 인물이 었다. 시집을 잘 읽지도 못할뿐더러, 간혹 읽는다 해도 작가 위주가 아닌, 작품 위주의 책만 봐와서 그런지 익숙한 이름이 별로 없었다. 그럼에도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 이게 되고, 의미를 파악하는 일이 어렵지 않게 다가왔다. 아마도 시어 속에 담긴 시인의 경험과 의미를 헤아려보지 않고, 내 경험이 부족하여 이해할 수 없는 지점까지 시인과 저자의 대화 속에서 문장으로 풀어버리니 그들의 목소리가 조금 더 또렷이 다가왔다.
저자는 책의 서문에서 이 인터뷰집이 시인에 대해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느슨하면서도 허술한 시선, 그리고 강고한 편견이 수정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그의 의도가 나한테는 딱 들어맞은 셈이다.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은 느슨한 시간으로 여유를 갖고 일상을 포착하는 예민한 시선을 가진 이들이 시인이라고 생각했었다. 그 러나 책을 읽고 보니 시인은 다른 사람들보다 촘촘한 시간으로 삶을 채우며 경험 많고, 노련한 생활인의 시선으로 세상을 포착해내는 사람들로 다가온다.
내가 만난 시인들은 하나같이 다른 시인을 의식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그려나가고 있는 좌표에 충실할 뿐 다른 이들의 동선을 염탐하지 않더라는 것이다. 당연히 누구와 비교되는 것도 마뜩잖아했다.
그것은 부단히 자기부정과 자기갱신을 감행해본 자들이 가닿는 자유로움 같은 것으로 여겨졌다. (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