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b Marley - No Woman, No Cry
안돼요 여인이여, 울지 말아요
No woman no cry No woman no cry
Said said said I remember when we used to sit
in the government yard in Trenchtown
여인이여 울지말아요 울지말아요
트랜치타운의 정부기관 마당에서
나는 우리가 앉아 있곤 했던 때를 기억해요
Oba observing the 'ypocrites
As they would mingle with the good people we meet
Good friends we have
oh, good friends we've lost Along the way
In this great future you can't forget your past
So dry your tears I say
우리가 만난 좋은 사람들과 섞여서 위선자를 관찰했어요
가는 도중에 우리가 가진 좋은 친구들 우리가 잃은 좋은 친구들
이 위대한 미래에 당신은 과거를 잊을 수 없어요
그래서 당신의 눈물을 닦으라고 나는 말해요
No woman no cry No woman no cry
'Ere, little darlin' don't shed no tears No woman no cry
여인이여 울지말아요 울지말아요
어여쁜 여인이여 눈물을 흘리지 말아요 여인이여 울지말아요
Said said said I remember when a we used to sit
in the government yard in Trenchtown
And then Georgie would make the fire lights
As it was logwood burnin' through the nights
Then we would cook cornmeal porridge Of which I'll share with you
트랜치타운의 정부기관 마당에서
나는 우리가 앉아 있곤 했던 때를 기억해요
그리고 조지는 밤 새도록 로그우드를 태울것처럼 불을 피웠지요
그러면 우리는 당신과 함께 나눌 밀가루 포리지를 요리했어요
My feet is my only carriage
So I've got to push on through But while I'm gone I mean
나의 두 발이 나의 유일한 운송 수단이예요
그래서 나는 밀고 나가야 했지요 그러나 내가 간 동안 그러니까
Everything's gonna be all right I said, everything's gonna be all right
Everything's gonna be all right now!
So, woman no cry No no woman woman no cry
Woman little sister don't shed no tears No woman no cry
모든 것이 잘 될 거예요 난 말했어요 모든 것이 다 잘될 거예요
모든 것이 다 잘 될 거예요 이제는..
그러니 여인이여 울지말아요 울지말아요
여인이여.. 자매여 눈물을 흘리지 말아요
여인이여 울지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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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b marley
생몰 1945년 2월 5일 ~ 1981년
데뷔 1972년 The Wailers 1집 앨범 'Catch A Fire'
경력 1974년 그룹 '밥 말리와 더 웨일러스' 멤버
수상 1978년 UN 평화 메달
[가져온 글]
밥 말리(Robert Nesta "Bob" Marley OM, 1945년 2월 6일~1981년 5월 11일)는 자메이카의 싱어송라이터이다. 레게 음악의 가장 대표적인 가수이자 작곡가이며 기타리스트이기도 하다.
자메이카의 세인트앤(St. Ann)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로버트 네스타 말리(Robert Nesta Marley)이다.
킹스턴의 빈민가에서 성장했으며 학교를 다닌 후 용접을 배웠다. 1960년대 초 피터 토시(Peter Tosh), 버니 리빙스턴(Bunny Livingston: Bunny Wailer) 등의 친구와 함께 웨일러스(Wailers)라는 이름으로 음악을 연주하면서 작곡을 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자메이카의 가수 겸 작곡가인 조 히그스(Joe Higgs)의 가르침을 받았으며 그의 프로듀서였던 콕선 도드(Coxsone Dodd)와 함께 만든 싱글 《시머 다운 Simmer Down》이 수록된 앨범이 1964년 자메이카의 인기순위에서 1위를 차지했다.
이후 1969∼1971년에는 프로듀서 리 페니(Lee Perry)와 함께 자메이카에서 성공을 거듭했으며, 1973년 아일랜드 레코즈(Island Records)와 계약하여 《캐치 어 파이어 Catch a Fire》를 내면서 유럽, 아프리카, 카리브해(海) 지역에서 인기를 얻었다.
자메이카 토속음악인 레게를 전세계적으로 널리 알린 밥 말리의 영향을 받은 서구권 뮤지션들의 레게에 대한 관심도 매우 컸다. Eric Clapton의 I Shot the Sheriff(밥 말리의 원곡)나 Paul Simon의 Mother and Child Reunion, 그리고 KC and the Sunshine Band, UB40, 휴 루이스 앤 더 뉴스,......
그후에 발표한 앨범들로는 《내티 드레드 Natty Dread》(1975), 《래스타맨 바이브레이션 Rastaman Vibration》(1976), 《엑소더스 Exodus》(1977), 《카야 Kaya》(1978), 《서바이벌 Survival》(1979), 《업라이징 Uprising》(1980) 등이 있다.
솔, 두왑, 스카(초기의 레게) 등 미국과 자메이카의 대중 음악 양식을 혼합시킨 독특한 음악을 만들어 냈으며, 평화, 사랑, 평등, 희망, 그리고 흑인의 힘과 통일을 노래함으로써 자메이카 흑인의 아프리카 복귀를 주장하던 라스타파리아니즘(Rastafarianism)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을 환기시켰다. 1994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Rock and Roll Hall of Fame) ‘공연자(performers)’ 부문에 올랐다.
그를 세계적인 아티스트로 만들어준〈No Woman, No Cry〉, 그의 기념비적 앨범인《Legend》(1984)는 전세계적으로 12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으며, 가장 많이 팔린 레게 음악 음반이기도 하다.
밥 말리는 1981년 4월 자메이카 최고의 훈장인 자메이카 메리트 훈장을 받았고, 1994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아프리카 흑인들의 인권 운동에도 앞장선 밥 말리, 흑인 자유투사를 위한 자선공연을 가졌던 그는 결국 암으로 사망 했지만 생전보다 사후에 훨씬 더 큰 명성을 얻었다
밥 말리는 뭔가 폭동이 일어난다고 해도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었던 40~50년대 자메이카의 수도 킹스톤의 '트렌치 타운'이라는 슬럼가에서 살았던 청년기의 말리는, 자메이카 흑인들이 겪는 고통과 권리 박탈의 실상을 전세계에 고발하겠다는 신념으로, 자메이카 토속음악인 레게를 수단으로 삼게 된다. 그리하여 2박자, 4박자를 강조한 경쾌한 비트로서 와우와우의 리듬 기타, 현란한 베이스기타에 '가장 공격적인 노랫말'을 전하는 현대 레게의 한 전형이 되게 하였다.
그는 조국 자메이카의 내분을 화해시키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기도 하며(One Love라는 공연), 짐바브웨의 독립을 그의 음악으로 역설했으며, '아프리카의 단결(Africa Unite)'을 호소하기도 했다. 그러는 가운데, 암살범에 의하여 저격을 당하기도 했으며, 한 때 조국을 떠나 망명길에 오른 적도 있었다.
그는 36세의 나이에 뇌종양으로 사망했으나, 그 짧은 세월동안 한 사람의 음악인으로서 세계 음악계는 물론, 흑백 평등과 화합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자유와 평화의 전도사이기도 했다. 그의 아들 '지기 말리' 역시, 아버지를 계승하여 활발한 음악활동을 하고 있으며, 이렇게 역설한다.
'나의 신조를 믿지 않는다면
내가 연주하는 음악은 이런 모습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의도하지 않는 것을 노래하게 되면
그 음악은 의미가 없어요.
음악은 무언가를 의미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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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메이카
서인도제도의 조그만 섬나라, 자메이카
쿠바에서 남쪽으로 145km 떨어져 있으며, 카리브 해 중앙의 주요무역항로들이 지나는 교차로에 자리잡고 있다.
카리브 해 연안국가들 중에서 쿠바 섬과 히스파니올라 섬에 이어 3번째로 큰 섬이다. 길이는 동서로 235km이며 너비는 남북으로 56km이다.
레게의 고장이기도 하고, 세계적인 단거리 육상선수를 많이 배출한 곳, Goombay Dance Band의 'Sun Of Jamaica'와 열대나라 선수들의 봅슬레이 출전기를 다룬 영화 '쿨 러닝'등을 통하여 친숙하고도 아름다운 이미지로 떠오르는 곳, 그러나 흑인들의 피압박, 분노, 고통, 폭력이 난무했던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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