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났을 때부터 내게는 형제도, 그리고 아버지도 없이 자라왔었다. 오직 내게는 어머니라는 바다 같은, 하늘 같은, 아니 그 무엇으로도 비교 못할 위대한 사람만 곁에 있을 뿐이었다. 아버지께서 딱히 남기신 유산이 없어 우리 집은 가난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어머니께서 집의 가장역할을 하셨다.
평소에도 허리가 안 좋으신 것을 나는 어렸어도 잘 알고 있었다. 나도 들 수 있는 어떤 물건을 어머니께서는 들 때마다 허리가 아프다고 하셨다. 그것은 곧 어머니가 밖에서 무척이나 힘들게 일을 하신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그래서 나는 아들로서, 그나마 효도라는 것을 하기 위해 늘 어머니를 안마해드렸고 어머니는 그 때마다 피하려고 하시지만 나는 억지로라도 한다. 그럴 때면 매번 듣는, 너무나도 부드럽고 정겨운 어머니의 말, 목소리.
“우리 아들이 안마 해주면 쌓였던 피로가 다 날아간다.”
그러고는 우리 아들 손이 황금 손보다 귀하다. 우리 아들처럼 효자가 세상에 어디 있을까. 라는 말 등등. 항상 칭찬을 해주셨다. 어쩌면 어렸을 적의 마음이란 정말로 어머니를 도와주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 부드러운 목소리의 칭찬을 듣고 싶어서가 더 강할지도 모르겠다.
어머니가 고된 일을 하러 나가는 동안 나는 집에서 딱히 할 일이 없었다. 내가 사는 이 동네 근처에는 나 또래의 아이들이라고는 없어서 놀 사람이라고는 가끔 지나가는 바보같이 헤벌래 하고 다니는 형을 놀리는 것 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여자애들처럼 혼자서 소꿉놀이를 하는 것은 왠지 모르게 수치스러웠다. 조금 더 자라서 알게 되었는데 내가 살고 있는 동네를 ‘달동네’라고 부르는 장소였다.
그리고 항상 매 끼니때마다 라면을 먹었다. 처음에는 정말 맛있다. 라는 생각만 들었는데 왜, 한 가지 음식만 먹다보면 반드시 질리게 되듯 정말 맛있었던 라면도 질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나는 다른 음식을 먹고 싶다는 강한 욕구를 꾹꾹 참다가 결국 어느 날 말하고야 말았다.
“엄마 자장면 사줘.”
처음에는 어머니는 단호하게 거절하셨다. 우리 집이 가난하다는 것은 너도 잘 알잖니 이 다음번에 돈을 더 많이 벌면 사주마. 하지만 참다 참다 말했던 내가 쉽게 포기할 리가 없었다. 졸라대고 또 졸라댔다.
결국은 우리 집 앞으로 자장면 하나가 그릇에 가득 담긴 체 배달이 왔다.
그것은 어머니께서 모아두신, 작은 비상금으로 온 것이었다.
젓가락으로 가득 집어 들어 입 속에 넣자 라면과는 전혀 다른 맛이, 정말 뭐라고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맛있었다. 한 반쯤 먹다가 어머니에게 내 젓가락을 건네자 어머니는 웃으며, 고개를 돌리며 말씀하셨다.
“이 엄마는 자장면 싫어한단다. 게다가 우리 아들이 맛있게 먹는 것만으로도 배부른걸.”
그것이 어머니의, 자식을 둔 어머니의 사랑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일을 하러 나가셨다. 그리고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것은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맛있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 리는 없었다. 그것도 한 번도 먹은 것을 본 적이 없는 어머니가 싫어할 리가 없었다. 알고 있었다. 그래서 너무나도 후회가 되었다. 바보같이, 허리가 아프시면서 까지 일하시면서, 진정한 어머니의 땀이 묻어있는 돈을, 이딴 자장면 하나에, 고작 한 번 먹으면 없어지는 이것을 위해 썼다는 것이 너무나도 후회스러웠다.
어머니는 얼마나 힘드셨을까.
사랑한다는 아들이 맛있는 것을 사달라고 하는데 가정형편은 어렵고. 두 개의 갈림길 앞에서 어머니는 얼마나 힘드셨을까. 내가 한 끼 안 먹으면 된다. 그런 생각으로 어머니는 내게 그 자장면을 사주신 것이었다.
나는 자장면을 먹다가 말고 반을 그대로 남긴 체 그릇에 담긴, 어머니가 애써서 사주신 그 자장면을 땅에다가 통째로 묻어버렸다. 다시는 먹지 않으리라. 비록 어머니가 힘들게 모은 돈으로 사주신 것이지만 계속 먹었다가는 앞으로 또 먹고 싶어서 어머니는 한 끼 굶어야 할 것이었다.
어렸을 적부터 철이 반 쯤 들었던 내가 그나마 생각해낸 행동이었다. 나름대로 효도라고 생각했던 행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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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이라는 것은 나를, 어머니를, 무척이나 힘들게 만들었다.
초등학교라는 것을 졸업하고 난생 처음 교복을 입어보았다. 어머니는 직접 샀다고 했지만 교복의 상태로 보아서, 그래도 어느 정도 머리가 커진 나로서는 이 교복이 누군가 입었던 것이라는 것을 한 번에 알 수 있었다.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같은 반의 아이들 대부분이 나와 같이 교복을 물려받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점심시간에 일어났다.
태어나서 처음 들고 가는 도시락이었다. 누런 금속의 딱딱한 통에다가 어머니는 가득 밥을 담아주셨고 점심시간에 친구들과 옹기종기 둘러앉아서 도시락 뚜껑을 열었는데 누군가가 웃었다.
“하하핫. 그것도 도시락이냐? 키킥 김치랑 밥 밖에 없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분노라는 감정 보다는 가난이라는 것에 둘러쌓인 나 자신이 너무나도 한심스러워서, 너무나 창피해서 바보같이 울음하나 참지 못했던 것이었다. 내 도시락에는 싸늘하게 식은 쌀밥과 시들어서 다른 아이들에게는 불결해 보이기까지 할 정도의 김치가 들어있었다.
눈물 한 방울이 도시락 위에 떨어지자 그 녀석은, 그 자식은 내가 운다고 놀려댔다. 순간 정신을 차렸을 때는 내가 그 녀석을 밟고 있었고 그 놈은 머리를 감싸 안은 체 입과 코에는 온통 피범벅으로 되어있었다.
일을 하고 계시던 어머님이 학교에 오셨다. 아니, 끌려오셨다. 그제 서야 인식하게 되었다. 그 부잣집 녀석의 어머님과는 달리 많은 주름살. 그리고 보잘것없는 옷차림. 그것은 내게 있어 다시 한 번 더 창피스러움을 주게 만들었다.
어머니가 그 부잣집 놈의 어머니에게 고개를 숙이셨다.
내가 아닌 어머니가······.
어머니가······.
왜지? 왜 어머니가 고개를 숙여야 하지? 잘못은 그 녀석이 했는데, 그리고 만약 그 녀석이 아닌 내가 잘못을 했다면 내가 고개를 숙여야 하는데 왜 어머니가 그 아주머니에게 빌고 있는 것인가.
어머니는 나를 한 대 때리시더니 말했다.
“이 녀석아. 이 어미가 학교에 배우러 보냈더니 싸움을 하러 보낸 거니?”
갑자기 화가 치밀었다. 처음으로 어머니에게 느낀 감정이었다.
“그 놈이 먼저 시비 걸었단 말이야!”
“어디서 엄마한테 소리를 쳐! 내가 그렇게 가르쳤던? 어서 사과해라. 고개를 숙이고 아주머니께 죄송하다고 말씀드려.”
“싫어! 난 아무 잘못도 없어.”
그러자 뭔가가 나의 뺨을 가격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어머니의 손이었다. 한 번도 어머니가 내게 화를 낸 적이 없었고 한 번도 나를 때리지 않은, 언제나 내게는 웃음만 보이셨던 어머니셨다. 눈물이 흘러내렸다. 왠지 모를 배신감과 억울함이 눈물을 치밀어 올랐다.
그대로 교무실을 뛰쳐나가버렸다. 나를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그 목소리는 여전히 화난 어머니의 목소리였기에 멈추지 않고 달렸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아무도 없는 골목길에서 숨을 헉헉거리면서 두 눈에서는 눈물이 쉴 새 없이 흐르고 있었다. 처음으로 그렇게 울어 보았다.
막상 그렇게 어머니에게 뛰쳐나왔는데 갈 곳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일부러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한 번 아들 걱정해보아라. 그것이 내가 표현해낸 일종의 반항이었다. 틀림없이 어머니는 내 뺨을 때리신 것을 후회하고 있으리라.
밤이 늦어서야 일부러 천천히 집을 향해 걸어갔다. 하지만 집에 불은 켜져 있지 않았다. 어머니는 내가 싫어진 것일까. 벌써 주무시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다시 입술이 삐져 나온 체로 문을 열고 방문을 열었는데 불도 켜져 있는데도 어머니는 온데 간데 없었다. 순간 내 머릿속에는 어렸을 적 어머니가 사주신 자장면이 생각났다.
왜 그 기억이 떠오른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지금 어머니는 틀림없이, 나를, 이 바보 같은, 한심한 나를 찾고 있으리라. 피로를 업고 다니는 몸으로 멍청한 이 아들을 찾고 있으리라. 그 생각에, 걱정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새벽이 되자 밖은 추워졌다. 나는 차가운 손을 비비고 코를 훌쩍거리며 밖에서 어머니를 기다렸다. 그 때 뭔가 어두운 물체 하나가 이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은 갑자기 멈춰서더니 빨라져서는 내 쪽으로 달려왔다. 그것은, 그 사람은, 나의······어머니셨다.
나보다 추위 때문에 더 붉어진 얼굴을 하신 체로 나를 감싸 안았다. 그리고 흐느끼시면서 말씀하셨다.
“미안하다······이 엄마가 잘못했다. 다시는 안 그러마······어딜 돌아다니다가 온 건지 묻지 않으마. 다친 데는 없니?······이 엄마가 잠깐 미쳤나보다. 우리 아들 화나게 만들고······내가 못난 어미다. 내가 정말 못난 엄마야······이렇게 좋은 효자를 두고······.”
나는 울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마치 그 동안 참고 있었듯 눈물이 한꺼번에 쏟아져 내렸다. 왜지? 엄마가 왜 내게 미안해하는 것이지? 이것이 바로 어머니의 사랑이라는 것일까. 어머니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식이 화를 내면서 뛰쳐나갔는데 도리어 그 자식에게 화를 내지 망정, 걱정을 하고 있었다. 밤늦게까지 하루 종일 나를 찾으러 돌아다니고 계셨던 것이었다. 아니에요. 내가 잘못했어요. 난 효자가 아니라 불효자에요.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할게요. 다시는 엄마 맘 안 아프게······다시는 엄마 슬픈 눈물 안 흘리게······.
그 말을, 바보같이 입 안에서 맴돌게만 하였다. 어머니의 그 따뜻하고 부드러운 품속에서 갓난아이처럼 나는 울고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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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우리는 가난이라는 것을 벗어날 것을 만들었다. 바로 우리들만의 가게를 만든 것이었다. 그다지 크지 않은 조그만 식당이었지만 이러한 나와 어머니만의 노력으로 식당을 가지게 된 것이 너무나도 큰 기쁨이었다.
우리를 잘 알고 있던 이웃들이 식당에 와주셔서, 우리와 비슷한 사람들도 일부러 음식을 시키시면서 까지 축하해주셨다. 어머니가 공짜로 드리겠다고 했지만 억지로 돈을 떠넘기면서까지 말이다. 너무나도 기뻤다.
어머니의 주름살로 번진 눈가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것은 슬픔의 눈물이 아니었다. 너무 기뻐서 흘리는, 처음으로 행복의 눈물을 어머니는 흘리셨다. 그 모습은, 어떤 여자보다도 너무나도 아름다운, 나의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12시가 넘어서야 그 친절한 사람들은 모두 돌아가셨다. 어머니가 무척 피곤해보이셔서 나는 처음으로 어머니를 업었다. 나도 이제 꽤나 큰 건지 어머니가 작고, 가볍게 느껴졌다.
“무겁진 않으니?”
“저도 이제 다 컸어요. 하나도 안 무거운 걸요. 이제 우리 행복해지는 거죠? 나 식당에서 엄마 많이 도와드릴게요.”
“에구, 우리 효자가 말만 해줘도 고맙단다. 아직 학생이니까 공부나 열심히 하렴. 이 엄마는 아직 건강하니까.”
어머니는 피곤하셨는지 방 안에 눕혀드리자마자 잠에 빠져드셨다. 나는 이불을 덮어드리고 그 옆에 어린아이처럼 붙어서는 나도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 날. 눈을 떠보니 매일 나보다 일찍 잠에서 깨어나시던 어머니께서 아직 주무시고 계셨다. 나는 어머니를 흔들었다.
“엄마. 엄마? 일어나요.”
하지만 어머니의 눈은 전혀 움직이지 않으셨다.
“많이······피곤하셨나봐요. 나······학교 다녀올게요.”
나는 일어서려다가 넘어져서 주저앉았다. 그리고 다시 일어서서 방문을 열었다.
“아······오늘 일요일이지.”
그렇게 말하는 나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뒤를 돌아보자 어머니가 흐리게 보였다. 얼마나 피곤하셨을까. 그 동안 얼마나 힘드셨을까. 이제 그 사람은, 너무나도 깊은 잠에 빠져드셨다. 한 번도 편히 취하시지 못했던 휴식을 이제 하셨다.
나는 어머니의 옆에 무릎을 꿇은 체 앉았다.
사랑해요.
나 당신을 사랑해왔어요.
하지만 왜죠?
왜 사랑한다는 말은 좀처럼 쉽게 나오지 않는 걸까요.
이젠 편히 쉬세요.
나 때문에
나 하나 때문에
아들 하나 때문에
하신 고생 모두 다 잊으시고
나 없는 그 세상에서.
편하게······.
쉬세요.
그렇게 살아왔다. 너무나도 후회스럽고 눈물도 흘렸었다.
그렇게 살아오면서 눈물도 흘렸다. 하지만 다시 웃고······.
그것은 당신이 존재했기에 가능했습니다. 내게 사랑을 아낌없이 주셨던 당신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이젠 정말로 쉬세요. 난 이제 아무렇지도 않으니까. 내가 그 때 뛰쳐나갔을 때처럼 걱정하시지 마시고. 이제 그만 사랑을 주는 것을 멈추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