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SVB ‘초고속 파산’… 한국도 은행건전성 감독 강화해야”
[2023동아국제금융포럼]
노벨경제학상 다이아몬드 기조강연
31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2023 동아국제금융포럼’에서 지난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더글러스 다이아몬드 미국 시카고대 경영대학원 교수가 기조강연을 하고 있다. 이훈구 기자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의 파산이 한국에도 ‘조기 경보(early warning)’를 줬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31일 열린 ‘2023 동아국제금융포럼’에서 기조 강연자로 나선 더글러스 다이아몬드 미국 시카고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지금처럼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촉발된 위기 국면에서는 금융 안정성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공포가 공포를 부르는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의 메커니즘을 규명한 세계적인 석학으로 지난해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3월 미국 SVB의 파산에 대해 “감독 당국이 SVB의 장부상 자산을 실제 가치로 평가하지 않으면서 부실에 따른 자본 확충에 나서지 않았던 결과”라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 금융에 대한 조언으로 “뱅크런 확산을 막기 위해 예금 보호 한도를 무작정 높이는 것보다는 당국이 금융회사 건전성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SVB 사태를 거울 삼아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하고 필요하면 자본 확충과 배당금 축소에도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뱅크 4.0’의 저자이자 미래학자인 브렛 킹 모벤(인터넷 은행) 창업자는 2050년 은행의 모습에 대해 “인공지능(AI) 기반의 스마트 은행이 일반화되면서 은행 업무의 대부분이 자동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날 축사에 나선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금융 안정은 모든 것의 기본”이라며 “급변하는 국내외 금융시장을 실시간 모니터링하는 한편으로 현재 남아 있는 40조 원 수준의 시장안정조치 재원을 활용해 변동성에 적극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동아일보와 채널A가 올해로 11회째 주최한 이번 포럼은 ‘초고속 은행 파산 시대, 금융의 새로운 역할과 해법’을 주제로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렸다.
“‘뱅크런’ 막으려면, 은행 자산 다각화-투명공개로 신뢰 쌓아야”
“SVB 사태, 한국에도 ‘조기 경보’
자본확충 등 ‘안전장치’ 마련해야
韓 부동산PF도 금리인상에 ‘취약’
지속적인 리스크 관리-감독 중요”
31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2023 동아국제금융포럼’에서 지난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더글러스 다이아몬드 미국 시카고대 경영대학원 교수(오른쪽)와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왼쪽)이 대담을 나누고 있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은행이 금융당국의 감독을 받을 때 금리 변동에 대한 대비를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훈구 기자
“은행은 자금 조달원을 다각화하고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금리 상승에 대한 대비도 해야 합니다. 미국의 상업용 부동산과 한국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같은 리스크는 적극적인 선제 대응이 필요합니다.”
지난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더글러스 다이아몬드 시카고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31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2023 동아국제금융포럼’ 기조 강연에서 금융 안정이 갖는 의미와 중요성에 대해 거듭 강조했다.
● “자산 다각화, 감독 강화로 은행 신뢰 다져야”
다이아몬드 교수는 지난 40여 년 동안 금융 안정과 은행 건전성에 대한 연구를 해 왔다. 그런데 최근 급격한 금리 인상과 은행 위기로 인해 자신의 전문 분야가 전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경제 이슈로 떠올랐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이날 강연에서 은행은 언제나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 가능성을 차단하는 데 최대의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은행 예금자들이 뱅크런에 대해 걱정하면 전 세계 다른 은행들로 쉽게 퍼져나갈 수 있다”며 “은행은 충분한 자본을 쌓고 자산을 다각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양한 경로로 자금 조달을 함으로써 급격한 예금 인출에 대비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금리 리스크는 은행이 항상 직면하고 있는 위험 요소”라며 “금융당국의 감독을 받을 때 금리 변동에 대한 대비가 얼마나 돼 있는지, 특히 예금이 얼마나 안전한지를 공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은행이 지급 능력에 대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면서 신뢰를 유지하는 것이 뱅크런을 막는 데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또 뱅크런 방지를 위해 예금 보장 한도를 늘리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감독을 강화하고 은행 건전성을 높이는 게 더 중요하다고도 강조했다.
그는 기조강연 직후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과의 대담에서는 부동산 금융 부문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특히 현재 미국 금융회사의 최대 취약점으로 상업용 부동산 대출의 부실 가능성을 꼽았다. 대형 오피스 건물의 공실 사태가 다양한 금융 부문으로 퍼져 나가면서 지역 중소형 은행들이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의 부동산 PF는 대부분 아파트 같은 거주용 부동산과 연결돼 있다는 점에서 미국과 다르지만 금리가 오르면 마찬가지로 취약해진다”며 “한국의 은행들은 충분한 자본을 이용해 손실에 대응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각 금융사의 PF 리스크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위기가 전이되지 않도록 차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 “경제 블록화, 일자리 감소가 경제 위협”
다만 다이아몬드 교수는 현재의 은행 위기 국면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와는 다른 것으로 판단했다. 그는 “2008년의 가장 큰 문제는 어떤 은행이 얼마나 큰 부실 자산을 갖고 있는지를 몰랐다는 점”이라며 “지금은 실리콘밸리은행(SVB) 같은 은행의 자산이 어느 정도인지 미리 파악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위기의 전이는 일어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제기되는 장기 침체(Secular Stagnation) 우려에 대해서는 그 가능성을 낮게 봤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으로 크게 나뉘는 ‘경제 블록화’와 신기술로 인한 일자리 감소가 경기 침체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주변의 동료들도 국가 간 교역의 양과 질이 줄어드는 것을 걱정하고 있다”며 “우리가 친구와만 교역한다면 세계 경제의 효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인공지능(AI) 같은 신기술이 고학력 노동자의 고용률을 낮추는 것 역시 경기에 악영향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한편 다이아몬드 교수는 가상자산의 위험성에 대해 우려를 표시하기도 했다. 그는 “가장 끔찍하고 힘든 날이 작년 슈퍼볼(미식축구 결승전) 날이었다”며 “모든 광고가 가상자산에 대한 광고였는데 리스크는 보여주지 않고 좋은 아이디어라는 점만 강조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아무리 잠재력 있는 기술과 산업일지라도 지나치게 불투명하고 규제당국의 감시망에서 벗어날 경우 금융 측면에서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도형 기자, 박희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