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의 선물은 하느님에 대한 경외입니다
하느님에 대한 경외의 선물
하느님에 대한 경외의 선물은 자신의 나약함을 자각하는 하느님에 대한 사랑입니다. 주님께 상처를 드리고 그분의 애정을 잃어버릴 수도 있음을 자각하는 하느님에 대한 사랑입니다. 모든 면에서 우리를 넘어서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선물로 주어지는 까닭에 우리가 소유할 수 없고 통제할 수도 없는 신비 자체이신 분을 지극히 존중하는 자세입니다.
우리는 그분을 거부할 수도 있고 잃어버릴 수도 있으며 무시할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에 대한 경외는 법에 대한 단순한 순종으로서의 도덕적 행동이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도덕적 행동을 뜻합니다.
하느님 아버지와의, 주님이신 예수님과의 인격적 관계입니다. 따라서 하느님에 대한 경외는 신중함을 동반한 도덕적 행위, 존경, 성실, 한 사람과의 진실한 관계를 표현하는 애정을 실천하며 살게 해줍니다. 하느님에 대한 경외는 우리의 아버지요 주님이신 하느님과의 관계를 요구합니다.
하느님에 대한 경외는 하느님께서 매혹적 신비이심을 자각하는 것입니다. 곧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상냥함으로 매력을 발산하시는 '매혹적인 신비'라는 것입니다. 동시에 하느님은 또한 두려운 신비이심을, 그로 말미암아 함부로 어울릴 수 없는 분이심을 자각하는 것이 하느님에 대한 경외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당신이 누구신지를 심오하고 진실하게 설명해주시니, 그분은 온전하면서도 까다로운 '사랑', 계약과 선물의 인격적 관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에 대한 경외는 성숙함과 높은 도덕성과 생활화된 책임감과 진정한 신앙심의 표시입니다. 실제로 하느님에 대한 경외는 우리로 하여금, 예를들면 평범하게 피상적으로 그리고 조급하게 기도하고 성당에 들어가서 성사를 받는 그런 일상을 극복하게 해주는 마음가짐이요 자세입니다. 그것은 정화의 선물이며, 하느님은 궁극적으로 어둠과 영혼의 밤을 통해 우리에게 시련을 안겨주십니다. 이 같은 경외의 선물이 발전할 수 있도록 말이지요.
위대한 신비가인 십자가의 성 요한은 영의 정화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영혼은 지극히 높으신 분을 모실 때 항상 그래야 하는 것처럼, 자기 안에서 커다란 정성과 존경이 우러남을 느낍니다."
자신의 부족함에 대한 두려움이자 하느님의 그 크신 사랑에 미치지 못함에 대한 두려움이고, 동시에 하느님의 존재에 대한 강한 바람입니다. 하느님에 대한 경외와 상반되는 태도로서 천박함, 경솔함, 그리고 기도와 삶의 소홀함을 들고 싶습니다.
하느님에 대한 경외는 조기에, 피상적으로, 경솔하게 완성되지도 않습니다. 모든 것이 불시에 들이닥친다고해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힘겨운 일들이 끝없이 이어진다고 해서, 기도가 소용없다거나 성체성사와 성사들을 통해 힘을 얻지 못한다거나 사람들과의 만남이 오히려 우리를 피곤하고 힘들게 할 뿐이라고 아연해해서는 안 됩니다. 아무 생각 없이 아무렇게나 치르는 전례는 우리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게 마련이고, 그런 태도는 우리에게 하느님에 대한 경외가 부족함을 알려주는 표지입니다.
카를로 마리아 마르티니의 <영은 어디에서 불타오르는가>
첫댓글 오늘도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한 하루 되세요.~^^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