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대구 옆에 자리한 고령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은 편이다. 신라하면 경주, 백제하면 공주, 부여, 조선하면 서울을 생각하지만 가야는 한반도의 옛 역사에서 존재했던 작은 고대국가 정도로 생각하고 그 고장이 어디인지 알아보지 않는다. 가야의 흔적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은 경북 고령으로 삼국시대 가야 6개국 중 중심이 되는 국가였던 대가야가 있었던 공간 고령을 봄 여행지로 소개하려고 한다.
다른 곳보다 먼저 찬란한 고대문화를 꽃피웠던 고령에는 어떤 이야기가 숨겨져 있을까. 우선 고령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대가야 역사테마파크를 먼저 찾아보았다. 역사를 테마로 만든 공원이기에 곳곳에 고령의 역사가 아로새겨져 있고 그 스토리가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곳이다. '프로듀사', '당신은 선물' 촬영지로도 잘 알려져 있다.
경주의 안압지, 부여의 궁남지가 있다면 고령에는 우륵지가 있다. 3대 악성이며 고령이 낳은 인물인 우륵이 이곳에서 삶을 영위했기에 우륵의 이야기들은 고령 어느 곳을 가도 쉽게 만날 수 있다. 안압지나 궁남지에 비하면 작은 규모이지만 충분히 고즈넉하고 분위기가 좋아서 반나절은 그냥 머물고 싶어지는 공간이다.
고령 역사 테마파크에 역사만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고령의 대표 정원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꽃과 식물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봄에 대가야 역사테마관광지를 방문하면 흔하게 볼 수 있는 개나리나 목련, 철쭉, 진달래를 비롯하여 공조팝나무, 눈 향, 느티나무, 매화나무, 바이브 눈 향, 박태기나무, 백철쭉, 사과나무, 산수유, 생강나무, 수양벚나무, 앵두나무, 콤팩트 화살, 황매화 등을 볼 수 있다.
역사테마관광지의 산책길은 중간중간에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공간과 고령의 역사 자산을 알기 쉽게 풀어놓은 시설 및 관광 안내판과 벤치를 두어서 방문하는 사람들이 대가야와 고령을 알 수 있도록 잘 안내하고 있다. 자연석으로 되어 있는 산책길과 발에 무리가 가지 않는 흙길이 번갈아 이어진다.
원래 고령에는 극장이 없었다. 기본 적인 문화생활 욕구를 충족해주는 극장은 현대인들에게 필수적인 공간 중에 하나인데 대도시가 아니면 기본적인 문화생활을 만족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 고령인들을 위해 고령군은 관광지 내에 대가야 시네마를 만들었다. 2개의 작은 상영관이 있는 이곳은 수익을 내기 위한 곳이 아니라 저렴하게 문화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해 운영되는 곳이다.
이제 한국도 관광이 중요한 산업으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되었다. 전남 땅끝마을이나 강진, 제주도에서 외국인을 만나는 것이 흔한 세상이 되었다. 경북 고령에도 대가야의 문화를 즐기기 위해 찾아온 외국인들이 적지 않다. 현대식으로 만들어진 시설도 좋지만 고령지역만의 역사와 문화를 체험하게 되면 오래도록 기억 속에 남는다. 고령에 자리한 대부분의 유물들은 5~6세기경에 가장 많이 만들어졌다.
테마 관광지를 둘러보았다면 20여 분 거리에 있는 쌍림면의 개실마을을 둘러보는 것이 좋다. 선산 김씨 집성촌으로 영남학파의 종조인 점필재 김종직(1431~1492)의 후손들이 모여사는 공간이다. 대구의 옻골마을과 고령의 개실마을은 안동을 제외하고 경북의 대표적인 한옥마을로 알려져 있다.
조선 시대 성리학의 길은 정몽주-길재-김숙자-김종직-조광조-이황으로 이어진다고 보고 있다. 김종직은 문장과 경술에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는데 영남학파의 종조가 된 것은 그의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이 그곳 출신이기 /때문이다. 김종직은 훈구파와 사림파의 갈등의 기폭제가 되는 <조의제문>을 지었는데 이는 연산군 때 문제가 되어 대부분의 사림파가 축출이 된다.
김종직의 <조의제문>의 내용에는 서초패왕 항우(項羽)를 세조에, 의제(義帝)를 단종에 비유해 세조의 왕위 찬탈을 비난하는 내용의 글이 담겨 있는데 이는 세조와 그 후손들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무오사화로 인해 김종직은 부관참시되고 김굉필 등 40여 명은 참해지거나 유배되었다.
절의를 높이며 정의와 의리를 중히 여기는 김종직의 후손들이 살고 있는 이곳에는 신라의 석학 최치원과 정여창, 김광필의 시문이 남겨져 있다.
여행에서 빠질 수가 없는 것이 체험이다. 고령읍에서 멀지 않은 곳에 가얏고 마을이 있다. 개실마을이 옛사람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라면 가얏고 마을은 가야금을 만날 수 있는 체험공간이다. 가야금 마을이 지금 이 모습을 가지게 된 것은 지난 2010년으로 2007년도 행정안전부에서 주관하는 살기 좋은 지역 만들기 시범사업으로 선정돼 3년 동안 52억 원(국비 29, 도비 3, 군비 20)이 투자되어 가얏고 광장, 문화관, 체험관, 공중화장실, 우륵의 집, 가얏고 길, 자연생태학습장이 조성되었다.
가얏고 마을에서는 정기적으로 가야금 제작, 가족캠프, 농촌체험을 연계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연중체험프로그램으로 트레일러 타기, 장명루 만들기, 가야금 연주 체험 등이 있으며 작년에는 '문화 특화지역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가야금과 우륵을 활용한 마을 자생력 강화 및 현악기 탄생지로서의 장소성과 상징성을 통한 마을 단위의 관광자원화를 처음으로 시도한 바 있다.
첫날 고령을 맛보기를 했다면 휴식을 취하면서 힐링하기 위해 미숭산 자연휴양림으로 발길을 해보자. 숙박하면서 녹색체험이 가능한 이곳은 자연휴양림으로 지정 고시받아 준공된 것이 지난 2012년으로 산림문화휴양관(1동), 숲 속의 집(2동), 황토집(2동)등 친환경적인 자재를 사용한 숙박시설이 있다.
숲은 일상의 활력을 주는 활력제 역할을 하는 곳이다. 식물, 동물, 곤충과 더불어 사는 곳이며 숲길을 걷다 보면 숲의 공익적 기능과 가치가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된다. 미숭산 자연휴양림에서는 다양한 숲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데 대가야 고령생태숲에서 매주 목, 금, 토, 일에 운영하고 있다.
미숭산을 중심으로 데크길이 잘 조성되어 있고 지금도 숲을 보호하면서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주변 공간으로 데크길을 확장하고 있는 상태이다.
미숭산이라는 산의 이름은 사람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고려 마지막을 지킨 장군이었던 이미숭이라는 사람이 이성계에 대항해 마지막 혈전을 벌였으나 결국 이기지 못하고 이곳에서 순절하였다. 원래 이름이 상원산이었지만 후대 사람들이 이미숭 장군의 이름을 따서 미숭산이라고 명명했다.
미숭산은 고령군과 경남 합천군의 경계 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고령의 최고봉을 가지고 있다. 정상에는 삼국시대에 축조된 미숭산성의 성문과 성터의 잔해가 있고 샘, 못, 군창 등이 남아 있다.
전국에는 적지 않은 미술촌이나 예술촌이 있는데 이는 누구나 마음껏 상상하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는 데에 큰 의미가 있다. 고령 농촌의 멋과 여유를 즐길 수 있고 틀을 벗어난 자연의 정겨움과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내곡 미술촌에서의 특별한 체험은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다. 고령군에서 이곳을 매각하였는데 주체가 이곳을 노인종합시설로 사용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날은 고령에서 나는 채소로 만든 보리비빔밥을 먹어보기로 했다. 단돈 5,000원에 12찬과 된장찌개 그리고 보리비빔밥을 양껏 먹을 수 있었다. 몸에 좋은 채소에서 나는 알싸한 향과 버무려진 나물의 향긋함이 보리와 제법 잘 어울린다. 잘 비벼진 비빔밥을 한 수저 떠서 입안에 넣으니 좋다.
밥도 먹었으니 고령의 유일한 동물원인 미니멀 주 동물원으로 발길을 해본다. 고령군 체험관광 네트워크에는 다양한 체험이 잇는데 그중에 승마, 활쏘기 등 스포츠 체험과 동물원 체험이 있다. 보기만 할 수 있는 것을 체험이라고 하기는 힘들다. 미니멀 주 동물원은 다른 동물원보다 규모도 작고 동물의 수도 많지 않지만 교감할 수 있는 동물이 상당수라 특별한 체험을 할 수 있다.
우륵박물관에서는 우륵과 가야금에 얽힌 이야기뿐만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현악기들 만나볼 수 있다. 정확한 생몰연대는 알 수 없지만 가야국 성열현(省熱縣)에서 살았다고 알려진 우륵은 가실왕의 명에 따라 12곡을 지었으며 신라 진흥왕에게 몸을 의탁하여 가얏고뿐만이 아니라 노래와 춤을 전수하여 오늘날까지 이르게 되었다.
고대국가의 고도(古都)의 기능을 했던 고령은 미숭산을 비롯하여 대가야 수목원 등의 청정한 숲과 계곡이 있으며 낙동강이 휘감아 흐르는 곳이다. 대가야 도읍지로서 520년 간이나 그 명맥을 유지하며 그 혼이 스며들어 있는 여행지 고령은 1박 2일 여행지로 충분히 매력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