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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김민호목사
질그릇과 보배, 겉 사람과 속사람 (고린도 후서 4장 1-1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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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바울은 일평생 복음전파를 위해 헌신하면서 세 가지 고통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첫째는 육체의 가시, 즉 육신의 건강 때문에 늘 고통을-그의 질병을 간질(뇌전증), 학질(말라리아), 안질(시력이 아주 나쁨)로 보는 견해가 있음-안고 살았습니다. 그는 육체의 가시를 없애달라고 세 번이나 간절하게 기도를 드렸지만, 하나님은 기도에 응답해 주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그는 육체의 가시가 제거되지 않은 것을 원망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 가시가 자신을 쳐서 자만하지 않게 하려는 주님의 은혜라고 고백합니다. 둘째는 핍박과 박해였습니다. 선교여행을 다니면서 수 없이 매를 맞고, 돌로 맞아 죽을 뻔도 하고, 쫓겨나고, 굶는 것은 다반사였습니다. 유대인들은 틈만 나면 그를 죽이려 하였지만, 주님이 가는 곳마다 예비해 놓은 돕는 동역자들을 붙어주셔서 그 험난한 복음전파의 여정을 무사히 마칠 수가 있었습니다. 셋째는 바울은 자신의 사도직분을 부정하는 자들과 늘 대항해야만 했습니다. 바울은 교회들에게 수많은 편지를 쓰면서 자신의 사도직이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계속 강조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받은 사도직은 율법조문으로부터 온 것도 아니고, 사람에게서 난 것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받은 계시에 의한 것이라고 변호합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바울은 자신이 받은 사도의 직분이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 거룩한 사명이라는 것을 거듭 주장합니다. 이는 앞선 3장 6절에서 복음 전파자들을 “새 언약의 일꾼”이라고 표현한 것의 연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바울과 그의 일행은 오직 새 언약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증거 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새 언약이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특별히 선택되어 거룩한 사명자로 세워진, 사도요, 선지자요, 선교자요, 교사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언제나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특별히 사도 바울은 자신이 사도의 직분을 수행함에 있어서, 직분자로서 지녀야 하는 마음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밝혀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철저하게 자신을 종으로 생각하면서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앞에 내세웁니다. 오늘 말씀의 내용을 살펴보면서, 우리 자신들이 교회 안에서 여러 직분자로 세워진 뜻을 제대로 알고, 새롭게 봉사와 헌신을 다짐하는 결단의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바울이 직분자로서 지닌 첫 번째 마음 자세는 직분을 주신 예수님으로부터 새로운 능력과 용기를 공급받아서 매사에 담대하게 행동하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에게 주어진 사도의 직분이 하나님의 긍휼(자비)하심에 따라 주어졌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에베소서 3장 7,8절에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꾼이 되었노라,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셨다 ”고 하였습니다. 교회 안에서 조직에 따른 직분들과, 교회 밖에서의 특별한 사명에 따른 직분들은 자신의 능력이나 다른 사람들의 추천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직분자들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주어지는 고귀한 자리입니다. 주님은 직분을 주시고, 그에 따른 합당한 능력들을 채워 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직분자들이 가장 먼저 가져야 할 자세는, 직분을 주님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것이고, 그 다음이 주님으로부터 주어지는 능력을 매일 매일 새롭게 공급 받는데 힘쓰는 것입니다.
1, 2절에서는 직분이 주님의 긍휼(자비, 은혜)하심으로부터 주어진 귀한 것이라는 확신을 지닌 사람들에게 날마다 새롭게 공급해주시는 능력들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① 어떤 일이 있어도 낙심하지 않고, ② 부끄러운 일들을 버리고(죄, 습관을 회개), ③ 속임(거짓, 간교)하게 행하지 아니하고, ④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왜곡)하지 않고, ⑤ 오직 진리를 나타냅니다. 이 다섯 가지의 능력에 힘입어 일을 하면 2절 말미에서 각 사람들의 양심 앞에서 떳떳하게 행동할 수 있다고 합니다. 직분 자들은 직분 수행을 위해 필요한 새로운 능력을 날마다 공급 받기 위해서 주님과 깊은 연합을 이루어야 합니다.
위의 다섯 가지 능력들은 가만히 있는 자에게 저절로 부어 주시는 능력이 아닙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일을 할 수 있느니라”는 신앙 고백을 통하여, 죽음도 불사하고 맡겨진 일을 완수하겠다는 각오로 사명을 감당 할 때 공급받는 능력입니다. 이 다섯 가지의 능력 없이는 우리에게 주어진 직분을 감당해 낼 수 없습니다. 직분이라는 것이 자랑스럽고 존귀한 영예를 얻는 것이지만, 그에 따른 엄청난 희생과 충성을 각오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직분자들이 복음의 능력을 충만하게 채운 후에, 불신자들의 양심에 대고 아무리 선포해도 3절과 같이 멸망하는 자들(복음을 끝까지 거부하는 자들)에게는 어떤 말도 통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이 가리워질 것이라고도 말합니다. 4절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가리워지는 이유가 세상의 신, 곧 사탄의 무리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혼미(어둡게)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어두워진 사람들은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선포하는 복음의 빛을 보지 못하게 됩니다. 복음 전도 현장은 주님으로부터 능력을 공급 받은 직분 자들과, 이를 방해하고 무력화 하려는 사탄의 무리들이 영적 전쟁을 치르는 치열한 전쟁터입니다. 당시 복음 전파의 기수로서 영적 전쟁의 최 일선에 서 있었던 사도 바울은 어마어마한 영적 전쟁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그가 수십 년간의 사역을 완수하고 끝내 어둠을 물리치고 승리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그의 마음 안에 어두움을 물리치는 그리스도의 빛이 항상 머물러 있었기 때문입니다.
6절 말씀입니다.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빛으로 이 땅에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영광의 빛을 직분자들에게 주십니다. 이 빛은 어둠 가운데 역사하는 어둠의 세력들에게 비춰질 것이고, 사탄의 무리들이 더 이상 복음을 거부하는 자들을 혼미하게 하는 방해 공작을 하지 못하도록 막아줍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일평생 마음에 담고 행동했기 때문에, 참혹한 박해의 현장에서도, 살기등등한 재판의 자리에서도, 차가운 감옥 안에서도, 그리고 순교의 자리에서까지도, 사탄의 어떤 미혹도 충분히 이겨 낼 수 있었습니다. 직분 자들은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마음에 받아야 모든 영적 전쟁에서 완벽하게 승리하고 복음 전파의 사명을 다 완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직분이라는 것이, 하나님의 긍휼(자비, 은혜)로 인해 주어진 존귀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 직분을 감당하기 위해 주님이 주시는 다섯 가지 능력을 날마다 공급 받고,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마음에 담게 된다면 직분자로서 완벽한 조건을 갖추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완벽하게 준비된 직분 자가 사도 바울이었습니다. 과연 이렇게 완벽하게 준비된 직분 자가 무엇을 행하는지 5절을 보십시오.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바울은 사도라는 큰 직분이 주어졌다고 해서, 자신에게 어마어마한 능력이 있다고 해서, 그리고 어둠을 물리칠 수 있는 빛을 담고 있다고 해서, 자신을 드러내거나 높이려는 일체의 행동을 결코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일평생 종의 신분을 과한 것으로 여겼고, 종으로 삼아 주신 것을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사도라는 직분을 복음 전파의 권위로만 사용했을 뿐 권력의 수단으로 변질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많은 교회들을 세웠지만, 교회이름 앞에 바울이라는 이름이 붙여지는 것을 철저하게 배격했습니다. “나 바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나의 주인이시고, 나는 주인의 명령에 따라 일을 한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습니다”라고 철저하게 주님만을 앞세웠습니다. 직분 자는 다만 사용되어지는 것일 뿐, 모든 결과와 영광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이 남아야 합니다.
00교회의 모든 직분 자들이 사도로서 바울이 가졌던 첫 번째 마음 자세처럼, 직분을 주신 은혜에 감사하고, 직분을 감당할 능력을 날마다 새롭게 공급 받고, 어두움을 물리칠 수 있는 그리스도의 빛을 마음에 담고, 각자에게 맡겨진 사명들을 넉넉히 감당해 나가기를 바랍니다. 바라고 구하는 것은, 00교회 모든 직분 자들의 마음에 바울 사도와 같은 충성과 헌신의 마음이 충만하게 들어가서 교회를 아름답게 세워가고, 복음 남은 전파를 위해 아낌없는 노력과 수고를 다하는 일꾼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바울이 직분자로서 지닌 두 번째 마음 자세는, 바울 자신은 질그릇 일 뿐이고, 자신 안에 있는 보배 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이 존귀하다고 고백합니다.
직분이 내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혹시라도 종일뿐인 자신의 이름을 나타내거나 높이려는 시도는 절대 금물입니다. 직분자로서 오직 주인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여 드리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기본이 되어야 합니다. 직분(디아코니안)이라는 말 자체가, 섬기고, 봉사하고, 구제하고, 관리하는 일들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맡겨진 일들을 아무 불평 없이 잘 이행하면 되는 것입니다. 일을 맡기는 주인보다 일을 수행하는 종이 높아 질 수는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주인과 종의 관계를 질그릇과 보배로 비유해서 말합니다. 이 비유가 직분 자들에게 하는 비유이지만, 모든 믿음의 사람들도 예수님과 자신의 관계에서, 나는 질그릇 이고, 예수님만이 보배가 되신다는 설정을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나는 질그릇에 불과 합니다”라는 고백 속에는, 나는 아무런 능력이 없는 자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고, 나는 내가 가진 지식이나 재능으로 어떤 것도 하지 않고 오직 주님이 주시는 능력으로만 일하겠다는 다짐을 하는 말입니다. 7절 말씀을 표준새번역으로 읽어 드립니다. “우리는 이 보물을 질그릇 속에 담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엄청난 능력이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것이지, 우리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님을 드러내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물건을 살 때 포장을 보고 사지는 않습니다. 포장보다는 당연히 내용물이 중요합니다, 보배(보석)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물론 포장도 좋다면 금상첨화이겠지만, 포장이 별로라고 하여도 보배 자체가 지니는 우아함과 아름다움은 감추어지지 않습니다. 직분자들이 어디를 가든지 대우받고 존귀하게 여겨지는 것은 오직 보배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의 엄청난 광채가 빛을 발하기 때문입니다.
질그릇에 불과한 직분 자가 보배로우신 예수님을 덮어버리고 자신의 모양을 마음껏 드러낸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정말 추해지고 세상 사람들에게 조롱 받기 십상입니다. 사탄은 자꾸 직분자들이 보배가 아닌 질그릇을 드러내라고 부추깁니다. “너의 능력이, 너의 지식이, 너의 외모라면 어디 가서도 한 몫 할 거야, 네가 이룬 성과들을 봐, 대단하지 않아, 마음껏 자랑해봐, 자리에 있을 때 우습게 보이면 남들이 무시해, 네가 가진 자리 잘 지키려면 권위가 있어야 해, 지시하고 명령해서 따라오도록 만들어,....” 사탄은 우리의 연약한 마음을 흔들어서 질그릇에 불과한 모습을 치장하도록 미혹합니다. 8,9절을 보십시오. 미혹에 넘어가는 순간 우리는 예수님의 능력에서 단절된 무방비 상태가 되기 때문에, 절망(우겨쌈)하고, 낙심하고, 거꾸러지고, 도망가는 비참한 신세가 됩니다. 사탄의 계획은 결국 우리에게서 생명을 빼앗고 사망으로 끌고 가려는 간계를 꾸미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직분자)에게는 생명 되시는 예수님이 계십니다. 10절에서 바울은 우리(직분자)가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졌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의 모든 인간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죽으신 것처럼, 직분 자들도 복음을 위하여 일하다 언제 죽음 앞에 설지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전혀 두렵지 않은 것은, 예수님의 부활하신 생명이 직분 자들의 몸에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14절에,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살아도 주님 앞에 설 것이고, 죽어도 반드시 다시 살아나서 주님 앞에 설 것입니다. 우리가 비록 죽임을 당할지라도 주님께서 우리를 다시 살려 주신다는 사실은, 부활 사건으로 이미 확실하게 증명되었습니다. 다시 살 수 있다는 확신, 다시 살려 주시는 생명이 예수님께 있다는 확신이 죽음도 두렵지 않게 만들어 줍니다.
사탄이 아무리 간교한 술수로 미혹 한다고 하여도, 잠시 잠깐 나를 높이려고 하고, 영원한 생명을 사망으로 바꾸는 어리석은 판단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는 죽을지언정, 나의 죽음으로 인해 새로운 생명이 잉태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12절에, “그런즉 사망은 우리(직분자-복음전파자)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불신자-이방인) 안에서 역사하느니라”고 합니다. 사망이 언제나 우리 안에서 일어날 수 있다는 말씀이 정말 두렵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로 인해 생명도 같이 역사한다는 사실도 믿어야 합니다. 직분자는 사람을 살리는 일을 감당하는 너무나도 중요한 위치에 있다는 사실을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너무나도 소중한 “생명 살리는 일”에 쓰여 지도록 세워진 것이 직분 자의 위이고, 그 자리가 저와 여러분이 서 있는 자리입니다. 내가 살면 다른 사람이 죽고, 내가 죽으면 다른 사람이 살 수 있습니다. 죽음을 불사하고 최후의 전쟁에 나가는듯한 이러한 비장한 각오가 항상 직분자들의 마음에 있어야 사탄을 물리치며 영적 전쟁에서 승리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나는 질그릇에 불과 합니다, 예수님만이 보배 이십니다”라는 고백을 입에 달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당장 죽을지언정 나를 다시 살려 주실 주님을 믿습니다. 내 안에는 생명 되신 예수님이 언제나 함께 하십니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자꾸만 나를 높이고 자랑하게 만드는 사탄의 미혹을 단호하게 물리치시고, 보배로우신 예수님, 생명 되시는 예수님만을 높이며, 죽음이라고 결코 두려워하지 마시고 생명 살리는 직분 자의 사명을 능히 감당해 나가시기를 축복합니다.
바울이 직분자로서 지닌 세 번째 마음 자세는, 직분자의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서는 겉사람을 버리고 속사람을 만들어 가는데 힘을 쏟으라고 권면 합니다.
직분자의 일을 감당하려 하니, 우겨 쌈 당하고, 낙심하고, 거꾸러지고, 도망 다녀야 되고, 죽임 까지 당할 수 있다고 하니 참으로 난감합니다. 직분 자를 세울 때 “이런 험한 일 당하여도 이겨내야 하는 것이 직분자들입니다”라고 말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성경 말씀이니 거부할 수는 없겠지만, 속으로는 꺼리침하고, 거부감 든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일 것입니다. 사도 바울과 같이 험난한 복음 전파의 현장을 겪어 보지 않았기에 이런 일들이 실제로 일어난다는 것이 피부로 와 닿지 않습니다. 어찌 보면 사도 바울은 특수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 시대에도 직분자들의 마음 자세들은 사도 바울과 똑같아야 된다는 것은 불변의 진리입니다. 어려움 때문에, 죽음 때문에 직분자의 부담감이 크겠지만, 15절에 우리(직분자)는 그런 것 때문에 낙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과정은 언제나 힘들지만 결과는 이미 주님께서 다 이루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이 직분 자의 한결 같은 마음 자세이어야 합니다.
계속해서 바울은 직분자들이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져야 한다고 강조 합니다. 겉사람은 내 자아일 것이고, 속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과 행동일 것입니다. 대부분 직분자들이 처음 세워질 때의 감격과 감사의 마음은 넘쳐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언제 그랬나는 듯이 사명감은 점점 희미해집니다. 점점 직분의 의미가 퇴색해지고, 의무감으로 자리를 지키는 나태함이 찾아오는 것은 속사람을 강하게 만드는 연단의 과정이 삭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겉사람 들은 육체적으로 만족감을 느끼는 식욕, 정욕, 탐욕, 물욕, 권력욕에 사로 잡혀 있는 사람입니다. 다 버려야 되는 것이지만 내버려 두면 기하급수적으로 쌓여 가서 혼자서는 도저히 처치 곤란한 지경에 이릅니다. 속사람은 인격을 세워 나가는 일이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 나가는 과정입니다. 죄를 벗어버리려고 늘 회개하고, 주신 것에 만족하며 늘 감사하고, 이웃 사랑을 실천하며 늘 섬겨 주고, 특별히 복음을 전하기 위해 기도하고 말씀에 의지하여 생활해 나가는 것들이 속사람을 키워가는 일들입니다.
완전히 대비되는 겉사람과 속사람은 항상 대립각을 세우고 전쟁을 합니다. 우리는 육체의 소욕을 따라 행동하기 쉬운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겉사람을 추구하는 일에 너무나도 쉽게 빠져 버립니다. 우리 생활의 거의가 육체가 지배하는 겉사람의 일방적인 승리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육체의 소욕을 거슬러서 겉사람을 완벽하게 패배시킬 응원군이 있습니다. 바로 성령님 이십니다. 육체의 겉사란과 성령의 속사람의 싸움이 일어나면 백전백승 속사람의 승리입니다. 우리 자신은 이길 수 없지만, 성령의 도우심으로 속사람이 날로 강건해 지면 언제나 승리하는 것입니다.
직분 자들이 성령님을 의지하지 않고 겉사람에 머물러 있으면서 주어진 사명을 감당한다는 것은 불가능 합니다. 사도 바울은 오직 성령에 매인 자 였습니다. 성령께서 가라고 하면 가고, 하라고 하면 하고, 멈추라고 하면 멈추어 섰습니다. 바울이 매사에 성령께 의지했다는 것은 날마다 속사람이 강건해 졌다는 반증입니다. 직분 자들은 성령의 일하심에 민감해야 합니다. 자신의 생각이나 판단은 항상 뒤로 하고, 오직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야 합니다. 무조건 순종하는 마음 자세를 갖추기 위해 늘 성령을 사모하고, 성령과 동행하는 지속적은 훈련이 필요합니다. 속사람을 강하게 만드는 훈련을 게을리 하는 순간 겉사람을 지배하는 육체의 소욕들은 삽시간에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될 것입니다.
17,18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세상에서 받는 환난은 지극히 가볍습니다. 반대로 영원하고 중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는 생명의 면류관을 얻는 것입니다. 우리의 최종 목표가 바로 이것 이어야 합니다. 또한 세상에서 좋아 보이는 것들은 잠깐 있다가 사라지는 것이고, 보이지는 않으나 다시 오실 주님과 그가 다스리는 왕국은 영원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 다시 만나려고 예수님 믿는 것이고, 영원한 나라에서 안식의 소망이 있기 때문에 예수님 믿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세상에서 주는 잠시의 환난을 이겨내고 인내하여야 합니다. 좋아 보이는 세상 것들에 현혹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이런 것들에 흔들리지 않고 오직 복음, 오직 예수, 오직 영생을 구하고 취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우리의 속사람이 날마다 강건해져야 합니다. 속사람이 강건해지고, 성령님과의 동행하는 것이 최후의 승리를 얻는 유일한 선택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직분 자가 지녀야 하는 마음 자세를 가르쳐 줍니다. 사도 바울 본인이 그렇게 치열하게 살았던 경험을 토대로 우리 직분자들에게 꼭 필요한 권면을 하였습니다. 각자 마음속으로 세 가지의 마음 자세를 다짐하고 새겨 보십시오. 직분자로서 나는, 직분 이라는 존귀한 자리를 주신 예수님으로부터 새로운 능력을 공급 받아 담대함으로 나아가겠습니다. 직분 자로서 나는, 질그릇에 불과하다고 고백하고, 오직 보배이신 예수님만을 자랑하겠습니다. 직분 자로서 나는, 겉사람을 버리고 속사람을 강건하게 하기 위해 항상 성령님과 동행하겠습니다. 이 땅에 수많은 직분 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바울과 같은 참된 직분 자는 참으로 찾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주님이 직분 자들을 세우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15절 말씀입니다. “이는 모든 것이 너희를 위함이니 많은 사람의 감사로 말미암아 은혜가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은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주님께로 돌아오게 하기 위하여 직분 자를 세우셨습니다. 저도, 여러분도 이들 중에 한 사람입니다. 우리를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려고 하십니다. 00교회 모든 직분 자들, 나아가서 이 땅의 모든 교회의 직분 자들이 사도 바울의 마음 자세를 본 받아서, 복음 전하는 사명을 감당하는데 죽도록 충성하기를 바라며, 이로 인해 하나님께 큰 영광 돌리는 복된 삶을 살아가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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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직분 자로서의 소명과 사명을 깨닫게 하여 주시고, 흐트러졌던 마음 자세를 바로잡아 주시니 감사합니다. 잃어버린 한 영혼을 위해 이 땅에 오셨던 주님처럼, 이 땅의 모든 세워진 직분 자들이 뭇 영혼들을 주께로 돌아오게 하는데 풍성을 다하여 헌신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오직 존귀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전파 되어서, 하나님께 큰 영광 돌리는 직분 자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에게 직분을 허락하시고, 사명 감당하도록 큰 능력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