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 / 고전 2:12-16
그리스도인의 위대한 고백과 선언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는 구원받았다'는 것과 '나는 그리스도인이다'라는 것과 '나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구원받았다'는 것과 '나는 그리스도인이다'라는 고백이나 선언은 자주 쉽게 합니다만 "나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다'는 고백은 흔한 고백이 아닐 뿐만 아니라 쉬운 선언이 아닙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그리스도인이란 구원받은 사람이며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내 속에 그리스도의 마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본문 끝에서 바울의 당당한 고백과 선언을 접하게 됩니다. 그것은 "나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는 것입니다.
본문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다고 했습니다만 사실은 바울 자신의 개인적 고백인 것입니다. 우리는 본문 속에서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누구이며 그 삶은 어떤 것인가를 찾을 수 있습니다.
1. 하나님께로서 온 영을 받은 사람입니다.
12절을 보면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세상의 영이란 마귀의 영을 의미합니다. 에베소서 2:2을 보면 마귀를 가리켜 "공중의 권세 잡은 자,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 하는 영이라"고 했습니다. 마귀 영을 받으면 마귀의 지시를 받게 됩니다.
성경을 보면 마귀의 속성이 밝혀져 있습니다.
1) 마귀는 거짓말쟁이 입니다.
요한 복음 8:44을 보면 거짓의 아비라고 했습니다. 사실을 왜곡하고 진실을 오도합니다. 진리를 부정하고 침을 퇴학시킵니다.
마귀가 사상 속에 들어가 태어난 것이 공산주의입니다. 그들은 거짓말을 참말처럼 꾸며댑니다. 거짓말은 마귀의 영이 사주하는 것입니다.
2) 간교합니다.
창세기 3장을 보면 그 간교 성에 아담도 하와도 넘어졌습니다. 간교한 마귀는 오늘도 많은 사람을 넘어뜨리려 하고 있습니다.
3) 헐뜯습니다.
욥기 1:9을 보면 사탄이 욥을 헐뜯고 중상 모략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마귀는 남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데 인색합니다. 비난하고 부정하고 공격하는 재주를 가지고 있습니다.
4) 난폭합니다.
쇠사슬을 끊는가 하면 소리를 지릅니다. 그리고 자해 행위를 일삼습니다.
5) 위장합니다.
심지어 광명의 천사로까지 자신을 위장합니다. 마귀는 변장술의 명수입니다. 성자로, 애국자로, 위인으로, 그리스도인으로 위장합니다.
6) 교만합니다.
본래 천사였던 마귀는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교만으로 타락해 마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담을 시험할 때도 선악과를 먹으면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된다고 꼬였습니다. 인간은 인간일 때 행복합니다. 인간은 신이 되어도 안되고 짐승이 되어도 안됩니다.
7) 범죄를 유발합니다.
마귀의 영이 운행하는 곳엔 온갖 사건과 범죄가 꼬리를 뭅니다. 한숨 쉴 겨를도 없습니다. 살인, 폭력, 마약, 뉴 에이즈 운동, 성 폭행, 강도, 절도등, 범죄 사건들은 마귀의 영이 역사 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이토록 잔인하고 무서운 마귀의 영을 받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바울은 선언합니다. "우리는 마귀의 영을 받지 않고 하나님의 영인 성령을 받았다"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성령을 받은 사람입니다.
성령은 마귀의 영을 물리치고 교체하는 유일한 능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다시 말하면 마귀의 영으로 죽어 가는 영혼을 살리는 유일한 방법인 것입니다.
마귀의 영은 수양이나 요가나, 의학적 방법으로 추방할 수 없습니다. 성령 받고 그 능력으로만 이길 수 있고 고칠 수 있는 것입니다.
(예 화)
사무엘 상 16장을 보면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이 귀신이 들렸던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일국의 왕이 악신 들려 밤이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정사를 돌볼 수 없게 되었을 때 다윗 소년을 데려다가 수금을 타며 찬송을 연주하게 했습니다. 사무엘 상 16:23을 보면 "다윗이 수금을 취하여 손으로 탄즉 사울이 상쾌하게 낫고 악신은 그에게서 떠나더라"고 했습니다.
현대 의학에서는 음악이 환자 치료 요법으로 응용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만 그러나 단순한 세속 음악으로 귀신을 쫓아낼 수는 없습니다. 더욱이 귀신을 자극하는 무당 음악이나 록 음악은 귀신을 흥분시키기 때문에 더 날뛰고 달라붙게 되는 것입니다.
사무엘 상 16:13을 보면 다윗은 여호와의 신에게 감동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소년 시설부터 성령을 충만히 받은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가 받은 성령의 능력으로 사울의 악신을 내쫓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세계는 도처에서 악령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악령의 세력을 이기려면 성령 충만한 사람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내가 성령을 충만히 받으면 마귀는 혼절하여 도망칠 것입니다.
2. 은혜를 알게 됩니다.
2절 끝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수를 셀 수 없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알고 감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알지 못하고 감사하지 못하며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차이는 바로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냐 가지지 못했느냐로 결정됩니다.
은혜를 모르거나 잊어버리는 사람을 배은망덕 자라고 부릅니다. 배은망덕한 사람은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합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그 크신 은혜를 잊어버리고 산다면 어떻게 사람 대접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왜 은혜를 잊어버립니까?
첫째 스스로 됐다(섰다)는 교만 때문입니다.
둘째 악한 건망증 때문입니다.
셋째 사탄의 방해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예로 들겠습니다.
430년 동안 애굽에서 사는 동안 온갖 박해와 고통을 겪던 저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해방을 받아 애굽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애굽 왕 바로는 그들을 그냥 포기하지 않고 추격대를 동원해 추격을 감행했습니다. 앞에는 홍해가 가로놓여 있고, 뒤에서는 추격대가 뒤쫓아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해방시키신 하나님은 홍해를 가르시고 육지처럼 건너게 해주셨습니다. 이 홍해 도하 사건은 이스라엘 민족으로서는 잊을 수 없는 기적이었고 감격적 사건이었습니다. 그로부터 사흘 뒤 마라라는 곳에 도착했을 때 마실 물이 없다는 이유로 하나님을 원망하고 모세에게 대들었습니다. 그들은 사흘 전의 기적과 은혜를 기억 못하는 배신자들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오늘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원망을 일삼는가 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는 우리들이야말로 이스라엘과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은혜를 그토록 쉽게 저버리거나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그 크신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고 증거하는 것입니다.
3. 신령한 것을 분별합니다.
13절 끝을 보면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모든 사건들은 거의가 신비롭고 신령한 사건들입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사건, 홍해가 갈라져 건넜다는 사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이 먹었다는 사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신 사건 등 모두가 신비롭고 신령한 사건들입니다. 그리고 내가 예수를 믿음으로 죄사함 받고 구원받았다는 것도 신령한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사건들은 신령한 이해력과 판단력이 아니면 이해하거나 수용하기가 어려운 것들입니다.
메이어(Meyer)는 "신령한 것은 신령한 것과 결합된다"고 했고,
벵겔(Bengel)dms " 신령한 일은 신령한 사람들에게 해석된다"고 해석했습니다.
신령한 세계는 신령한 눈으로 봐야 볼 수 있고, 신령한 말씀은 신령한 귀가 있어야 들을 수 있고,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라야 분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면 신령한 것을 깨닫고 분별하고 실천하는 힘을 갖게 됩니다. 신령한 능력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4. 판단 받을 일이 없게 됩니다.
15절을 보면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구절의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 신령한 사람이라야 판단 능력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영의 세계는 깊고 오묘하기 때문에 이해하고 판단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그러나 신령한 사람은 연분별 능력을 갖기 때문에 판단이나 분별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②, 신령한 삶을 사는 사람은 판단 받을 일이 없습니다.
육체의 정욕에 묻혀 사는 사람이나 믿음을 떠나 사는 사람은 판단 받고 정죄 받을 일이 많습니다만 신령한 사람은 그럴 까닭이 없습니다.
③, 신령한 사람은 함부로 남을 판단하거나 비판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판단은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것은 긍정적 판단과 부정적 판단입니다.
운동 경기에서 이긴 사람에게 이겼다고 판단해 주는 것은 긍정적 판단입니다. 그러나 진 사람에게 이겼다고 판단해 주는 것은 부정적 판단입니다. 신령한 사람은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판단합니다. 그리고 함부로 판단하지 않습니다.
④, 하나님의 판단을 두려워합니다.
고전 4:3을 보면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다"고 했고, 4절을 보면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판단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님의 판단은 뒷전으로 미루어 놓고 눈앞에 보이는 사람의 판단만 신경 쓰고 무관심할 때가 많습니다.
사람이 나를 의롭다, 깨끗하다. 정당하다고 판단해도 주님이 아니라면 아닌 것입니다. 사람이 나를 정죄하고 손가락질해도 주님이 나의 정당성을 인정해 주시고 의롭다고 판단하시면 그것이 정당한 것입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다'는 바울의 고백이 자랑스럽고 부럽습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로마서 8:9을 보면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을 가진 사람,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해 드리고 그 뜻을 따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깊은 교제가 가능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고 가진 사람이 됩시다. 그래야 참 그리스도인이라 칭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