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명의 아들을 둔 왕이 있었다.
누구에게 왕좌를 물려줄지 고민이었다.
세 아들 모두를 사랑했기 때문에 왕은 동등한 기회를 주기로 했다.
그래서 궁의 정원에 있는 작은 오두막을 무엇으로든 가득 채우는 사람에게 왕의 자리를 주겠다고 말했다.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주어졌다.
전사처럼 강한 장남은 다양한 크기의 돌들을 날라와 빈 공간이 전혀 없도록 오두막 안을 채웠다. 큰 돌 다음에는 작은 조약돌들로 틈을 메웠다. 그러나 오두막 문을 열자 햇빛이 들어오면서 많은 빈틈이 보였다.
영리하고 재주 많은 둘째 아들은 베개들을 잔뜩 가져와 베갯속 깃털들로 오두막 안을 채웠다. 처음에는 성공적으로 보였다.
햇빛이 스며들 수 없을 만큼 빈틈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몇 시간 지나자 깃털들이 처져 납작해지면서 빈 공간이 드러났다.
사람들이 어리다고만 여긴 셋째 아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두 아들은 아버지에게 막내가 더 나이 먹을 때까지 이 경쟁에 포함시키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어리기 때문에 나라를 통치하는 일을 맡길 수 없다고. 하지만 왕은 듣지 않았다.
둘째 날이 지나도, 셋째 날이 지나도 오두막은 텅 비어 있었다. 호기심을 느낀 사람들이 오두막을 기웃거렸다. 그렇게 일주일 동안 그 빈집에 대해 명상을 이어가던 셋째 아들은 마침내 왕을 안내해 오두막으로 향했다. 사람들이 그 뒤를 따랐다.
왕이 오두막 문을 열기 위해 손을 뻗었다. 모두가 안을 들여다보려고 서로 밀치며 고개를 들이밀었다. 오두막 안은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 있었다.
젊은 왕자가 아버지의 팔을 이끌어 오두막 안으로 들어갔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은 그는 소매에서 큰 초 하나를 꺼냈다. 왕자가 초에 불을 붙이자 오두막 안이 빛으로 채워졌다.
왕이 어느 아들에게 왕좌를 물려주었는지는 말하지 않겠다. 이 이야기의 주제는 누가 어떻게 오두막 안을 채웠는가가 아니라, 우리가 무엇으로 자신의 내면 공간을 채우고 있는가이다. 오래가는 단단한 것으로 채우려 하고 있는가? 혹은 값비싸지만 금방 날려 사라지는 것을 모으고 있는가?
인간의 삶은 사실 그 빈 공간을 채우려는 일생에 걸친 노력이다. 끈질기게 마음속에서 들리는 목소리가 있다. 그 목소리는 빈 공간에서 들리기 때문에 더 크게 울린다. 어서 자신의 빈 공간을 채우라는 요구이다. 자신의 내면과 더불어 외부 세상도 밝히는 것으로 채울 때 비로소 내면 왕국의 왕이 된다. 우리는 결국 자신 안에 있는 것을 세상에 준다.
사람은 누구나 영혼에 빈 곳을 가지고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나 있었을 수도 있고, 살아가면서 받은 상실과 상처로 생겨났을 수도 있다. 그 빈 곳은 무엇인가를 절실히 갈구하게 만든다.
나는 스무 살 무렵부터 끝없이 돌아다니는 것에 중독되었다. 걸어서, 혹은 기차를 타고 끊임없이 어딘가에 있는 목적지를 찾아다녔다. 한번 걷기 시작하면 밤새도록 걷고, 그 이튿날까지 지쳐 쓰러지도록 걸었다. 그만큼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커다란 구멍을 마음속에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그 길 끝에서 우연히 한 사람을 만났고,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신발에 구멍이 나고 발냄새 나는 나를 받아들여 주었다. 그 사람은 나에 대해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냥 새 신발을 사 주고, 한 달 동안 밥을 해 주고, 잠을 재워 주었다. 그것이 나를 중독에서 회복시켰다.
그 이후, 나는 내 존재에 난 구멍을 문학으로, 여행과 사람들로 채워 왔다. 다시 말해, 삶에 대한 새로운 기대와 희망들로. 영혼에 난 구멍은 피상적인 지식이나 상투적인 일, 얕은 관계로는 채워질 수 없다. 존재가 진정으로 갈구하는 것이 아닌 잡동사니들은 텅 빈 구멍을 감추고 고통의 벽을 치장하려는 대체물에 불과하다. 우리의 영혼은 그것을 안다.
artwork_Elin Manon
류시화
북쪽의 동장군이 몰고온 한파로 한주간 고생 많으셨습니다
계획하신 일들 잘 마무리 하시고 사랑하는 분들과 몸과 마음 데울수있는 따뜻한 주말 맞이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