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순수하여라! (思無邪!)
날씨가 추워져서 몸이 웅크려지는 날이다.
코로나 청정지역에 가까웠던 강릉에 난데없는 ‘수입품’ 서울 넘이 강릉문화원에 와서 기타를 치고 노래를 가르치고 간 뒤, 2~3일 사이에 20여명의 확진자가 생겼다.
길거리는 텅텅비고 상가는 철시를 했다. 강릉에서 가장 번화가중 하나인 우리 약국 사거리를 건너는 사람도 한 신호에 두세 명이 고작이다.
대구는 참 먹고살기 힘든 고장이다. 공무원이나 연금 생활자를 빼면 마땅한 취직자리도 없다.
뭐 내세울 특산물도 없고 생산품이 없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젊은이들은 죄다 서울로 가고 갈수록 노령도시가 되어가며 인구가 줄어든 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살기 힘든 사람들은 종교에 빠지기 쉽다. 구원에 목숨을 바친다. 신천지가 코로나 창궐의 책임을 떠맡을 때도 대구가 앞장을 서더니 이번엔 영생교회가 그 책임을 떠맡고 있다.
이래저래 우울한 코로나블루의 시대다.
그럼 나는 술 담배 여자 빼고 무슨 재미로 살까?
불과 수 일전의 얘기다.
한잠을 자고 일어난 시간이 새벽 세시!
화장실에 가기 위해서였다.
잠시 출입문을 열고 조간신문을 집어 들고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웠다. 내 집이 강릉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터라 새벽 밤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너무 이른 새벽이라 아직은 깜깜 나라요, 보이는 것은 점점이 찍혀있는 가로등 불빛뿐, 겨울밤이 춥지 않아서 발밑에는 미처 잎을 떨어뜨리지 못한 나무들이 보이고 밤바람도 없었다. 문뜩 바라본 북쪽 하늘, 맑은 공기 덕분에 별알들이 촘촘했다. 그때 동쪽 위에서 서쪽 아래로 가늘게 획을 긋는 유성(流星)의 빛을 보았다.
슬며시 미소가 저어졌다.
‘지금 이 시간에 저 빛을 본 사람은 아마도 나 밖에 없겠지?’
이것도 나의 작은 행복이다.
그리고는 방에 들어와 배를 깔고 엎드렸다.
신문을 읽을 양으로 독서등을 켰으나, 추,윤의 정치싸움 얘기와 코로나가 전부인 신문은 제목부터 읽기 싫어졌다.
자연스럽게 눈이 간 곳은 머리맡에 놓여있는 논어 세 권.
나는 게으르기를 좋아하여 일일이 책을 고르기 보다는, 책장에는 늘 꽂혀있는 책이 있고 머리맡에도 십여 권이 놓여있다.
그날 우연히 펼친 것이 논어 위정(爲政)편의 시삼백(詩三百)으로 시작하는 구절이었다.
새벽 세시, 지난 저녁에 마신 술은 이미 다 깨고 이제 남은 것은 약간의 갈증과 명징(明澄)한 머리!
다시 잠이 들려면 한 시간은 족히 걸릴 터!
시삼백 일언이폐지 사무사(詩三百 一言以蔽之 思毋邪!)
이 맹탕같은 이야기는 수 십년전 논어를 처음 읽었을 때부터 내 주목을 끌지 못하였다.
어떤 집에 가면 유식한 척하고 흔히들 액자에 써서 걸어놓는 글귀다,
그 해석은 모두,
‘시경 삼백편의 시를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생각에는 사특함이 없다.‘였다.
그리고 나도 그러려니 하였다.
그런데 그날 새벽, 나는 이 맹탕 같은 글의 내용을 좀 더 깊히 천착(穿鑿)해보기로 했다.
그 이유는 이런 맹물 같은 이야기에 공자가 평생을 매달리지는 않았으리란 강한 의문 때문이었다.
이 글을 읽는 사람은 먼저 공자의 대강의 생애와 시(詩),악(樂),예(禮)에 대한 정확한 뜻을 알아야한다.
이것에 대한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으면 책 한 권이 모자랄 것이므로 썸머리 형태로 쓰는 것을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여기서 독자는 이런 의문을 가져주길 바란다.
공자는 무엇으로 제자들을 가르쳤을까?
교과서도 없고 사서삼경은 물론이요, 육례(六禮)조차 그 체계가 성립되지 않았던 시기에 무엇으로 제자를 가르쳤을까? 이런 의문을 해소할 만한 단서는 논어는 물론 옛 문헌 어디에도 없다. 이런 의문을 제기한 사람도 나 밖에는 없다. 이것이 그날 새벽 나의 위대한 자각이다.
예수는 유대사상과 세례요한으로부터 받은 영감으로 제자를 이끌었지만, 또 하나님이란 믿는 존재가 있어서 쉽게 가능했기에 서른 살의 젊은 나이에도 제자를 거느릴 수 있었지만, 공자에게는 그런 본받을 무언가와 가르침을 주는 사람이 없었다. 내가 공자를 가르쳤노라고 하는 존재는 어느 구석에도 등장하지 않으니 공자는 독학으로 깨우쳤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증거는 논어의 곳곳에 등장하는데, 삼인이 가면 반드시 스승하나는 있다는 믿음과 호학(好學)에 대한 기대는 공자가 평생 간직한 ‘마음가짐’이었다.
공자는 생애를 통해서 일관되게 노래를 채집하였다.
지금 전해지는 시경은 110여편으로 구성되어있으나, 원래 700여 편이었던 시가 공자에 의해서 취사선택되어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공자는 이 노래(음악)로 제자를 가르쳤다!
시경은 풍(風;유행가)아(雅;궁중음악)송(頌;제례악)으로 이루어져있는데, 공자는 이중에서 풍(風; 國風)을 가장 좋아하였으리라. 그 이유는 그것이 서민들의 사랑과 애환을 담은 노래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요조숙녀(窈窕淑女)라는 말도 여기서 나왔다.
공자가 노래를 좋아하였다는 말은 논어에 확실히 적시되어있다.
‘공자께서는 노래를 잘하는 사람을 보면 반드시 따라서 부르고 앵콜을 청하였다’하였고, 제자들의 음악의 섬세함과 거침에 대한 평가도 곧잘 내렸다.
그리고 그는, ‘나는 시를 알아서 감흥을 얻고(興於詩) 예를 알아서 입지를 하였으며(志於禮) 음악을 통해서 인생을 완성하였다(成於樂)하였다 했다.
그러면 공자는 음악애호가가 확실한데, 이 음악과 예는 어떻게 배우고 익혔을까?
여기에는 공자의 ‘출생의 비밀’에 있다. 요즘 드라마에 단골로 등장하는 메뉴다.
공자는 60이 된 아버지와 15세의 어머니 사이에서 사생아로 태어났다. 물론 정상적인 결혼이 아니었다.
어머니는 니구산 아래 당골 무속인이었다!!
세 살에 아버지를 잃고 열여덟 살에 어머니를 잃었다.
따라서 늙은 애비로부터 무언가를 얻기에는 너무 어렸고,
어머니로부터 자연스럽게 음악과 예를 배웠다.
지금도 우리나라에서 진도 씻김굿이 전해 내려오듯이 무속은 본래부터 춤과 음악이 함께 하였다.
춤과 음악은 사람과 귀신, 이 땅과 하늘을 이어주는 그 무엇이었다. 찬송가를 뺀 예배를 상상할 수 없듯이 음악은 사람을 하늘과 연결시켜주는 도구요 수단으로 사용되어왔다.
또 예란 무엇인가?
예(禮)는 본래 송주(宋朱,宋醴,周禮) 이래로 허례허식에 빠진 규격화된 것이 아니었다.
예는 示와 豊으로 이루어진 글자로, 示는 귀신(鬼神)을 뜻하는 字이며, 豊은 그 귀신에게 제사(祭祀;모두 示가 든 글자다.)를 지내기 위해서 제단(豆)위에 제물(曲)을 진설해놓은 글자다. 지금도 굿당에 가면 과일이며 과자등으로 풍성하게 차려놓은 床을 볼 수가 있고, 기제사가 아닌 사당의시제(時祭)때는 주과포혜를 엄청 높이 쌓아놓은 것을 볼 수가 있다. 이러한 상 차림은 사(士),공경(公卿),대부(大夫),제후(諸侯)등 신분이나 계급에 따라서 달랐으니, 무당의 아들로 태어난 공자로서는 어릴 때부터 이런 상차림에 능했다.
그래서 사마천도 공자를 예에 능한 사람이라 소개하고 있다.
공자가 글을 익힌 것은 15세가 되어서였고, 그로부터 불과 삼년 후 어머니가 돌아가셨으니 예수가 한창 포교하던 나이인 서른이 되어서야 사회적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吾十有五 志于學, 三十而立)
서른이 되었을 때, 공자는 이미 시악예(詩樂禮)에 달통한 인간이 되어있었다.
그 소문이 자자해져서 과외 선생을 했고, 그가 가르친 과목이 시서예였다!
특히 詩에 있어서는 많은 애착을 가졌으니, 그 수집과 취사선택에 최선을 다 했기로 공자의 유일한 저적(著作)으로 평가받는다.
그리고 그 시의 내용은 風으로 서민들의 사랑과 애환을 노래했고, 雅와 頌으로 중국 고대사를 노래했다.
그것으로 제자를 가르쳤다.
난 다시 思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思는 해골에 금이 간 모습(田)과 심장(心)을 상징하는 글자의 조합이다.
思를 생각한다는 뜻으로 해석하면 대부분의 번역처럼 맹물이 된다.
이때 나의 뇌리를 가격한 것이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서 배운 송강 정철의 사미인곡(思美人曲)이었다!
美人은 알다시피 임금(中宗)이었다.
그러면 사미인곡은 임금님을 생각하며.. 인가? 아니다!
‘나 ᄒᆞ나 졈어잇고, 님 ᄒᆞ나 날괴시니’
그래, 思는 ‘굄’이요, 굄은 ‘사랑’이다!
즉 사미인곡은 ‘임금님을 사랑하여 드리는 노래’인 것이다!
따라서 思無邪는 ‘사랑에는 거짓이 없다’는 뜻이다!
思를 ‘생각’이라 번역하는 순간 공자의 회고는 맹탕이 된다!
늘그막에 어느 날 공자가 제자들이 모인 가운데서 지난날을 회상하였다.
‘詩三百 一言以蔽之, 思無邪!’
‘내가 자네들하고 평생 시를 갖고 놀았는데, 생각해보니 시 속에는 순수한 사랑 밖에 없더라!’
나는 이렇게 결론을 내리고, 마치 금강설법을 들은 우바이(優婆夷)처럼 대희(大喜)대환(大歡)하며 남은 새벽잠을 청했다.
庚子
12월 중순 첫눈 내리던 날
豊 江
첫댓글 너무 어려워 이해불가.
중간 부분에 난데없는 '어미 모'자가 재미있을뿐..............
혁수가 어렵다니 나야 읽어봐도 뭔지 알수없고 강릉에도 서울 넘이 코로나를 퍼트렸군
제천에도 서울에서 김장 하려와 시작 한것이 옜날 통행금지 시절을 생각 나게 한다내 순복이도 혁수도
코로나 조심 건강 조심 며칠 안남은 20년 마무리 잘 하길~~
논어 한 장을 썸머리 한 글은데, 천천히 잘 읽어수세요. 토요일 약 팔면서 8시간동안 쓴겁니다. 일부러 쉽게쓰려했으나 비재(菲才)한 탓이겠지요.
이 정도의 소양만 갖춰도 어디가서도 면무식은 할겁니다. 담엔 또 뭘쓸가 생각중입니다. 장자? 순자? 노자? 알고 싶은게 있으면 같이 나눕시다.
풍강이 알중회에 갔다가 금방 왔는가?
장자? 순자? 노자? 세분다 좋지만
나는 손자 어르신이 좋다~~
병법은 인간이 살아가는 모든 법과 통하니까~~
순복아 너가 쓴 기나긴 글을 보고
딱 한 구절 '술과'담배'여자만 내 귓전에 맴돈다
강릉에도 춥지 ?
코로나로 다른 친구들도 역시 집 밖을 나오지못하겠지
이게 무슨 징조인지 ?
연일 확진자가 천명이상 나오고 있다.
아무래도 순복이 니가 나서야 겠다.
아이구 우리 친구들 이곳에 다 모였네 순복이, 혁수, 기태, 나
이렇게 글로 로도
모이기가 힘든데 ~
진환이 오랜많 일세 코로나19 도 여기 우리들 카페는 안전하니 여기에서
자주 만나면 좋겠내~~
코로나는 내가 첨에 얘기한대로 초기에 해열제(아스프린 등)에 갈근탕 한 봉지 먹고 물많이 마시고 뜨끈한 방에서 땀 한번 푹내면 거뜬히 났는다.
땀 내지 못하는 노약자가 문제지. 이 때는 곰탕과 해열제를 함께 드시고 땀 내세요. 땀내는 것(催汗)은 표면에 침입한 사기(邪氣, 寒邪)를 물리치는 일차적 치료법이다. 한의사는 돈벌이에 눈멀고 양의사는 발열시 땀내는 원리를 배우지 못하고 해열에만 힘쓴다. 해열진통제와 항생제 또는 항바이러스약이 그들 아는 것의 전부다. 한심한 일이다. 산소호흡기나 달고 ㅈㅈ
코로나는 내가 첨에 얘기한대로 초기에 해열제(아스프린 등)에 갈근탕 한 봉지 먹고 물많이 마시고 뜨끈한 방에서 땀 한번 푹내면 거뜬히 났는다.
땀 내지 못하는 노약자가 문제지. 이 때는 곰탕과 해열제를 함께 드시고 땀 내세요. 땀내는 것(催汗)은 표면에 침입한 사기(邪氣, 寒邪)를 물리치는 일차적 치료법이다. 한의사는 돈벌이에 눈멀고 양의사는 발열시 땀내는 원리를 배우지 못하고 해열에만 힘쓴다. 해열진통제와 항생제 또는 항바이러스약이 그들 아는 것의 전부다. 한심한 일이다. 산소호흡기나 달고 ㅈ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