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눈으로 무엇을 보느냐가 중요하다. 사자성어로 견물생심. 대표적인 인물이 하와이다. 보암직하고 먹음직 스럽다는 표현은 눈으로 보는 것을 기준으로한 견물생심의 결정판이다. 소돔에 거주하던 롯도 견물생심으로 망한 대표적 인물일 것이다. 우리가 경작하는 텃밭의 출입구에 필요한 물건들을 비치했었는데, 바로 이웃에서 농사하는 분이 그것을 가져갔다. 내가 가져다놓은 물건인줄을 뻔히 알면서도! 단 한번이라도 내가 써도 되겠느냐고 물어보지 않은채 5번이나 반복했다.
몇일전에는 우리가 관리하는 무덤입구 꽃밭에 자기네 콩을 심었다. 도시텃밭에 심었더니 너무 싹이 많이나서 이곳에 심으면 어떨까해서란다. 처음에는 아내에게 먼저 동의를 구했다. 문제는 이분의 욕심이 지나쳐 너무 많이 차지해 버렸던 것. 어제는 아내가 혼자 불평을 하는데, 이분이 지나가며 아내가 불평하는 말을 들었던가 보다. 오늘 가보니 모두 뽑아가버렸다고 한다. 아내에게는 트라우마가 있다. 처가집 장인이 남원에 사시다가 친척이 있는 강경과 익산의 경계지역으로 이사를 하셨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옆집이 장모님의 5촌 이모댁이었다. 장모님의 이모보다 문제는 이모부가 욕심이 많아 장인이 일찍 별세하신 후 어린 처남이 농사를 지을 때 바로 집 옆의 밭을 빌려달라고 했다는 것. 이유는 집을 신축하기 위해. 사실 그 토지는 국유지인데 해마다 일정한 임대료를 면사무소에 납부하면서 사용하는 토지였다. 나중에 불하를 받을 때 공시지가 이하의 저렴한 비용으로 불하가 된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이 사실을 잘 아는 아내는 처갓집을 갈때마다 그집의 소행에 대하여 분노를 표현했었다. 아마도 이러한 경험들이 트라우마로 작동을 한듯 싶다. 어제는 순찰을 돌면서 수거해 차옆에 놓아둔 나무 지지목을 누군가가 가져가 버렸다. 틀림없이 옆에서 경작하는 분들이 울타리 지주목으로 쓰려고 가져갔을 것이다. 나한테 한마디라도 하고 가져갔으면 서운하지 않을 것인데 그렇지 못하니 속이 상한다. 그 뿐 아니다. 전에 불법경작을 하다가 복구한 부분에 산나물들이 많이 있었는데 어제 몇사람이 나물을 뜯으면서 아예 뿌리째로 캐어 갔다는 사실. 그야말로 무서운 견물생심이다. 사실 현재의 자리에서 자라나야 잘 크기도 하거니와 옮겨다 베란다 화분에 심으면 결국은 영양실조로 모두 죽어버릴 것인데도 견물생심을 다스리지 못한 행동이다.
오늘도 새롭게 깨닫는다. 나는 죽고 예수로 살아가는 사람은 절대로 눈에 보이는 대로, 눈이 유혹하는 대로 따라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힘있는 믿음에는 반드시 행동이 따라야 한다.
동행일기를 쓸 때 같은조에 소속된 형제들 끼리는 내용을 공유하게 된다. 그리고 다른 조원이 올린 일기에 대하여 댓글과 아멘을 표시하게 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다보면 서로가 바빠 진심으로 다른 조원의 일기를 읽기도 바쁠뿐더러 댓글달기와 응원을 보내기가 쉽지않다. 하지만 그런 부분을 전담한 분들은 어떻든 그러한 표현을 해야하니 나로서는 그 부분에 대하여 좀더 심도있는 숙고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열심히 댓글을 달아주는 목사님에게 이제는 안해도 되니 너무 의무감으로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전달을 했었다. 하지만 본인은 절대로 의무감에서 하는 일이 아니니 절대로 부담갖지 말라는 통화를 하게 된다. 아무튼 쉽지않은 일이다. 하지만 절대로 부담감이나 의무감에서 행해진다면 절대로 안될 것이라고 당부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