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2:7 그는 정직한 자를 위하여 완전한 지혜를 예비하시며 행실이 온전한 자에게 방패가 되시나니 (개역개정판)
잠언 2:7 그분께서는 의로운 자들을 위하여 건전한 지혜를 모아 두시며 곧바르게 걷는 자들에게 방패가 되시고 (한글킹제임스)
이사야 32:2 또 그 사람은 광풍을 피하는 곳, 폭우를 가리는 곳 같을 것이며 마른 땅에 냇물 같을 것이며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같으리니 (개역개정판)
이사야 32:2 통치자마다 바람을 피하는 곳 같겠고, 폭풍우 속의 피난처 같을 것이다. 그는 또한 메마른 땅의 시냇물 같을 것이며, 사막의 큰 바위 그늘 같을 것이다. (쉬운성경판)
폭염과 열대야가 이어지고 있다.
9월은 가을이 아니라 여름이라는 말은 오래전부터 들어왔다.
3월이 봄이 아니라 겨울인 것 같이
9월의 더위도 사람을 힘들게 한다.
기상청에 따르면 부산에는 폭염주의보와 열대야주의보가 내려져 있다.
습도마저 높아 이미 오전 9시께 대부분 지역의 체감온도는 30도를 넘어섰다고 하고, 열대야도 15일 연속으로 관측됐다.
이사야 32장 2절 말씀의 큰 바위 그늘 같은 곳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처럼 습도가 높은 곳이 아니라면
그늘에만 들어가도 시원할 것인데,
안타깝다.
9월만 되면,
5월말부터 힘겨웠던 더위에 대한 혐오가 극에 달한다.
언제까지인가?
언제까지...
사사기 시대...
사실 출발은 산뜻했다.
모세의 ‘시종’ 여호수아가
마지막에는 ‘여호와의 종’ 여호수아로 인정받고 세상을 떠난 직후
수 1:1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의 시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일러 가라사대 (개역한글판)
수 24:29 이 일 후에 여호와의 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백십 세에 죽으매 (개역개정판)
아직 갈렙이 살아있었고
옷니엘 사사는 이스라엘에 첫 승리를 안긴다.
악사와의 결혼,
그리고 현숙한 여인 같은 악사의 샘물 요구...
유다, 시므온 연합
이 모든 것들은
사사기 후반부의 X판 같은 영적, 사회적 상황과
너무나도 대비된다.
사사기 이후
사무엘이 있었지만
그 아들 둘이 또 그랬고
사울, 다윗, 솔로몬에 이어서
나라가 쪼개지고
언제 괜찮게 살았던 적이 있었나?
이사야 32장 1절에 나오는 왕 같은 이는
사실 이스라엘 역사상 없었다고 봐야할 것 같다.
그 왕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다.
사 32:1 보라 장차 한 왕이 공의로 통치할 것이요 방백들이 정의로 다스릴 것이며 (개역개정판)
이 왕의 특징은
권력으로 누르고, 나라를 부강하게 하느라 백성들을 괴롭게 하는 어두운 그늘이 아닌
쉴만한 그늘을 제공한다는 사실이다.
이 왕이 통치하는 세상에서
방백과 통치자들, 재판관들은
폭풍이 몰아칠 때 몸을 피할 곳이 되어주는 통치,
목마른 자에게 물과 같이 시원한 판결을 제공한다.
부익부빈익빈의 세상 원리와 시스템이 아니라
약한 자들이 도우심을 입는 세상이다.
어떤 이들은 그러한 세상을 민중의 힘으로 일궈내고 싶겠고
어떤 이들은 그러한 세상이 오는 것 자체가 하나님 뜻과는 상관 없으니, 귀족이나 부자들의 재산과 기득권이 보장받는 (그네들에게) 안정된 세상이 유지되었으면 싶겠지만
이사야 32장 4절은 이렇게 말한다.
사 32:4 조급한 자의 마음이 지식을 깨닫고 어눌한 자의 혀가 민첩하여 말을 분명히 할 것이라 (개역개정판)
잘 살아보세라는 구호는
사실 우리 선배(이제는 조상?)들의 위대한 구호였지만
우리 성도들은
다른 의미에서 잘~ 살아야 한다.
잘 살아보세라는 구호의 추억이 담긴 영화가 나온지가 벌써 20년전이다.
우리의 조급한 마음이 지식을 깨닫고
우리의 버벅거리는 혀가 민첩하여 분명히 말하게 된다.
가난과 고난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참 된 지식과
참 된 목소리가 되어주시는 분...
다만,
가난하고 고난에 시달리는 악인에게도 그리하시는 것이 아니라
정직한 자를 위하여 완전한 지혜를 예비하시며
행실이 온전한 자에게 방패가 되시는 왕(잠 2:7)이시다.
완전한 지혜가 임하면
눈이 열리고 귀가 열린다.
버벅거리던 말이 분명해진다.
그러한 역사는 무슨 프로그램이나 시스템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오직 공의로운 왕의 공의로운 통치만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
문제는
이러한 왕이 장차 오신다고 했는데
예수님은 이미 오셨는데
오신지 2,000년이 지났는데
올해 태어난 아이들이 겨우 75세가 되는해면 2100년인데
그때가 되면 그런 통치가 보이려나?
사실 이런 기다림에 대한 갈증과
오랜 기다림에 대한 지쳐감도
우리 생활과 생애를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통치하시는 과정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 통치와 다스림을 기다리듯이
주님도 그 통치와 다스림을 받기에 합당한 성숙함이 우리에게 나타나기를
기다리시기 때문이다.
무슨 약물을 투여하거나
마법처럼 바꾸어버리시는 분이 아니시고
조급한 자의 마음이 지식을 깨닫도록 (사 32:4)
정직하지 못한 자가 오랜 고난을 통해 마침내 정직한 수준에 이르도록 (잠 2:7)
하나님은 기다리시고 또 기다리신다.
왕조차도 그렇게 하시는데
내가 뭐라고
꿈 같은 여름방학이 지나서 슬프다는 어느 초딩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았다.
그래도
내 생일도 올거고
추석도 올거고
10월 연휴도 오면
그때는 좀 덜 덥겠지.
그때는 벌써 추울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는 분명히 조금 더 성숙해 있을 것이다.
그때까지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늘 제공하시기를 포기하시는 일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