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비가 와서 일부 감자를 캐지 못하고 있다가, 오늘 새벽에 일어나 감자를 캐기 시작했다.
감자를 캐는 내내, 머리 속에는 장석준씨가 올린 새로운 당에 관한 글들이 가득 차 있었다.
그 글들은, 겉으로 읽어보면 어디 하나 빠질 것 없는 구구절절 맞는 말이었다. 내 생각과 빠짐없이 들어 맞았다.
그런데, 상념은 깊어져만 갔다.
현실 정치의 한계 역시 알고는 있지만, 그 동안 내가 보아왔던 여느 진보당의 입장에서 한발국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기존의 민주화 세력과의 단절 선언은 신선하기 그지 없지만, 그 글 속에 풍겨지고 있는 상투적인 언어들, 방법들, 어쩔 수 없이 뛰어들어야 하는 선거판........
권력을 잡아야지만,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당위성이 철철 넘치고 있었다.
좌/우, 진보/보수, 라는 구분이 이제는 지긋지긋하다. 그래서 신좌파라는 단어를 보는 순간 현기증이 몰려왔다.
차라리, 좌파를 빼던지......좌파라는 말 뒤에 숨어있는 자존심과 자만심을 알기에......또 그 말 한마디에 자신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하는......그것이 스스로 좌파라고 자부하는 인간들의 함정이 되기에.....
나 역시, 그 함정에 빠져 있다가, 산골로 도망치듯 숨어들었다.
이제, 제발 좌파라는 말과 진보라는 말을 내던지자. 세상을 바꿔가는 일은, 자신의 삶을 긍정하면서, 서서히 아주 천천히 바꿔가는 일이다. 삶의 방법은 내버려두고, 팔뚝질과 구호로만으로는 안된다. 자신의 말이 전부 옳은 일이라해도 그렇다.
문득, 감자 하나를 집어 들었다. 참으로 못생긴게 감자다.
사람들은 합리적인 이성으로 세상이 바른 것인 줄 착각을 한다. 맑스의 사회 과학은 생물진화론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했다. 자본주의는 사회의 진화 과정에서 당연히 거쳐야 되는 과정이라고 착각을 했다.
그의 착각 때문에 인류는 얼마나 많은 희생을 감내해야 했는가.
세상은, 그리 과학적이지 못하다. 그렇게 모든 것이 자로 잰듯 바르지 못하다. 세상을 바꾸는 일 또한 그렇다.
감자를 보면서 문득 떠올랐다.
道란, 합리성과 형식으로 무장된 仁義禮知의 길이 아니라, 소박하고 볼품없고 느리고 불편한, 생긴대로 저절로 꾸밈없이 꼴리는대로 그러하게라는 길이여야 한다는 것이다.
녹색은 道이어야 한다. 녹색은 정치와 전혀 어울릴 수 없는 존재다. 녹색은 소박하고 자연스런 삶이다. 녹색은 가난해야 한다.
그래서, 감자를 보면서, 새로운 당의 이름을 지었다.
감자당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