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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보의 견자이론-사물이 배후에 지니고 있는 의미를 제일 먼저 발견하는 존재
시인으로 불리는 랭보는 감각의 착란과 언어의 연금술에 의해 현실과 다른 세계의 비전을 제시한 천재 시인이었다. 평상적인 경험과 습관으로는 생각하기 힘든 완전히 계시에 의해 빛어지는 듯한 비전을 제시하였으며 보들레르가 시작한 산문시를 적극적으로 계발하기도 했다. 사물이 배후에 지니고 있는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 평소의 습관과 태도를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자신을 냉철히 투시하려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감각을 평소의 무뎌져 있는 상태에서 예리하게 분리하여 새롭게 조합함으로써 미지의 세계에 도달하려는 지향을 보이기도 하였다.
반항과 방랑의 어린시절을 보낸 랭보는 경이로운 조숙성과 때 이른 절필로 일찍 전설의 세계로 편입하였다. '견자 (voyant)'시학에서 랭보는 미지의 세계를 탐사하고 세상의 비밀을 꿰뚫겠다는 의지를 피력한다. 그는 새 시어 를 창조하고 이른바 '언어의 연금술(alchimie du verb e)'에서 불경스러운 비전과 색감짙고 진동하는 음의 울림을 뒤섞으면서 시의 혁신에서 출발하여 세상의 전복을 꿈꾸었다.
견자
선견자
예견자..
"나는 생각한다고 말하는것은
잘못이다
누군가 나를 생각한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말의 유희를 용서하라
나는 타자이다"
..... 랭보의 <조르즈이장바르에게 보내는편지>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시인과 촌장이 부른 '가시나무'라는 노래 중의 일부입니다.
왜 뜬금없이 시인과 촌장 얘기를 꺼냈느냐면요.
저는 그 노래에서 "나는 타자이다."라는 싯구절과
참 비슷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혹 그 노랠 모르신다면. 한 번 들어보세요. ^^)
가령, 지금의 저는 인터넷 상에서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이의 질문에
답글을 달고 있는 한 명의 네티즌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컴퓨터를 끄면 어떨까요.
또 다르죠. 다른 존재가 되죠
조금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변하며 살고 있는 건
저 뿐아니겠죠.모르긴 몰라도.
이 세상을 살고 있는 모든 '나' 역시 마찬가지일 거에요
사회학에서 쓰이는 용어긴 하지만.
사회화'라는 단어를 떠올리신다면.
제가 무슨 말을 하려 하는지 확 와닿으실 겁니다
누군가의 아들, 딸로. 누군가의 제자로. 누군가의 연인으로. 누군가의 부모로. 누군가의 직장동료로. 우리는, 이 세상의 모든 '나'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나'라는 존재가 떠맡는 역할은 아주 여러 방면으로 나뉠 거에요. 당연하게도 그 각각의 역할은 서로 부대낄 거구요.
(맥락을 무시하고 말하자면, 프로이트나 칼 융이 주창한 정신분석학 역시 그 역할모델의 갈등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은 여건이 된다면 다음 기회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사회적 존재로서의 '나1'는 '공부하고 좋은 대학가서 돈많 이 벌어야지'라고 생각하지만. 자연인으로서의 '나2'는 새처럼 자유롭게 살아가고 싶다며 그 생각을 갑갑해합니다.
자.. 그렇다면.. '나1'과 '나2'가 과연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을까요?
당연히 아닐겁니다. '나1'과 '나2'는 같은 몸 안에 있는 생각'에 불과하다고도 할 수 있지만.. 꼭 같은 존재는 아 닐거에요.
그런 점에서.. "나는 곧 타자다"라는 말은 바로 '나1'과 '나2' 또 그 밖의 무수한 '나'들의 부대낌을 가리키는 게 아닐까요?
그러고 보면 '생각하는 나'는 굉장히 연약한 모습일지도 모르겠어요. 내 안의 무수한 '나'로 인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니 까 말이죠.
https://naver.me/GyymM0PN
랭보 - 나는 타자다
"나는 타자다." 이 경구는 얼핏 라깡의 것처럼 느껴지겠으나, 랭보의 것이다. 들뢰즈는 랭보의 경구를 칸트의 시간'에 대한 해석과 접합시킨다. 시간은 흐름이다. 흐르는 것은 변화한다. 따라서 시간은 나를 변화시키고, 분열시킨다. 어제의 나는 오늘의 타자이다. 내일의 나 또한 나의 타자이다. 지금의 나 또한 나의 타자 가 되어가는 중이다. 이것들을 우리는 애써 '종합'한다.
왜? 분열자로는 살아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수많은 관습과 역할이 나의 자리를 고정시키지만, 나는 그 자리가 싫다. 때로는 혐오한다. 이 혐오는 당연하다. 시간 속의 나는 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나는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이것을 묻는 자는 그 순간부터 불안의 굴레에 떨어진다.
누군가는 불안의 굴레를 '병적인 것'으로 치부하겠으나, 사실 이것이야말로 '건강한 것'이라 생각한다. 시간 속의 인간은 누구나 분열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불안의 굴레이자 병이 되는 것은 대타자의 질서 때문이다. 질서는 '좋음의 표준'을 제시한다. 좋은 배우자, 좋은 학교, 좋은 아파트, 좋은 차, 좋은 친구, 좋은 주식, 끝없이 전개된다. 나는 이것들이 너무나 가면 같다. 소름끼치도록 작위적인 미소를 박제시킨 가면. 이러한 가면으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러나 변화의 흐름을 감지하고, 미세한 것들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 절실하다. 적어도 가면 뒤의 자기반성은 필요하다. 우리는 모두 진행 중인 분열자이니까. 사실 우리의 욕망은 가면이 아니니까
글/ 김태환 사진 / Alessandra Sanguinetti
https://naver.me/FtlSudPx
저주받은 천재 시인 랭보
"랭보를 좋아하세요?"라고 묻는다면, 대부분은 고개를 가우뚱할 것이다. 말라르메와 더불어 프랑스 상징주의를 대표하는 시인이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리즈 시절 찬란한 미모를 뿜어내던 영화 <토탈 이클립스>의 모티프가 된 인물이라는 것을 알더라도, 도무지 좋은 이유를 알 수 없는 시를 쓰고, 사회에 물의를 일으킨 동성애자 시인의 악명에 선뜻 좋아하기까지는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랭보 는 바로 그런 이유로 매력적인 인물이다.
나는 타자다
랭보(Arthur Rimbaud)는 시대의 결과물이다. 그가 태어난 1854 년부터 첫 작품인 고아들의 새해 선물`을 발표한 후 파리로 가출을 했던 1870년까지, 프랑스의 지배자는 나폴레옹 3세였다. 우리가 아는 그 나폴레옹의 조카인 나폴레옹 3세는 정치인으로서 재능과 실력보다는 당시 프랑스에서 강하게 불었던 숙부를 그리워하는 정 서에 기대어 대통령으로 당선됐고, 쿠데타를 통해 황제에 올랐던 인물이다. 그가 다스리던 제2제정 시대의 프랑스는 산업혁명의 성 과가 드러나면서, 사회 전반적으로 물질적 풍요가 늘어나긴 했으나 빈익빈 부익부가 심화되었다. 나폴레옹 3세는 자국의 문제들을 해 소하고자 이웃 나라인 프로이센에 전쟁을 걸었다가 포로로 잡히면 서 몰락했다. 이렇듯 랭보는 정치적 불안정과 경제적 불평등이 심 각했던 격변의 시기에 성장했다. 시대의 모순과 지배층의 위선, 구 세대에 대한 역겨움에 16세의 랭보는 저주를 퍼붓듯 새로운 언어로 시를 썼다. 특히 "나는 타자다(Je est un autre)"라는 한 문장으로 그는 주체적인 '나'를 성립시키기 위해 노력해 온 서구 문명을 단숨에 반전시켰다. 그의 이 문장으로 서구의 19세기는 끝났고, 20세기가 시작된다.
A 흑색, E 백색, 1 적색, U 녹색, 0청색: 모음들이여
나는 언젠가 너희들의 잠재된 탄생을 말하리라
⁃모음들(Voyelles)
시대의 예언자
내가 아는 시대의 예언자들은 모두 걸었다. 만성적인 두통과 구토로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알프스의 질스마리아를 걷고 또 걸으며
'영원 회귀'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의 착상을 떠올린 니체, 걸어야만 진정으로 생각하고 구상할 수 있다고 믿었던 장자크 루소, 건강을 유지하고 자신을 제어하는 훈련을 하기 위해 일상적으로 산책에 나섰던 칸트, 우울과 광기 어린 걷기를 통해 비범한 작품을 창조해 낸 네르발과 휠덜린 등 사상사와 문학사에 이름
을 남긴 인물들의 삶에는 걷기가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여기에 '바람구두를 신은 인간'으로 불렸던 랭보 역시 빠질 수 없다. 그는 걸으며 영감을 받았고, 주머니에 넣어둔 시를 길 위에서 꺼내 고쳤고, 고친 시를 품고 걷고 걸었다. 첫 번째 파리를 향한 가출이 실패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초기작들을 모조리 던져버리고 삶에 대한 혐오감, 순진무구한 세계로 가려는 욕망, 선과 악의 투쟁을 표현한 도발적인 시를 완성했다. 시인은 사람들을 옭아매는 일반적인 도덕률과 제약을 넘어서 신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Voyant(예언자)'라 선언하며, 상징성이 충만한 작품들을 썼다. 특히 프랑스어 모음에 각기 다른 색깔을 부여한 시 '모음들'로 랭보는 당대의 스타 시인 베를 렌을 휘어잡는다.
나는 여자를 좋아하지 않아 사랑은 재창조되어야만 해 ⁃'지옥에서 보낸 한철'
랭보와 베를렌, 욕구와 파멸
천재적인 인간들은 공존을 모른다. 강한 에너지를 지닌 자들은 주변의 모든 것을 빨아들여 창작의 밑거름으로 삼고, 주변을 피폐하게 만들어 파괴시킨다. 여인들을 사랑이라는 구실로 착취한 파블로 피카소처럼 랭보와 베를렌의 관계도 그와 비슷하다. 17세의 무명 소년과 27세의 유명 시인의 만남은, 그 파국을 알면서도 서로에게 빠져들었다. 랭보에게 베를렌은 자신의 시를 세상에 선보이게 도와 주는 조력자였고, 베를렌에게 랭보는 완전히 새로운 시를 쓰는 뛰어난 동료이자 뮤즈였기 때문이다. 1871년 베를렌의 열정적인 부름을 받고, 파리에 도착한 랭보는 3개월 동안 베를렌 부부와 함께 살면서 당대의 유명인들을 만나지만, 기괴한 행동들로 모두에게 외면받는다. 이 시기부터 영화 <토탈 이클립스>에 그려지듯이 베를렌과 랭보의 동성애로 인한 추문, 베를렌과 부인의 화해와 결별, 랭보에게 다시 돌아와 달라는 베를렌의 집요한 구애, 런던으로의 도피
행각, 베를렌이 랭보를 권총으로 쏘아 수감되면서 맞이한 파국에 이르기까지 파괴적이고 낭만적인 러브스토리가 2년여에 걸쳐 숨가쁘게 이어진다. 바로 이 시기에 랭보는 '일뤼미나시옹', '지옥에서 보낸 한철' 등을 썼다. 랭보는 언어(시)와 생활 방식(삶)이 하나였기에 "당신은 시를 어떻게 쓰는지 알지만, 나는 시를 왜 쓰는지 안다"며 세속의 질서에 물든 베를렌에게 도전적으로 말했던 것이다.
랭보의 캐릭터가 고스란히 차용된 토드 헤인즈 감독의 <아임 낫 데어>. 전설적인 록 가수 밥 딜런의 삶을 일곱 명의 서로 다른 자아로 담아낸 이 영화에서 젊은 시인 딜런의 모습은 랭보를 형상화했다.
뒤늦은 명성과 쓸쓸한 죽음
남자 사이의 사랑 같은 우정을 높이 평가해 온 프랑스였지만, 일상 생활의 윤리를 지배한 가톨릭 전통에 따라 당시 동성애는 부패하고 타락한 범죄로 간주했다. 베를렌과 랭보의 사생활은 당시에는 도저히 받아들여질 수 없는 행위였고, 그것은 위선적인 사회를 고발하고 중산층의 도덕에 반발하는 시의 내용과 맞물리면서 랭보의 명성은 높아졌다. 하지만 그런 반향을 전혀 모른 채, 문학을 포기한 그는 아프리카에서 무기를 거래했고, 커피를 포함한 상품 거래소를 차렸고, 심지어 노예도 사고팔며 생계를 영위했다. 고향으로 돌아오라는 가족들의 요청에 대한 답장에 당시 그의 생각과 심정이 드러난다. "프랑스로 돌아가서 뭘 하겠습니까? 한곳에 머물며 살 수 없고 특히 추위가 겁납니다. 그리고 충분한 수입도, 직업도, 의지할 곳도, 아는 것도 없으니, 돌아간다는 것은 바로 죽는 것과 마찬가지입니 다."
시를 쓰던 손은 사막에 낙타 떼를 끌고 다니며 일했고, 그과정에 무릎에 병이 생겨 프랑스 마르세유로 건너와 절단 수술을 받았다. "오늘, 엄마나 이자벨(여동생), 급행열차로 마르세유에 오세요. 월요일 아침, 다리 절단 수술. 죽을 수도 있어요." 이것이 19세기 말에 등장한 20세기 시인 랭보의 마지막 문장이다. 그로부터 몇 달 뒤, 그는 37세의 나이에 여동생이 지켜보는 가운데 죽었다.
화려한 등장과 충격적인 스캔들, 급작스런 절필과 뒤늦은 명성, 허무한 죽음으로 랭보는 '저주받은 천재'의 아이콘으로 영원히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