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대학진학률 ‘뚝’… “일자리 많은데 뭐 하러 가?”
‘지성의 전당’으로 불리는 대학의 진학률이 미국에서 최고점에 달했던 때는 2009년이었다.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들이 속속 가세하면서 20년간 꾸준히 늘어온 입학생 수는 이때 1800만 명(진학률 70.1%)에 육박했다. 대학 졸업장은 중산층 이상의 삶을 보장하는 티켓으로 통했다. 하버드, 예일, 스탠퍼드, MIT…. 해마다 발표되는 ‘톱 100’ 대학의 입시 정보를 얻으려고 고교생과 학부모들은 애를 태웠다.
▷그랬던 미국 대학의 몸값이 예전 같지 않다. “인생에 별로 도움이 안 되는 졸업장 한 장 받으려고 그 많은 등록금과 시간을 써야 하느냐”며 시큰둥해하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안 그래도 하락세였던 진학률은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더 가팔라지면서 지난해 62%까지 떨어졌다. 한 여론조사에서는 ‘대학은 들이는 돈만큼의 가치가 없다’는 응답이 56%까지 치솟았다. 출산율 하락, 억대 학자금 대출 부담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지만, 무엇보다 학위 없이도 얻을 수 있는 일자리가 많아진 게 주된 이유로 꼽힌다.
▷팬데믹 기간에 심해진 미국 내 노동력 부족 현상은 인력의 수요와 임금을 동시에 밀어 올리는 결정적 요인이다. ‘메이드 인 아메리카’ 기조에 따라 대규모 생산시설이 들어서고 있는 지역들은 특히 블루칼라 일손 부족으로 아우성이다. 구글, 델타항공, IBM과 같은 기업들도 일부 분야에서 대졸 여부를 따지지 않는 채용을 시작했다. 미국 언론들은 “대졸자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 “대학을 거부하는 새 세대의 출현” 같은 제목의 분석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대학을 외면하는 청년들의 선택이 마냥 환영받는 분위기는 아닌 듯하다. 미국 경제학자들은 “대학 위기를 넘어 사회, 경제적으로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한다. 고졸자들의 연간 평균 수입은 대졸자보다 2만4900달러 적고, 실직 확률은 40% 높으며, 수명은 더 짧고 이혼율은 더 높다는 통계 수치들이 여전히 냉혹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기술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의 청년들이 매년 4500만 명씩 대학에 들어가고 있다는 점도 미국을 긴장시키고 있다. 미국 대학들은 “고등교육 방식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며 해법을 고심 중이다.
▷문화, 인식, 교육, 경제 환경이 나라마다 다르니 미국 대학가의 변화가 당장 해외로도 확산될 현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대학 간판보다는 능력을 추구하는 청년들의 실용주의와 이들을 기꺼이 모셔가는 기업들의 선택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를 가능케 하는 미국의 견고한 노동시장 또한 이런 유연한 접근에 바탕을 둔 기술, 경제 혁신을 통해 만들어진 결과물일 것이다. 너도나도 대학 입시에 목을 매고 있는 한국이 깊이 들여다볼 움직임이다.
이정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