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지개혁법은 분명히 말하자면 죽산 조봉암의 공이 가장 큰데 많은 사람들이 이승만 박사의 공이 가장 컸다고 말하더군요. 특히, 이승만 기념사업회를 비롯한 조선일보등 사이트 가면 농지개혁법은 이승만 박사가 주도했다고 아주 대서특필합니다. 그런데, 실상은 이승만 박사는 오히려 농지개혁법을 비롯해서 귀속재산 처리법에 대해 소극적이었는데 말이죠...
저는 농지개혁법에 대해서 당연히 매우 의의 있다고 보는사람입니다. 농지개혁법이 만약 개정안되었으면 6.25 사변때 수많은 농민들이 인민군 세력으로 달라붙었을 가능성이 매우 컸기 때문에 말이죠....
제 개인적으로 조봉암에 대한 명예 복권과 함께 재평가가 분명 필요하다고 보는데 말입니다...
당연히 이런 말이 나오죠. 어떤 주장을 하시려면 일단 근거인용(어떤책을 봐라 혹은 최소한 어느정도 인용)은 해주셔야 공감을 사죠. 예를들어 '로마군 짱강하다' 라는 주장에 갈리아정벌시 로마군의 전투력, 승전예등이 있어야죠 '제 개인적으로 로마군의 강함에 대한~~있어야합니다' 라고 적으시면 당근 보충설명을 요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ㅎ
뭐, '동원과 저항 : 해방 전후 서울의 주민사회사'(여기에 식량부족 이야기 나오면서 농촌이야기도 잠깐 언급) '이승만과 제1공화국'(서중석교수님꺼 말고 서울대에서 나온거)에서도 좀 언급됬고... 주로 토지개혁 이야기는 6.25 전쟁 다룬 책에서 더 많이 나오더군요. 전쟁 전 상황 설명하면서
또 제가 기억하기로 1공화국시대 사람들의 회고(김성수씨등의 회고기록)등에서는 이승만 대통령이 지주세력 한민당을 누르고 개혁을 서둘렀고 강하게 추진했다고 했습니다. 타 기록에서도 토지개혁의 범위나 유상몰수 유상배급등의 방법론적으로 '미진했다. 불완전했다 등의 문제'를 제기했지 이승만 대통령이 추진했다는 것에는 딱히 이론이 없었던걸로 기억나네요. 수고스러우시겠습니다만 그 서적에서 중요부분을 인용해서 제시해주시면 더 좋겠습니다.
아하하하... 좋습니다. 제가 찾은 내용은 '토지개혁은 미군정 시기부터 중요한 사회문제로 등장했으나, 본격적인 토지개혁은 정부수립후에 이루어졌다. 미군정은 과도입법의원에 토지개혁 법안을 제출하지만 한민당 계열의 반대로 무산되고 말았다. 정부가 수립된 후에도 토지개혁은 적지않은 난항을 거듭했는데, 무엇보다도 한민당의 방해공작과 대통령 이승만의 소극적인 태도가 문제였다. 농민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이승만은 여러가지 포석하에 개혁적인 조봉암을 농림부장관에 앉혀 토지개혁을 시행하려했다.
토지개혁은 공산주의의 선동을 막고, 농민들로부터 지지를 확보하며 한민당의 물질적 기반을 와해시킬수 있는 비장의 카드였
뭐 저야 죽산선생님을 폄하하려는 의도는 없고..(개인적으로 호감을 가져야 할만한 이유도 있습니다.) 다만 현재 기존 통설을 뒤집으시거나 보완하시려면 그만한 준비는 있으셔야 한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네요. ^^ 주장엔 근거가 있어야 설득력이 있으니까요. 일단, 인용하신 문장은 '이승만은 조봉암까지 앉혀서 강력하게 토지개혁을 하려고 했다'는 주장에도 근거가 되는 듯 합니다.
첫댓글 그럼 그런 근거와 연구서를 소개해주시겠습니까??? 제가 본 중립적 시각의 서적들에서도 이승만 대통령의 공이 크다고 '논문'으로 나와있어서 저도 그렇게 알고있습니다.
이런소리 나오거라 예상했습니다. 들녘출판사의 '대한민국 50년사' 서적을 비롯해서 죽산 조봉암에 대한 자료등 찾아보시면 농지개혁법 주도한 인물은 조봉암이라는걸 쉽게 알수 있습니다.
서지학 시작되겠군요. ㅎㅎ 들녘에서 출판한 "서적"하고 "논문"하고 스펙 싸움이 되나요 ㅡ,ㅡ ; "요새 출간한 책이나 학계에서는 조봉암의 공을 높게 평가한다.."라고 쓰면 좀 수긍하겠지만 ㅎㅎ 일단 처음오신분이니까 살살 시작..ㅎㅎ
당연히 이런 말이 나오죠. 어떤 주장을 하시려면 일단 근거인용(어떤책을 봐라 혹은 최소한 어느정도 인용)은 해주셔야 공감을 사죠. 예를들어 '로마군 짱강하다' 라는 주장에 갈리아정벌시 로마군의 전투력, 승전예등이 있어야죠 '제 개인적으로 로마군의 강함에 대한~~있어야합니다' 라고 적으시면 당근 보충설명을 요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ㅎ
이박사가 조봉암을 기용한 자체가 어찌보면 참 대단한 일이지 싶네요. 뭐, 56년 대선을 치르고 나서는 내가 호랑이 새끼를 키웠구나... 싶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만... 뭐, 결국 자기손으로 죽였으니, 이박사식 결자해지라고나 할까...--
실제로 해방이후 송진우-김성수 만남때 나타나듯 우익이던 좌익이던 기본적으로 `토지개혁이 필수적이다`라는데에는 큰 이견이 없었던 것 같은데요. 실제로 좌익, 우익간의 갈등은 어떤 형태로 토지개혁을 할것이냐 였던거 아닌가요?
wehrmacht! 닉네임이 간지나시네요.
뭐, '동원과 저항 : 해방 전후 서울의 주민사회사'(여기에 식량부족 이야기 나오면서 농촌이야기도 잠깐 언급) '이승만과 제1공화국'(서중석교수님꺼 말고 서울대에서 나온거)에서도 좀 언급됬고... 주로 토지개혁 이야기는 6.25 전쟁 다룬 책에서 더 많이 나오더군요. 전쟁 전 상황 설명하면서
또 제가 기억하기로 1공화국시대 사람들의 회고(김성수씨등의 회고기록)등에서는 이승만 대통령이 지주세력 한민당을 누르고 개혁을 서둘렀고 강하게 추진했다고 했습니다. 타 기록에서도 토지개혁의 범위나 유상몰수 유상배급등의 방법론적으로 '미진했다. 불완전했다 등의 문제'를 제기했지 이승만 대통령이 추진했다는 것에는 딱히 이론이 없었던걸로 기억나네요. 수고스러우시겠습니다만 그 서적에서 중요부분을 인용해서 제시해주시면 더 좋겠습니다.
아하하하... 좋습니다. 제가 찾은 내용은 '토지개혁은 미군정 시기부터 중요한 사회문제로 등장했으나, 본격적인 토지개혁은 정부수립후에 이루어졌다. 미군정은 과도입법의원에 토지개혁 법안을 제출하지만 한민당 계열의 반대로 무산되고 말았다.
정부가 수립된 후에도 토지개혁은 적지않은 난항을 거듭했는데, 무엇보다도 한민당의 방해공작과 대통령 이승만의 소극적인 태도가 문제였다. 농민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이승만은 여러가지 포석하에 개혁적인 조봉암을 농림부장관에 앉혀 토지개혁을 시행하려했다.
토지개혁은 공산주의의 선동을 막고, 농민들로부터 지지를 확보하며 한민당의 물질적 기반을 와해시킬수 있는 비장의 카드였
던것이다.' 이렇게 나와있습니다. 그리고, 김삼웅씨가 쓴 '죽산 조봉암 평전'에서도 조봉암이 토지개혁을 주도했다고 분명 나와있습니다. (http://blog.ohmynews.com/kimsamwoong/266125)
뭐 저야 죽산선생님을 폄하하려는 의도는 없고..(개인적으로 호감을 가져야 할만한 이유도 있습니다.) 다만 현재 기존 통설을 뒤집으시거나 보완하시려면 그만한 준비는 있으셔야 한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네요. ^^ 주장엔 근거가 있어야 설득력이 있으니까요. 일단, 인용하신 문장은 '이승만은 조봉암까지 앉혀서 강력하게 토지개혁을 하려고 했다'는 주장에도 근거가 되는 듯 합니다.
다른건 잘 모르겠습니다만 평전으로 인물에 대한 평을 하는건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평전으로는 이완용도 영웅 만드는 세상이라..
동감 'ㅇ' (그래서 저는 평전류는 왠만해선 잘 안봅니다)
이승만이 토지개혁에 소극적이였다 하더라고 중요한건 조봉암을 통해 토지개혁을 실행토록 힘을 실어줬다는거죠, 조봉암에게 아무런 실권도 없었더라면, 이승만이 다른카드를 꺼내들었다라면 결과는 달라질수 있는거 아닐까요? 이승만과 조봉암의 경중을 따지는게 별 의미없어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