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팬들이 경기규칙을 놓고 서로 주고 받는 질문과 답변들 중에는 유독 오답이 잦은 항목이 하나 눈에 띄는데, 그것은 정식경기인지 노게임인지를 가르는 기준과 잣대가 되는 야구의 ‘5회 말’에 대한 유권해석에서가 그렇다.
잘 알다시피 9번의 공격과 수비로 짜여진 야구경기에서 5회 말을 마치지 못하고 비로 인해 도중에 경기가 중단되었다고 한다면 원칙적으로 노게임이 선언되고 있다. 이는 한 경기의 절반 정도를 지난 시점이라 할 수 있는 5회 말을 정식경기 인정 기준의 최저선으로 잡아 놓은 때문인데, 실제 경기에서도 5회말은 경기의 승패는 물론, 성패를 가름 짓는 중요한 분기점 구실로 작용하는 모습을 우리는 종종 볼 수 있다.
지난 7월 18일 KIA와 두산의 광주경기에서 홈팀 KIA가 7-4로 앞서가던 5회 말 2사 2루 상황에서 내린 비로 경기가 중단되자 일부에서는 정식경기의 기준선인 5회를 마치지 못했기 때문에 노게임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 섞인 질문을 던지기도 했지만, 말 공격을 하는 홈팀이 앞서고 있는 상황에서의 정식경기 인정 기준선은 5회 말이 아닌 5회초 종료로 하향 조정되기 때문에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
규칙서 <4.10>에도 ‘5회초를 마쳤거나 5회말 공격 도중 홈팀의 득점이 원정팀보다 많아졌을 때 종료가 선언된 경기는 정식경기로 인정한다’ 고 명시하고 있다.
아주 간단하고 상식적인 내용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무심히 간과하는 날엔 큰 낭패를 볼 수도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몇 년 전 프로 2군경기에서는 홈팀이 앞선 상황임에도 5회말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우천으로 중단된 경기를 노게임으로 통보했다가 번복하는 해프닝을 겪어야 했던 일도 있었다.
2000년 5월 19일 LG와 두산의 2군경기(구리구장)에서 일어난 일로 4-4 동점이던 5회 말, 홈팀 LG가 1사 후 2득점하며 6-4로 달아난 상황에서 우천으로 경기가 중단되자 담당 기록원과 심판원이 5회말 LG의 공격이 완료되지 않았다는 점을 이유로 5회초와 말 전체를 없었던 일로 처리하는 바람에 벌어진 사건이었다.
2군경기에서는 일시정지게임을 치르게 되는 상황을 미연에 막고자 규칙상 일시정지게임으로 결정지어지는 상황에 한해서 해당 이닝 초와 말 공격 전체를 없었던 일로 무효처리하고 있는데, 바로 이 규정을 혼동해 정상적으로 이어진 정식경기를 노게임으로 처리했던 것이다.
당일 경기가 노게임이 되고 다음날 더블헤더를 치러야 한다는 결과물을 통보 받고 양 팀 선수단이 모두 해산하고 나서야 정식경기였음을 뒤늦게 발견, 부랴부랴 수정된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부산을 떨어야 했던 이날의 기억은 아무리 프로라 하더라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이처럼 규정 해석상 황당한 실수를 범할 수도 있음을 깨닫게 해준 하나의 교훈으로 남아있다.
한편 5회 말을 기준으로 하는 정식경기 판단에서 조심해야 할 부분이 또 하나 있다. 결과적으로 스코어는 같다고 해도 5회 말의 홈팀 공격 내용이 어떠했느냐에 따라 정식경기가 될 수도 있고 노게임이 될 수도 있는 함정을 두고 하는 말이다.
예를 들어 1-1 동점인 상황에서 5회 말 공격 진행 중에 우천으로 경기가 중단되고, 결국 재개가 불가능한 것으로 결론이 났다고 할 때, 5회 말 공격에서 홈팀이 점수를 뽑아내 동점이 된 것이라면 정식경기가 되어 무승부로 처리된다.
그러나 5회 말에 들어서기 이전부터 동점인 상황으로 5회 말에 홈팀이 점수를 얻어 동점을 만든 것이 아니라면 그때는 정식경기가 아닌 노게임으로 처리된다. 같은 1-1 동점이었지만 전자(5회 말 득점)는 무승부가 되고 후자(5회말 무득점)는 노게임이 되어 모든 기록이 무효가 된다.
이러한 규정은 홈팀이 5회 말 득점을 올려 동점을 만든 사실이 패전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가졌고 그것을 살려냈다고 간주하기 때문이며, 반대로 동점에서 리드하는 득점을 하지 못하고 5회 말 공격 도중 잘린 것은 홈팀이 이길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가져보지 못한 것이라고 간주하기 때문이다. 비슷한 5회 말 상황이지만 그 결과는 천양지차다.
선발투수의 승리투수의 자격을 가름하는데 있어 마의 5회 말이 그 기준선이 되듯, 야구의 5회 말은 이처럼 경기의 성격을 가름 짓는 분수령 구실을 한다. 그리고 5회 말 내용에 따라서 기록도 춤을 춘다.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 산은 스스로 물길을 가른다 라는 뜻이다. 산은 물을 넘지 못하고 물은 산을 넘지 못한다 라는 속뜻을 가진 말이다. 굳이 빗대어 말하자면 야구에서의 ‘5회 말’은 개인기록과 경기기록의 줄기를 가르는 산길이자 물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