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의 엣 수도 "크라카우-크라쿠프-"에서 비몽사몽의 잠에 빠져들었다.
잠이 들었어도 눈 앞에 어른거리는 소금으로 만들어진 샹들리에나 킹카 공주의 반지와
성 킹카 성당이 모습이 도무지 실감이나지 않는 듯 자꾸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탓이다.
그래도 천만 다행인 것이 오늘도 역시 6,7,8의 시간으로 여유있게 출발을 한다.
조식으로 먹은 빵과 치즈가 온 몸으로 스며들고 제 집으로 돌아간 "피터"와는 이별을 하고
새롭게 투입된 폴란드 운전 기사 "파베우"와 다시 인연을 맺으며 우리는 "징꾸에- 고맙다", "드뷔자디에- 헤어질 때 인사"법과
"진토불이- 안녕하세요" 를 게속 되뇌이며 종교가 살아숨쉬는 나라 폴란드를 체감한다.
또한 폴란드 현지 가이드 "안진순"씨로 부터 별별 다양한 역사와 그에 걸맞는 스토리들을 들으며 즐거운 여정을 기대했다.
그러나 가슴은 이미 돌 하나를 얹어놓은 듯 무겁기만 하다...우리는 폴란드인의 대학살지 "아우슈비츠"로 떠나므로.
고속도로변의 경찰서, 소방서가 눈에 들어와서 한 컷...
유럽은 특히나 개인 방송국이 국영방송국 못지 않게 활약을 하고 있다는데 폴란드 고속도로변에 자리한
돔형의 개인 방송국 RMF 라디오 방송국 역시 눈길을 끈다...발상 전환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듯.
종교의 성지라고 할만한 폴란드에서는 11월 1일 만성절 저녁 무렵이 되면 다음 날 아침까지
무덤에 가서 불을 밝히는 풍습을 지키고 있다고 한다....가이드 역시 매년 잊지 않고 참석을 한다고.
초와 꽃을 들고 가서 죽은 자들을 위로하고 그들이 다시 부활하도록 묘지에 불을 밝히며
산자와 죽은 자가 서로 교류하먄사 공존의 의미를 나누는 행사를 한다는데 그야말로 장관이고 마치 축제처럼 진행된단다...
촛불은 반드시 유리병에 넣어서 사용헤야 하는 것도 잊지말아야 할일이란다.
1시간 여를 달려 전쟁 중에 환란에 닥친 유대인들이 이유도 모르고 혹은 살 수 있다는 희망으로
저렇게 기차를 타고 수용소로 이동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 시절에도 하늘은 맑고 푸르렀을지도....
이른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입장을 기다리고 있고 들어가는 절차는 거의 공항에서 치르는 온 몸 수색을 방불케 한다.
들고 가거나 메고 가는 가방은 가로 세로 30 , 20Cm를 넘을 수 없고 가방은 스스로 벌려서 속을 보여주어야만 한다.
전날 가이드가 미리 말해주지 않고 버스 안에서 가방 사이즈를 말ㄹ해 주는 바람에 난감지경인 사람들이 많았다.
그 결과는 결국 그렇게 해박하고 현명하였으며 똑똑해 보이던 가이드가 인간미 없는 사람으로 전락되었는데
사람의 평가가 달라지는 것은 한순간 인 듯 싶어 정말 헛웃음이 나왔다.
순간의 실수가 사람 평가의 잣대가 된다는 사실에 실망스럽기도 하였다는 말이다....
뭐 그럴 수도 있지 싶다가도 욱 하고 치밀어오르는 그 무엇?
"노동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저 문구에 휘둘려 제 삶을 던져버린 폴란드인들은 또 얼마나 많다는 말이더냐.
각지에 존재해 있던 유대인 수용소 위치도.
무려 28개 동 지하에 가스실을 만들어 놓고 1800에서 2000명을 집단 수용해 질식사 시켰다고 하니
참으로 안타깝고 기가 막힐 일이요 가슴이 먹먹해져 온다.
여자, 아이, 임산부는 바로 가스실로 직행하였으며 유대인인 들 중에 학생, 박사, 선생님 등등
지식인들에 해당하는 25%는 따로 수용하였다고 한다.
안정된 곳에 데려다 주겟다는 말에 속아 자신들이 가진 것중에서 최고급품에 해당하는 것들만 들고 나왔던 유대인들은
수용되는 즉시 모든 일용품들을 빼앗겨 버렸다...감언이설의 절정체.
화장터의 굴뚝과 사형대가 섬뜩하니 다가와 잠시 진저리를 치면서 인간이 행할 수 있는 잔인함의 끝을 생각한다.
이곳에도 가스실을 만들어 놓고 질식사 하면 바로 화장을 해버렸다고 하니 ....
전쟁의 참극을 실제적으로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그 어느 전쟁이라도 용납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부지불식간에 겪게 된 유대인들의 참담함과 비극이 전이되어 가슴 한 켠이 저릿저릿해져 온다.
그들은 날마다 창밖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였을지....고통과 좌절과 분노와 전율.
젖은 마음은 "아우슈비츠"에 내려놓고 다시 길을 달린다.
체코의 모리바 강변에 자리한 아름다운 중세도시 "올로모우츠"로 이동을 한다.
첨언 1 크라카우-크라쿠프-는 요한 바오르 2세를 빼놓고 말할 수 없다.
또한 "요한 바오로 2"세와 더불어 "코페르니쿠스"가 다녔다는 유럽에서 두번째로 역사가 오래된 "야기엘론스키" 대학이 있는 도시다.
2 1138년 폴란드의 수도로 지정된 후 바르샤바로 옮겨지기 까지 558년간 폴란드의 수도역할을 해왔다.
그나마 제 2차 세계대전 중에 독일군이 유난히 많이 주둔해 있어 전쟁의 참화를 비켜갈 수 있었던 까닭에
크라쿠프가 중세도시의 면모를 유지하게 되었으며 현재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3 폴란드 최대의 유대인 홀로코스터 오슈비엥침...아우슈비츠 수용소는
"쉰들러리스트"와 "안네의 일기"의 무대가 된 죽음의 수용소다.
실제적으로 이곳으로 끌려온 사람의 70,80%는 도착과 동시에 학살당했다고 한다.
4 소련군이 진입하면서 독일군이 미처 파괴하지 못한 채 퇴각한 원형 그대로가 보존되어있고
이곳에서 이유도 모른 채 오로지 유대인이라는 사실만으로 200만명의 유대인이 학살당했다.
5 놀랍게도 이곳에는 수용소에 도착한 사람들을 일일이 사진 촬영을 하여 도배를 해놓았다.
그들의 표정을 보면서 잠시 숙연....
첫댓글 어제 야누스데이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폴란드 수녀원에서 수녀들이 독일군과 러시아군들에게 간강을 당해 아이들을 낳고,, 그 상황들 참 전쟁은 어렵지요,, 저도 전쟁은 안겪어 보았지만,, 저희 부모님들,, 전쟁 공산주의 하면 정말 무섭고 고생한 이야기들이 슬슬 나오지요,, 오늘도 편안하고 좋은날 되세요,,
그러게나 말입니다.
전쟁의 참혹상이란 겪지 않아도 알 듯 합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가 되시옵소서.
지도자 불건강하고 사회가 함께 병들면
이런 기막흰 일이 가능하다는, 인간의 끝을 보여주네~! 독일은 그래도 이런 역사를 반복하지 않으려 노력을 하는데 우리 곁에 일본은 아직도 반성없이 저 지경이니 나쁜 역사가 반복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네요~!
맞습니다요...그래도 반성하는 기미가 보이면 그나마 나을텐데 오히려 뒤집어 씌우는 일을 하고 억지 춘향을 벌이는 원.
일본이라는 나라의 양심의 끝은 어디 일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