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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과 한글학회를 짓밟으려고 만든 국립국어연구원
[한글 살리고 빛내기 83] 일본식 한자혼용 꾀하는 자들과 맞서다
1990년 정부는 문화부(장관 이어령)를 만들고 1991년 국립국어연구원(원장 안병희)을 만들었다. 그런데 그때 나도 그랬지만 많은 사람들은 한글과 우리말을 살리고 빛내려고 정부가 국립국어연구원을 만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한글과 한글학회를 짓밟고 일본 식민지 교육으로 길든 일본 한자말을 일본 식민지 때처럼 한자로 쓰게 하려고 만든 것이었다. 서울대 국문과 이희승 교수의 제자들인 이들은 광복 뒤 미국 군정 때부터 한글로만 만들던 교과서와 한글로만 쓰던 공문서를 일본식 한자혼용 말글살이를 하게 하려고 1948년 대한민국을 세우고 만든 한글전용법을 한자혼용법으로 바꾸려고도 했다. 나는 국립국어연구원 개원식 때 그런 느낌을 받고 얼마 뒤 안병희 원장을 만나서 그들 속내를 확인했다.
나는 국어원(국어연구원 줄임) 개원식에 공병우 박사를 모시고 함께 갔다. 그런데 시골에서 다리를 새로 놔도 그 지역 원로 어른을 모시고 기관장이 함께 개통 띠를 끊는데 그날 국어원 개원 식 때는 이어령 문화부장관, 안병희 원장, 한자혼용을 주장하는 남광우 어문회 회장들만 개원 띠를 끊고 개원 축하 건배를 할 때도 그들끼리 하고 다른 참석자들은 들러리였다. 그날 참석한 분들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은 공병우 박사와 한글학회 허웅 회장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이어령 장관이 자가들끼리 축배를 들려고 해서 내가 큰 소리로 “공병우 박사님도 건배를 하셔야지요!”라고 말하니 이어령 장관이 그제야 깜짝 놀라며 공 박사님도 오셨느냐며 제 옆으로 모시고 술잔에 포도주를 따라준 뒤 건배사를 하고 “지화자 종대!”라며 축배를 들었다.
그때 내가 공 박사 팔을 잡고 장관 옆으로 모셨는데 허웅 한글학회 회장은 좀 떨어진 곳에서 건배 하는 모습만 바라보고 있어 난 기분이 몹시 나빴다. 그때 남광우 교수가 내 기분을 알아채고 내게 와 “이대로 선생!”이라고 부르며 악수를 청하고 손을 꽉 잡고 흔들었다. 그가 나를 알아보고 내 이름을 큰 목소리로 불러서 놀랐지만 너스레를 떠는 그 웅변술에 당황했었다. 요즘처럼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손전화가 있었다면 움직그림(동영상)이라도 찍었을 것이란 아쉬움이 있다. 나는 그때 무언가 그들 속셈을 느끼고 한 달 쯤 뒤 안병희 원장에게 건의문을 보내고 면담 신청을 했더니 바로 오라고 했다. 그래서 밝한샘, 송현 선생들과 함께 국어원에 갔다.
그날 안병희 원장은 국어원에도 내 국어운동대학생회 후배가 있다며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나는 우리말을 살리고 빛내달라고 건의하니 건성으로 듣는 듯 했으나 그때 안병희 원장이 내게 한 말 가운데 “정부가 한글학회에 사전을 만드는 돈으로 한 해에 2억 원을 지원하는데 국어원의 한 해 예산이 2억 원이다.”라면서 그 예산을 국어원이 받아 사전 만드는 일도 자신들이 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그날 국어원이 한글학회를 죽이려고 함을 확인하고 한글학회 허웅 회장을 만나 안병희 국어원장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하고 앞으로 한글학회는 그들과 맞서 싸우게 될 것임을 밝혔다. 그러나 허웅 한글학회 회장도 다른 사람들도 내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어쩌면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뺀 그들에게 절망했는지도 모른다.
내 예상대로 국어원은 정부 예산 100억 원을 받아서 남북통일대사전을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그들은 한글학회가 내는 ‘한글새소식’과 같은 소식지와 한글학회가 일제 때부터 낸 학술지 ‘한글’처럼 학술지도 ‘새국어소식’과 ‘새국어생활’로 내는데 내용은 모두 한글과 우리말을 살리려는 것이 아니라 일본처럼 한자혼용하자는 소식과 글이었다. 한글학회가 하는 일을 흉내 내면서 한글전용을 막고 한글학회를 허수아비로 만들려고 했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내 눈에는 그 속셈이 다 보였다. 안병희 국어원장은 이어령 문화부장관과 서울대 국문과 동기로서 서로 손발이 맞았다. 이들은 한글을 못살게 한 이희승 교수를 한글날이 있는 10월 문화인물로 발표하고 서울대 국문과 우두머리와 같은 이기문 교수에게 학술원상을 준다고 했다.
내가 문화부장관에게 이희승 교수를 10월 문화인물로 뽑은 것을 취소하라고 보낸 건의문(오른쪽)과 부경대 김영환 교수가 앞장서서 이희승 교수 문화인물 반대 활동을 한 보도문(오른쪽)
그래서 나는 바로 안병희 국어원장에게 그러지 말라고 건의했으나 듣지 않아서 이어령 장관 후임으로 온 이민섭 문화부장관에게 안병희 국어원장이 한글과 한글학회를 짓밟고 우리말을 못살게 굴고 있으니 해임하라고도 건의했다. 또 이희승 교수를 한글날이 있는 10월 문화인물로 뽑지 말라고 건의했다. 나는 서울대 국문과 출신들이 1986년에 국어연구소(소장 김형규)를 만들고 ‘짜장면’이란 말을 쓰지 못하게 하고 한자말인 ‘자장면’으로 표준말을 바꾸는 것을 보고 한말글사랑 이야기마당을 열고 그들이 꼭 바꾸지 않아도 될 표준말을 바꾸어서 한글학회가 수십 년 동안 애써 만들어 출판을 앞둔 ‘우리말 큰사전’을 휴지조각으로 만들고 있음을 따졌는데 이들은 그때부터 한글과 한글학회를 짓밟을 계획을 세우고 진행하고 있었다.
한일어울림연구소 이윤옥 소장은 표준 국어사전이 일본 사전을 많이 베껴서 우리말을 더럽히고 있다는 책(오른쪽)까지 냈고 김영환 교수 또한 남북통일을 대비한 사전이 아니고 잘못임을 밝히는 글을 쓰고 국어원 잘못을 따졌다. 정재도 선생님과 다른 분들도 표준국어사전이 엉터리임을 밝혀서 수정했다.
그러나 국민들은 모르고 있었기에 나는 적을 알면 꼭 이길 수 있다는 믿음으로 그들 음모를 깨부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강력하게 맞서 싸웠다. 이들은 한글학회가 일제 때부터 “우리말 큰사전”을 만들고 한글맞춤법과 표준말을 제정해서 해방 뒤부터 우리 말글로 교육하고 공문서를 쓸 수 있게 한 업적을 짓밟으려고 남북통일 준비라는 명목을 내세워서 남북통일 대사전을 만들겠다고 했으나 그건 될 수 없는 일이기에 따지니 그 사전 이름을 ‘표준국어대사전’이라고 바꾸어 한글학회가 만든 사전보다 오ᇍ림말을 늘려서 더 좋은 사전인 것처럼 보이려고 했다. 그러나 그 사전이 일본 ‘광사원’ 사전을 베꼈다고 할 정도로 우리말이 아닌 일본 한자말을 늘리고 사람이름까지 사전에 많이 올려 낱말 숫자만 늘린 엉터리라는 비판을 받는다.
나는 심재기 국어원장과 김종필 총리, 그리고 국회 박원홍 의원들이 한글전용법을 폐지하고 한자혼용법을을 만들려고 해서 한글단체 대표들과 그 반대운동에 앞장섰다. 그때 한글회관 앞에서 거리행진을 시작하면서 내가 우리 뜻을 밝히는 성명서를 읽는 모습이다.
그리고 초대 안병희 원장을 시작으로 5대 심재기 원장까지 연달아 서울대 국문과 출신이 맞더니 심재기 원장은 김대중 정권 때 한자혼용파 정치인인 김종필 총리와 함께 한글로만 쓰던 공문서를 한자병기 하겠다고 하면서 국회에서는 김종필 총리와 가까운 박원홍 의원을 앞세워 한글전용법을 페기하고 한자혼용법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우리말과 우리 얼을 짓밟아 다시 일본 한자말을 그대로 쓰게 해서 일본의 말글살이 속국처럼 만들려고 막바지 발악을 했다. 나는 1960년대부터 30년이 넘게 싸우는 이 문자전쟁 선봉에서 이들과 싸웠는데 이때가 가장 치열한 싸움이었다. 나는 이때 이들과 싸우면서 이들의 음모를 밝히고 정부에 서울대 국문과 출신이 연달아 국어원장을 맡는 것은 잘못이라고 따지는 민원을 냈다.
한글단체가 그 잘못을 따져도 듣지 않아서 1999년 3월 1일에 탑골공원에 가서 한말글닥립선언을 하고 그리고 또 한글회관으로 건리시위워에 너서려고 할 때 경찰이 그리로 나가지 못하게 막았다. 그런데 언론은 이런 보도를 하나도 안 했다.
그래서 6대 국어원장은 연세대 국문과 출신인 남기심 교수가 맡게 되었는데 그는 한자혼용을 주장하는 어문회 남광우회장의 친조카여서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7대 국어원장은 경북대 국문과 이상규 교수가 맡고 난 뒤 한글과 우리말을 살리는 쪽으로 정책을 폈고 나는 그와 협조해서 한글날 국경일을 제정하고, 한글박물관도 짓게 하고, 세종학당 사업도 하게 했다. 그리고 그 뒤 국어원장들은 공모제로 다른 학교 출신도 들어왔으나 직원들이 한자혼용을 주장하는 자들의 제자들이거나 십 수 년 동안 서울대 국문과 출신 원장을 모시던 이들이라 우리말과 한글을 제대로 살리려 하지 않았다.
아직도 국어원 누리집에 가면 교육부 산하였던 국어연구소 소장(초대 소장 김형규, 2대 소장 이기문)을 역대 국어원장으로 소개하고 있으며 설립 취지에 “국립국어원은 국어의 발전과 국민의 언어생활을 향상하는 연구 사업을 추진하고, 체계적인 정책 수립의 기반을 마련하는 기관입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일본 국어연구소를 본 따서 문교부 산하 국어연구소를 문화부를 만들고 국립국어연구원으로 승격시킨 이 기관을 이제 그 이름도 우리식으로 ‘한말글연구원’이라고 바꾸고 “한글과 우리말을 살리고 빛내어 국민이 우리말글로 말글살이를 할 정책을 세우고 연구하는 기관입니다.”로 바꾸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말을 우리 글자로 적는 말글살이를 하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 될 때 우리 말글이 독립하고 자주독립국이 될 수 있다. 국어원이 우리말을 살리고 빛내라고 국민이 아우성이니 우리말 상담전화나 외국말을 우리말로 다듬는 시늉만 하니 우리 말글살이는 엉망진창이다.
그때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공동대표 이오덕)은 한글전용법 지키기 천만인 거리서명도 하고 한글단체는 문화부 앞에서 반대 기자회견도 아고 거리 시위에 나서기도 하다. 우리는 그때를 연산국 때 다음으로 한글 위기였기에 강력하게 투쟁을 했고 사생결단으로 막았으나 이런 우리 투쟁을 언론은 하나도 보도하지 않했기에 국민은 모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