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중한 유년시절의 기억들~
저는 가난한 농부의 막내딸로 태어났습니다.
그 시절을 생각해 보면 정말 지지리도 가난했는데 불행했었다는 생각은 하나도 들지 않습니다.
우리집에는 우리집에서 제일 비싸고 귀한 재산이었던 소가 한 마리 있었습니다. 소밥을 보통 여물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소죽'이라고 했어요.
짚을 작두로 쓱쓱 썰어서 커다란 가마솥에 넣고 푹 삶아서 퍼주었거든요.
할아버지가 소죽을 끓일 때 저는 옆에 붙어 앉아서 풍로를 돌리거나 땔감을 넣거나 할아버지와 쫑알쫑알 얘기를 나눕니다. 따닥따닥 불타는 소리, 따뜻함과 뜨거움 사이, 다양한 색깔로 활활 움직이고 있는 불꽃..그 모든 게 참 좋았습니다. 저는 지금도 불때는 것을 좋아합니다. 장작불, 모닥불이 있는 카페는 저의 최애카페랍니다.^^
그렇게 소죽을 끓이다보면 어느새 커다란 가마솥이 눈물을 줄줄 흘리기 시작하죠.
그럼 할아버지는 뚜껑을 열어 한 번 휘휘~젓는데 그 때의 구수한 소죽냄새를 아직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고무양동이에 한가득 퍼서 외양간으로 들고가서 부어주면 소가 긴 혀로 퍼서 스아악~스아악~ 얼마나 맛있게 먹는지 모릅니다.
물론 뜨거운 상태로 주면 입천장 데이니
제가 일일이 후우 후우 불어서 식혀서 주었답니다
요건 뻥입니다.ㅎ
그 날 저녁메뉴가 칼국수인 날은
밀가루 반죽을 밀어 쫑쫑 썰고있는 엄마옆으로 가서
''꽁다리, 꽁다리~~!''를 외칩니다. 그럼 엄마는 인심쓰듯ㅎ 국수꽁지(처음과 끝부분)를 이만큼 착 잘라서 줍니다.
나는 좋아서 함박웃음을 지으며
국수꽁다리를 들고 아까 소죽을 끓인 아궁이로 달려가서 구워 먹습니다.
앙꼬도 없고 아무맛도 안 나는 밀가루 구이였지만
그 땐 그게 왜그렇게 맛있고 좋았을까요?^^
바삭하게 잘 구워진 국수꽁다리를 언니오빠한테 뺏기기도 하고 조금씩 떼어 아껴먹었던 기억도 납니다.
풀이 많이 있는 계절에는
새벽부터 아빠가 들에가서 소 먹일 풀을 베어 지게에 한 가득 지고 들어 오십니다.
지게를 내려놓으시며 ''현주야~산딸기 먹어라~''하는 날이 있습니다. 소풀을 베다가 산딸기가 있으면 딸래미 주려고 나뭇가지를 잘라 오신거죠.
그럼 냅따 달려나가서 산딸기 줄기에서 딸기를 따서 그릇에 모읍니다. 빨간 산딸기는 그냥 먹어도 맛있지만 이왕이면 산딸기 화채로~
부엌으로 가서 산딸기 그릇에 물을 붓고 설탕 한 숟가락을 넣어 휘휘저어서 마십니다.
캬아~ 그 달콤함과 산딸기의 식감이란~^^
저는 요즘도 산이나 들길을 가다가 산딸기가 눈에 띄면 너무 반갑고 아빠 생각부터 납니다.
저에게 산딸기는 아빠의 사랑 그 자체니까요.
시골에서 자란 분이라면,
그리고 서울올림픽 때 중2쯤이었던 분들이라면^^ 저랑 같이 추억에 젖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도시에서 나고 자란 제 친구는 이런 얘기를 잘 공감하지 못하더라구요.
저는 시.골.가.난.한 집에서 자랐고
제 친구는 도.시.부.유.한. 집에서 자라서
나이는 같지만 실제생활모습은 20년은 차이나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제가 그 친구 머리를 쓰다듬으며, 어이구 어린 것아~라뗀 말이야~ 이렇게 살았단다~라고 했어요.ㅋㅋ
봄에 모내기하려고 논을 갈 때
그 갈아엎은 논흙 속에서 보물찾기하듯
''올미''라는 것을 찾아 먹었던 기억~
(요건 시골출신들도 거의 모를 듯함.검색하면 나옴ㅎ)
''고염나무''에 열린 달콤한 고염을 몰래 따먹던 기억~
고구마가 너무 커서 소죽끓인 불에 안 익어서 못구워먹고
그냥 생으로 깎아서 먹었던 기억~
''오디'' 따먹느라 손과 입이 죠스바색깔이 되었던 기억~
소죽 끓이던 가마솥을 깨끗이 씻어내고 두부를 만들어 먹던 기억~ 간수를 넣어 몽글몽글해질 때 한 바가지 퍼서 간장넣어 먹었던 그 순두부 맛~크아아~군침 도네요ㅎ
부엌 뒤 광에 숨겨놓은 주황색라면을 끓여주시는 날은 정말 행복했던 기억도 나고~
엄마가 해 준 최고급 간식은 찹쌀모찌!
찹쌀가루를 쪄서 팥앙꼬를 듬뿍넣어 한 번에 한 백개는 만들었던 것 같은데 누가 다 먹었나 모르겠네요ㅎ
ㅡㅡㅡㅡㅡㅡㅡ
저는 이 모든 유년시절의 추억들이 너무나 소중하고 귀한 보물 같답니다.
저의 유년시절은 제 감성을 더 풍부하게 해주었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더 너그럽게 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그 시절 먹거리에 대한 얘기만 했지만 나중에 기회가 되면
뭐하고 놀았는지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해서도 얘기하며 추억속으로 한 번 더 여행을 떠나보고 싶네요~^^
*탁구 치러 못가게 한다고 이러지 마세요~ㅎㅎ
첫댓글 ^^ 글 참 잘쓰십니다.
아닙니다. 그냥 좋아합니다.감사합니다~^^
문필가이신가요?
ㅎㅎ아닙니다. 초딩때 백일장에서 상은 받아본 적 있습니다^^
유년시절을 풍성하고 행복하게 보내셨군요. 고운 추억 나누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다같이 셰이크님의 좋은 글을 저도 잘 보고 있습니다.
그 소죽을 먹으면서 혙바닥으로 콧구멍 츄릅 츄릅 핥는 소보고 있으면 진짜 한국자 퍼서 먹고싶었답니다.
소가 진짜 맛있게 먹었어요. 소 혀는 콧구멍까지 가볍게 닿아요. 나는 해봐도 안되는데..ㅎ
@초록아줌마(김현주) 혀가 코 끝에 닿아야 미인이라고 합니다. 올겨울 많이 춥던데...
@세모래 ㅎㅎㅎ
저는 결혼했을 당시에 이 모든걸 겪었어요.
특히 가마솥에 해 먹었던 두부맛은 정녕 잊을 수가 없어요.
제 추억도 소환 해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비슷한 추억을 갖고 계시는군요. 이런 아름다운 추억은 정서재산같아요~^^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1.01.18 10:38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1.01.18 11:14
이맘때쯤 안방 한켠에있는 고구마 뒤주통 위에 짱박혀 고구마 깎아먹던 기억이 모락모락 피어오릅니다.ㅎ
찐 고구마는 김장김치 쭉쭉 찢어서 같이 먹으면 정말 맛있고, 그냥 생고구마도 깎아서 잘라먹으면 단물도 나오고 맛있게 먹었던 것 같아요. 고구마는 크고 칼이 잘 안 들어가서 깎기가 좀 힘들긴 했던 것 같아요~^^
저는 대전 은행동 도회지 출신이지만 이 글을 읽어보니 그 때 그 시절이 생각나네요.
"뺏긴다는" 말 오랜만에 접해봅니다.
저는 10남매중에 9번째라 저도 많이 뺏기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뺏기고 사는 기분이고요.
언젠쯤이면 저도 뺏아가면서 살아볼까요.
뺏고 빼앗기며 사는 것보다
함께 '나누며' 사는 세상을 꿈꿔봅니다~^^
"빼앗다"란 말이 강제적이고, 불법적인 뜻 같은데요.
합법적이 행동인가 봐요.
네이버사전에는 아래와 같이 뜻풀이 되어 있네요.
빼앗다:
1 남의 것을 억지로 제 것으로 만들다.
2 남의 일이나 시간, 자격 따위를 억지로 차지하다.
3 합법적으로 남이 가지고 있는 자격이나 권리를 잃게 하다.
제가 국수꽁지를 빼앗긴 건 언니오빠의 강제적인 행동이었고ㅎ
잘못을 저지른 사람의 것은 또 그러지 못하게, 또는 벌의 의미로 합법적으로 빼앗기도 하지요~ 부정부수출전자는 다음대회 출전권을 빼앗는 것처럼요~^^
어린시절 기억하게 해주셔서 주셔서 감사합니다 ^^*
제 친누나가 호랑이띤대 맨날 구박받으며(?) 컸던 생각이 나네요 ㅋㅋㅋ
88년 저는 국민학교 6학년이었네요
용띠 동생이 기억하겠습니다 ^o^
호랑이띠 친누나는 어릴 때 남동생땜에 맨날 양보하고 참으면서 살았다고 하지 않으려나요?ㅎㅎ
'그때 그 시절' 이군요,,저도 중학교때까지만 해도 소죽을 끓였는데,,구수한 소죽냄새에,,나무 타는 것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죠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안다는~^^ 레벨업님도 그때 그 시절 이야기가 풍부하시겠네요~
@초록아줌마(김현주) 제가 소띠라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