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이 한 말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예수님은 부모와 함께
나자렛으로 내려가, 그들에게 순종하며 지냈다. 그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49ㄴ~51)
율법에는 13세 이상의 유다 남자들은 이스라엘의 3대 절기인 유월절(과월절),
초막절(장막절), 오순절(추수감사절)을 예루살렘 성전에서 지켜야 할 것이 명시되어
있다(탈출23,14~17; 신명16,17).
하지만 포로 시대 이후 여러 지역에 흩어진 유다인에게는 이것이 불가능했다. 그래도
경건한 유다인들은 적어도 유월절(과월절) 행사만큼은 참석하기 위해 노력했다.
율법의 의하면 유다인 남자들만 성전을 방문했지만(탈출23,17), 후기에는 여자들도
이 행사에 참여했으며, 예수님의 부모 역시 매년 유월절에는 예루살렘에 올라가
성전을 방문하는 경건한 삶을 살았다.
그리고 유다 사회에서는 13세가 되면 책임있는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되는 의식을
거행했는데, 이들은 '바르 미츠바'(bar mitzvah)라는 '율법의 아들'이 되어 회당의
구성원이 될 수 있었다.
탈무드나 미쉬나의 기록에 의하면, 유다 소년들은 13세가 되기 1~2년 전에
예루살렘 성전에 미리 올라가 '율법의 아들'이 되기 위한 행동들을 배웠다.
아마도 예수님께서 12살에 성전에 올라간 것은 다음 해에 있을 종교 의식을 미리
준비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루카 복음 2장 43절의 '축제 기간'은 유월절과 무교절을 지키는 니산월 14~21일의
일주일간의 규정들(탈출12,15; 레위23,8; 신명16,3)을 말하는데, 예수님의 가족들은
이 축제 기간을 다 준수했던 경건한 집안이었다.
그리고 축제 기간이 끝나고 소년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그대로 남았다고 나오는데,
'남았다'에 해당하는 '휘페메이넨'(hypemeinen; stayed behind)은 '
휘포메노'(hypomeno)의 부정(不定) 과거 능동태이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어쩔 수 없는 상황이거나 실수로 남았던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의지로
예루살렘에 남아 있었음을 보여 준다.
그리고 당시 유월절에 참여한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때,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 무리를 지어 내려갔고, 아이들은 아버지나 어머니 쪽 가운데
한 편을 따라갔다.
그래서 요셉은 예수님이 마리아 일행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반면에, 마리아는
요셉 일행에 있는 것으로 당연히 생각하고 있었다.
루카 복음 2장 44절의 '찾아보았지만'에 해당하는 '아네제툰'(anezetoun; they
sought; they began looking for)의 원형 '아나제테오'(anazeteo)는 '반복'이라는
개념이 있는 접두어 '아나'(ana)와 '찾다'를 뜻하는 동사 '제테오'(zeteo)의 합성어로서
반복해서 찾는 것을 뜻한다.
더구나 이 동사는 여기서 미완료 과거로 사용되어 부모가 잃어버린 예수님을 힘들게
두루 찾아다녔음을 보여 준다.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하룻길이 되는 노중 숙소에서 서로 만나 예수님이 없음을
확인했을 것이고, 그제서야 잃어버린 예수님을 찾고 또 찾기 시작했다.
한편, 루카 복음 2장 45절의 '찾아내지'에 해당하는 '아나제툰테스'(anazetountes;
seeking)는 현재분사형으로 사용되어 잠시 쉴 틈도 없이 분주하게 찾아다니는 모습이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된다.
그리고는 루카 복음 2장 46절 이하에서 성전에서 율법 교사들 가운데서 앉아 그들과
토론을 하고 있는 예수님을 발견하고는 부모가 무척 놀라는 장면이 나온다.
그 당시 소년 예수님과 함께 토론을 한 율법 교사들은 유다 랍비로서 당시 고령이었던
할렐, 삼마이, 그리고 가므리엘을 비롯한 유명하고 해박한 율법 박사들이었던 것이다.
소년 예수님께서는 이들과 당시 성전 안에 있었던 회당에서 구약의 율법과 예언서에
관한 것으로 토론했다.
루카 복음 2장 47절의 '그의 슬기로운 답변'에 해당하는 '에피 테 쉬네세이
카이 타이스 아포크리세신 아우투'(epi te synesei kai tais apokrisesin autou;
at his understanding and his answers)에서 '슬기', '지혜'로 번역될 수 있는
단어 '쉬네세이'(synesei)의 기본형 '쉬네시스'(synesis)는 '이해력', '통찰력', '추리력'
등을 뜻하는데,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하느님의 지혜와 내적 통찰력을 말한다.
그러니까 일반적으로 삶의 경륜이나 경험에서 얻는 지혜를 뜻하는 '소피아'(sophia)
와는 다른, 하느님의 지혜로 그들과 토론한 것이다.
여기에 대해 율법 교사들은 경탄하였는데, 루카 복음 2장 47절의 '경탄하였다'에
해당하는 '엑시스탄토'(eksistanto; were astonished; were amazed)의 원형
'엑시스테미'(eksistemi)는 '제 정신이 아니다', '넋을 잃다'는 뜻인데, 여기서는
미완료 과거 시제로 사용되어 자신들보다 한 수 위의 예수님의 깊은 통찰력과 답변에
대해 계속적으로 경탄하며 입을 다물지 못하는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루카 복음 2장 48절에서 아기의 부모도 당시 성전에서 석학들과 토론하는 아들 예수님의
모습에서 큰 충격을 받고, '얘야'라고 부른다
'얘야'에 해당하는 '테크논'(teknon; son)이라는 호격 안에서 '안도', '놀람',
'기쁨', '책망'등의 여러 감정이 복합적으로 교차된다.
특히 어머니가 애타게 찾았다고 표현하는데, 여기서 '애타게'에 해당하는 '오뒤노메노이'
(odynomenoi; anxiously; sorrowfully)는 '매우 걱정하여'라는 뜻으로 아주 강한
느낌을 주는 단어이다.
예수님께 대한 마리아와 요셉의 사랑이 남달리 깊었고, 인류구원사업이라는 아버지
하느님의 일이 이루어질 때까지 인간적인 성장 과정을 밟아가시는 예수님을 잘 보살펴
드려야 하는 소명 의식 때문에, 그만큼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아들 예수님께 대한 근심이
컸을 것이다.
'제 아버지의 집에'
루카 복음 2장 49절의 '제 아버지의 집에'로 번역된 '엔 토이스 투 파트로스 무'
(en tois tou patros mou; in my Father's house)에서 '집'으로 번역된 '토이스'
(tois)는 관사 '호'(ho)의 여격 복수로서 '것들'로 번역되는 단어이다.
그래서 '제 아버지의 집에'는 '제 아버지의 것들에'라는 의미라서, '제 아버지의 집의
일들에', '제 아버지의 사람들 가운데' 또는 제 아버지의 집들에'라는 번역이 다
가능하다.
그리고 '저는 ~ 있어야 하는 줄'로 번역된 '데이 에이나이 메'(tei einai me; I had to be)
에서 '데이'(dei)는 비인칭 동사로서 '~이 필요하다', '~을 해야만 한다'는 뜻이다.
예수님께서는 평범한 한 사람의 의무를 말하기 보다는, 구세주 혹은 하느님의 아들로서
그에게 맡겨진 구원 사업과 관계된 일을 말한 것이다.
루카 복음 2장 49절은 예수님께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하느님을 아버지로 부르시는
장면인데, 소년 예수님은 이렇게 이미 육적인 부모의 관계를 초월하여 감당해야 할,
하느님께서 맡겨 주신 구원 사업에 대해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루카 복음 2장 48절과는 대조적으로 이번에는 예수님께서 부모를 책망한 듯이
보이며, 마리아가 요셉을 예수님의 아버지로 말한 데 대해 예수님 자신은 성부 하느님을
자신의 아버지라고 분명히 말한다.
이제 루카 복음 2장 51절에서 예수님께서 있어야 할 곳은 하느님의 집이며, 그가
관계해야 할 진정한 일은 하느님의 일이지만, 아직 그의 때가 이르지 않았기 때문에
소년 예수님은 육신의 부모에게 순종하는 자세로 그들과 함께 집으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을'에 해당하는 '판타 타 레마타'(panta ta remata; all these
things)는 루카 복음 2장 49절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뿐만 아니라 메시야의 탄생을
알린 천사의 말(루카1,27~37)과 천사들의 말을 전한 목자들의 말(루카2,17), 그리고
시메온과 안나의 말(루카2,29~35.38), 소년 예수님 및 아기 예수님과 관련되어 일어난
모든 일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마음 속에 간직하였다'에 해당하는 '디에테레이~엔 테 카르디아 아우테스'
(dieterei~en te kardia autes; kept~in her heart)에서 '간직하였다'로 번역된
'디에테레이'(dieterei)는 미완료 과거로서 과거 시점에서의 '진행', '끝나지 않음'의
의미가 있다.
이것은 마리아의 마음 속에 계속하여 간직하여 지키는 것을 보여 주며, 성령께서 깨우쳐
주실 때까지 기다리는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