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822](화) [동녘이야기]
[동녘글밭] 생명의 속성도 모순에
https://youtu.be/J26c0Qwg2lA
2015년 8월이나, 2019년 11월이나 그리고 지금이나 ‘생명에 대한 생각’은 같나 봅니다.
어쩌면 그 시작은 훨씬 전일 듯이 여겨집니다.
다만 그 즈음에 글밭을 일구기 시작하여 그때에 담긴 것으로 보입니다.
---------------
생명의 속성을 생(生)과 명(明)에서 찾고자 합니다.
생(生)은 꿈틀거림 즉 살아있는 것이요, 명(明)은 밝다는 것입니다.
밝음을 향하여 꿈틀거리는 이 생명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라는 물음에 이르게 됩니다.
스스로 그렇다는 것이지요.
스스로 그렇지 못한 것을 두고 생명이라고 말할 수는 없읍니다.
---------------
그리고 5년이 지나서도 이 생명을 이해하려는 몸부림은 끝이 없읍니다.
좀 길지만 중심이요, 핵심이라 여겨 주저없이 가지고 옵니다.
---------------
무릇 생명은 모순입니다.
마치 삶과 죽음을 동시에 가지고 있듯이요.
그것은 처음과 끝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생명은 생명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존재를 위한 몸부림을 놓지 못합니다.
이것이 바로 생명의 그대로 드러남입니다.
생명이 지니고 있는 보편적인 꿈틀거림을 그 속성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생명은 꿈틀거림입니다.
생명은 자유입니다.
생명은 스스로 까닭을 지닌 존재 그 자체입니다.
넓게 보면 이 우주는 이런 온갖 생명으로 가득합니다.
꿈틀대든 아니든 존재하고 있는 것은 다 생명이니까요.
이것을 우주 밖에서 우주를 내려다보면 더욱 쉽게 알게 됩니다.
생명은 안팎으로 나누어진 안의 질서에 충실합니다.
이것이 바로 자유요, 스스로의 까닭입니다.
죽음은 안에서 밖으로 들어가는 과정이요, 새로운 질서로의 편입입니다.
이쪽에서 보면 무질서요, 저쪽에서 보면 질서인 세계입니다.
그래서 무질서의 질서를 낳습니다.
바로 이것이 혼돈의 질서입니다.
그 안에 잠시 ‘나’가 있고, ‘너’가 있는데 그 밖의 ‘우리’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지요.
이처럼 꿈틀대는 생명의 작동 원리는 ‘욕’에 그 뿌리를 둡니다.
가끔씩 느끼는 ‘욕’을 자른 그 순간은 바로 ‘천국’이요, ‘극락’입니다.
문제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이 순간을 더욱 넓게 펴 가는 삶이면 얼마나 좋을까요?
천국이, 극락이 저 하늘에만 있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니까요.
---------------
그래서 지금은 ‘적당히’라는 욕심의 자리에서 나를, 너를, 우리를 건집니다.
모순에서 생명을 건지듯이요.
오늘도 고마움에 몸을 떱니다. 정말, 고마워요.
첫댓글 깨달음의 세계는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치 가까운 이웃처럼
우리 켵에 붙어 있다고 여겨집니다.
그래서 찾은 것이 생명이고,
생명의 작동 원리로 욕심을 이해하게 되었읍니다.
따라서 욕심을 인정하고,
그 욕심에 적당히를 갖는 일로 본 것입니다.
기회가 되시면 한번, 살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