孔子曰 益者三友 損者三友 友直 友諒 友多聞 益矣 友便辟 友善柔 友便佞 損矣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유익한 벗이 셋이요 해로운 벗이 셋이니,
벗이 정직하고 벗이 성실하며 벗이 견문이 넓으면 유익하고,
벗이 편벽되고 벗이 굽히기를 잘하며 벗이 말로 아첨하면 해로우니라.”라고 하셨다. 友直 則聞其過 友諒 則進於誠 友多聞 則進於明 정직한 사람과 사귀면 자기의 잘못을 듣고, 신의 있는 사람과 사귀면 정성이 증진되며, 견문이 많은 사람과 사귀면 명철함이 증진된다.
胡氏曰 直者責善而無所回互 諒者固執而無所更易 多聞者有所參訂而不膠偏見 集註言友之之益 所謂聞過 則眞有所聞 所謂進於誠明 則猶有待於進也 蓋友諒與多聞 未卽至於誠明而誠明可由是而入耳 호씨가 말하길, “정직한 사람은 선한 것을 하라고 요구하면서 서로 돌이키는 바가 없고, 신의가 있는 사람은 굳게 붙잡아 바꾸는 것이 없으며, 견문이 많은 사람은 참작하여 수정하는 바는 있지만 편견을 고집하지 않는다. 집주에서 이들을 사귀는 이로움을 말하였는데, 소위 잘못을 듣는다는 것은 진짜로 들은 바가 있는 것이고, 소위 誠明이 증진된다는 것은, 그 증진되기를 기대함이 있다는 것과 같다. 대체로 신의 있는 사람이나 견문이 많은 사람을 사귀는 것은 즉시 誠明에 이르는 것은 아니지만, 誠明에는 이로 말미암아 들어갈 수 있을 따름이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 便 習熟也 便辟 謂習於威儀而不直 善柔 謂工於媚悅而不諒 便佞 謂習於口語 而無聞見之實 三者損益 正相反也 便은 익혀서 무르익었다는 것이다. 便辟이란 위엄과 의례에 익숙하지만 바르지 않다는 말이다. 善柔란 아양을 떨어 기쁘게 하는 것은 잘하지만 신의가 없다는 말이다. 편녕은 말하는 것에 익숙하지만 듣고 본 실체가 없다는 말이다. 세 가지 손해와 유익함은 서로 정 반대다.
胡氏曰 便 順適也 字書云 安也 順適且安 故云習熟也 便辟書註以爲足恭 是也 호씨가 말하길, “便은 순조롭고 적당함이다. 자서에 이르길, 편안함이라 하였으니, 순조롭고 적당하며 편안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익혀서 익숙한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便辟이란 書註에서는 足恭이라고 여겼으니, 바로 이것이다.
雙峯饒氏曰 與直者友則有過必聞 與諒者友則信實相示 與多聞者友則多識前言往行 知識日廣 三者雖常情所敬憚 然友之却有益 便辟者威儀習熟 善柔者每事阿順 便佞者語言可聽 三者皆常情所狎悅而友之却有損 擧三者爲勸 又擧三者爲戒 쌍봉요씨가 말하길, “정직한 자와 사귀면 나에게 허물이 있으면 반드시 듣게 되고, 신의 있는 사람과 사귀면 신실함을 서로 보여주게 되며, 견문이 많은 사람과 사귀면 앞의 말과 지나간 행실을 많이 알게 되어 지식이 날로 넓어진다. 이 세 종류의 사람은 비록 인지상정으로 공경하면서 꺼려할 바이지만, 그러나 이들과 사귀면 오히려 유익함이 있다. 便辟한 사람은 위엄과 의례에 익혀서 익숙하고, 善柔한 사람은 매사에 아부하고 순응하며, 便佞한 사람은 하는 말이 참 들을 만하다. 이 세 부류의 사람은 모두 친하게 지내고 기뻐하는 것이 인지상정이지만, 이들과 사귀면 오히려 손해가 있다. 세 부류의 사람을 들어 권장하는 것으로 삼았고, 또 다시 세 부류의 사람을 들어 경계하는 바로 삼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 尹氏曰 自天子至於庶人 未有不須友以成者 而其損益有如是者 可不謹哉 윤씨가 말하길, “천자부터 서인에 이르기까지, 반드시 벗으로써 대업을 이루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그 손익에는 이와 같은 것이 있으니,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或問三友之說盡於集註之說而已矣 朱子曰 是亦釋其文之正意云爾 若推而言之 則是三者之於人 皆有薰陶漸漬之益焉 皆有嚴憚畏謹之益焉 皆有興起慕效之益焉 不但如彼之所言而已也 曰 損者之友其相反 奈何 曰 便辟則無責善之誠矣 善柔則無固守之節矣 便佞則無貫通之實矣 혹자가 묻길, “세 벗의 설은 집주에서 말한 설에 그칠 따름입니까?”라고 하였다. 주자가 말하길, “이것 역시 그 문장의 바른 뜻을 해석하여 말하였을 따름이다. 만약 그것을 미루어서 말한다면, 이 세 종류의 벗은 사람에게 있어서, 모두 훈도하고 점차 젖어들게 하는 유익함이 있고, 모두 엄하게 꺼리고 두려워하며 삼가는 유익함도 있고, 모두 흥기하여 사모하고 본받는 유익함도 있으니, 그저 저기에서 말한 바와 같을 뿐인 것은 아니다.”라고 하였다. 다시 말하길, “손해를 주는 자와 사귀는 것은 그와 상반된다는데, 어째서인가요?”라고 하였다. 주자가 말하길, “便辟하면 責善하는 성의가 없게 되고, 善柔하면 굳게 지키는 절개가 없게 되며, 便佞하면 관통하는 실질이 없게 되기 때문이다.”고 하였다. 南軒張氏曰 友者所以輔成己德者 直者有過必聞 諒者忠信相與 多聞者知識可廣 是三者友之則使人常懷進修而不敢自足 得不日益乎 便辟便佞謂便於辟與佞者 善柔謂善爲柔者 辟則容止足恭 柔則每事卑屈 佞則巧言爲悅 是三者友之則 使人日趨於驕惰 焉得不日損乎 自天子至於庶人 皆當謹乎此也 남헌장씨가 말하길, “벗을 사귄다는 것은 도와서 자신의 덕을 이루어주는 것이니, 정직한 사람을 사귀면 내가 허물이 있으면 반드시 듣게 되고, 신의 있는 사람을 사귀면 忠信으로 서로를 인정해주고, 견문이 많은 사람을 사귀면 내 지식을 넓힐 수 있다. 이 세 부류의 사람을 사귀면, 사람들로 하여금 항상 나아가고 닦는 것을 품게 하여 감히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게 한다. 그러니 날마다 보탬이 있지 않을 수 있겠는가? 便辟과 便佞은 威儀와 말재주 좋은 것에 익숙하여 편안함을 일컬어 말한 것이고, 善柔는 굽히기를 잘하는 것을 일컬어 말한 것이다. 辟은 용모와 행동거지가 너무 공손한 것이고, 柔는 매사에 비굴한 것이며, 佞은 교묘한 말로 기쁘게 하는 것인데, 이 세 부류의 사람을 사귀면, 사람들로 하여금 날로 교만함과 게으름을 향해 가도록 만드니, 어찌 날마다 줄어들지 않을 수 있겠는가? 천자로부터 서인에 이르기까지 모두 마땅히 이것을 삼가야 한다.”고 하였다.
吳氏曰 益者增其所未能 損者壞其所本有 友道損益豈止於三 夫子蓋略言之 從是推之皆可求也 三樂亦然 오씨가 말하길, “보탠다는 것은 자신이 아직 잘하지 못하는 것을 잘하도록 더해주는 것이고, 덜어준다는 것은 자신이 본래 갖고 있던 것을 허문다는 것이다. 벗을 사귀는 도의 손익이 어찌 셋에 그치겠는가? 공자께서는 개략적으로 말한 것이니, 이를 따라서 미루어간다면 모두 구할 수 있는 것이다. 三樂도 역시 그러하다.”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