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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과불식(碩果不食)
큰 과실은 다 먹지 않고 남긴다는 뜻으로, 자기만의 욕심을 버리고 자손에게 복을 끼쳐 줌을 이르는 말이다.
碩 : 클 석(石/9)
果 : 열매 과(木/4)
不 : 아닐 불(一/3)
食 : 밥 식(食/9)
이 말은 주역(周易)에 등장하는 말이다. 주역이란 글자 그대로 주(周)나라의 역(易)이란 말이며 역(易)이란 말은 변역(變易), 즉 ‘바뀐다, 변한다’는 뜻이며 천지만물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현상의 원리를 설명하고 풀이한 것이다.
해석을 보니 ‘씨 과일은 먹는 것이 아니다’라는 뜻을 품고 있다. 배가 아무리 고파도 마지막 씨앗은 먹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지금 굶주린다고 씨앗까지 먹어버리면 내일을, 새 봄을 기약할 수 없다. 석과(碩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하는 희망의 씨앗이라는 뜻이다.
석과불식(碩果不食)은 주역의 23번째 괘(卦)인 산지박괘(山地剝卦)에 나오는 말로서 효사(爻辭)의 설명을 보면 ‘큰 실과를 먹지 아니하니(碩果不食), 군자는 수레를 얻고(君子得輿), 소인은 집을 깎는다(小人剝慮)’고 하였다.
소인은 비록 선한 마음으로 집을 깎아 없앴지만, 군자는 오히려 수레를 얻어 집이 없어진 소인을 구제해 준다는 내용이다. 이것은 하늘은 전부 다 죽이는 이치가 없다(天無盡殺之理)는 뜻으로 풀이된다.
씨를 남겨 두어야 하는 것이고, 세상에 인정이 살아 남아야 하는 것이고, 아무리 난리가 나서 세상이 뒤집혀도 살아 남는 사람이 있어 씨가 전해지는 것이다. 즉,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석과불식(碩果不食)이라고 한 것이다.
산지박괘(山地剝卦)의 상구(上九) 효사(爻辭)에 나오는 사자성어이다.
上九 碩果不食.
상구 석과불식.
상구는 큰 과실은 먹히지 않는다.
君子得輿 小人剝廬,
군자득려 소인박려,
군자는 가마를 얻고, 소인은 거처를 앗긴다.
象曰 君子得无 民所載也
상왈 군자득무 민소재야
군자는 얻는 것이 없으나 백성의 추대를 받게 되고,
小人剝廬 終不可用也.
소인박려 종불가용야.
소인은 거처를 앗기고 종내 쓰일 데가 없어진다.
주역에 관하여 시중에 여러 해설서들이 나돌고 있으나 거의 모두가 ‘큰 과일은 먹지 않는다’고 써 놓았는데 ‘큰 과일은 먹히지 않는다’가 올바른 해석이다.
먹지 않는다는 것은 그 과일이 싫어서 또는 배가 불러서 먹지 않는다는 것이고, 먹히지 않는다는것은 사람이 먹고 싶어도 먹을수 없는 귀중한 존재를 말하는 것으로 형이상적인 표현으로 받아 들여야 할 것이다. 즉, 다시 말하면 큰 능력자를 능가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근세의 이름난 주역 연구가 고형(高亨)은 “이로운 재화가 눈앞에 있어도 취하지 말라고 깨우친 것이다(喩 貨利在前而不取)”라고 주석하였다. 취하여 먹으려 해도 먹혀지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산지박괘(山地剝卦)는 주역 64괘중 사대난괘(四大難卦)중의 하나로 박(剝)은 빼앗긴다, 박탈당한다는 의미다. 괘상(卦象)을 살펴 보면, 아래로 다섯 효(爻)가 모두 음(陰)이고, 위로 단 한 효(爻)가 양(陽)이다. 그래서 큰 과실의 형상으로 다른 음(陰)이 먹으려 해도 먹힐수 없는 존재이다.
소인이 군자의 존재를 집어 삼키려 해도 먹히지 않는 존재를 형상화한 괘상(卦象)이다. 이치적으로 구월(九月)에 해당하는 괘(卦)임으로 가을철인 구월에 큰 열매가 열리는 시기이다. 석과(碩果)라는 어휘를 역사적으로 사용한 내력을 살펴보면 거대하게 쌓아서 이룬 공적을 의미한다. 이러한 공적있는 인물을 소인배들이 감히 능가할 수 없다는 의미로 쓰여왔다.
근세에 중국을 통일한 모택동(毛澤東)이 그 동지들과 감행한 대장정의 결과를 비유하여 전기작가(傳記作家) 서지(徐遲)는 정강산기(井岡山記)에서 “모택동 동지의 사상은 이미 싹이 트고 잎이 피어 우거젔으며, 꽃이 피워서 크나큰 열매(碩果)를 맺었고, 나무는 다 자라서 대수(大樹)를 이루었다”고 피력하였다.
야산(也山) 이달선사(李達禪師)는 제자인 대산(大山)의 호송시(號頌詩)에서 석과불식(碩果不食)이라 하였는데. 과연 대산 김석진 옹은 우리 역사 이래 최초로 주역전의대전(周易傳義大全)을 알기 쉽도록 순 한글로 번역하여 출간함으로서 석과불식(碩果不食)의 존재가 되고 말았다.
어느 누가 그 존재를 능가하려 해도 능가할 수 없게 되었으니, 과연 야산선사(也山禪師)는 선견지명(先見之明)이 있는 호송시(號頌詩)를 셨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옛 사람들은 과일을 딸 때 모두 다 따지 않았다. 몇 알은 반드시 남겨 소위 까치밥이라 해 새들의 먹이가 되게 했다. 벼도 마지막 끝 부분은 베지 않고 남겨 두어 가난한 이들의 식량이 되게 했다.
석과불식(碩果不食)
큰 과실은 다 먹지 않고 남긴다는 뜻으로, 자기만의 욕심을 버리고 자손에게 복을 끼쳐 줌을 이르는 말이다.
정치인들의 단점은 나라야 어떻게 되든 말든 혼자 다 쳐먹겠다는 탐욕이다. 1215년 영국왕 존이 귀족들의 강압에 따라 승인한 칙허장. 대헌장(大憲章) 마그나카르타(Magna Carta) 이전에는 왕의 독식시대였다. 그리고 발전해온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라기도 하고 평화를 먹고 자라기도 하면서 입법, 사법, 행정 권력의 분배를 이룩해 왔다. 외국에는 더 나아가 재산, 명예, 권력의 분배까지, 책임, 의무, 권리의 분배까지 나아가고 있다.
한국에는 왕의 독식시대나 가능했던 봉건주의 같은 대통령제로 혼자 다 먹겠다고 난리다. 석과불식(碩果不食)은 주역 64괘 가운데 23번째인 '산지박(山地剝)' 괘에 나온다. 이 괘는 64괘 가운데 가장 어려운 상황을 나타내고 있다. 한 겨울 꽁꽁 얼어붙은 땅 위에 해가 잠시 비췄다가 곧바로 서산으로 넘어가고 마는 그런 국면이다.
음산한 기운이 너무 많아 서로 헐뜯고 깎아 내리는 형국이다. 주역에는 가장 어려운 상황에서도 희망을 말하고 있다. 바로 산지박괘의 마지막 대목에 나오는 구절이다. "씨 과실은 먹히지 않는다. 어진 사람은 간악한 무리들도 끝내 해치지 못한다. 군자는 오두막집에서 나와 수레를 타게 되고, 사악한 무리들은 지금까지 살던 집에서 쫓겨난다."
절망과 역경(逆境)의 상황을 보여준다. 나뭇잎 모두 떨어지고 나목의 가지 끝, 삭풍 속에 남아 있는 마지막 과실이 씨과실이다. 석과불식(碩果不食)이란 이 씨과실(碩果)을 먹지 않는 것이다. 먹지 않고 땅에 심어서 새봄의 싹으로 돋아나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역경을 극복하기 위해서 해야 할 우리의 몫이며, 석과불식(碩果不食)의 교훈이다. 석과를 새싹으로, 다시 나무로 키우고, 숲을 이루어내기 위해서는 장구한 세월, 수많은 일들을 감당해야 한다.
그 먼 여정은 무엇보다 먼저 엽락(葉落)에서 시작한다. 잎을 떨어뜨려야 한다. 거품을 걷어내고 환상을 청산해야 한다. 다음은 체로(體露)다. 잎을 떨어뜨리면 뼈대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바로 우리의 삶을 그 근본에서 지탱하는 뼈대를 직시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분본(糞本)이다. 뿌리를 거름하는 일이다.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은 뿌리가 곧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사람을 키우는 일, 이것이 역경을 극복하는 길이라는 것이 석과불식(碩果不食)의 교훈이다.
석과불식(碩果不食)
나목들이 우두커니 서 있는 초겨울 창밖을 내다보며 한 그림을 우리에게 제시합니다. 칠판에 멋진 솜씨로 잎이진 나무 한 그루를 그리고 거기 빨간 홍시 한 개가 가지 끝에 달려 있는 그림입니다.
먼저 석과불식(碩果不食)의 뜻을 새겨 보면, 석과불식(碩果不食)은 '주역' 산지박(山地剝) 괘의 효사에 나오는 말입니다. 산지박괘의 상괘는 山이 위에 있는 간(艮)괘이고, 하괘는 地가 아래에 있는 곤(坤)괘입니다. 이 괘의 이름은 박(剝)입니다. 빼앗긴다는 뜻입니다.
이 박괘의 모양에서 알 수 있듯이 첫 효에서 5효에 이르기까지 모두 음효입니다. 각각의 효는 시간적 순차성을 나타나내기 때문에 이 박괘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하나하나 음효로 바뀌어 가고 있는 상황을 보여 줍니다. 맨 위의 상효 하나만 양효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마저 언제 음효가 될지 알 수 없는 절망적 상황입니다.
석과불식(碩果不食)은 바로 이 마지막 남은 효사에 나오는 말입니다. 석과불식(碩果不食), '씨 과실을 먹지 않는다' 뜻입니다. 초 겨울 가지 끝에 남은 최후의 감(紅柿)입니다. 지금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제철 그림입니다. 석과(碩果)는 '큰 과일', 곧 '씨 과일'이라는 뜻입니다. '씨 과실을 먹지 않는 것'은 지혜이며 동시에 교훈입니다.
씨 과실이 심어져 새봄의 새싹으로 돋아나고, 다시 자라서 나무가 되고 그 나무들이 모여 훗날 숲을 이루는 모습을 이야기합니다. 역경을 희망으로 바꾸는 지혜이며 가르침입니다. 이제 그 가르침을 하나씩 짚어 보기로 하겠습니다.
첫 번째는 엽락(葉落)입니다. 여름 동안 무성했던 잎은 가을이 되면 모두 떨어집니다. 잎사귀는 한마디로 ‘환상과 거품’이라고 말합니다. '엽락'이란 바로 환상과 거품을 청산하는 것입니다. '논어'에서의 불혹(不惑)은 가망 없는 환상을 더 이상 갖지 않는 것이 불혹이라고 합니다. 그것이 바로 거품을 청산하는 단호함입니다. 어려움을 직면할수록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하고 환상과 거품을 청산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이것이 석과불식의 첫째 교훈 엽락입니다.
다음은 체로(體露)입니다. 엽락 후의 나무는 나목(裸木)이 됩니다. 잎사귀에 가려져 있던 뼈대가 훤히 드러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구조와 뼈대를 직시하는 일입니다. 환상과 거품으로 가려져 있던 우리의 삶과 우리 사회의 근본적 구조를 직시하는 일입니다. 뼈대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정치적 자주성, 둘째 경제적 자립성, 셋째 문화적 자부심이라고 합니다. 개인이든, 사회이든, 국가든 이 뼈대를 튼튼하게 해야 합니다. 뼈대란 우리를 서 있게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분본(糞本)입니다. 분(糞)은 거름입니다. 분본이란 뿌리를 거름하는 것입니다. 낙엽이 뿌리를 따뜻하게 덮고 있습니다. 이 경우 중요한 것은 뿌리가 곧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입니다. 사람은 그 자체가 최고의 가치입니다. 엽락과 체로에 이어 우리가 할 몫이 분본입니다. 뿌리를 거름하는 일입니다. 뿌리가 바로 사람이며 사람을 키우는 것이 분본입니다. 사람을 키우는 일이야말로 그 사회를 인간적인 사회로 만드는 일입니다.
절망과 역경 속에서도 ‘사람’을 키워 내는 것으로 극복하는 것, 이것이 석과불식(碩果不食)의 교훈이고 희망의 언어입니다. 바로 최고의 인문학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어 산지박 괘의 다음 괘가 바로 지뢰복(地雷復) 괘입니다. 땅 밑에 '우레'가 묻혀 있습니다. 산지박 괘의 상효 즉, 단 한 개의 석과가 복(復)괘에서는 땅속 깊숙이 묻혀 있습니다. 석과(碩果)가 땅속에 우레와 같은 가능성을 갖고 묻혀 있는 것입니다.
복(復)은 다시 시작한다는 뜻입니다. 광복절(光復節)의 복(復)입니다. 산지 박이라는 절망의 괘가 지뢰 복이라는 새로운 시작으로 이어집니다. 절망의 괘가 희망의 괘로 이어집니다. 엽락, 체로, 분본의 과정을 거쳐 석과는 이제 새싹이 되고 나무가 되고 숲이 됩니다.
절망의 언어가 희망의 언어로 비약합니다.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해왔던 옛사람들의 철학입니다. 마찬가지로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고 있는 오늘의 우리에게도 석과불식(碩果不食)은 희망의 언어이며 교훈입니다.
석과불식(碩果不食)
석과불식(碩果不食)이란 큰 과일은 먹지 않고 남겨둔다는 뜻입니다. 종자는 어떤 일이 있어도 남겨둬야 합니다. 어찌 곡식뿐이겠습니까. 민족의 존경받는 지도자를 남겨둬야 후손이 긍지와 자부심을 품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아시시에는 가시가 없는 일명 ‘프란치스코의 장미(The Thornless Rose in Assisi)’가 있습니다. 전해오는 얘기로는 프란치스코가 포르티운쿨라(Portiuncula)에 있을 때, 대성당 오른편에 장미 정원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밤 심한 육적인 욕망에 빠진 그가 장미 덤불에 몸을 던져 뒹굴었는데, 그로부터 장미 덩굴에 가시가 없어졌다고 합니다.
가시가 없는 장미는 프란치스코의 하나님에 대한 거룩한 헌신과 인간의 연약함을 보여줍니다. 장미밭에 뒹군 것을 그의 약점으로 부각해 교회의 성자를 없애버릴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인류의 자랑스러운 정신적 유산을 상실하는 것입니다.
석과불식(碩果不食)은 후손을 위한 기성세대의 책임입니다. 후손의 희망을 모두 꺾어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은 이웃과 다툴지라도 변론만 하고 그의 은밀한 일을 누설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다시 회복되고 화목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으라는 것입니다.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갈 5:15)는 말씀을 되새겨야 합니다.
▶️ 碩(클 석)은 형성문자로 硕(석)은 간자(簡字)이다. 머리를 뜻하는 頁(혈)과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에 크다의 뜻(奕; 혁)을 나타내기 위한 石(석)으로 이루어졌다. 큰 머리에서 크다의 뜻이 되었다. 그래서 碩(석)은 ①크다 ②머리가 크다 ③차다 ④충실하다 ⑤단단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클 태(太)이다. 용례로는 학문이 아주 깊은 경지에 이른 사람을 우러르는 뜻에서 이르는 말을 석학(碩學), 큰 기량이나 큰 도량을 석량(碩量), 훌륭한 학자를 석사(碩師), 임금을 잘 보좌하는 훌륭한 신하를 석비(碩毗), 높고 큰 덕이 있는 사람을 석인(碩人), 위대한 학재 또는 그 사람을 석재(碩材), 몸집이 굵고 큼을 석대(碩大), 덕이 높은 사람을 석덕(碩德), 학문과 덕이 높고 나이가 많은 사람을 석로(碩老), 높은 명망을 석망(碩望), 크게 성함이나 자손이 번성함을 석무(碩茂), 위대한 계획이나 큰 계획을 석획(碩劃), 덩치가 매우 큼 또는 훤칠하게 큼을 위석(偉碩), 덕이 높은 사람을 언석(彥碩), 체구가 뛰어나게 헌칠함을 괴석(魁碩), 예로부터 명망이 높은 대학자를 숙석(宿碩), 큰 과실은 다 먹지 않고 남긴다는 뜻으로 자기만의 욕심을 버리고 자손에게 복을 끼쳐 줌을 이르는 말을 석과불식(碩果不食), 기업이나 개인이 기부한 기금으로 연구 활동을 하도록 대학에서 지정된 교수를 석좌교수(碩座敎授), 가축이나 짐승 따위가 비대함을 이르는 말을 박석비돌(博碩肥腯) 등에 쓰인다.
▶️ 果(실과 과/열매 과, 강신제 관)는 ❶상형문자로 나무 위에 열매가 열린 모양을 본 뜸, 또 열매를 맺는다는 데서 일의 결과나 혹은 과감히 함을 뜻하게 되었다. ❷상형문자로 果자는 '열매'나 '과실', '결과'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果자는 木(나무 목)자와 田(밭 전)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果자의 갑골문을 보면 나뭇가지 위로 열매가 맺힌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금문에서는 이것이 간략하게 田자로 표현되었다. 과실수는 일 년에 한 번씩 열매를 맺는다. 봄이 오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 시작하여 가을에는 잘 익은 과일을 수확할 수 있다. 그래서 果자는 비단 열매만을 뜻하지 않고 어떠한 일의 최종 '결과'나 '결실'이라는 뜻도 갖게 되었다. 그래서 果(과, 관)는 (1)결과(結果) (2)인연 소생(因緣所生)의 일체(一切)의 법 (3)불과(佛果) (4)과실(果實)이나 과실 나무를 나타내는 말 등의 뜻으로 ①실과(實果), 과실(果實) ②열매 ③결과(結果) ④시녀(侍女) ⑤과연(果然), 정말로 ⑥끝내, 마침내 ⑦만약(萬若), 가령(假令) ⑧과단성(果斷性)이 있다, 과감하다 ⑨이루다, 실현하다 ⑩속에 넣어 싸다 ⑪시중들다 그리고 ⓐ강신제(降神祭: 내림굿)(관)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열매 실(實),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인할 인(因)이다. 용례로는 결단성 있고 용감하게 행동함을 과감(果敢), 알고 보니 정말로를 과연(果然), 먹을 수 있는 나무의 열매를 과실(果實), 과실나무로 열매를 얻기 위하여 가꾸는 나무를 통틀어 이르는 말을 과수(果樹), 수행한 공덕으로 깨달음을 얻은 지위를 과상(果上), 과실 깎는 칼을 과도(果刀), 과연이나 아닌 게 아니라 정말로를 과약(果若), 과실을 담는 쟁반을 과반(果盤), 과단성 있고 예민함을 과예(果銳), 딱 잘라 용기 있게 결정함을 과단(果斷), 술과 과실이라는 뜻으로 매우 간소하게 차린 제물을 주과(酒果), 과실을 솎아냄을 적과(摘果), 뒤에 나타나는 좋지 못한 결과를 후과(後果), 어떤 원인으로 인하여 이루어진 결말을 결과(結果), 보람으로 나타나는 좋은 결과를 효과(效果), 일의 이루어진 결과를 성과(成果), 원인과 결과를 인과(因果), 온갖 과일을 백과(百果), 신선한 과실과 채소를 통틀어 이르는 말을 청과(靑果), 차와 과자를 다과(茶果), 말린 과실을 건과(乾果), 굳세고 과감함을 강과(剛果), 실과가 익을 대로 다 익지 못하고 저절로 떨어진 것을 낙과(落果), 행위에 대하여 그 결과를 몸으로 받는 일을 득과(得果), 미리 말한 것과 사실이 과연 들어맞음을 이르는 말을 과약기언(果若其言), 악한 원인에서 악한 결과가 생긴다는 뜻으로 악한 일을 하면 반드시 앙갚음이 되돌아옴을 이르는 말을 악인악과(惡因惡果), 착한 원인에 착한 결과라는 뜻으로 선업을 닦으면 그로 말미암아 반드시 좋은 업과를 받음을 이르는 말을 선인선과(善因善果), 꽃이 먼저 피고 나중에 열매를 맺는다는 뜻으로 딸을 먼저 낳은 다음에 아들을 낳음을 이르는 말을 선화후과(先花後果), 원인과 결과가 서로 호응하여 그대로 갚음을 이르는 말을 인과보응(因果報應), 원인과 결과는 서로 물고 물린다를 이르는 말을 인과응보(因果應報) 등에 쓰인다.
▶️ 不(아닐 부, 아닐 불)은 ❶상형문자로 꽃의 씨방의 모양인데 씨방이란 암술 밑의 불룩한 곳으로 과실이 되는 부분으로 나중에 ~하지 않다, ~은 아니다 라는 말을 나타내게 되었다. 그 때문에 새가 날아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음을 본뜬 글자라고 설명하게 되었다. ❷상형문자로 不자는 ‘아니다’나 ‘못하다’, ‘없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不자는 땅속으로 뿌리를 내린 씨앗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아직 싹을 틔우지 못한 상태라는 의미에서 ‘아니다’나 ‘못하다’, ‘없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참고로 不자는 ‘부’나 ‘불’ 두 가지 발음이 서로 혼용되기도 한다. 그래서 不(부/불)는 (1)한자로 된 말 위에 붙어 부정(否定)의 뜻을 나타내는 작용을 하는 말 (2)과거(科擧)를 볼 때 강경과(講經科)의 성적(成績)을 표시하는 등급의 하나. 순(純), 통(通), 약(略), 조(粗), 불(不)의 다섯 가지 등급(等級) 가운데 최하등(最下等)으로 불합격(不合格)을 뜻함 (3)활을 쏠 때 살 다섯 대에서 한 대도 맞히지 못한 성적(成績) 등의 뜻으로 ①아니다 ②아니하다 ③못하다 ④없다 ⑤말라 ⑥아니하냐 ⑦이르지 아니하다 ⑧크다 ⑨불통(不通: 과거에서 불합격의 등급) 그리고 ⓐ아니다(불) ⓑ아니하다(불) ⓒ못하다(불) ⓓ없다(불) ⓔ말라(불) ⓕ아니하냐(불) ⓖ이르지 아니하다(불) ⓗ크다(불) ⓘ불통(不通: 과거에서 불합격의 등급)(불) ⓙ꽃받침, 꽃자루(불)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아닐 부(否), 아닐 불(弗), 아닐 미(未), 아닐 비(非)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옳을 가(可), 옳을 시(是)이다. 용례로는 움직이지 않음을 부동(不動), 그곳에 있지 아니함을 부재(不在), 일정하지 않음을 부정(不定), 몸이 튼튼하지 못하거나 기운이 없음을 부실(不實), 덕이 부족함을 부덕(不德), 필요한 양이나 한계에 미치지 못하고 모자람을 부족(不足), 안심이 되지 않아 마음이 조마조마함을 불안(不安), 법이나 도리 따위에 어긋남을 불법(不法), 어떠한 수량을 표하는 말 위에 붙어서 많지 않다고 생각되는 그 수량에 지나지 못함을 가리키는 말을 불과(不過), 마음에 차지 않아 언짢음을 불만(不滿), 편리하지 않음을 불편(不便), 행복하지 못함을 불행(不幸), 옳지 않음 또는 정당하지 아니함을 부정(不正), 그곳에 있지 아니함을 부재(不在), 속까지 비치게 환하지 못함을 불투명(不透明), 할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것을 불가능(不可能), 적절하지 않음을 부적절(不適切), 부당한 일을 부당지사(不當之事), 생활이 바르지 못하고 썩을 대로 썩음을 부정부패(不正腐敗), 그 수를 알지 못한다는 부지기수(不知其數), 시대의 흐름에 따르지 못한다는 부달시변(不達時變) 등에 쓰인다.
▶️ 食(밥 식/먹을 식, 먹이 사, 사람 이름 이)은 ❶회의문자로 饣(식)은 동자(同字)이다. 사람(人)이 살아가기 위해 좋아하며(良) 즐겨먹는 음식물로 밥을 뜻한다. 사람에게 먹이는 것, 먹을 것, 먹게 하다는 飼(사)였는데 그 뜻에도 食(식)을 썼다. 부수로서는 그 글자가 음식물 먹는데 관계가 있음을 나타낸다. ❷상형문자로 食자는 ‘밥’이나 ‘음식’, ‘먹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食자는 음식을 담는 식기를 그린 것이다. 갑골문에 나온 食자를 보면 음식을 담는 식기와 뚜껑이 함께 그려져 있었다. 食자는 이렇게 음식을 담는 그릇을 그린 것이기 때문에 ‘밥’이나 ‘음식’, ‘먹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食자가 부수로 쓰일 때도 대부분이 ‘음식’이나 먹는 동작과 관련된 뜻을 전달하게 된다. 참고로 食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모양이 바뀌어 飠자나 饣자로 표기된다. 그래서 食(식)은 ①밥 ②음식 ③제사 ④벌이 ⑤생활 ⑥생계 ⑦먹다 ⑧먹이다 ⑨현혹케하다 ⑩지우다 그리고 ⓐ먹이, 밥(사) ⓑ기르다(사) ⓒ먹이다(사) ⓓ양육하다(사) ⓔ사람의 이름(이)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음식을 청해 먹은 값으로 치르는 돈을 식대(食代), 부엌에서 쓰는 칼을 식도(食刀), 여러 가지 음식을 먹는 일을 식사(食事), 한 집안에서 같이 살면서 끼니를 함께 먹는 사람을 식구(食口), 음식점이나 식당에서 먹을 음식과 바꾸는 표를 식권(食券), 밥을 먹기 전을 식전(食前), 식사를 마친 뒤를 식후(食後), 음식을 담아 먹는 그릇을 식기(食器), 음식만을 먹는 방 또는 간단한 음식을 파는 집을 식당(食堂), 뜻밖에 놀라 겁을 먹음을 식겁(食怯), 음식에 대하여 싫어하고 좋아하는 성미를 식성(食性), 음식(飮食)을 만드는 재료를 식료(食料), 남의 집에 고용되어 부엌일을 맡아 하는 여자를 식모(食母), 음식(飮食)을 먹고 싶어하는 욕심을 식욕(食慾), 한번 입 밖으로 냈던 말을 다시 입속에 넣는다는 뜻으로 앞서 한 말을 번복하거나 약속을 지키지 않고 거짓말을 하는 경우를 가리키는 말을 식언(食言), 각종 식품을 파는 가게를 식품점(食品店), 음식을 먹은 뒤에 몸이 느른하고 정신이 피곤하며 자꾸 졸음이 오는 증세를 식곤증(食困症), 식량이 떨어져 기운이 다함을 식갈역진(食竭力盡), 식객이 삼천 명이라는 뜻으로 함께 하는 사람이 대단히 많음을 식객삼천(食客三千), 나라의 녹을 받아먹음을 식국지록(食國之祿), 근심 걱정 따위로 음식 맛이 없음을 식불감미(食不甘味), 음식을 잘 차려 먹지 아니함을 식불이미(食不二味), 먹는 것으로 하늘을 삼는다는 뜻으로 사람이 살아가는 데 먹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을 식이위천(食以爲天)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