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룸에서 해돋이를 볼 수있다니...
우리 내일 꼭 해돋이 보자
'해돋이 시간이 5시 17분이군'
검색하고 알람까지 맞추어놓았다
그리고 따뜻한 차를 마시면서 일출을 기다리겠노라며
잠자기 전에 포트며 컵이며 죄다 뜨겁게 데워 소독까지 하는 극성을 떨었다

새벽녘 잠시 눈이 떠졌는데
커튼 밑으로 발그레한 빛이 스며든다
시계를 보니 4시 40분
커튼을 빼꼼 열었다가 깜짝 놀랐다
수평선 너머에서 바다가 빨갛게 타고 있었다
아름다운 여명이다
계속 ' 어머' 소리가 멈추질 않는다
딸들도 침대에서 밖을 보다가 담요를 두르고 나온다

차를 4잔 만들어 발코니로 나간다
아 정말 온전한 해돋이를 볼 수 있는걸까?
가슴이 두근거린다
아니 온전한 해돋이가 아니라도
이렇게 예쁜 수평선이라니, 여명이 이렇게 아름답다니 하며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마도 온전한 해돋이를 보지 못했다면
아름다운 여명만으로도 만족했을 것이다


그런데
아아 그런데
이렇게까지 아름다울 수가.......
내생에 바다에서 떠오르는 온전한 해돋이는 처음이다
이렇게 완벽한 해돋이라니
내가 본 해돋이는
중국 황산에서 구름사이로 떠오른 해와
터키 카파도키아에서 열기구를 타고 지평선에 떠오르는 해를 본 게 전부다
특히 해돋이는 날씨가 추운 겨울에 잘 볼 수 있다는 말을 들은 터라
5월의 따뜻한 날씨에 그다지 큰 기대를 하지 않았었다
휴가철 동해안 여행 때
해돋이 보겠다고 깊이 잠든 아이들 새벽에 들쳐업고
바다로 달려나가봤지만
늘 허탕만 치고 돌아와야했다
여름엔 해무가 가득해서 보기가 어렵다고 한다









얼마나 환호성을 지르고 감탄사를 연발했는지
아마도 1년치의 감탄사를 다 써버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수평선에 빼꼼 고개를 내밀 때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은 해는 우리의 기대감을 100프로 만족시켜줬다
수평선 위로 수줍게 머리 끝을 보이기 시작하다가
조금씩조금씩 자라듯이 위로 올라온다
불쑥 수평선을 딛고 서는가 싶더니
어느순간 힘찬 도움닫기하듯 톡 튀어 올라오는 모습이 얼마나 감동적이던지
앞으로 다신 해돋이를 보지 못한다해도
오늘의 벅찬 모습만으로도 충분하기에
그리 아쉬워할 것 같지 않다
어제 심하게 불던 바람이 구름과 해무를 다 몰아갔나보다
오늘의 완벽한 해돋이를 위해.
고마워
이런 아름다운 날을 선물해줘서
비록 흔들리긴 했지만
해가 수평선위로 솟아나오는 4분여 시간을 고스란히 담아낸 기록이다
다시 좀 눈을 붙여야하는데
쉽게 흥분이 가라앉지 않아 잠들기가 어렵다
뒤척이다 까무룩 잠이 들었다가 일어나 아침 단장을 한다

여자 셋의 외출준비를 기다리는 한 남자의 시간은
물리적인 것보다 훨씬 길 수도 있다는 걸 알지만
어쩌겠는가 여자 셋과 함께 하려니....
발코니에서 기다리는 뒷모습이
'데이비드호크니'의 작품을 연상시킨다

바다야,
우리 다음에 또 만나자
세인트존스 호텔 그랑블루 스위트룸 1427호
강릉에 온다면 꼭 다시 찾아올게 하며 우린 체크아웃을 한다

참
이 호텔은 1회용 어메니티를 사용하지 않고 여러번 쓸 수 있는
큰 용기에 담긴 샴푸 린스 비누 등이 제공된다
쓰레기도 줄고
자원낭비도 줄겠구나
이런 시도를 다른 호텔들도 했으면 좋겠다

아침은 사천면에 위치한 '장안횟집'으로 우럭미역국을 먹으러 간다

우럭 미역국은 예전에 태안에서 먹어본 적이 있는데
태안에서는 뽀얀 지리국물로 기억한다
보양식을 먹는 기분이었다
역시나 이집 우럭미역국이 유명하다더니
진한 국물맛이 입안에 바다를 확 풀어놓는 기분이다
미역이 오래 우러나와 포르스름한 빛깔이 이곳 바다빛을 닮았다
한공기를 다 말아서 깔끔히 먹었다
우우 배불러~~~
이럴 때는 또 커피가 생각나죠잉

식당에서 멀지 않은 곳에 미리 검색해 둔 카페 <곳;>
사천면 진리 해변길에 위치한 곳인데
카페거리인 안목해변보다 한적하고 깔끔한 바다가 맘에 든다
바다가 어찌 이리 맑을까나
참 여긴 동해안이지
서해바다를 자주보는 나는 꼭 촌뜨기처럼 신기해한다

에매랄드 빛 바다 앞에
세련되고 깨끗한 건물이 주차장까지 완벽하게 구비했다
주차장 있는 바닷가의 카페라니....
돈 많이 벌겠네요(속물처럼 인사해서 미안해요)
이곳에 오는 이들에게 참 낭만적인 시간을 만들어주시겠네요
(쪼꼼 다듬은 인사말)




어디에 앉아도 바다가 보인다
햇살 좋은 날엔 테라스가 인기겠다

큰 딸은 아마도 아빠를 조르고 있는중
뭘 해달라고 조르고 있남?
포로처럼 잡혀서도 허허실실 웃고 있는 딸바보 인증샷!



이 천국으로 오르는 계단은
바닷바람에 조금 공포감을 주지만
보고 올라가지 않을 만용이 없지 않은가

위의 사진 3장은 아주 얌전한 걸루 간신히 골랐음
사실은 바람때문에 이렇게 엽기적인 모습이 대부분임
내가 희생해서 바람 많이 부는 날엔
사진이 이렇게 나온다는 걸 보여준 거임

이런 시간이 좋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냥 좋은 시간
앞에 바다가 있고, 테이블에 커피가 놓여있고
사랑하는 가족이 함께 있는데 뭐가 더 필요한가
조잘조잘대는 딸들의 이야기도
저음으로 들리는 아빠의 의견도
낄낄 웃게 만드는 엄마의 엉뚱한 이야기도
이 곳의 추억으로 남을테지


컵에 새겨진 글귀가 참 좋다
이후에도 당신의 행복이 계속되길 바란다는 뜻?
(짧은 영어실력자의 해석)

이런 풍광을 두고 일어설 때는 늘 아쉬움이 남는다
다음을 맡겨놓고 카페문을 나선다
카페문을 나서면 바다로 입수할 것만 같은 뷰다

아쉬움에 해변 잠깐 걸어보기
바람이 날 가만두질 않는다
얼른 가족들한테 돌아가라는 듯
뒤돌아보니 아무도 안 따라오네
이번 여행 속의 바다는 뛰어들기 보단 관조하는 것으로.

내려오는 길에 들른 문막휴게소
예전엔 하도 문막 근처에서 차가 정체되어
이름을 잘못지었다며 투덜댔었다
문막, 문을 막으니 이렇게 차가 밀리잖아요
문 막지 말라고요~~~
아재개그 늘 날리며 강원도를 오르락거리던 시절이 있었지
이 휴게소는 너무 낡아 리모델링 중이다

강원도의 휴게소에선 역시 감자를 먹어줘야지요
아 한계령에 가 보고 싶다
지금은 반듯반듯한 도로가 많이 뚫려 잊혀져가는 고갯길
구불구불 한계령 휴게소에서 먹는 감자맛이 최고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