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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여행을 좋아하는 우리 가족은 첫째 아이에 이어 둘째 아이까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해 1학기 기말고사가 끝나자마자 북유럽여행을 가기로 계획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각자 짐을 꾸려 배낭여행을 함께 한 이후 10년 만에 가족모두 같이 떠나는 여행이라 무척 설레고 기대되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인터넷으로 검색하고 지도를 펼쳐 놓고 이것저것 자료를 살폈다. 백야의 나라 노르웨이, 환상의 피오르드, 빙하호수 등 천혜의 자연유산을 지니고 아름다운 숲으로 유명하지만 교통비 등 물가가 비싸기로도 유명하다. 15박16일 일정으로 계획을 짠 우리는 여행사를 통하지 않고 직접 비행기 티켓, 렌터카, 산장 등을 예약하고 현지에서 쓸 내비게이션, 지도, 비상약, 식품, 기타 준비물 등을 챙겼다. 여름 날씨지만 산 위에서 추울 때 입을 오리털 파카 등 여벌옷과 쌀과 밑반찬, 양념류, 코펠과 조그만 전기밥통까지 짐을 싸고 보니 거의 이삿짐 수준이었다.
드디어 출발~! 인천공항을 출발해 노르웨이 오슬로 공항에 도착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가운데 첫날 숙박할 호텔로 가서 짐을 풀었다. 다음날 아침 시내구경을 하며 오슬로 중앙역으로 가서 렌터카업체에서 차를 빌려 가져온 짐들을 싣고 진짜 여행을 시작했다.
도시를 떠나 고속도로를 달려 산간지대로 들어서자 해발 1,000m도 안 되는데도 흰 눈이 덮인 산이 나타나고 길 양옆에도 눈이 쌓여 있다. 먼저 뤼세 피오르드 부근의 캠핑장으로 가서 숙소를 정한 뒤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과일과 주먹밥을 점심도시락으로 준비해 쉐락볼튼(Kieragbolten)을 보기 위해 화강암으로 이뤄진 바위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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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르웨이 로갈란주의 시에라산 위 절벽과 절벽 사이 아슬아슬하게 끼어 있는 공깃돌 바위 같은 쉐락볼튼 바위에서 남편과 함께했다.
- 노르웨이 로갈란주의 시에라산(Kierag Mt·1,084m) 위에 있는 쉐락볼튼 바위는 빙하가 갈라져 생긴 좁고 긴 절벽과 절벽 사이에 간신히 끼어 있는 공깃돌 바위.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한 아찔한 이 바위는 해발 984m 지점에 위치해 있는데 우리 외에도 그 기묘한 모습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이 오르고 있었다. 오르는 도중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스카이다이빙을 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최대한 인공적인 계단이나 손잡이를 설치해 놓지 않아서 산 정상까지 오르는 데 3시간가량이나 걸리며 만만치 않았다. 도중에 힘들어 포기하고 싶었지만 그 바위를 보려고 여기까지 왔는데 그만둘 수는 없었다.
자연을 빚다가 일부러 끼워 놓은 듯한 바위
막상 정상에 도착했는데 안개가 끼어 정상표시 외에 갈림길 방향 푯말만 희미하게 보이고 전체적인 경치가 보이지 않아 실망스러웠다. 쉐락볼튼 방향을 가리키는 쪽으로 언덕 모퉁이를 돌아서는 순간 마치 조물주가 아름다운 자연을 빚다가 일부러 끼워 놓은 듯한 기묘한 바위가 나타나 다들 탄성을 질렀다.
그 바위에 어떻게 올라갔는지 사람들이 그 위에서 사진을 찍고 있어 호기심에 그쪽으로 가까이 가니 바위 뒤쪽으로 연결된 길이 나 있다. 나는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한데 우리 아이들은 담력 실험을 하는지 바위에 올라가 양팔을 벌리고, 심지어 펄쩍 뛰며 자기만의 포즈로 인증샷을 남겼다. 나는 부들부들 떨리는 발걸음을 조심조심 옮겨 바위에 올라서자 발아래로 아찔한 모습에 어지러워 겨우 사진 한 장 찍고 곧바로 내려오니 살았다는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큰 암벽으로 이어진 하산길에 두 발 두 손을 다 써가며 겨우 내려오니 왕복 5시간 정도 걸린다고 쓰인 안내판이 보인다. 하이킹이라 해서 등산화도 신지 않고 왔는데 만만치 않은 수준이었다.
오후엔 숙소에서 푹 쉬고 다음날 페리를 타고 노르웨이 남부지역 마을 스타방에르에서 내려 프레이케스톨렌(Preikestolen)으로 갔다. 이곳을 오르는 관광객도 많은지 휴일 북한산에 오르는 사람들처럼 계속 줄지어 갔다. 우리 딸은 전날 힘들었는지 도중에 낙오하고 한곳에 쉬며 기다리고 있겠다고 한다. 아쉽지만 할 수 없다.
드디어 사람들로 북적이는 편편한 절벽 위 제일 끝에 이르자 어제 지나온 뤼세 피오르드가 눈앞에 황홀하게 펼쳐졌다. 까마득한 절벽 꼭대기라 하늘과 가깝다는 생각에 이곳을 일명 ‘천국의 제단’이란 이름을 붙였나보다. 나는 절벽 아래를 보기만 해도 아찔한데 아슬아슬하게 절벽 끝에 걸터앉아 다리를 내려뜨린 채 경치를 감상하거나 엎드려서 절벽 아래를 구경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오슬로 시내의 뭉크미술관, 노르웨이 제2 도시 베르겐의 세계문화유산인 브리겐 구시가지와 호숫가 미술관, 송네 피오르드, 솔박의 바닷가 캐빈 바비큐, 플람, 요스테달빙하, 브릭스달빙하 등의 빙하호수…. 노르웨이는 풍부한 물과 아름다운 숲, 잘 닦인 도로, 편안하게 잘 꾸며진 크고 작은 캠핑장, 쉼터, 곳곳의 큰 슈퍼 등 알뜰 여행자들에겐 캠핑 천국이었다. 보름간 꿈같은 일정을 마치고 돌아왔다.
한국드라마를 보면서 한국어를 익힌다는 숲속 캠핑장 주인 아가씨가 한국 사람이라며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던 일,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때 이후로 온 가족이 하루 24시간 부대끼며 농담하며 웃기도 하고 신경이 예민해져 서로 얼굴 붉히기도 하고 분위기 싸늘해졌던 일 등이 떠올라 웃음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