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디터백성호
관심
(47) 예수 당시 바리사이들이 믿었던 부활
모든 유대인이 사후 부활을 믿은 것은 아니었다. 예수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였다. 사두가이파는 제사장을 중심으로 한 유대교 성직자 계층이었다. 유대 사회의 지배층인 사두가이파는 헤롯 왕가와 함께 로마 제국에 협조하며 눈앞의 이익을 좇는 기득권층으로 대단히 현세적이었다. 신은 믿었지만 육신의 부활은 믿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소수였다.
이스라엘 예루살렘 통곡의 벽에서 기도를 하고 있는 정통파 유대인들. 그들은 지금도 마지막 심판의 날에 땅속에 묻혔던 이들이 부활한다고 믿고 있다. 백성호 기자
바리사이파는 달랐다. 바리사이들은 부활을 믿었다. 사두가이파에 비하면 바리사이파는 다수였다. 그들은 사람이 죽으면 땅속에 묻힌 육신이 일정 기간 썩다가 다시 본래의 몸으로 되살아난다고 믿었다. 바리사이들에게는 그것이 ‘상식적인 사후 세계관’이었다.
갈릴래아 호수에서 예수의 설교를 듣던 바리사이들도 부활을 믿었다. 올리브산에서, 광야에서, 예루살렘에서 예수의 설교를 듣던 숱한 바리사이들은 ‘예수의 부활’이 있기 전에 이미 육신의 부활을 믿고 있었다.
요세푸스는 『음부론』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몸이 썩는다고 해서 완전히 소멸되는 것은 아니며 땅이 유해를 받아 보존하는 것이다. 몸은 종자(seed)와 같아서 비옥한 땅에서 잘 자란다. 뿌려진 것은 단지 낟알에 불과하나, 전능하신 창조주 하느님의 음성에 싹이 터서 몸을 입은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일으킴을 받을 것이다.”
부활에 대한 요세푸스의 관점은 바리사이의 관점을 대변한다. 그들은 죽어서 땅에 묻힌 몸이 씨앗처럼 자란다고 믿었다. 육신이 썩는다고 해서 완전히 소멸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골고타 언덕에는 지금도 유해들이 묻혀 있다. 땅속에는 2000년 전의 유해들도 있을 것이다. 그중에는 예수를 직접 만나고, 예수의 설교를 직접 듣고, 예수의 십자가 처형을 두 눈으로 목격한 이들도 있지 않을까.
예루살렘 올리브산에 있는 유대인 묘지. 사막 지형인 이스라엘에서는 묘지 위에 돌멩이를 올려놓으면서 고인을 추모한다. 백성호 기자
골고타 언덕에 섰다. 참혹한 처형의 땅, 서글픈 죽음의 땅. 그런 곳이 어떻게 부활의 땅, 생명의 땅이 됐을까. 골고타 언덕의 좁은 길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순례객들이 있었다. 저마다 예수의 부활, 그 수수께끼를 안고 묵상에 잠겨 있었다.
성경에는 예수가 죽은 나자로를 되살리는 대목이 나온다. 위독한 나자로가 아니라 이미 죽어서 온몸에 천을 두르고 무덤 속에 누워 있었던 나자로가 일어나 뚜벅뚜벅 걸어 나오는 장면이 성경에 등장한다. 과학의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은 이 불가사의한 대목에 강한 물음을 제기한다.
그리스도교인들조차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들은 “죽었다 다시 살아나는 것이 신의 섭리에 맞는가?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더구나 지독한 냄새를 풍길 정도로 주검이 부패한 상태라면 더더욱 믿기지 않는다”고 따진다.
그렇다면 예수 당대에는 어땠을까. 바리사이도 그렇게 봤을까. 그들에게 ‘죽음 후의 부활’은 낯선 개념이 아니었다. 죽은 이를 되살린 예수의 일화도 그렇고, 죽은 뒤 몸소 되살아난 예수의 이적 역시 바리사이의 사후관과 충돌하지 않았다.
‘죽음 후 부활’은 지금만 뜨거운 감자가 아니다. 예수 당시에도 ‘부활’을 둘러싸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성경에 그 장면이 구체적으로 기록돼 있다.
예수 당시 사두가이파와 바리사이들의 사후 부활관이 달랐다. 기득권 세력이던 사두가이파는 현세에 만족하며 사후 부활을 믿지 않았다. 백성호 기자
사두가이파는 부활은 있을 수 없다고 여겼다. 그들이 예수에게 물었다.
“스승님, 모세는 ‘어떤 사람의 형제가 자식 없이 아내만 두고 죽으면, 그 사람이 죽은 이의 아내를 맞아들여 형제의 후사를 일으켜주어야 한다’고 저희를 위하여 기록해놓았습니다. 그런데 일곱 형제가 있었습니다. 맏이가 아내를 맞아들였는데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래서 둘째가 그 여자를 맞아들였지만 후사를 두지 못한 채 죽었고, 셋째도 그러하였습니다. 이렇게 일곱이 모두 후사를 남기지 못하였습니다. 맨 마지막으로 그 부인도 죽었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다시 살아나는 부활 때에 그 여자는 그들 가운데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일곱이 다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으니 말입니다.”(마르코 복음서 12장 18~23절)
풀리지 않는 퍼즐이다. 적어도 사두가이파에게는 그랬다. 만약 부활이 있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사두가이파의 눈에는 답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예수에게 물었다.
단순히 예수를 곤경에 빠뜨리려 한 것만은 아니었다.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가이파에게는 절박한 문제였다. 부활에 대한 막다른 골목에서 마주친 물음, 사두가이파는 그 물음을 예수에게 내밀었다.
예수는 이렇게 답했다. “너희가 성경도 모르고 하느님의 능력도 모르니까 그렇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 사람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날 때는,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이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아진다.”(마르코 복음서 12장 24~25절)
예수는 사두가이들의 안목이 틀렸다고 지적했다. 그들은 성경도 모르고, 하느님의 능력도 모른다고 했다. 당시 사두가이들은 성경을 꿰뚫지 못했다. 이 세상을 보는 눈으로 죽음 후의 세상도 보려 했다. 예수는 손을 내저었다. 부활할 때에는 장가갈 일도 없고 시집갈 일도 없다고 했다. 왜 그럴까. ‘존재의 방식과 차원’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예수는 죽음 후의 부활, 그때는 인간이 천사들과 같아진다고 말했다. 갈릴리 호수에 노을이 지고 있다. 백성호 기자
예수는 이를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아진다”고 표현했다. 루카 복음서의 예수는 “천사들과 같아져서 더 이상 죽는 일도 없다”(20장 36절)고 덧붙였다. 그러니 부활한 뒤에 우리는 ‘천사의 속성’과 같아진다. 예수는 그렇게 말했다.
짧은 생각
생각할수록
놀랍습니다.
2000년 전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예수의 부활이 있기 전에
유대인들은
이미 죽음 후의 부활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올리브 산에서,
갈릴리 호숫가에서,
사해와 광야에서
예수의 설교를 듣던
유대인 중에는
이미
죽음 후의 부활을
믿고 있던 사람이
꽤 많았습니다.
유대인들은
마지막 심판의 날에
땅속에 묻혔던
이들이 다시
되살아난다고
믿었습니다.
2000년 전에만
그런 게 아닙니다.
유대인들은
지금도
하느님의 마지막 심판 날에는
무덤 속에 묻힌 이들이
다시 살아난다고
믿습니다.
예수를 따르던
유대인들은
2000년 전에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믿었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이면
하늘나라 사람입니다.
천국 사람입니다.
하늘나라 사람이면
죽은 후에
당연히
부활해야
하는 겁니다.
만약 죽은 뒤에
부활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당시
유대인의 종교관에서는
하늘나라 사람일 수가
없는 겁니다.
2000년 전
예수가 살던 시대의
유대교는
많은 이가 사후 부활을 믿던
종교였습니다.
그때도
부활을 둘러싼
치열한 논쟁이
있었습니다.
육신의 부활이냐,
아니면
영혼의 부활이냐.
마지막 심판의 날에
무덤에서
다시 일어서야 하니
유대인들은 지금도
화장(火葬)을 하지 않습니다.
유대 전통에서는
매장을 합니다.
동굴 무덤이나
돌로 된 관에다
묻습니다.
예루살렘의 올리브 산에
올라가면
지금도 유대인들의
돌로 된 관들이
묘지에 줄지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죽음 후의 부활,
그때는
어떤 상태일까요.
예수는
이에 대해
뭐라고 말했을까요.
그 근거가
신약성경에
남아 있습니다.
예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늘에 있는
천사와 같아진다고,
천사들과 같아져서
더 이상 죽는 일이
없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
천사의 속성과
같은 속성으로
존재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천사의 속성이란
뭘까요.
요한복음에는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을 통하지 않고
생겨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돼 있습니다.
그러니
천사의 속성 역시
신의 속성에서
나온 겁니다.
우리가
천사의 속성을
공유하게 된다면
신의 속성도
공유하게 되는 겁니다.
다시 말해
선악과 이전으로,
신이
처음 인간을 창조했던 대로,
선악과에 물들지 않은
아담과 하와의 속성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그럼 부활에 담긴
진정한 메시지가 뭘까요.
그건 신의 속성을
회복하라는 뜻이 아닐까요.
에디터
관심
중앙일보 종교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