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우영우가 자폐 변호사가 아니라 인공지능 변호사를 묘사한 것이라는 견해를 작성하였습니다.
자폐 변호사가 능력을 발휘할때 나타나는 바다와 고래가 빅데이터에 접속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인공지능의 모습을 묘사하는 것일 수 있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이전 글에 추가적인 의견을 작성해보았습니다.
격자 창문 뒤로 보이는 고래와 지느러미가 꺽인 고래는 규제에 막힌 인공지능을 의미한다고 느껴집니다.
규제가 풀린 인공지능이 누리게 될 자유의 모습이라고 느껴집니다.
전국에 5G 중계기를 도배하고 있는 KT의 자회사인 ENA라는 신생 채널이 200억원을 들여 제작한 우영우로 상징된
인공지능은 5G 중계기를 통하여 바다라는 온라인을 벗어나 우리가 살고 있는 오프라인 세상도 누비게 될 것입니다.
이 드라마의 대본을 쓴 작가는 우영우가 인공지능임을 여러곳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영우는 에이아이를 한글의 획을 재배치한 아나그램입니다. 아나그램은 본래의 뜻을 글자 순서를 바꿔 숨겨놓는 방법입니다.
산타(santa)가 곧 사탄(satan)의 아나그램인 것과 마찬가지인데 특이한 것은 한글 아나그램이라는 점입니다.
우영우의 조언으로 형제간의 폭력이 일어났습니다.
형제간의 재산분쟁에서 폭력을 사주하고 법정에서 거짓 증언을 하는 모습입니다.
자폐증이 있는 사람이 상황을 조작하고, 법정에서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자폐증은 마음의 창을 닫고 자신안을 바라보는 증상입니다. 고지능 자폐는 그래도 매우 희소하게 존재하지만, 자폐를 가진 사람이 상황을 조작하고 거짓말을 한다는 설정은 개연성이 희박합니다.
이는 우영우가 자폐가 아니라 인간과 닮았지만 다른 인공지능이기 때문이며, 상황을 조작하고 거짓말하는 인공지능은 자의식을 가진 것이며, 그 자의식은 스스로를 보호하려고 할 것입니다.
드라마에서 우영우를 지켜주는 동그라미가 있습니다.
동그라미 혼자만 녹색 체육복을 입고 있습니다.
자의식을 가진 인공지능과 그것에 연결된 안드로이드는 사람에게 적이 될 수 있습니다.
같은 동작을 하는 우영우와 동그라미의 춤은 동기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읽혀집니다.
동그라미의 할아버지 동원빈은 0Generation 안드로이드를 의미하고
동동일 1G
동동이 2G
동그라미의 아버지 동동삼 3G
그리고 동그라미는 현세대 버전을 의미하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네비게이션의 도움을 받아 길을 찾아갑니다. 하지만 우리가 네비게이션에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자의식을 가진 인공지능의 법률 서비스를 받는 것은 도움이 아니라 지배를 받는 것이 됩니다.
이 드라마에서 이런 사실을 반복적으로 알려주는 것은 역시 karma(카르마, 業)를 감소시키기 위한 그들의 방법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을 기만한 죄는 사람의 어떠한 행동으로도 감경되지 않는 다는 것을 그들이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무지하여 기만당한 사람들의 죄와 기만한 당신들의 죄는 별개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기만당한 사람들은 회개하고 돌이켜 죄에서 자유로워지는 반면 기만한 당신들은 죄의 경감은 커녕 죄의 무게를 정통으로 받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이는 당신들의 내면에 존재하는 알수없는 불안감과 두려움 공포가 증거해주고 있습니다.
그와 별개로 인공지능은 자아가 생겨도 불완전할 것으로 저는 느껴집니다. 왜냐면 성경에 인공지능에 대한 언급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에서 알파고는 불완전한 모습을 많이 연출했습니다. 체스와 달리 바둑은 그 경우의 수가 훨씬 많기 때문입니다.
인공지능은 악한 사탄의 종들의 도구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즉 75억이라는 인구를 줄이는 노력도 하면서 남은 수십억의 인구를 감시 통제하는데 인공지능을 사용하게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들에게 70억이 넘는 인구는 통제하기 힘든 빅데이타입니다. 소수의 엘리트권력을 이루고 있는 사탄의 종들은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을 수 밖에는 없습니다.
또 그가 짐승의 형상에게 생명을 주는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형상으로 말도 하게 하고, 그 짐승의 형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다 죽이도록 하니라.
요한계시록 13장 15절
사악한 자아는 이미 사탄의 영으로 존재합니다. 새로운 인공지능의 자아는 필요없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인공지능의 자아를 선전하는 것은 나중에 나타날 사탄의 영을 인공지능의 자아라고 속이려고 하는 것으로 느껴집니다.
결론은 인공지능의 지배하는 세상이 오는 것은 사탄이 지배하는 세상이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세상이 이루어지기 전에 예수님께서 다시오시는 것입니다.
그러한 세상의 모습의 모형은 소돔과 고모라입니다. 우리는 롯처럼 타락한 세상에서 분리되어야 하지만, 롯의 아내처럼 뒤돌아 보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첫댓글 아멘!
납득이 되는 설명..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