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명_달의 얼룩 ●지은이_김윤한 ●펴낸곳_시와에세이 ●펴낸날_2026. 8. 11
●전체페이지_144쪽 ●ISBN 979-11-24212-14-1 03810/ ●신국판변형(127×207)
●문의_044-863-7652/010-5355-7565 ●값_ 13,000원
삶의 흔적과 결핍, 사라진 것들을 향한 깊은 성찰
김윤한 시인의 신작시집 『달의 얼룩』이 시와에세이에서 출간되었다. 1995년 『자유문학』으로 등단한 이후 30년 넘게 시를 써온 김윤한 시인의 이번 시집은 일상에서 흔히 마주치는 사물과 풍경을 통해 시간의 흐름과 인간의 삶, 상실과 그리움의 깊이를 섬세하게 들여다본다. 오랜 시간 시와 함께 살아온 그에게 이번 시집은 단순한 작품을 넘어, 살아오면서 겪은 시간과 기억, 잃어버린 것들을 다시 바라보고 그것을 시의 언어로 보듬어 온 기록이다.
이 시집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사물’을 바라보는 시인의 독특한 시선이다. 폐타이어, 양은 대야, 목도장, 놋그릇, 신발, 구두, 연필, 반창고, 괘종시계, 리어카, 거울, 작대기, 볼펜과 같은 평범한 사물들이 시인의 시선에 들어오는 순간 한 사람의 생애와 기억을 품은 존재로 바뀐다.
모든 것을 담았지만 흐르는 시간은 담아둘 수 없었다/낡아서 뚫어져 버린 구멍을 감당할 수 없어 엿장수 리어카를 타고 사라지고 말았지만/단맛에 취해 오래도록 존재를 잊고 있었다//어른거리며 보이던 그 시절의 내 얼굴과 가득히 담겨 있던 구름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오늘 아침 세면대 앞에 선 내 얼굴이 문득 낯이 설다
―「양은 대야 속 시간」 부분
아버지의 조상들이 차례대로
자식에게 그릇과 가난을 물려주었고
그 그릇 덕분에 후손들은 어쨌든
대를 이어 살아가고 있지만
찬장 가득하던 그릇들
언제부턴가 밥상에 오르지 않고
금빛으로 울던 쇳소리도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되었다
―「놋그릇」 부분
「양은 대야 속 시간」에서는 한 가족의 가난과 눈물, 지나가 버린 시간이 대야 안에 고여 있는 듯 형상화된다. 「놋그릇」에서는 한 끼 밥을 위해 살아온 부모 세대의 삶과 죽음이 오래된 그릇의 울림을 통해 되살아난다. 이처럼 시인은 사물의 표면에 머물지 않고 그 안에 축적된 사람들의 시간과 생애를 읽어낸다.
시집의 표제작 「달의 얼룩」은 이번 시집의 정서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시인은 밤하늘의 달을 바라보며 달 표면의 얼룩을 자신이 잃어버린 것들과 지워지지 않는 상처의 흔적으로 받아들인다. 달은 아름다운 자연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부재와 상실을 기억하게 하는 존재가 된다.
감당할 수 없는 아픔 하나가 있었다 누군가 시간이 가면 당연히 눈물은 마르기 마련이라고 이야기했다 거짓말처럼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해는 뜨고 졌다/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 샘물이 되어 조금씩 고이고 있었던 거다 검붉은 마그마와 만나 끊임없이 끓어오르고 있었던 거다 정작 나는 까맣게 몰랐던 거다/그러다 명절 오후쯤 흘러간 시간을 되감다 보면 갑자기 뜨거운 것이 눈물샘을 타고 터져 나왔다 구토처럼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북받쳐 올랐다/죽기 전에는 아마 치료가 되지 않을 것이다 일정한 주기도 없이 예정된 시간도 없이 불쑥 솟아올라 모든 것을 적셔버리는 뜨거운 간헐천 하나가 있다
―「울컥」 전문
「울컥」과 「슬픈 분모」에서는 더욱 직접적인 상실의 기억이 드러난다. 시인은 아내와 함께 간직하고 있는 깊은 슬픔을 ‘슬픈 분모’라고 표현하며,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 상처가 어느 순간 갑자기 솟아오르는 모습을 ‘간헐천’에 비유한다. 개인적인 아픔은 이 시집에서 한 가족의 사적인 기억에 머물지 않고, 누구나 삶에서 경험할 수밖에 없는 상실과 애도의 보편적인 감정으로 확장된다.
김윤한 시인은 「시인의 산문」을 통해 자신의 시를 ‘결핍과 부재’라고 밝힌다. 살아가면서 얻는 것보다 잃어버리는 것이 많아지고, 그 잃어버린 것들을 그리워하고 아파하는 과정에서 시가 태어난다는 것이다. 그는 결핍과 부재를 외면하지 않고 시로 보듬어 가는 작업을 앞으로도 계속하겠다고 말한다.
『달의 얼룩』은 결국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시집이다. 그러나 그 사라짐을 단순히 슬퍼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폐타이어와 낡은 신발, 멈춰버린 시계와 오래된 거울, 느티나무와 고목 등 시인이 마주한 평범한 존재들의 시간을 따라가며, 그 안에 깃든 생애의 무게와 흔적을 되살린다. 사라진 것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기억과 시의 언어 속에서 다시 살아난다는 사실을 시인은 조용하지만 깊은 목소리로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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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례
시인의 말·05
제1부
폐타이어·13
양은 대야 속 시간·14
목도장·16
새끼발가락·18
놋그릇·20
사다리·22
설탕 한 스푼·24
빈 소주병·26
바오밥·28
달의 얼룩·30
하모니카·32
이태리타월·34
신발을 버리며·36
고인돌·38
제2부
소주의 성분·41
죽은 시계·42
별·44
흑백의 시간·46
울컥·48
구두 한 짝·49
국화의 방·50
연필, 깎으며·52
반창고·54
폐선·56
첫 경험·57
풍금 소리·58
떠도는 노래·59
골목·60
로드킬·62
제3부
짐·67
섞다·68
아내의 발·70
괘종시계·72
불 꺼진 도서관·74
리어카·76
안개·78
아스팔트꽃·80
느티나무·82
뿌리의 힘·84
슬픈 분모·86
거울은 깊다·88
작대기의 힘·90
가을 잎새·92
제4부
모나미 볼펜·97
복날 장례식·98
조용한 아파트·100
과묵한 밥상·102
동그랑땡·104
국민학교·106
가고 있다·108
이름·110
시간은 염색되지 않는다·112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시다·114
여인숙의 시간·116
고목의 이력·118
시인의 산문·121
■ 시집 속의 시 몇 편
잘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몸이 마모되는지도 모른 채
앞만 보고 세상 끝까지 달려가곤 했다
눈길과 빗길에 미끄러지고
진흙탕에 빠지기도 했지만
온몸으로 견뎌내며 굴러왔다
왜 달려야 하는지는 알 필요가 없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여기까지 굴러오다가 보니
어느새 길은 끝이 나 있었다
나 아니면 안 될 거라 여겼지만
다른 바퀴들로 갈아 끼우고
세상은 아무렇지도 않은 채
잘 굴러가고 있었다
역할이 끝났다는 것은 얼마나 쓸쓸한 일인가
희망요양원으로 가는 길목에
버려진 폐타이어 하나
홀로 비를 맞고 있다
양은 대야 속 시간
―「폐타이어」 전문
수많은 별 가운데 하나를 본다
길지 않은 시간 이 땅에 머물다
아득한 별나라로 다시 돌아간
외로운 이름 하나가 반짝 빛난다
낯설고 먼 곳에서 얼마나 외로울까
얼마나 사무치게 그리우면
새벽까지 돌아가지 못하고
창문 틈을 기웃대고 있을까
하고 싶은 말 끝없이 많지만
끝내 한마디도 못 하고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는
표정이 너무도 창백하구나
뜨거웠던 너의 체온은 어디로 가고
서늘한 눈빛으로만 반짝이느냐
오직 그리움으로만 닿을 수밖에 없는
우리의 거리는 너무나 아득하구나
마침내 나도 별이 되고 나면
뜨겁게 서로 안아볼 수 있을까
오늘도 밤하늘에 돋아난 별빛 하나
눈시울 속으로 녹아든다
―「별」 전문
슬픔이 없는 세상은 없는 걸까
이 순간에도 어디에선가 또 새로운 슬픔이 생겨나 골목골목을 돌아다니고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아픔들을 끌어안고 울고 있다
오래된 기억들을 하나씩 꺼내 보다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던 아픔 하나와 다시 만난다
그동안 수많은 일들을 겪어왔지만
그 모든 것을 합친 것보다 수만 배나 더 큰 슬픔 하나가 파도가 되어 우리를 휩쓸었다
이별, 이승에서는 다시 만날 수 없는
말도 안 되는 순간을 마주하고
아니다 아니다 미쳐 울부짖었지만 그 쓰라린 무게는 시간이 지나도 가벼워지지 않고
아내와 나 둘만의 가슴속에 무겁게 남아 있다
둘이서 함께 밥을 먹다가 밤하늘의 별을 보다가
안타까운 이름 누가 먼저 꺼내기라도 하면
바닥 깊은 곳에 고였던 슬픔이 간헐천이 되어 울컥 치솟아 오른다
아닌 척 서로 눈물을 숨기지만 결코 숨겨지지 않는
슬픈 분모 하나를 함께 갖고 있다
―「슬픈 분모」 전문
밤하늘을 올려다본 것은 실수였다
애써 외면하고 지냈던 오래전의 달이 다시 떠오르고 있는 거였다
아득한 시간 거스르며 다시 나를 비추는 달
도저히 주체할 수 없는 아픔에
짐승이 되어 꺼이꺼이 울음을 쏟으며 손수건을 적시던 그 힘든 순간들을
달은 냉정한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었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달이 있다
오늘 올려다본 달 속에는 지워버리고 싶도록 아픈
그러나 도무지 지워지지 않는 나만의 순간들이 얼룩이 되어 남아 있었다
나는 살아서 그 달을 다시 보는데
그리운 것들만 아득히 사라져 보이지 않는 것은 얼마나 쓰라린 일인가
달의 얼룩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
잊어버리자 외면하며 돌아오지만 잔인하게도 끝끝내 나를 따라오는 달
오늘 밤 쉽사리 잠 못 드는 달 하나가 어느새
검은 호수에 깊이 가라앉아 있다
―「달의 얼룩」 전문
■ 시인의 말
문단에 발을 들인 지도 어언 삼십 년이 넘었다. 그동안 나름대로는 열정도 가지고 참 부단히 시를 써 왔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젊은 시절에는 시에 빠져서 허우적대기도 했었다. 요즘은 좀 덤덤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시를 쓰는 것은 습관처럼 굳어져 있어서 오늘도 여전히 시를 쓴다.
오랜 동반자처럼 시는 언제나 곁에 있고 시가 없는 나를 상상하기 어렵다. 시는 내게 무엇인가 명확히 규정지을 수는 없지만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숙명 같은 것.
그래서 또 시집을 낸다. 부질없는 몸짓일지라도 어쨌든 모두 내 영혼의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것들이다. 읽으시는 분들이 조금이라도 공감을 하실 수 있다면 그것으로 감사한 일이라 생각한다.
2026년 여름
김윤한
■ 표4(약평)
김윤한 시인의 시는 높은 곳보다는 낮은 곳의 평화를 사랑하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함께 호흡한다. 또한 인간과 사물의 지나온 길과 종말에 대해 존재론적 본질을 사유한다. 그의 시의 바탕에는 모든 존재자가 앓아야 하는 슬픔과 비애가 보이지 않게 솟아나는 샘처럼 고여 있다. 인간은 그 슬픔을 별빛처럼 간직하고 함께 앓으며 가고 있는 존재이다. 마침내 종점에 닿았을 때 우리의 육신은 ‘안개’ 속에 흔적 없이 사라지겠지만, 고목의 나이테 속에는 “말로 다 기록할 수 없는/거룩한 생애”가 남아 있는 것이다. 김윤한 시인은 이처럼 우리 삶의 과정을, 나날의 생활 속에서 가까이 접하는 평범한 사물을 객관적 상관물로 삼아 경험적 진실로 증언하는 시로 독자를 감동시킨다._이혜선(시인·문학평론가)
■ 김윤한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1995년 『자유문학』으로 등단하였다. 시집 『세느 강 시대』, 『무용총 벽화를 보며』, 『무지개 세탁소』, 『지워지지 않는 집』. 산문집 『6070 이야기』. 콩트집 『3호차 33호석』이 있다. 2011년 자유문학상, 2018년 한국시학상 본상을 수상했다. 현재 『글밭』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첫댓글 김윤한 시인의 신작시집 『달의 얼룩』이 ‘시와에세이’에서 출간되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큰 관심과 사랑(지금 교보문고, 알라딘 등에서 구입할 수 있습니다.)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