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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화해와 일치를 위한 신자들의 사명
한이 많은 나라 대한민국
저는 재작년 2월 25일부터 5월 5일까지 70일 간 제주도 마라도에서부터 강원도 휴전선 통일전망대까지 전국을 배낭여행했습니다. 나이 사십이 넘어 이민한 후 그동안 몇 번 한국을 방문했지만 시간에 쫓겨 길어야 열흘 바쁘게 정신없이 다니느라 조국을 제대로 살필 틈이 없었습니다. 뉴저지에 교우 한 분이 사시는데 연세가 여든 하나십니다. 그분은 3년 전 산티애고 순례길을 부인과 함께 35일 만에 다녀오셨습니다. 다녀오신 분이 계시면 아시겠지만 프랑스에서 출발해 야고버 사도 무덤이 있는 스페인 산티애고까지는 눈 덮인 산맥도 넘어야 하고 황량한 광야를 지나는 8백 킬로 거리입니다. 8백 킬로를 35일 간에 걸었다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쉬지 않고 배낭 메고 하루 30킬로 이상 걸어야 한다는 계산입니다. 저는 이분들에게 용기를 얻어 조국 도보여행을 택했습니다.
저는 워낙 여행을 좋아해 한국에 살 때 포니 자동차로 전국을 누볐는데 지금 생각하면 수박 겉핥기였습니다. 관광삼아, 자동차로 휙 지나가면 그 고장 속살을 볼 수 없습니다. 따라서 저는 여행을 순전히 BMW에 의존했습니다. 외제차가 아니라 버스, 지하철, 워킹의 약자입니다. 70일 경험을 30분 안에 이야기드릴 수는 없기에 여행 중 느꼈던 것 위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외국에 살다보면 자연히 애국자가 됩니다. 한국선수들이 나오는 야구나 골프 중계만 찾고 혹시 태극기 보면 공연히 울컥하고 달 밝은 가을밤에는 애국가 3절이 자연스레 나옵니다. 그러니 혹시 여러분들 가운데 제가 드리는 말씀에 언짢은 부분이 있더라도 이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조국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본 대로 느낀 대로 말씀드립니다. 한 마디로 우리나라는 한으로 뭉쳐지고 갈등으로 얼룩진 나라입니다.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멀리 이조시대는 양반과 상놈 계급사회로 백성 대부분인 상놈들은 천시 받고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양반들 종이나 다름없었지요. 우리교회는 양반들이 학문으로 천주학을 익혀 스스로 교회를 세우고 믿어 순교까지 했습니다. 일반백성이나 천민들은 이들에게 배워 신앙을 굳히고 순교했지만 천민들이 천주교에 빠져들 수 있던 이유는 만민평등 사상이었습니다. 124위 복자 가운데 황일광(시몬 1757~1802)이란 분이 계십니다. '백정' 출신인데 고향양반인 이존창의 전교로 입교한 후 경기도 광주로 이사해 이웃 양반들인 정약종(아우구스티노)과 황사영(알렉시오), 김한빈(베드로) 등과 교우로 지내게 됩니다. 신유박해 때 고문을 받고 고향 홍주로 이송돼 1802년 1월 30일 45세로 순교하셨는데 그분 말씀이 "나는 천국이 두 개 있다. 하나는 양반들이 나를 위해 주는 지상천국이고, 또 하나는 사후천국이다."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양반 상놈 계급사회에서 오는 백성들의 한이 면면히 내려 온데다 일제 36년은 일본사람들 밑에서 종노릇했습니다. 그리고 해방 후는 어땠습니까. 좌우익으로 나뉘어 수많은 사람이 희생되고 전쟁까지 일어나 형제들끼리 총부리를 대고 서로 죽여 민족의 한이 겹겹이 쌓여 왔습니다. 이로 인한 수많은 갈등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을 여행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재작년 3월 1일은 재의 수요일이었습니다. 밤 여객선으로 제주에 도착했는데 그 시간에는 모든 성당 아침미사가 끝나 재를 받을 곳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알고 지내던 중문성당 회장님께 전화하니 딱 한군데 있다며 버스타고 오면 자기가 안내하겠다고 합니다. 그곳은 강정마을이었습니다. 그곳에는 해군기지를 반대하기 위해 신부, 수녀, 주민 수십 명이 그때까지 2년 동안 매일 미사를 봉헌하고 시위하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계속하고 있으니 벌써 5년째입니다. 여러 대 버스에 경찰병력이 함께 출근해 대치하고 있는데 아무 소란 없이 조용하게 진행되는 것이 시위라기보다는 길거리 무언극처럼 보였습니다. 이분들은 매일 10시부터 3시간에 걸쳐 미사와 묵주기도를 바치고 공사장 출입문 앞에 의자를 놓고 앉아 시위하는데 경찰들은 공사차량이 드나들 때마다 신부, 수녀님들을 의자 째 번쩍 들어 옮겨 놓고 차량이 지나가면 참가자들이 다시 의자를 갖다놓고 앉아 시위합니다. 이분들의 행동이 공사를 중단시킬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예수회와 성가소비녀 수녀회는 아예 이곳에 분원을 차려놓고 함께 하고 계십니다. 강우일 주교님도 대축일에는 어김없이 이곳에서 미사하면서 격려해주십니다.
이분들의 투쟁에도 불구하고 당시 공정은 절반 가까이 진행되었고 지금은 완공단계라고 합니다. 제가 15년 만에 만난 문정현 신부님은 새카맣게 탄 얼굴에 가슴까지 나부끼는 흰 수염으로 여든 고령에도 앞장서서 '강정의 평화'를 목 터지라 외치고 있었습니다. 고생하신다고 위로해드리자 신부님은 고생이야 심하지만 사제로서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신자 한 분은 평화의 섬 제주에 외세를 위한 군사기지를 세우는 것을 끝까지 반대했다는 사실을 알려야하며 평화에 대한 갈망을 보여준 것으로도 절반은 승리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당시 한국에서는 정의구현사제단을 중심으로 강정마을 뿐 아니라 밀양 송전탑, 쌍용자동차 노동자를 위한 대한문 미사 등 여러 사제, 수도자, 신자들이 고통 받는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사명감으로 도처에서 거리 미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오늘 이곳에 오기 전에 위안부 할머니들 집회에도 참석하고 경찰의 물대포로 사경에 처한 백남기 형제님도 문병하고 왔습니다. 앞으로의 일정은 세월호 유가족들도 찾아보고 강정마을 신부, 수녀님들도 찾아 뵐 생각입니다. 백남기 형제님이 사경을 헤매는 서울 대학병원 마당에서는 그분의 쾌유를 기원하는 미사가 매일 봉헌되고 있습니다. 며칠 전에는 수백 명이 전라도 보성에서 서울까지 그분의 쾌유를 기원하는 도보행진을 했습니다. 그런데 정부나 경찰관계자는 한사람도 사과는커녕 문병조차 없습니다, 가톨릭 농민회와 신부님들만 매일미사를 봉헌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일에 앞장서는 교회에 대한 생각은 일반인 뿐 아니라 신자들 사이에도 엇갈립니다. 제가 만난 신자들은 대부분 교회와 정의구현사제단 과거 활동은 훌륭했다고 인정하면서도 요즘 활동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으로 엇갈렸습니다. 물론 생각의 차이는 민주사회에서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나 이해하기 어려운 점은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 대한 부정입니다. 흔히 '종북 빨갱이'니 '수구꼴통'이니 하면서 극단적인 용어로 매도하면서 상대방 의견을 듣기보다는 인간관계까지 끊습니다. 몇 년 전 4대강 사업할 때 교회는 주교회의부터 강물을 막으면 썩게 된다고 반대했습니다. 그때도 많은 교우들이 신부님이 미사나 하지 왜 정치에 참견하느냐고 반발이 심했던 것으로 압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4대강이 모두 썩어가고 있습니다. 저도 재작년 여행에서 낙동강물이 초록색으로 변한 것을 보고 수돗물로 사용할 수 없겠구나 걱정했습니다. 얼마 전 이명박 전대통령이 인터뷰 했더군요. 4대강 사업으로 녹색성장을 이루고 경기를 활성화시켰다고 자화자찬했습니다. 하긴 옳은 말씀입니다. 4대강이 모두 녹색으로 변했으니 녹색성장이요. 건설업자, 토건업자들이 큰돈 벌었으니 경기가 활성화된 것이지요. 말문이 막힙니다. 다시 제주도로 돌아갑니다.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현수막과 종북세력 박멸하자는 현수막이 함께 나부끼는 강정마을 거리미사가 너무 슬퍼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콜고타 언덕을 올라가시는 장면을 보는 느낌입니다. 우연치 않게 강정마을에서 재를 받고 첫발을 내디딘 저는 여행 내내 민족의 평화와 화해를 위해 기도하라는 계시를 받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두달 반 가까이 전국을 다니면서 곳곳마다 국민들의 뿌리 깊은 한을 체험하고 지역갈등, 이념갈등, 종교갈등 뿐 아니라 자기 것, 자기 마을 이익만 생각하는 심한 이기주의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은 하느님께서는 제 여행길 순간순간마다 필요한 사람을 만나게 해주시고 지혜를 주신 것입니다. 제가 여행길에서 첫 스승을 만난 것은 첫날 저녁 공동목욕탕에서였습니다. 전날 배에서 잠을 설친데다 강정마을에서 신경을 많이 써 피곤한 몸으로 제주에 사는 처제 집에 도착했는데 처제가 목욕탕에 다녀오라며 표를 주어 집 떠난지 열흘 만에 제대로 목욕했습니다.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때를 미는데 옆에 첫눈에 스님이 분명한 사람이 앉아 면도날로 머리를 윤이 나도록 밀고 있었습니다. 어찌나 정성스레 면도하는지 도 닦는 것 같았습니다. 피부가 고와 60대 초 쯤으로 보았는데 사실은 연세가 80 가까운 스님이었습니다.
저는 여행 중 누구하고나 대화를 나누려고 했습니다. 덕분에 남녀노소 많은 사람을 사귈 수 있었습니다. 이날도 제가 말을 건넸습니다. 스님이신 것 같은데 어느 절에 계시냐고 물으니 충청도 당진 영랑사 중으로 사찰일 때문에 왔다고 합니다. 스님도 나에게 어디서 왔느냐고 물으시기에 미국에서 걸으러 왔다고 대답하니 멀리서 와서 걷는 목적이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나는 조국땅에서 그동안 살아온 인생을 반성하고 사색하고 싶어 걷기로 했다고 했습니다. 스님은 잠시 생각하더니 느닷없이 나에게 '길을 걷지 말고 길이 되는 것'은 어떻겠느냐고 반문했습니다. 선문답 같아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으니 쉽게 설명해 달라고 청하니 스님은 목욕도 마쳤으니 밖에 나가 걸으며 이야기하자고 했습니다. 어둠이 깔린 해안가를 걸으면서 그분은 설명하십니다. 내가 주체가 되지 말고 길에서 만나고 보는 모든 사물이 되서 자신을 관조하라는 것입니다. 지나가는 개미를 보면 개미가 된 입장에서 나를 살피고 꽃을 만나면 꽃이 되어 나를 보라는 것입니다. 개미가 인간을 만나면 밟혀죽지 않을까 걱정할 터이고 꽃이나 나무들은 꺾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것 아니냐며 모든 것을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 이타심의 기본이고 사랑과 자비 즉 모든 종교의 바탕이라고 설명합니다. 스님은 한 사람이나 사물을 놓고도 여러 가지 생각을 하듯이 나 자신이 아닌 만나는 모든 것이 되어 나를 관조한다면 자신의 진면목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사람 모두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지금처럼 이념이나 지역감정 등 모든 갈등이 사라지고 서로를 배려하는 사회가 될 것 아니냐며 이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신앙가진 사람들 사명이 아니냐고 했습니다. 따라서 스님은 걷는 동안 모든 생각비우고 오직 마주치는 현상만 생각하라고 충고했습니다. 저는 하느님께서 스님을 통해 제 여행길의 가르침을 주신 것이라고 믿습니다.
여행하면서 보니 대한민국 곳곳에 한이 맺히지 않은 곳이 없지만 특히 제주도와 호남지역은 다른 지역보다 더욱 심하게 느껴졌습니다. 세월도 흘렀는데 이제는 마음을 풀어야 할 때가 아니냐고 사람들에게 말해왔는데 여러 현장을 보고 난 다음에는 그 분들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튿날 새벽 제주도 올레길 따라 해변가를 걷는데 몹시 추웠습니다. 손이 시려 견딜 수 없었습니다. 해변가 작은 마을에 구멍가게에서 면장갑을 샀습니다. 소주 몇 병하고 과자부스러기, 담배 몇 갑 파는 작은 가게입니다. 사고 나오려는데 주인 할아버지가 어디서 오셨느냐며 커피한잔하고 가라며 제 손을 끌고 점방에 딸린 방으로 데리고 갑니다. 여든 가까운 노인이 병든 아내를 보살피며 가게는 시간 때우기 위한 것 같았습니다. 그분은 봉지 커피 하나를 타 주시며 넋두리를 늘어놓기 시작했습니다. 수십년동안 가슴 깊이 묻고 살아왔던 사연을 낫선 여행자에게 줄줄이 풀어놓은 것인데 저는 듣는 내내 가슴속에 뜨거운 것이 치올라 눈물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그분의 인생역경은 12살 때 겪은 4.3사태에서 시작됩니다.
4.3사태란 당시 정부가 한라산에서 무장투쟁을 벌이던 5백여 명 남로당 무장대를 토벌한다며 각 자연부락들을 덮쳐 제주도민의 10%가 넘는 2만여 명을 학살한 사건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공식 사과했고 박근혜 대통령도 후보시절 4.3 기념관을 참배하고 사과했습니다. 할아버지는 국군이 마을에 들이닥쳐 사람들을 잡아갔는데 자신은 할머니가 순간적으로 몸 위에 이불을 겹겹이 쌓아 들키지 않았지만 학교마당에 끌려간 주민들은 갓난 애기까지 남녀노소 모두 총에 맞아 죽었다고 합니다. 졸지에 고아가 된 그는 군인들이 떠난 뒤 인근마을 친척집으로 도망쳤는데 그 마을도 군인들이 곧 들어 닥칠 것이라고 해 친척과 어선을 타고 무작정 바다에 나가 표류하다 구사일생으로 대마도에 기착했다고 합니다. 일본에서 8년 동안 막노동으로 살다 다쳐 병원에 가는 바람에 불법체류자라는 것이 들통 나 한국에 송환되어 1년 간 옥살이하는 등 파란만장한 세월을 보낸 분인데 이제는 자식들이 전부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지만 문득문득 당시의 무서움이 떠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마을 사람들은 같은 날 제사를 지내는 집이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조천읍 너분숭이란 마을은 48년 1월 17일과 18일 이틀간 주민 320명이 학살된 곳인데 4.3 기념관에는 많은 사진, 유물, 기록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곳에 희생자 묘역이 있는데 저는 두 살짜리 애기 묘에 누군가 올려놓은 앙증맞은 아기신발 앞에서 눈물을 쏟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주도는 전역이 4.3 현장이 아닌 곳이 없을 정도로 비극과 한의 현장이었습니다. 다랑쉬 마을은 48년 겨울 군인들의 토벌로 마을 전체가 사라졌는데 44년이 지난 1992년 동굴에 숨어있다 토벌대의 너구리사냥에 걸려 질식해 죽은 어린이와 여자 11명 유골이 발견되어 유적지가 되었습니다. 대정마을 일본군 알뜨로 비행장 부근을 걷다 기막힌 현장을 보았습니다. 6.25 직후인 8월 부근 주민들이 적ㅇ[ 동조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추측으로 252명이 예비검속되어 학살당한 곳입니다. 이 가운데 132명의 시신은 군이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돌려주지 않다 7년 뒤 도로공사 중에 시체들이 계속 나오자 하는 수 없이 유족에게 인도했답니다. 마을사람들은 심하게 엉겨 분간할 수 없는 뼈를 뒤섞어 132개로 나눠 묘를 만든 다음 '백조일손지묘‘(百祖一孫之墓)라는 묘비를 세웠습니다. 조상은 다르지만 모두 한 자손이라는 말입니다. 어느 묘에 제사를 드려야할지 모르는 유족들의 난감한 상황에서 모두 한 자손이라니 얼마나 명쾌한 결론입니까. ’모두 한 자손‘ 이 말은 제주인들이 반세기 전 세워놓은 묘비에서 찾을 수 있지만 지역과 이념, 빈부차이로 극심하게 갈라져 서로 미워하고 반목하는 우리나라 현실에 딱 들어맞는 말 아니겠습니까.
제주에는 '사오백당오백‘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절과 신당이 많다는 것입니다. 마을마다 신당이 있고 절에도 산신각이니 해신각이니 하는 신당을 두고 유교에서도 향교에 신당을 별채로 둘 정도입니다. 제주에 유난히 당이 많은 것은 그만큼 맺힌 한이 깊다는 뜻입니다. 제주도는 여자, 바람, 돌이 많아 삼다도라 합니다. 제주도에 여자들이 많은 것은 남자들이 고기잡이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4.3 사태 때 많은 남자들이 희생되니 더욱 심해진 것이지요. 여자들이 억세고 생활력이 강한 것도 여자 혼자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자연스럽게 된 것이지요. 그러니 제주여인들이 한이 얼마나 쌓였겠습니까. 신당에 가면 당목에 오색 천조각이 매달려 있는 것을 봅니다. 저는 오색 천조각이 무엇인지 몰랐는데 지난 번 확실히 알았습니다. 우리로 말하면 봉헌예물입니다. 주로 여신 할망을 모시는 신당나무에 걸리는 소지라 불리는 천조각은 아낙들이 할망을 만나러 오면서 들고 오는 예물입니다. 옷감을 좋아하는 것은 신들도 마찬가진 모양입니다. 그런데 끼니를 걱정하는 처지에 무슨 수로 옷감을 준비합니까. 따라서 작은 천 조각들은 가난한 여인들의 상징적인 예물입니다. 가난한 사람을 배려하는 조상들의 지혜입니다. 조천 신당에서 마주친 여인도 무슨 사연이 많은지 눈시울이 벌겋게 된 얼굴로 소지를 나무에 매달고 있었습니다.
이념갈등
한 맺힌 이야기 하다 보니 제주도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 제가 전국을 다니면서 보면 한 맺히지 않은 지역이 없습니다. 전라도 지방은 특히 심합니다. 해방직후 여수 순천에서 희생된 양민들과 지리산 주변마을은 공비토벌 과정에서 빨치산과 국군 양쪽으로부터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유족들은 2,30년 전까지도 빨갱이로 취급받아 신원조회에 걸려 취직도 못하고 숨죽이고 살았습니다. 구례 지리산 기슭에 화엄사라는 절이 있습니다. 이곳에는 차일혁 총경이란 분의 공덕비가 있습니다. 그분은 전투경찰대 빨치산 토벌 책임자였습니다. 그는 빨치산과 싸우면서도 그들도 똑같이 따뜻한 피를 가진 겨레라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자신이 사살한 빨치산 사령관 이현상의 유해를 화장하여 철모에 정성껏 빻아 예의를 갖춰 장례를 치루고 강물에 뿌리면서 경의를 표했습니다. 이현상은 독립운동가로 만일 공산당에 가담하지 않았다면 우리나라에서 유공자로 존경받았을 인물입니다. 차일혁은 상부에서 화엄사를 소각하라고 명령했을 때 "절을 태우는 데는 한나절이면 족하지만 세우는 데는 천년세월도 부족하다"며 지혜롭게 유서깊은 문화재를 지켜냈습니다. 이런 공로로 화엄사가 그분의 공덕비를 경내에 세우게 된 것입니다. 공덕비에 그분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른 아침 들판에 나가 일하는 농부에게 물어 보라. 공산주의가 무엇이며 자본주의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겠는가. 지리산 싸움에서 죽은 군경이나 빨치산에게 물어 보라. 공산주의를 위해 죽었다. 민주주의를 위해 죽었다 할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그들은 왜 죽었는지 영문도 모른다고 할 사람이 태반일 것이다. 이 싸움은 어쩔 수없이 하지만 후에 세월이 가면 다 밝혀질 것이다. 미국과 소련 두 강대국 사이에 끼여 벌어진 부질없는 골육상쟁 동족상잔이었다고."라고 쓰여 있습니다. 열여섯 살 때부터 독립운동에 투신했던 차 총경은 전투책임자로 임무에 충실하면서도 해방 후 부질없는 좌우대립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던 것입니다. 차일혁은 그후 충청도 여러 경찰서장을 지내고 공주경찰서장 재임 중 38세 젊은 나이로 별세했습니다. 그는 박봉에도 충주에 불우소년들을 위한 직업 소년학원을 설립하는 등 깨어있는 분이었습니다. 정부에서 태극무공 훈장을 주기로 하자 거부했습니다. 지금까지 많은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은 어떻습니까. 저는 조국을 순례하면서 사람들이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원수가 되고 싸우는 것을 보면서 슬펐습니다. 지구상에 70억 인구가 살지만 똑같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자라온 환경과 교육도 다르고 성격도, 용모도, 잘살고 못사는 것도 다릅니다. 다르다는 것은 한쪽이 틀리거나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다를 뿐입니다. 하느님 정원에는 수많은 꽃들 빨간꽃, 노란꽃, 흰꽃. 보라꽃, 검은꽃 이러한 다양한 꽃들이 모여 아름다움을 이룹니다. 저는 컴퓨터에서 한국뉴스를 검색하는 것이 겁납니다. 독자들의 댓글이 붙는데 조금이라도 자신과 다른 이야기하면 빨갱이니 좌빨이니 수구꼴통이니 하며 욕합니다. 이해되지 않습니다. 국민 모두 차일혁과 같은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존중해야 할 것입니다.
지역갈등
호남사람들은 자신들이 해방 후 많은 차별을 받고 살아왔다고 생각합니다. 광주 5.18 민주화 운동은 그분들 한에 고추가루를 뿌린 셈이지요. 남평 가톨릭대학 주교관에서 생활하시는 윤공희 대주교님을 찾아뵈었습니다. 올해 93세이시고 지난 11월 사제서품 66주년을 맞으셨습니다. 제 인생에 소원이 있다면 그분처럼만 늙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저와 찍은 사진을 보면 동년배로 보일만큼 정정하십니다. 그런데 그분 말씀이 여기까지 왔으면 5.18 국립묘지를 찾아보고 용서와 화해에 대해 묵상해 보라는 것입니다. 자세한 말씀은 드리지 않겠습니다. 다만 저는 그곳에 가서 3백 명 가까운 희생자들의 사연을 하나씩 보면서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평소 저는 눈물이 메마르다고 생각했는데 그곳에 가보니 아니었습니다. 궁금하시면 한 번 5.18 국립묘지와 기념관에 가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그동안 신문, 방송을 통해 막연하게 알고 있던 상식과는 전혀 동떨어진 진실을 접하고 경악했다는 것만 말씀드립니다.
또한 지난 여행에서 제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지나친 지역갈등입니다. 특히 영호남입니다. 미국 뉴욕주 절반만한 나라가 강하나 건너면 말소리도 다르고 서로 상대방을 싫어하는 것이 너무 지나칩니다. 목포에 김대중 기념관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곳에 가면 김대중 대통령이 영웅이지요. 기념관 전시물을 보면서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는 모습을 많이 보았습니다. 호남사람들은 그분을 존경합니다. 그런데 경상도 땅에 들어가면 이야기가 확 다릅니다. 그곳에서는 박정희 대통령이 영웅입니다. 김대중 이야기만 나오면 빨갱이라고 욕부터 합니다. 호남도 마찬가지겠지만 정부시책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 지지하거나 반대합니다. 대구 어느 신부님 사제관에 며칠 있었는데 신부님 말씀이 신자들이 무섭다는 것입니다. 하루는 신부님이 4대강 사업이 잘못이라고 말했는데 신자들이 “신부님 그런 말씀은 전라도에 가서 하세요. 여기는 경상도하고도 대구예요. 경상도 대통령하는 일에 보탬은 못줘도 비판하면 안 되지요.”하더라는 겁니다. 정부시책이나 역사적 인물의 평가는 객관적으로 판단해야 하는데 지역부터 내세웁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 사람 고향이 어디래 조심해”하는 소리를 자기들끼리는 공공연히 합니다. 다행히 충청도나 강원도 등 중부지방에서는 지역갈등을 크게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전혀 없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하는데 어떤가요.
종교갈등
우리나라 종교 갈등은 생각 이상으로 심각합니다. 얼마 전 김천에서 어떤 사람이 절을 때려 부수고 성당 성모상을 파괴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여행길에서 이런 것을 많이 목격했습니다. 전라도 어느 천년고찰, 물론 문화재이지요. 누군가 칼로 벽에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라고 긁어놓고 십자가까지 새겨 놓았습니다. 어느 절 주지스님은 이제는 산골 암자에까지 찾아와 불 지르는 바람에 큰 돈 들여 카메라까지 설치해 놓아야 한다며 한숨 쉽니다. 이런 거 하느님께서 기뻐하실까요. 프란치스코 교종께서는 얼마 전 다른 종교를 열심히 믿는 사람들을 개종시키려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2차 바티칸 공의회 문서에도 진리는 다른 종교에도 있다고 했습니다. 천주교 신자들이 앞장서서 다른 종교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대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 천주교는 이런 면에서는 양반입니다.
빈부갈등
또 제가 느낀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빈부의 차도 심하지만 많이 갖고 적게 가진 것으로 인격을 판가름한다고 느꼈습니다. 저는 허름한 복장에 낡은 지팡이를 짚고 싸구려 배낭을 메고 다닙니다. 그런데 어느 날 유명하신 분의 초대로 서울 어느 모임에 가게 되었는데 경비원이 아래위를 흩어보면서 어디 가냐고 무뚝뚝하게 묻습니다. 마침 나를 초대하신 분이 현관에서 기다리다 달려 나와 반갑게 껴안자 경비원 태도가 백팔십도 달라집니다. 행사가 끝나고 나오는데 그 사람이 구십도로 절하는 모습이 우습기 짝이 없었습니다. 숙박시설이나 식당에서도 겉모양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 같아 민망했습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어디를 가도 복장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나라만 유난합니다.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가 오랜 가난에서 벗어나 갑자기 부유해지면서 생긴 현상인 것 같습니다. 하느님 모상대로 창조된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고귀하고 소중한 존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하고 헐벗은 사람에게 해 준 것이 곧 나에게 해 준 것이라고 했습니다. 즉 가난하고 헐벗은 사람이 예수님 자신이라는 말씀입니다. 특히 사순절에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대목입니다.
남북갈등
마지막으로 남북갈등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얼마 전 북한은 인공위성을 쏘고 우리는 개성공단을 폐쇄했습니다. 제 생각과 다른 분도 계시겠지만 저는 이번 조치는 현 정부의 가장 잘못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처럼 남북이 갈라져 총부리를 맞대고 있는 상황에서 집권자들의 가장 큰 임무는 평화를 유지하고 관리하는 것입니다. 특히 북한은 우리와 한민족이고 언젠가는 한나라로 통일되어야 하는 상대입니다. 더욱이 개성공단은 남북한의 유일한 대화통로이자 교류창구입니다. 이를 폐쇄한 것은 대화의 끈을 잘라버린 것입니다. 대화를 않겠다면 남은 것은 전쟁 밖에 없습니다. 어르신들은 겪어 보셨겠지만 우리민족은 6.25전쟁으로 수백만 명이 서로 죽이고 죽였습니다. 또다시 이 땅에 전쟁이 나면 엄청난 사람들이 죽게 됩니다. 북한이 좋아서가 아니라 전쟁을 막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대화하고 협상해야 합니다. 대화의 창구를 닫아버리면 작은 사고도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저는 속히 남북대화가 재개되어 개성공단도 열리고 금강산 관광도 재개되어 작은 것부터 신뢰가 쌓여져 마침내 평화가 정착되기를 기도드리고 있습니다. 그나마 마주보고 아웅다웅 싸우다보면 미운정도 들고 상대방 속마음도 알게 되지만 대화마저 끊는다면 악감정의 앙금만 쌓여 회복하기 어렵습니다.
민족화해와 일치를 위한 신자들의 자세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한과 갈등을 말씀드렸습니다. 이런 한과 갈등을 누가 어떻게 풀어야 합니까. 정치하는 사람들이 나서야겠지만 그분들 관심사는 오직 선거에 당선되고 오래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을 움직이려면 투표를 통해 압력을 가해야 합니다. 지역, 학연, 혈연으로 투표할 것이 아니라 납득할 수 있는 공약을 내세우는 사람에게 투표하고 임기동안 실천여부를 철저히 감시해 잘못한다면 다음에 바꾸어야 합니다. 그러나 민족화해와 일치운동은 정치인들에게만 맡겨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각자 생활에서 실천해야 할 일입니다. 신자들의 의무입니다. 사추덕과 사회교리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사추덕과 사회교리 기억하시지요. 간단히 설명드리면 사추덕이란 신자들이 갖추어야 할 네 가지 기둥 되는 덕을 말합니다. 옛 사람들은 덕이 있는 사람을 후덕한 사람 나가서는 성인, 군자라고 불렀습니다. 덕은 어질고 올바른 행동이 몸에 밴 것을 말합니다. 덕은 선행을 계속 닦고 행함으로써 형성되기 때문에 부단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도를 닦는 것입니다. 신앙인들은 도를 닦아 덕성을 지닌 사람이 돼야 합니다. 그 중 기초가 되는 것이 사추덕, 즉 지혜, 정의, 용기, 절제입니다. 신자들은 항상 이를 마음에 새기고 익혀야 합니다. 네 가지를 하나씩 살펴보지요.
첫째, 지혜(智慧)입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지혜란 현실을 정확히 판단하고 예측하여 재물과 명예, 권력, 건강 등을 얻는 방법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나 신앙적인 지혜는 다릅니다. 그리스어로 지혜를 의미하는 소피아라는 단어는 신구약 전반에 자주 등장합니다. 솔로몬은 잠언에서 “지혜의 시작은 주님을 경외함이며, 거룩하신 분을 아는 것이 곧 예지다.”라고 했습니다. 즉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이 원하시는 삶을 선택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이러한 지혜는 타락한 인간이 스스로 가질 수 없는 능력으로 하느님께서 주시는 ’신적선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야고보 사도는 “여러분 가운데에 누구든지 지혜가 모자라면 하느님께 청하십시오. 하느님은 모든 사람에게 너그럽게 베푸시고 나무라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면 받을 것입니다.”(야고 1.5)라고 했습니다. 흔히 우리는 솔로몬이 하느님께 지혜를 달라고 청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열왕기 상권 3장 9절에 솔로몬이 청한 것은 “‘듣는 마음’을 주시어 당신 백성을 통치하고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입니다. 지혜의 출발은 ‘듣는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쉬울 것 같지만 어렵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부부나 부모자, 친구사이에도 얼마나 상대방의 말을 진지하게 듣습니까. 많은 경우 선입견을 가지고 상대의 말을 건성으로 듣게 됩니다. 듣는 마음이 울어나야 진심으로 듣게 됩니다. 그래서 솔로몬이 듣게 해 달라고 하지 않고 듣는 마음을 달라고 청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듣는 마음‘을 가지고 성서의 하느님 말씀을 들어야하고 강론이나 영적독서 그리고 기도에서 하느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이래야 신적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하면서 하느님 말씀을 듣는 것보다는 자신의 바램만 쏟아내고는 아멘합니다. 우리도 하느님께 ’듣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합시다.
둘째 정의(正義)는 올바르게 행동하는 것을 말합니다.
올바르게 살고 정의를 실천하는 사람이 의인입니다. 정의가 실천된다면 사회에 부정과 불의가 사라집니다. 정의도 일반적 개념과 성서적 개념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일반적 개념은 올바른 생활을 하기 위해 필요한 정의입니다. 법과 질서를 따르고 실천하는 것, 분배를 공정하게 하는 것, 일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노동자를 착취하거나 탈세로 부를 축적하지 않는 것, 이밖에 각자 양심에 비추어 어긋난 행동을 하지 않는 것도 포함됩니다. 그러나 신앙적인 ‘정의’ 개념은 다릅니다. ‘하느님의 시각’에서 보는 정의입니다. 즉 ‘하느님이 보시기에 옳았는지’가 기준입니다. 하느님의 정의에는 반드시 굽은 것을 바르게 하고 험한 것은 평탄케 하며, 높은 것은 낮추시고 낮은 것은 높이시는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느님 정의입니다. 다음은 ‘관계’의 정의입니다. 성서는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이든 인간과 인간 사이이든 언제나 관계적 차원에서 정의를 말씀합니다. 하느님은 지속적으로 인간과 계약을 맺으십니다. 목적은 당신이 창조하신 인간과 피조물을 끝까지 보호하고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하느님 계명에 따라 올바르게 살아야 합니다. 하느님의 성품은 사랑입니다. 구약의 예언자들은 핍박받고 가난한 이, 고아, 과부들을 돌보지 않고 바치는 희생제물이나 번제물은 우상숭배나 다름없다고 규정했습니다. 이런 것을 보더라도 하느님의 정의는 단순히 자선사업이나 윤리, 도덕이 아닌 우리 신앙과 직결된 문제입니다. 정의는 바로 하느님 보시기에 옳고 정당한 것을 의미하기에 우리에게는 피할 수 없는 의무입니다.
용기는 옳은 일에 겁내지 아니하는 기개와 행동
다음은 용기입니다. 미국에서는 흔히 갱단들이 신입단원의 용기를 시험한다며 아슬아슬한 철교난간에 올라 표식하게 하거나 사람을 칼로 찌르게도 합니다. 이런 것은 용기가 아닌 만용입니다. 신앙적으로 용기는 선한 일, 정의실천, 그리고 순교자들처럼 하느님을 증거하고 복음을 전하는데 필요한 힘을 말합니다. 어린 다윗이 오직 하느님만 믿고 조약돌 하나로 골리앗을 물리친 것이나 수많은 순교자들 경우에서 이런 용기를 볼 수 있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용기는 하느님 때문에 모든 것을 가벼운 마음으로 지고 가는 덕이라고 했습니다. 진정한 용기는 하느님께 대한 무한한 ‘사랑과 믿음‘에서 나옵니다. 사도 바오로도 "나의 간절한 기대와 희망은 내가 무슨 일에나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 늘 그러했듯이 지금도 큰 용기를 가지고, 살든지 죽든지 나의 생활을 통틀어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필립 1,20)라고 했습니다. 우리 교리서에도 ”용기는 어려움에서도 단호하고 꾸준하게 선을 추구하도록 하는 윤리적 덕“이라고 가르칩니다. 용기는 죽음의 공포까지 이겨내고 시련과 박해에 맞서게 하며, 옳은 일과 악과 부정에 맞서 목숨까지 바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덕목인 것입니다.
절제(節德)는 유혹을 조절하고 균형을 유지해 준다.
절제는 쾌락의 유혹을 조절하고 재화를 사용하는데 균형을 유지하게 해 주는 덕입니다. 인간은 삶 속에서 끝내야 할 것과 막아야 할 것들을 조절하는 힘이 필요합니다. 집회서는 “네 욕망을 따르지 말고 욕심을 절제하라.”(18.30) “혀를 절제하는 이는 갈등 없이 살고 뜬소문을 싫어하는 이는 잘못을 덜 저지르리라.”(19.6) “음식을 절제하면 건강한 잠을 이루고 일찍 일어나 기분이 상쾌하다. 잠을 설치고 메스껍고 속이 뒤틀리는 고통은 음식을 너무 많이 먹은 사람이 겪게 된다.”(31.20) “술을 절제 있게 마시는 사람은 마음이 즐거워지고 기분이 유쾌해진다.”(31.28) 등 34개절에서 절제를 강조합니다. 절제는 자신의 잘못을 예방할 뿐 아니라 육신건강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경제발전에 따라 씀씀이가 커지고 매사에 절제가 부족한 것 같아 걱정입니다. 북한동포들은 굶주리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하루 버리는 음식 쓰레기가 북한주민 한 달 양식보다도 많다고 합니다.
사회교리
요즘 우리교회 안에서는 ‘사회교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사회교리란 간단히 말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정치, 경제, 인권, 노동, 환경, 생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복음적 시각으로 성찰하고 정리한 교회의 가르침입니다. 사회교리와 가장 밀접하게 직결되는 것이 지금까지 설명드린 사추덕입니다. 이 네 가지 덕은 서로 긴밀하게 얽혀있어 이를 마음에 새기고 실천할 때 완덕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정의를 생활에서 실천할 때도 사회현상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와 이에 대한 정의감 그리고 이를 실천하는 용기와 절제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결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마침 오늘 독서와 복음은 지금까지 말씀드린 ‘민족의 화해와 신자들의 자세’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1독서에서 여호수아에서는 “내가 너에게 분명히 명령한다. 힘과 용기를 내어라. 무서워하지도 말고 놀라지도 마라. 네가 어디를 가든지 주 너의 하느님이 너와 함께 있어 주겠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어디를 가든지 하느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것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올해는 자비의 희년입니다. 희년이란 모든 채무를 탕감하고 새롭게 하는 해입니다. 우리 민족에게 그동안 겹겹이 쌓인 모든 한과 갈등을 자비의 마음으로 청산하여 바오로 사도 말씀처럼 “옛 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 것이 되었습니다.”라고 외칠 수 있어야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당신과 화해하게 하시면서, 사람들에게 그들의 잘못을 따지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화해의 말씀을 맡기셨습니다.”고 했습니다. 또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되게 하셨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우리 민족의 화해와 일치 그리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한 사명을 일깨우신 것입니다.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는 세리와 죄인들과 음식을 잡수시면서 잃어버린 한 마리 양과 탕자의 비유를 통해 하느님의 용서와 자비 그리고 잃어버린 양처럼 소외되고 버림받은 이들을 자비의 마음으로 안아주라고 명하십니다. 우리는 더 이상 지역, 신앙, 이념, 빈부의 차이로 갈라져서는 안 됩니다. 북한동포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과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민족화해의 길로 나가야 합니다. 더 이상 과거의 한과 상처에 얽매여서는 안 됩니다. 민족전체가 거듭나야 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자비와 용서의 하느님 우리민족을 불쌍히 보시어 갈가리 찢겨지고 갈라진 상처를 어루만져 주시고 편견으로 인한 차별과 억압 그리고 온갖 갈등과 미움이 사라지고 새롭게 사랑으로 거듭나는 민족이 되게 이끌어 주소서, 이러한 민족 공동체를 위해 당신을 따르는 우리들이 앞장서서 그리스도의 사랑과 화해의 사절이 되도록 남은 사순기간동안 새로운 마음으로 결심하게 해 주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