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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달사지 중심구역 배치도, 광대한 구역에 많은 전각들이 있었을 것으로 발굴조사 되었다. 본래 절의 권역이 사방 30리에 달했다고 하며, 중심구역을 제외하고는 논 밭으로 변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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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종대사의 사리탑의 전체모습. 기단부 답신부 상륜부가 잘 조화를 이루고 있어 아름답기 그지 없다. 이런 사리탑을 조성한 것을 보면 원종대사의 행적이 크고 대단했으리라 짐작하지만, 구체적으로 그의 공적이 무엇인지 알수 없어 궁금증만 더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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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달사지 승탑(원종대사의 탑과 유사한 형상이나 자세히 보면 다른점이 많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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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탑의 용트림 장식 옆모습원종대사의 승탑에서 200m 더 오르면 있는 승탑이다. 주인을 알 수 없어 안타깝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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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탑의 옥개석 덥개돌의 귀꽃장식, 곡선으로 치켜올라간 지붕곡선과 처마끝의 귀꽃이 무척이나 섬세하고 아름답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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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탑의 기단을 이루는 부분의 복련장식(업드린 연꽃모양 장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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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탑의 기단부를 장식하는 용트림의 용머리장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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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달사지 승탑 : 전면에는 배례석까지 놓여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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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종대사의 행적을 기록한 비석의 모습(뒷면) 본래 비석의 몸체는 깨어져서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이관 보관전시 중이고, 이곳에 있는 것은 본래의 탑신을 재현한 것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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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종대사 비석을 떠받들고 있는 귀부 거북의 머리가 무척이나 당당하여 마치 용머리를 연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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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종대사의 행적을 기록한 비석의 받침돌로 신물이면서 오래산다는 거북을 받침돌로 하였다., 좌측의 돌덩이는 비석의 머릿돌의 일부가 깨어져 떨어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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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종대사의 행적을 기록한 비석의 하부를 이루는 거북모양의 귀부 머리부분 머리의 형상이 서기 어린 용머리를 연상하며 얼굴의 각부 조각이 무척이나 사실적이고 당당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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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달사의 중심구역에 있는 석대좌의 모습: 위에 부처님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지만 대좌만은 손상되지 않고 그대로 있다. 저 대좌위에는 불상이 있었을 것이나, 자취를 알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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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달사지 중심 구역에 있는 대형 석불대좌 높이가 1.7m에 이른다. (저 위에는 고달사의 주부처님이 조성되었을 것이다.) 연화대좌의 아래는 복련이 위에는 앙련이 섬세하게 새겨져 있다. |
[그린경제/얼레빗=최우성 기자]
사적 제382호로 지정된 고달사터는 여주시 북내면 상교리에 있다.
고달사는 본래 통일신라 경덕왕 23년인 764년 창건되었다.
이후 통일신라말기에 원종대사(869년 ~ 958년)라는 큰 스님이 나와서
큰 가람으로 고달원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원종대사가 활약하던 고려시대 초기에는 불교의 융성과 더불어 큰 절로 유지되어왔다.
그러나 어떤 이유로 인하여 사세가 기울고 결국 폐사가 되었는지는
아직까지 별 기록을 찾을 수가 없다.
하지만 절의 구역이 사방 30리에 이르렀다는 고려사의 기록으로 보아
고달사는 거대한 절이었음만 짐작할 뿐이다.
폐사가 된 고달사터 중심구역 내부에는 원종대사의 행적을 기록한 탑비와
중심구역에서 좌측 산비탈에 원종대사 사리탑
그리고
누구의 승탑인지도 아직 밝혀지지 않은 절터의 뒷산 언덕 윗쪽에 자리한 승탑이 있으며,
절 중심구역 주 불전이 있던 건물의 가운데에 있는 석불대좌만이 있을 뿐
지금까지의 발굴 결과로 보아서도 건물의 기단부로 추정 할 수 있는 것 외에는
크게 밝혀진 것이 없다.
고달사터의 권역내에는 국보 4호인 고달사터부도(주인을 모름)
원종대사 혜진탑(보물 7호) 고달사터 석불대좌(보물 8호)가
넓은 절 권역에 덩그렇게 자리하고 있다.
이 가운데 원종대사 혜진탑비는 깨어진 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이전되었고,
본래 위치에는 깨진탑비를 복원한 탑비가 대신하고 있다.
원종대사와 관련한 탑비와 승탑들의 조각기법과 크기로 볼 때,
그의 명망이 대단하였다는 것을 짐작할 뿐이지만
아늑한 산세에 안겨있는 고달사터의 허허로움에 궁금증만 더욱 느끼게 한다.
원종대사의 비문이 깨어진 채라 하지만 남아있고,
또 그에 대한 기록들을 찾아내어 그가 어떤 일들을 했으며,
그의 불교적인 성취가 어떠했었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남아있는 석물들의 아름다움만을 보고
그저 대단한 큰절이었나 보다 하는 막연한 추정보다는
그의 큰절다움이 무엇이었는지 조사하고 연구하여
현세와 후세가 과연 본받을 만한 큰절이었는지 밝혀지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