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정의도, 국민의 알 권리도 아니었다. 안기부(현 국가정보원) 불법 도청 테이프가 MBC에 전달되는 과정에 연루된 사람들의 목표는 금품 갈취였다. 옛 안기부 도청팀장이 몰래 보관 중이던 불법 도청 테이프가 언론의 폭로성 보도로 이어진 경위가 속속 밝혀지고 있다. 검찰과 국정원은 박인회라는 재미동포가 도청팀장에게서 빼낸 도청관련 자료로 삼성에 금품을 요구하다 실패하자 MBC 측에 흘린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검찰이 '안기부의 불법 도청 테이프 유출 사건'에 대해 전면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의 주된 수사 대상은 옛 안기부 관계자들이 과거 사회지도층 인사들을 상대로 벌인 무차별적 불법 도청과 일부 언론이 도청 내용을 보도한 부분이다.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은 도청 행위자는 물론 도청 내용을 누설하거나 보도한 사람들도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김종빈 검찰총장은 26일 오전 기자들에게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한 뒤 "이번 사건의 본질은 국가기관이 개인의 사생활을 불법 도청한 것이며 불법 행위(도청)로 작성된 자료(테이프.녹취록 등)를 유포한 일부 언론 보도도 수사 대상"이라고 강조했다.
김 총장은 이어 "떡값이건 뇌물이건 (도청 테이프 내용은) 어떻게 보더라도 모두 공소시효가 지났고, 자료가 불법으로 작성된 만큼 (도청 내용의 진위를 따지는) 수사는 부적절하다"고 밝혔다. 이는 검찰이 도청 가담자들과 도청 내용을 보도한 언론사에 수사의 초점을 맞추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김종문 기자
*** 재미동포 박씨 공항서 출국 저지
MBC 기자 2명과 동행 … 국정원서 연행 조사
국정원은 26일 오전 11시쯤 MBC 보도국 전모 기자 등 기자 2명과 함께 미국으로 출국하려던 재미동포 박인회(58)씨의 출국을 정지시킨 뒤 연행 조사 중이다. 박씨와 동행하려던 MBC 기자 2명도 출국을 포기했다.
국정원에 따르면 박씨는 안기부의 도청 전담부서였던 '미림'의 팀장이었던 공운영(58)씨로부터 불법 도청 테이프를 건네받아 삼성그룹을 상대로 금품을 갈취하려던 인물이다.
공씨가 이날 언론에 공개한 자술서에 따르면 박씨는 1999년 공씨에게서 삼성 측을 협박하기 위해 문건(도청 녹취록) 가운데 삼성 관련 부분을 받아갔다. MBC에 문제의 도청 테이프를 건넨 사람은 박씨의 아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법무부 출입국관리국과 인천공항 등에 따르면 박씨는 이날 MBC 기자들과 함께 노스웨스트항공편으로 미국 시애틀로 출국하려 했다. 그러나 박씨가 국정원에 의해 출국정지된 인물로 확인돼 출국심사 단계에서 출국이 저지됐다.
박씨가 MBC 기자들과 함께 출국하려던 것과 관련, 한 정부기관 관계자는 "MBC가 검찰 수사를 의식해 자신들에게 불법 도청 문건을 넘겨준 박씨를 보호하기 위해 기자들과 함께 미국으로 출국시키려 했는지 여부는 곧 밝혀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장혜수 기자
*** "박씨가 요구해 5년 전 문건 건네"
전 미림팀장 공운영씨 자술서 공개
안기부의 불법 도청을 전담한 '미림'의 팀장이었던 공운영씨가 26일 불법 도청 테이프의 유출 과정을 밝히는 글을 공개했다.
공씨는 이날 오후 5시쯤 자신의 집인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W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딸(29)을 통해 A4용지 13장 분량의 '자술서'라는 글을 기자들에게 전달했다.
공씨는 이 문건에서 "(안기부에서) 같이 직권면직 당한 A씨로부터 소개받은 재미동포 박인회씨가 삼성 측에 사업을 협조받을 일이 있으니 보관 중인 문건 중 삼성과 관련 있는 것을 활용하겠다고 해 5년 전 문건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수개월 뒤 국정원 후배를 통해 박씨가 삼성 측을 협박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놀라 여비와 미국행 항공권을 주고 박씨를 미국으로 보내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공씨는 "최근 A씨로부터 박씨의 아들이 찾아왔으며, 'MBC 기자라면서 만나자고 해 쫓아 버렸다'는 말을 듣고 박씨가 또다시 문제를 촉발시키려는 것을 감지했다"고 썼다.
도청 테이프를 보관하게 된 경위와 관련, 공씨는 "언젠가 도태(퇴직)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대비해 200여 개의 테이프와 문건을 은밀하게 보관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임장혁 기자
안기부 '미림' 팀장이었던 공운영씨가 26일 자해 소동을 벌였다. 공씨는 이날 오후 6시15분쯤 자신의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W아파트에서 흉기로 배를 찌른 뒤 119 구급차에 실려 분당 서울대병원 응급실로 옮겨졌다.
이 병원 윤유석 전문의는 "복부 네 곳을 흉기로 찔러 봉합 수술을 했다"며 "상처 깊이가 최대 6㎝ 정도로 깊은 편이지만 장기에 손상이 없어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라고 밝혔다.
첫댓글 김종빈 검찰청장님, 유출한 자와 보도한 언론.. 반드시 수사하여 법대로 처벌해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