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체 춥게하고 하체 덥게 해 혈액순환자 신진대사 촉진
‘머리를 차게 하고 발을 덥게 해라. 그러면 당신은 모든 의사를 비웃을 수 있을 것이다.’ 18세기초 네덜란드의 명의(名醫) 불하페가 남긴 말이라고 한다. 이 원리를 응용해 만병을 고치는 목욕법이 있다고 해서 화제다. 몸의 절반만을 따뜻한 물에 담근다는 ‘반신욕(半身浴)’. 체온보다 약간 높은 37~38℃ 정도 미지근한 물에 가슴(명치 부근) 아래만 20~30분간 잠근다. 어깨나 팔 부분도 물 속에 넣으면 안 된다.
이렇게 하면 처음에는 다소 한기를 느끼지만 서서히 몸의 중심에서부터 더워져 땀이 흠뻑 배어나온다는 것. 감기나 불면증에는 물론 심장병, 고혈압, 어깨결림, 요통, 생리통 등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아예 사원 전체에게 반신욕을 권장하는 회사도 있다.
삼성코닝(주)은 최근 박영구 대표가 부임하면서 술잔 안 돌리기, 금연과 함께 반신욕을 ‘3대 건강 캠페인’으로 내걸고 『만병에 좋은 반신욕』이라는 일본 번역서를 사원들이 돌려가며 읽고 있다.
“5년 동안 꾸준히 했는데 몸이 가뿐하고 피로를 잘 느끼지 않게 됐습니다. 엄청난 병을 고친다기보다는 몸에 확실히 좋은 것 같아, 거래처나 직원들에게 권유해 왔어요.” 박영수 대표는 ‘직원 건강이 곧 회사 건강’이라는 생각에 아예 회사 캠페인으로 삼았다고 한다. 반신욕은 5년 전 이건희 회장이 일본에 다녀온 뒤 임원진에게 권유하면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목욕이 혈액순환을 통한 피로회복과 신진대사 촉진에 좋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 그렇다면 반신욕이 왜 몸에 좋다는 걸까.
『만병에 좋은 반신욕』이라는 소책자에 따르면 만병의 근원은 상반신 체온이 높아지고 하반신 체온이 낮아지는 체온의 상하차, ‘냉(冷)’ 상태에 있다고 한다. 반신욕은 하반신을 따뜻하게 함으로써, 혈액 순환 장애를 초래하는 이 냉을 없앤다는 것. 머리는 차갑고 발은 따뜻해 지는 두한족열(頭寒足熱) 상태이다.
수축된 혈관이 열리면서 피가 부드럽게 흐르게 돼 혈압도 내려가게 된다. 땀을 통해 몸 속에 쌓여있는 독소가 빠져나가 몸 전체 상태를 향상시킨다고도 한다. 이 책자에는 반신욕을 해서 감기를 치료하고 관절염, 간장병, 신장병에 탁월한 효과를 봤다는 사람들 사연도 담겨있다. 의학기자인 마루야마 히로유키는 “매일 밤마다 해보니까 잠도 쉽게 들게 되고, 다음날 눈을 떴을 때도 상쾌하다”고 말했다.
카피라이터 나카하타 타카시는 “사우나는 땀을 흘려도 어쩐지 고생스럽다는 느낌이었는데, 반신욕으로 흘리는 땀은 운동하면서 땀 흘리는 것과 같다”고 했다. 국내에도 이 방법을 해보고 “두 달 사이 몸무게가 4~5㎏ 줄었다”, “피부가 눈에 띄게 좋아졌다”는 이들이 있다. 경희대한방병원 이종수 교수(재활의학과)는 “전신욕을 하지 않고 신체의 일부만 탕에 담가도 충분히 혈액순환이 활발해 질 수 있다”면서 “상체의 열을 하체로 내려가게 해 인체순환을 돕는 것은 경락 메카니즘의 기본”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또 “구체적으로 반신욕에 대해 나와 있지는 않지만, 옛 문헌에도 냉욕과 온욕을 반복하거나 일정부위만 담가 체내 신진대사를 촉진한다고 나와 있다”고 말했다.
『만병에 좋은 반신욕』에 따르면 전신을 고온으로 뜨겁게 달구는 사우나나, 뜨거운 물에 온 몸을 푹 담그는 전신욕은 건강에 그다지 좋지 않다고 한다. 인절미를 센 불에 구우면 겉만 까맣게 타고 속은 딱딱한 채로 있는 것처럼, 물이 너무 뜨거우면 피부표면이 방한벽을 만들어 오히려 몸속으로 열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한다는 것. 특히 사우나는 뜨거운 공기가 위로 올라가기 때문에, 상반신이 뜨겁게 하체가 차가운 냉상태를 더욱 심화시킨다고 한다. 이같은 반신욕 효과에 대해 양방 의사들은 “들어본 바 없다”, “민간요법 정도일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물로 혈액순환을 도와 치료하는 방법으로는 재활의학과의 ‘수(水)치료(하이드로테라피)’가 있다.
신촌 세브란스병원 전세일 재활의학과원장은 “물의 압력이나 부력을 달리해 전신 혹은 하반신 등 특정부분을 물에 담가 근육ㆍ관절을 치료한다는 개념”이라며 “혈액순환을 통한 치료로 자연요법과 통하는 구석이 있다”고 했다.
반신욕, 이렇게 한다
체온보다 약간 높은 37~38℃ 정도 미지근한 물을 욕조에 준비한다. 물에 들어갈 때는 먼저 발에 더운 물을 끼얹는다. 상반신과 하반신의 체온 차이를 어느 정도 바로 잡기 위해서다. 너무 추울 때는 욕실 안을 더운 김으로 충분히 따뜻하게 해놓는다. 욕조에 들어가선 가슴(명치부근) 아래까지만 물에 담근다. 명치 아래쪽이면 어디까지든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명치 위쪽을 오랫동안 뜨거운 물에 담그지 않는다는 것.
어깨나 팔부분도 물속에 넣으면 안된다. 너무 춥다 싶으면 20~30초 정도 어깨까지 물에 담가도 된다. 20분간 꾹 참으면 몸 속부터 따뜻해져 기분이 좋아진다. 머리나 얼굴, 가슴, 팔에서 땀이 나기 시작하면, 전신욕을 할 때보다 몸이 더워져 욕실 밖에 나와도 한기를 느끼지 않게 된다. 욕조에서 나와 몸을 식힌 뒤 다시 욕조에 들어가는 것을 반복할 수도 있다. 효과를 높이려면, 욕실에서 나와 우선 양말을 신고 하반신에 속옷을 두껍게 챙겨 입는다. 평상시에도 하반신, 특히 발부분을 차지 않도록 하고 상반신은 되도록 얇게 옷을 입는 게 좋다.
질환에 따른 방법과 효과
어깨가 결리는 사람은 반신욕을 하면서, 몸을 앞으로 숙이거나 뒤로 제치거나 하는 식으로 몸을 움직이는 게 좋다. 목덜미에서 어깨부분으로 가볍게 손마사지를 해본다. 근육긴장이 풀려 전신의 피로가 없어진다고 한다. 급격한 온도변화는 허리에 좋지 않아, 요통환자라면 무리하게 움직이거나 정좌할 필요가 없다. 요통이 있으면 욕조 속에서 등을 구부리고 두 발을 안는 자세가 가장 적합하다. 치질통에는 예로부터 엉덩이만 담그는 좌욕이 좋다고 한다. 항문 부근에 생긴 사마귀 같은 치핵(核)의 아픔을 줄이려면, 하반신만 담가 항문 주변을 충분히 따뜻하게 해주는 입욕법이 좋다. 다만 항문 주위에 농양이 있다면 더운 목욕물이 닿지 않도록 한다. 뜨거운 물에 전신욕을 하는 게 좋지 않은 고혈압이나 심장질환 환자는 피가 잘 흐르고 혈압을 낮추는 반신욕이 좋다. 최대혈압과 최소혈압의 차를 줄여 저혈압에도 좋다고 한다.
하반신의 장기기능을 좋게 만들어 여성들의 생리불순이나 생리통ㆍ갱년기 장애에 특히 효과적이라고 한다. 감기가 걸렸을 때 뜨거운 물에 몸을 푹 담궜다가 나와 갑자기 한기를 느끼는 전신욕은 피해야 한다. 설사나 복통일 때는 발만 더운 말에 담그는 족탕(足湯)이 좋다. 삐거나 타박상을 입었다면 상반신은 상관없지만, 하반신일 경우 환부를 덥게 하는 것은 좋지 않다. 식사 후나 술을 마신 직후 목욕은 원래 나쁘다. 하지만 혈액순환을 돕고 혈압을 내리기 때문에 서서히 따뜻함을 느끼는 반신욕은 상관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