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 25일, 일요일
두타산
'베틀바위' 무릉 산성길 산행(2)
'용추폭포'에서~
'두타산성'에서~
두타산의 기암괴석
두타산성
두타산의 험준한 지세를 이용하여
이곳에 산성을 쌓은 것은
신라 파사왕 23년
서기102년에 일이라 한다.
1414년 (태종14) 삼척부사 김맹손은
이성을 중축하고
주위 2500미터 높이 2미터의
석성을 만들었다.
1592년 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났을때
많은 사람들이 난을 피하여
이 산성에 모였고 의병장 최원흘을
중심으로 한 젊은 의병들이
이성을 공격하는 왜적을 맞아
용감히 싸워 왜병을 전멸시킨 싸움터다
세월이 흘러 성터는
허물어 졌으되 이곳이 선인의
호국정신이 깃든 곳이기에
표석을 세워 후세에 전한다.
1986.11.1. 동해시장
이곳 두타산은 저희 그룹의
1사1산 자연보호 구역입니다.
우리 모두 자연을 아끼고
사랑합시다.
동부
용추폭포 가는 길
국가지점번호
마Ma 사Sa
3275
4078
동해시 시설공단
033-539-3700
얼레지 쉼터
얼레지 꽃
얼레지 꽃은 얼룩무늬가 있어
얼레지라고 불리며
백합과의 숙근성 여러해살이풀로
관엽 관화 식물이다.
크고 고운 꽃이 무리 지어 피며
4월에 길이 25cm 정도의 꽃대가 나오고
1개의 꽃이 밑을 향해 달린다.
꽃잎은 6개이고 피침형이며
길이 5~6cm,폭 5~10cm로서
꽃 색깔은 자주색이다.
연한잎은 뜯어 먹기도 하는데
독이 있어 많이 먹으면 설사를 한다.
위험!
낙석주의구간
좌측,
박달계곡 가는 등로
국가지점번호
마Ma 사Sa
3251
4050
동해시 시설공단
033-539-3700
병풍바위/장군바위 안내도
장군바위
장군바위는
직장에서의 승진과 성공을 상징한다.
옥류동을 지나
선녀탕에 이르기 직전에
계곡을 따라
거대한 기암괴석의 아름다운 절경이
웅장하게 펼쳐진다.
마치 용맹스런 장군의 얼굴을
닮았다고하여 장군바위라 칭한다.
병풍바위
아름다운 병풍바위가
한 폭의 예술작품을 연상하게 한다.
장군바위와 나란히 서 있으며,
우뚝 솟은 병풍바위가
남성의 기상을 표현하는 듯하다.
수직으로 늘어선 암석들의 조화가
마치 병풍을 펼쳐 놓은 것처럼
계곡을 수놓고 있다.
선녀탕
선녀탕
좌측, 쌍폭포/우측,용추폭포
용추폭포
'용추폭포'는
청옥산에서 발원한 물이 흘러 내리며
3단의 단애에서
세 개의 폭포를 만들고 있다.
상.중단 폭포는
항아리 모양으로 되어 있고
하단 폭포는 둘레가 30m나 되는
검은 웅덩이를 이루는데,
조선시대 가뭄이 들면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하단 암벽 오른쪽에는
정조21년(1797년) 12월에
용의 덕을 바라면서
삼척부사 유한준의 글씨라고
알려진 [용추]가 석각되어 있고,
바위 전면에 무인 모춘에
광릉귀객이 썼다고 하는
별유천지 글귀는
선경과 같은 무릉계의 뛰어난
경치를 표현하고 있다.
용추폭포
용추폭포 인증 샷!
발바닥 바위
발바닥은 '사업성공'을 상징한다.
용추폭포 앞산에 위치하고 있으며
용추폭포의 철다리 위에서
위로 쳐다보면
발가락 모양의 바위 형상이 드러남.
만물상 중에서도
발가락이 선명한 바위가
압권이다.
발바닥 바위
남명 조식(1501~1572)은
바위에 새겨진 이름을 보고~
"대장부의 이름은
푸른 하늘의 밝은 해와 같아서,
사관이 책에 기록해 두고
이 땅에서 사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려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구차하게도 원숭이나 너구리가 사는
숲 속의 바위에 이름을 새겨
영원히 썩지 않기를 바란다.
이는 나는 새의 그림자만도 못해
까마득히 잊힐 것이니,
후세 사람들이 날아가 버린
그 새가 과연 무슨 새인 줄
어찌 알겠는가?"
-조식 [유두류록]중에서
쌍폭포(좌측)
쌍폭포(우측)
쌍폭포
'쌍폭포'에서~
다람쥐야!
너는 좋겠다.
ㅎㅎ
여기가
'무릉도원'이네!
국가지점번호
마Ma 사Sa
3302
4089
동해시 시설공단
033-539-3700
옥류동
우측,
관음폭포 가는 길
학소대
학소대
맑고 시원한 곳에 내 배를 띄우니
학 떠난지 이미 오래되어
대는 비었네
높은 데 올라 세상사 바라보니
가버린 자 이와 같아
슬픔을 견디나니.
상류의 동굴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이곳을 지나는데
이 바위에 학이 둥지를 틀고
살았다고 하여
학소대라고 한다.
무릉정공 최윤상 무릉구곡가
삼화사
천왕문
두타산삼화사
표주석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울창한 '적송'숲
무릉반석
무릉반석에 앉아
최인화
세월에 흔들리지 않고
모진 비바람에도
꼿꼿한 기개 꺽이지 않는
묵직한 돌처럼
그렇게 살고 싶네
바람에 휘청이고
부딪쳐 부서지는
정처 없이 떠돌며 멀어져가는
나약함을 보이기보다는
차라리
굳게 문 닫아걸고
삶에 그 어떤 고통에도
표정 없이 내색하지 않는
돌처럼 살고 싶네
일주문
무릉반석
석장 또는 석장암으로
지칭하기도 하던 이곳 무릉반석은
5천제곱미터나 되는 넓은 반석이
펼쳐져 있는 것이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끼게하며
주변의 기암괴석과 함께
천하절경을 이룬다.
반석위에는 이곳을 찾은
명필가와 묵객 등이 음각하여 놓은
여러 종류의 글씨가 있다.
이들 중 백미는
무릉선원 중대천석 두타동천
이라는 초서체로 크게 새긴 제자로
현세와 이상향을 넘나드는
옛 선인들의 기개와
풍류를 엿볼 수 있다.
무릉반석
금란정
금강사군첩-무릉계(김홍도 작)
본 산수화는
1788년 정조의 어명으로
단원 김홍도가 44세에
금강산 및 관동팔경 지역을 돌아보며
그린 화첩인 '금강사군첩'에
수록된 것으로서
그 중에서도 무릉계를 그린
이 작품은
무릉반석에서 풍류를
즐기는 선비,백두대간의 산세와
소나무 한 그루까지도
상세하게 묘사한 것이 특징이며,
세월의 변화상을
비교하여 볼 수 있다.
금란정
대한제국 광무7년(1903) 당대
삼척지방 유림재생들은
향교 명륜당에 모여
현학을 강마하고
동양 예의를 존숭하며
봄과 가을의 음상을 즐겨왔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향교가 폐강되었고
이를 분개한 유생들이
울분을 달래기 위해
금란계 라는 모임을 만들고
그 뜻을 기념하기 위해
정각을 건립하고자 하였으나
일본의 방해로 중단되었다.
그 후 당시 계원들은
선배 계원들의 뜻을 받들어
다시 정자를 건립하기로 하고
1947년 북평동 단봉 석경 등에
금란정을 건립하였다.
현재의 금란정은
1958년 무릉계곡으로 이전하여
오늘에 이른다.
12주련:
기둥마다 시구를 연하여
걸었다는 뜻
석평망지천:
돌이 평평하니 터 고르는데
흙 파는 일이 없고
정소득산다:
정자는 작은데
산은 많이 둘렀구나
로현운기잔:
산길은 구름 이는 곳에
달려있고
소고학귀대:
옛 보금자리에
학은 돌아오겠지
양옹휘쇄지:
양사언이 붓을
붓을 휘두른 곳이며
이로간경천:
이승휴가
불경을 열파한 곳이다
호암화정발:
호암에는
꽃이 만발인데
용소수장류:
용소에는
물이 이어 흐르는 구나
금곡다명월:
금곡에는
달빛이 휘영청 밝은데
옥산유백운:
청옥산에는
구름이 드리워 있구나
지이쌍계승:
지리산은
쌍계가 승지이고
금강만폭기:
금강산은
만폭동이 기이하다
무릉선원
중대천석 두타동천
(우측부터~좌측으로)
무릉반석 암각서
무릉계곡 초입에 있는
무릉반석에 가로로 쓴 살아 움직이는 듯
힘이 있고 웅장한 글씨이다.
무릉선원 중대천석 두타동천
이라는 암각서로,
그 아래에 옥호거사서신미라는
각서가 있는데,
신미년에 옥호거사가
섰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릉선원은
도교(신선)사상을,
중대천석은
불교 또는 유교사상을,
두타동천은
불교사상을 나타낸다고 한다.
이 글씨는 봉래 양사언이
강릉부사 재직(1571~1576)기간에
전임 정두형 부사의 부친상 관계로
신미년(1571)에 광천[비천]을 방문했을때
무릉계곡을 방문하여
썼다는 설이 있고
또 하나는 옥호자 정하언이
삼척부사 재직(1750~1752)기간중인
신미년(1751)에 무릉계곡을
방문해서 썼다는 설도 있다.
동해시에서는
오랜 세파에 글자가 희미해지고
마모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보존하기 위해 1995년도에
모형석각을 제작하였다.
동해 무릉계곡
명승 제37호
무릉계곡은 두타산과 청옥산 사이를
흐르는 4km 길이의 계곡이다.
삼화사에서 쌍폭포에 이르는 계곡과
그 일대는 화강암으로
형성된 못과 폭포,
아름다운 바위들이 이루는
경관이 빼어나다.
예로부터
동해안 제일의 산수로
이름을 떨치며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지금까지 수많은 자연적.
역사적 명소를 간직하고 있다.
특히 용추폭포와 무릉반석은
동해비경으로 꼽히는 절경이다.
무릉계곡 곳곳에서
바위에 새겨진 글씨를
찾아볼 수 있는데
특히
무릉반석에는
아름다운 글씨로
'무릉선원 중대천석 두타동천'
이라는 글귀가 거대하게 적혀 있다.
고려 시대에는
이승휴가 이곳에 살며
[제왕운기](보물 제1091-2호)를
저술하였다.
조선 시대에 김효원의 [두타산일기],
그리고 허목의<유산기> 등에서
옛 선비들이 무릉계곡을
사랑한 흔적이 전해지고 있다.
두타산이라는 이름은
산스크리트어'dhuta'의 소리를 한자로
받아적은 것으로서
'불도를 닦는 수행'을 뜻한다.
그만큼 불교와 인연이 깊은
무릉계곡에는
삼화사와 관음암 외에도
중대사,거제사 등의 절터가 남아있다.
이렇듯 무릉계곡은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더불어 사상적,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깃든 곳이다.
오후 4시 59분...
'관리사무소' 도착합니다.
두타산
'베틀바위' 무릉 산성길 산행을
마무리하며~
하산식!
오후 7시 5분...
횡성,
한우 무한리필
'라오니아' 도착!
'라온'
순우리말의 즐거운 이란 뜻
후리지아님!
배터지게~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ㅎ
563.3km...
내겐,
'행복 거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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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 사진방
두타산 '베틀바위' 무릉 산성길 산행(2)
대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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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4.28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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