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論山 灌燭寺 石造彌勒菩薩立像)
문화재 지정 : 국보 제323호(2018년 지정)
건립시기 : 968년(추정)
크기 17.8m
소재지 : 충청남도 논산시 관촉로1번길 25 (관촉동)
요약 : 충청남도 논산시 관촉사에 있는 고려시대 석조미륵보살입상.
개설
2018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우리나라 석조불상 중에서 가장 큰 불상으로서 크기가 17.8m이다. 일명 ‘은진미륵(恩津彌勒)’이라고도 하는 석조미륵보살입상은 백호(白毫: 원래 흰 털을 뜻하지만, 후대에 보석 등으로 대체됨) 구멍에서 발견된 묵서(墨書) 기록을 통하여 고려시대인 968년경에 조성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역사적 변천
조선 후기에 찬술된 『관촉사사적기』에는 석조미륵보살입상의 조성 과정이 기록되어 있다. 즉 석조미륵보살입상은 고려 광종(光宗) 때인 970년부터 목종(穆宗) 때인 1006년까지 혜명(慧明) 스님이 장인 100여 명을 거느리고 관촉사와 함께 조성하였다고 한다. 또한 마치 실측이라도 한 듯이 각 부위의 수치를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는데, 상의 높이는 55척(尺) 5촌(寸)이며, 둘레는 30척, 귀의 길이는 9척, 미간(眉間)의 폭은 6척, 입의 크기는 3척 5촌, 보관(寶冠)의 높이는 8척, 대개(大蓋)의 폭은 11척, 소개(小蓋)의 폭은 6척 5촌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미륵보살’이니 ‘관음보살’이니 하는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의 이름은 전혀 찾아볼 수 없으며, ‘불상’으로만 기록되어 있다. 석조미륵보살입상은 성현(成俔)의『허백당시집(虛白堂詩集)』에 보이는 ‘관촉사’라는 시 외에 많은 시인 묵객들에 의하여 회자되곤 하였다.
내용
충청남도 논산 반야산(般若山) 기슭의 관촉사(灌燭寺) 석조미륵보살입상은 전통적인 불상이나 보살상의 모습과는 다른 분위기를 갖추고 있다. 이 존상이 보살상이라는 것은 장방형의 보관(寶冠 : 보배로운 모자)을 쓰고 있으며, 양쪽 귀를 살짝 덮고 흘러내린 세 가닥의 머리카락, 지금과 같이 연꽃 같은 것을 들고 있었을 지인(持印 : 물건을 들고 있는 손 자세), 오른손 손목에 보이는 팔찌가 입증해 준다.
석조미륵보살입상은 몸에 비해 머리와 손발이 상당히 큰 편이다. 전체적인 비례도 잘 맞지 않는다. 또한 얼굴에 꽉 차게 표현된 이목구비(耳目口鼻), 부풀어 오른 듯한 양 볼과 이중 턱은 보살상이 갖추고 있어야 할 종교성은 커녕, 살이 찐 세속인의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눈썹에 비해 지나치게 길게 표현된 후리부리한 눈, 두터운 입술과 큰 입에서도 이러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어딘지 모르게 미숙하게 처리된 모습은 원통형의 짧은 목, 얼굴에 비해 상대적으로 좁은 어깨, 그리고 장방형의 돌을 포개어 쌓은 듯한 불신(佛身)에서도 확인된다.
석조미륵보살입상에 보이는 얼굴과 손이 강조된 표현은 고려시대 977년에 조성된 고령 개포동(開浦洞) 마애보살좌상과 981년의 이천 장암리 마애보살좌상 등 10세기 후반에 조성된 보살상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석조미륵보살입상은 이곳에서 멀지 않은 1963년 보물로 지정된 부여 대조사 석조미륵보살입상 등 고려시대 전기에 충청도 지방에서 조성된 석불 입상의 모델이 되었다.
특징
전통적인 불상관(佛像觀 : 불상에 관한 관념)과는 전혀 다른 비례와 표현법을 보여준다. 얼굴은 섬세하게 표현하려고 한 흔적이 보이나 몸은 대충 괴체감이 있는 몇 개의 돌을 쌓아 올려 만들었다. 석조미륵보살입상의 가장 큰 특징은 마치 초기 불상에서나 볼 수 있는 머리와 손을 몸에 비해 크게 강조하였다는 것이다.
의의와 평가
우리나라에서 조성된 가장 큰 석조불상으로, 고려시대 10세기 후반의 충청도 지방에서 조성된 석조불상의 모델이 되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고려혼 담긴 논산 관촉사 은진미륵, 국보 지정
국보 323호 지정
이데일리 기사 등록일 : 2018-04-20
고려 광종 때 혜명이 제작
"파격적이고 대범한 미적 감각 담아"
[이데일리 이정현 기자] 문화재청이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관촉리반야산에 있는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을 국보로 지정했다고 20일 밝혔다.
‘은진미륵’으로 알려진 국보 제323호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은 고려 광종(재위 949~975)의 명으로 승려 조각장 혜명이 주도하여 제작했다. 고려왕실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당대 뛰어난 조각장의 솜씨를 빌려 탄생했다. 문화재청은 “파격적이고 대범한 미적 감각을 담고 있고 우리나라 불교신앙과 조각사에 있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관촉사 ‘은진미륵’ 국보 승격
문화일보 기사 입력일 : 2018-02-13
이경택 기자
보물로 지정된 지 55년 만에
18.12m 국내최대 석불입상
충남 논산 관촉사의 ‘은진미륵’이 국보로 지정 예고됐다. 문화재청(청장 김종진)은 ‘보물 제218호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石造彌勒菩薩立像, 일명 은진미륵·사진)을 국보로 지정 예고한다고 13일 밝혔다. 이번에 국보로 지정 예고된 관촉사의 석조미륵보살입상은 1963년도에 보물로 지정된 후 55년 만에 국보로 승격되는 것이다.
‘은진미륵(恩津彌勒)’으로도 잘 알려진 이 석불입상은 높이가 18.12m에 달해 우리나라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미륵보살(彌勒菩薩)은 석가에 이어 미래에 출현하는 부처로 우리나라에서는 미륵신앙이 현세를 구원하는 희망의 신앙으로 수용돼 폭넓게 유행했다.
고려 말 승려 무의(無畏)가 쓴 글인 ‘용화회소(龍華會)’와 조선 시대 인문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1530년)’, 고려 문인 이색(李穡, 1328∼1396)의 ‘목은집(牧隱集)’ 등에 이 석불입상의 기록이 남아 있으며, 기록들을 종합해보면 고려 광종(光宗, 재위 949∼975)의 명으로 승려 조각장 혜명(慧命)이 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혜명은 1025년(고려 현종 16) 거돈사지 원공국사탑비를 제작했다고 알려진 승려로, 당시에는 저명한 장인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인물이다.
석불입상은 좌우로 빗은 머릿결 위로 높은 원통형 보관(寶冠, 불상의 머리에 얹는 관)을 썼고 두 손으로 청동제 꽃을 들고 있다. 널찍하고 명료한 이목구비는 멀리서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인상적이며, 압도적인 크기의 화강암에서 느껴지는 육중함은 고려의 권위와 상징을 보여준다. 특히 정제미와 이상미를 추구한 통일신라 조각과는 전혀 다른 파격적이고 대범한 미적 감각을 담고 있는 조각상이어서 우리나라 불교신앙과 조각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독창성과 완전성이 뛰어나 국보로 승격할 가치가 충분하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보물로 지정된 고려 시대 불교조각 중 월등한 가치를 지닌 대상을 국보로 승격시킴으로써, 국민과 해당 문화재에 대한 위상을 새롭게 공유하고 더 나아가 이 시대 불교조각에 대한 재평가도 함께 이루어지는 계기를 마련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문화재청은 이번에 국가지정문화재(국보)로 지정 예고한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에 대해 30일간의 예고 기간 동안 각계의 의견을 수렴·검토하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할 계획이다.
관촉사 ‘은진미륵’ 위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