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투어 피던 봄꽃들이 지고 녹음이 해를 가리는 5월 막바지다. 특별히 하는 일은 없지만 바쁜 날이 반복되어 쉬는 날을 정하기가 쉽지 않다. 이번 2박 일정도 김헌길 사장이 정한 뜻에 따르기로 해서 두 부부가 함께 제주도로 나섰다. 주말 비행기는 만석이다. 십중팔구 바람때문에 낭패를 본다고 하는데 날씨가 너무 좋아 한라산이 선명히 보인다. 오랫만에 보는 경치들이 새롭다. 공항에서 랜트카로 서귀포까지 가는데 차량 정체로 저녁식사 시간이 지났다. 육지에서 먹는 흑돼지맛과 다르다. 시장이 반찬일까! 서울에서 사업장을 제주로 옮긴 이정희 사장의 솜씨다. (강정흑돼지집). 숙소인 스프링데일까지 가는 밤길은 한가했다.
*편백숲길 주변에 편백나무 군락지가 있기 때문인지 새벽 공기가 상큼하다. 사려니숲길을 완주하기 위해 서둘러 클럽하우스에서 성게미역국으로 간단히 아침을 먹었다. 조천읍 샤려니숲길은 거대한 편백나무 군락지다. 성판악 반대편 우측으로 돌면서 숲길 입구가 나온다. 새소리와 발자욱 소리 뿐, 바람소리도 없다. 편백나무숲에 홀렸다. 상큼한 공기를 두 배로 마셨다. 아침마다 마시는 아차산의 솔향기와 구분된다.
물찻오름水成岳으로 가는 왼쪽길로 들어섰다. 2008년부터 휴식년제로 평소에는 오를 수 없다. 출입 제한이 일시 해제되어 물찻오름은 6/6까지 개방한다고 한다. 왕복 50분 거리다. 가파른 숲길을 올라갔다. 능선 전망대에서 한라산 정상까지 한눈에 펼쳐진다. 반대편 아래 물찻오름에 고인 물이 신비스럽다. 해발 717,2미터에 둘레가 3백여평 쯤 되는 작은 분화구의 호수다. 가물거나 장마 때나 수위가 일정하다고 한다. 자연보호 차원에서 시간의 제한을 두고 20명 내외로 탐방을 시킨다. 자연림과 습지를 보호한 덕에 희귀한 식물들을 볼 수 있었다. 적응치 못한 생태를 생각해서 발자욱 소리를 죽이며 내려왔다. 생태계 복원은 발길을 막는 게 방법이다. 다시 사려니숲길을 걸었다. 미로숲은 거대한 편백나무로 꽉찼다. 4시간 남짓 15킬로미터 코스를 공짜로 걷는 소득이었다. 김숙이님은 맨발로 걷는 체험을 했다. 행사 기간이라고 요란한 이벤트는 숲의 보호를 위해 자제했으면 하는 생각이다. 갈치조림 점심은 편백숲의 공기맛에 못 미친다. 해안도로를 달리며 한 눈요기도 재미있다. 표선해안로의 낭구지횟집은 김헌길의 지인이 운영하는 일품 맛집이다.과식을 했다. 스프링 데일리 숙소로 가는길이 즐거웠다. 별에 가린 초승달은 간데 없다. 주말 밤길이 한가하다.
*해안로를 따라
게으름으로 삼일동안 아침 일출을 못봤다. 창틈으로 들어오는 편백숲의 공기는 만금짜리다. 인심을 곁들인 클럽하우스의 전복죽에 아침 밥상이 길었다. 바람과 구름이 없고 파도소리가 없다. 외돌개孤立石는 찾아온 이들에게 만년 모델이다. 중국말도 가끔 들린다. 둘레길을 걸으며 간식으로 먹은 오메기떡이 입에서 녹는다. 바닷가 찻집으로 불어오는 해풍은 선풍기 바람이다. 첫날 먹었던 강정흑돼지집의 김치찌개가 점심밥상이었다. 미식가들로 문지방이 닳을 정도다. 이중섭 거리를 깜박 잊고 못 걸었다. 삼방산 용머리 바위는 만년의 세월동안 파도가 만든 명작이다. 애월읍으로 가는 해변길은 보리밭과 마늘밭으로 어어진 평야다. 풍경에 빠져 비행기 탈 시간이 빠듯했다. 제주시내에 들어서면서 차들이 많아 마음이 더 바빠졌다. 전복탕이 마지막 저녁밥상인데 여유롭게 먹지 못했다. 공항 대합실 면세점은 인산인해다. 무거운 쉿덩이를 하늘로 올린다. 사려니숲은 밤잠에 들었다. 2017. 05. 26~28.
첫댓글 2박3일의 제주 기행이 간결한 문체로 깔끔하게 정리되었습니다. 정 시인님의 수필이 간결체에서 영롱한 빛을 냅니다.
오랫만에 기행문 올리셨네요. 여행을 바로바로 담아내니 저도 여행감이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