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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삼계탕, 장어 따위의 보양식을 한여름 복날에 먹는다. 하지만 중국에서 보양식의 계절은 겨울이다.
■ 보양식을 겨울에 먹는 이유
한의사이자 서울 이태원 중식당 '대한각'을 운영하는 당광유(唐廣裕)씨는 "중국사람들은 찬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부터 보양식을 먹기 시작한다"고 했다. "겨울에 쓸 영양분을 축적하는 거지요. 여름에는 보양식을 먹어봤자 땀으로 빠져버린다고 봅니다."
중국문화에 두루 해박한 쑤이옌(�岩) 베이징어언대(北京語言大) 교수도 당광유씨와 같은 생각이다. "겨울은 자연이 일시 멈춘 상태입니다. 인체도 마찬가지죠. 이럴 때 거름 즉 보양식을 줘야 몸에 녹아 들어가지요. 여름에 먹으면 활동을 하면서 다 빠져나간다고 보는 거죠."
한국 한의사들의 견해는 전혀 다르다. 서울 종로구 '춘원당' 원장 윤영석씨는 "보양식은 여름에 먹는 게 더 낫다"고 했다. "한의학에선 사람 몸을 땅으로 봅니다. 여름이면 땅이 뜨거운 햇볕에 메마르죠. 보양식은 메마른 땅에 물 주고 거름 주는 걸로 보는 겁니다. 보양식은 몸이 허한 여름에 쓰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 봅니다. 땀으로 빠져나간다는 건 낭설입니다."
■ 맛있는 중국 보양식, 훠궈(火鍋)
보양식을 여름에 먹어야 한다는 한국과 겨울에 먹어야 한다는 중국 중 어느 쪽이 옳고 그른지는 판단 내리기 어렵다. 어쨌건 중국에서는 이제부터가 보양식을 먹는 계절이고, 중국인들이 가장 쉽고 맛있게 즐기는 보양식은 훠궈(火鍋), 중국식 샤부샤부다.
칭기즈칸이 먹던 음식이라고 알려지기도 했으나, 확인되지 않는다. 훠궈가 인기를 끌기 시작한 건 청나라 때부터. 청나라 위안메이(袁枚·1716~1797)는 자신의 책 '수원식단(�園食單)'에 "(훠궈가) 민간뿐 아니라 궁중에서도 많이 사용된다"고 적었다. 건륭(乾隆) 황제가 훠궈 530개를 차린 연회 열었다는 기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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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뚝배기처럼, 훠궈는 음식을 익히는 그릇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냉면그릇처럼 생긴 커다란 금속 용기 한가운데가 대개 태극(太極) 모양으로 나뉘어있다. 태극 한쪽에는 뽀얀 국물이, 다른 한쪽에는 시뻘건 국물이 들어있다. 뽀얀 국물은 백탕(白湯), 뻘건 국물은 홍탕(紅湯)이라고 부른다. 여기에 양고기나 쇠고기, 새우·오징어·가리비 등 각종 해산물과 채소를 넣고 익혀 먹는다. 양고기가 인기다. 당광유씨는 "양고기는 몸에 따뜻함을 주고 순환을 원활하게 하는 보양식"이라고 설명했다.
국물 우리는 재료는 정해져 있지 않지만, 소 사골을 흔히 사용한다. 소 사골에 당귀, 황기, 천궁, 숙지황, 백작약, 구기자, 초과, 용안육, 감초 등 한약재를 더해 6~7시간 끓이면 백탕이 된다. 여기에 고추와 산초, 후추, 고추기름을 추가하면 홍탕이 된다. 백탕에 자라, 오골계, 인삼 따위의 값비싼 한약재를 추가한 보양탕을 내기도 한다.
■ 훠궈 제대로 먹는 법
쑤이옌 교수는 "훠궈를 제대로 먹으려면 국물부터 먼저 마시라"고 알려줬다. "처음 나온 국물이 가장 몸에 좋습니다. 고기나 채소를 넣고 끓인 국물은 마시지 않아요. 중국에선 '다른 재료를 넣으면 탕국물의 영양이 죽는다'고 합니다."
그는 "국물에 파나 샹차이(香菜)를 넣고 마시라"고 했다. "특히 샹차이는 빠뜨리면 안 됩니다. 샹차이를 넣지 않은 음식은 (100점 만점에) '98점'입니다. 음식이 완성되지 않았다고 보는 거죠. 샹차이를 뜨거운 탕에 넣었을 때 올라오는 향이 너무 좋아요. 식욕을 촉진하고 소화를 돕는 효과도 있고요."
이어 "백탕은 마시지만 홍탕은 마시지 않는다"고 했다. "너무 맵고 얼얼해서 입이 마비됩니다. 음식을 제대로 맛볼 수 없어요. 다음날 화장실 가기도 고통스럽고요. 홍탕에는 고기나 해산물을 넣어 익혀 먹기만 합니다."
백탕이나 홍탕에 익힌 재료는 각종 소스에 찍어 먹는다. 서울 훠궈집에선 흔히 '썩힌 두부'로 알려진 홍방(紅方)을 조금 섞은 땅콩소스나 마늘과 소금을 넣은 참기름장, 풋고추를 잔뜩 넣은 간장 정도를 낸다. 쑤이옌 교수는 "다른 지역은 탕이 중요하지만, 베이징은 탕은 밍밍하고 소스가 중요하다"면서 "홍방, 참기름, 간장, 땅콩소스가 따로따로 나오면 손님들이 자기 입맛대로 배합하고 혼합해 소스를 만든다"고 했다.
■ 훠궈 한국식으로 즐기기
쑤이옌 교수의 훠궈 먹는 법은 가려 들을 필요가 있다. 전형적인 중국인의 입맛이라 한국사람에게 맞지 않을 수 있다. 특히 샹차이가 그렇다. 샹차이에 익숙지 않은 한국인은 "비누 냄새가 난다"면서 조금만 들어가도 음식을 전혀 먹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샹차이는 일단 맛을 들이게 되면 계속 찾게 되는 묘한 매력이 있으므로, 조금 넣고 맛보는 것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