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기한 칼럼: '이니스프리'로 가야지

[윤 기한]

‘이니스프리’로 가야지

  으느정이 거리는 내 연구실로 가는 길목에 있다. 가끔 이른 아침에 이곳을 지난다. 지금 햇살도 미처 기지개를 펴지 못한 시각이라 거리는 한적하다. 통행인마저 드물다. 큰길 쪽에 높다랗게 서 있는 거리입구의 대형 LED화면만이 요란하고도 화려한 율동의 젊은이들을 방영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여기 젊은이의 광장은 꽤나 지저분하다. 어제 밤 인파에 몹시 시달렸을 테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게다. 길바닥에는 담배꽁초와 전단지가 어수선하게 널려있다. 광란의 뒤풀이에 유린당한 모습이다. 피곤해 보인다. 텁텁한 냄새가 바람을 탄다. 목구멍이 간지럽다. 불쾌지수가 자꾸만 올라가는 판이다.

  이곳은 둔산의 신시가지가 생기기 전에는 대전의 중심가였다. 삼남의 관문 대전역과 충남도청의 중간위치에다 낭만어린 목척교를 이웃하고 있어서 꽤나 괜찮은 상가지역이었다. 화려한 패션의 거리요 미각이 유혹하는 먹거리 타운이기도 했다. 신명나는 극장과 멋쟁들이 드나드는 커피점과 고급사교의 현장 방석집들도 수두룩했다.

  그러다가 이제는 마치 나락호 신세가 되어버렸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퇴락한 왕실의 황망한 현장은 아니다. 다만 저만치 큰 상점 앞에서 아프레게르 커플이 한밤을 지새운 듯 길바닥에 주저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는 광경이 이 거리의 사치와 낭만과 청춘을 상징한다. 그건 화려했던 과거를 아주 버리지 못한 너스레 꾼의 잔영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들 머리 위의 가게 간판이 눈을 부시게 한다. 그 간판의 글자가 너무 휘황찬란해서가 아니다. 신기하게 내 눈을 자극한 건 ‘이니스프리’라고 쓰인 상호이다. 이 놀라운 상호에 잠시 걸음을 멈춘다. 너무나도 감격적인 상호이기 때문이다.

  마치 요망스러운 궁정의 안뜰에서 시시덕거리는 궁녀들의 요염한 자태에 홀려 비실대는 왕자의 발걸음처럼 외설적이고 탐욕적인 거리에 이 정감 넘치는 시상을 발기하다니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있는가. 상가의 간판으로 등장한 우리 시인들의 글을 일찍이 보지 못했다. 하물며 영국의 대시인이 창작한 시의 제목이 여기 조금은 어설프고 지저분한 저자거리 상점에 매달려 있다니 아니 놀라고 어찌할 건가. 

  더구나 그건 내가 애송하는 영시를 연상시킨다. 다름 아닌 아일랜드출신 영국시인 예이츠(W. B. Yeats)의 명시「이니스프리 호수섬 'Lake Isle of Innisfree'」이 금방 머리에 떠오른 것이다. 참으로 반갑다.

   “나 이제 일어나 가야지, 이니스프리로 가야지

    거기에 작은 오두막 하나 지으리, 나무 엮고 진흙 발라

    아홉 이랑 콩밭을 일구고 꿀벌통도 하나 마련하고

    그리고는 혼자서 살으리라, 벌이 윙윙거리는 숲속 빈터에서

    그러면 거기서 평화를 누리리라, 평화가 서서히 방울져 내릴 테니

    아침의 너울로부터 귀뚜라미 노래하는 곳으로 뚝뚝 떨어질지니

    거기 한밤은 마냥 반짝이는 빛이고 한낮은 보랏빛 붉게 타오르며

    저녁에는 예쁜 홍방울새 날갯짓이 가득 하리

    나 이제 일어나 가야지, 밤낮으로 언제나

    호숫가에 철썩이는 나직한 물결소리 들려오니

    한길 위에 서 있을 때나 회색 보도 위에 서 있을 때에도

    그 소리 나는 듣는다 가슴 속 깊숙이에”(전문)

  그렇다. 눈이 아리고 숨이 가쁜 회색의 도시 콘크리트 빌딩숲에서 “나 이제 일어나 가야지”라고 재촉하는 ‘이니스프리 시인’ 예이츠의 권유에 우선 가슴이 뛴다. 여기 옹색하기 그지없는 으느정이 거리에도 이런 시정(詩情)이 깃든 상점이 있다는 사실에 흥분하게 된다. 아니 어쩌면 고마운 감정이 먼저 솟구쳤나 보다. 잊었던 사랑의 시를 불러주기에 말이다.

  이곳의 가게들은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내 눈을 혼미 속으로 끌어가고 내 가슴을 뛰게 만든 상점, ‘이니스프리’의 문도 잠겨 있다. 쇼 윈도우가 없어서 어떤 종류의 매장인지도 아직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자꾸만 궁금해진다. 뭔가 그래도 아름다운 상품을 거래하는 곳이기를 은근히 기대한다. 그렇지 않으면 야단이다. 결코 추악한 물건을 사고파는 집이 제발 아니기를 소망한다 솔직히.

  한창 생기발랄한 틴에이저(Teen ager)들이 기필코 한 번은 들려봐야 한다는 으느정이 거리에 자리 잡은 ‘이니스프리’ 간판이기에 더더욱 궁금한 게다. 대관절 무엇을 파는 곳이 길래 이런 명당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가 싶어 정말 안달할 참이다. 분위기 돋우는 카페인가, 맛깔스런 스낵 코너인가, 아니면 행여 여름을 녹이는 아이스크림 콘 가게인가 하고 변덕스런 생각에 들뜨기까지 한다.

  어쨌거나 그 상점의 주인이야말로 필경 시를 사랑하는 사람일거라고 주제넘게 속단을 한다. 그렇지 않다면 저토록 정겨운 상호를 감히 생각이나 했겠는가 하고 멋대로 짐작해버린다. 그야 물론 호기심의 발동도 한몫을 한다. 하지만 문도 열리지 않고 건물 안에 아무도 보이지 않는 터에 이 ‘이니스프리’ 간판 집의 정체를 알아 챙길 방도가 없다.

  그러니 발길을 재촉하기로 마음먹고 연구실로 향한다. 인터넷을 열어 궁금증을 풀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선 것이다. 이윽고 간판 한쪽에 새겨있던 글귀를 되뇌면서 연구실에 들어서자마자 컴퓨터에서 ‘이니스프리’ 검색을 서둔다. 행여 멋진 상호내역이라도 찾게 되기를 기다리면서 말이다. 이 아름답고 멋진 이름을 골라 쓰는 사람이 얼마나 슬기로운가 싶어 키보드 터치에 바쁘다. 예이츠와 동행하는 행운이 덥석 안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더욱 그러는 게다.

  컴퓨터의 ‘열린 주소창’에서 ‘이니스프리’를 검색한다. 검색제안을 비롯해 녹색바탕에 새겨진 ‘이니스프리’라는 항목이 엄청나게 많이 나타난다. 컴퓨터의 모니터 윈도우에 가득하다. 카페 글이나 웹사이트나 링크에도 ‘이니스프리’의 선전광고 일색이다. 역시 ‘이니스프리’의 매력만점을 눈으로 확인한다.

  그러나 그것은 예이츠의 자연친화 서정시 ‘이니스프리 호수섬’을 일컫는 게 아니다. 시인이 그리워하는 유토피아가 아니다. 태평양화장품의 브랜드 명칭이다. 여성 스킨케어를 위한 메이크업화장품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래서 다시금 놀랜다. 하지만 그런 상호를 채택할 만큼 화장품의 질적 수준이야 “일러 무삼하리오”이겠지 하고 그나마 자위하기로 마음을 다스린다.  

  본시 ‘이니스프리’는 아일랜드 서부 슬라이고우(Sligo)근처 길(Gill)호수에 있는 작은 섬이다. ‘이니스프리’라는 어휘도 게일(Gael)어, 즉 스코틀랜드 고지대에 살던 사람들이나 아일랜드의 켈트족이 쓰던 언어로 ‘히스 꽃이 피는 섬(Heather island)’이라는 뜻이다. 히스 꽃이 자줏빛이라서 그것이 한낮에 호수에 비치면 온통 자줏빛으로 불타오르는 듯 보인다. 그러니 ‘이니스프리’가 얼마나 아름다울 것인가.

  영국의 척박한 땅에서 잘 자라는 히스 꽃은 여류소설가 에밀리 브론테도 좋아했다. 그녀의 소설 『폭풍의 언덕』에서 남녀 주인공들인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이 손잡고 뛰놀던 들판에 이 꽃이 무성하다. 사랑과 미움의 화신이라 할 히스클리프의 이름 자체에도 히스 꽃이 들어가 있는 연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처럼 히스클리프는 ‘히스 꽃이 피어있는 벼랑’을 표상하는 성격의 소유자로 창조된 것이다. 

  그러기에 무엇보다도 ‘이니스프리 호수섬’은 작은 오두막을 짓고 콩밭을 일구며 청정호수의 정기를 받아 살고 싶은 자연주의자 예이츠의 이상향이다. 내가 으느정이에서 만난 웰빙 화장품의 상호 ‘이니스프리’는 우리나라의 자랑거리 청정섬 제주도를 이니스프리 호수섬으로 등식화하고 있다. 그러면서 제주섬의 화산이 폭발했을 때 용암이 굳어져 만들어진 화산송을 이니스프리의 깔끔하고 새뜻한 이미지에 연결하고 있다. 그래서 ‘이니스프리’를 통해 강력한 노폐물흡착력, 그 탁월한 효능을 자랑하는 광고를 내고 있는 것이다. 설마하니 스킨로션 한 병이라도 사고 싶어 하지 않겠는가 하고 욕심을 부리고 있다.  

  누구보다도 ‘이니스프리 호수섬’을 사랑한 예이츠는 아일랜드문예부흥의 지도자로 추앙되었다. 일찍이 미술학교를 다녔으며 상상력이 풍부한 서정시인으로 알려졌다. 초기에는 낭만적인 꿈에 매혹된 시풍을 지녔지만 파운드(Ezra Pound)를 만난 뒤로는 구체적인 이미지와 적확한 표현에 주력하는 시를 썼다. 세 여성과의 연애와 결혼을 경험하면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고 상원의원이 되기도 한 예이츠는 20세기 최대의 영국시인으로 이름을 남기고 있다.

  그런 그가 이니스프리 섬에 가서 조용히 그리고 포근하게 살고 싶어 하는 욕망은 얼핏  초절주의자(超絶主義者) 소로우(Henry David Thoreau)의『월든』을 생각나게 한다. 소로우는 “하고 많은 사람들이 지독하리만큼 조용한 생활을 원하고 있다”는 신념에서 미국 마사츄세스주의 콩코드에 있는 「월든 연못‘The Walden Pond’」 옆 숲 속에 들어가서 스스로 오두막을 짓고 혼자 살았다.

  그는 물질의 노예가 된 자신을 해방시키기 위해 “인생의 본질적 사실과 맞닥뜨려 보자”는 목적으로 2년 2개월간을 그곳에서 지냈다. 자연을 관찰하면서 독서와 사색을 즐기고 자급자족의 생활을 경험했다. 자연과 친숙해서 자연의 정령(精靈)을 받아드렸다. 그런 뒤에 이 산림생활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기가 관찰한 계절의 참 모습을 글로 엮었다. 그렇다고 해서 누구나 그런 곳에 들어가 살기를 역설하지 않고 오히려 인생을 단순하게 영위하기를 강조했다. 그것이 곧 참된 인생의 목적임을 강조했다. 모든 것을 버리고 간 해탈스님 법정도 찾아갔던 ‘월든’이다. 

  어쨌거나 예이츠의 ‘이니스프리 호수’도 소로우의 ‘월든 숲’도 다 같이 밝은 하늘과 맑은 물과 함께하는 삶을 자랑한다. 그처럼 깨끗하고 신선한 공기와 부드럽고 따스한 빛이 있는 곳에서는 생명의 활력이 넘쳐난다. 이 순간에도 “나 이제 가야지, 이니스프리로 가야지”를 소리 높여 노래한 예이츠의 현신을 만난다. 그래서 주살나게 떠벌이는 정치쇼와 눈뜨면 눈알까지 도려 낼 사기 행투와 앞뒤 가리지 않고 덤벼드는 성폭력을 떠나 정말 ‘이니스프리 호수’로 가고 싶어진다. ‘월든 숲’을 찾고 싶다.

  아무래도 그래야만 편안하게 숨을 쉬고 자신을 지탱할 수 있을 것 같다. 요즈음 세태가 선인을 악인으로 둔갑시키기 일쑤이지만 세상이 미워서도 두려워서도 아니고 달리 좋은 방도가 없다 싶어 그런 게다. 더구나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정치를 한답시고 걸핏하면 진보네 좌파네 하고 내놓는 것 마다 살벌하고 잔인한 넋두리가 판을 치는 나라라서 칼날 위를 걷는 모험의 일상이 무섭고 싫증나는 것이다.

  어쩌다 이토록 지독한 ‘악의 소굴’로 전락한 ‘조용한 아침의 나라’를 그래서 떠나고 싶어지는 게 아닌가. 물론이다. 그래 가야지, ‘이니스프리’로 가야지. 

[최단]

윤교수의 눈을 자극한 ‘이니스프리’라고 쓰인 상호 .하기야 나도 페루의 마추피츠의 사진만 봐도 엣날 중남미 여행시 그감동을 못잊어 당시 신비한 마추프츠의 기행시를 꺼네 자유계시판에 올렸 네만 시를 쓰는 사람들의 예민한 감성이 그냥 지나치지 못한것은 나도 같으이 우연히 지나치다가 그런일이 시상을 자극하는것 알만하이 고맙게 읽고 가네.